열왕기상하

열왕기상1장 강해(왕들을 세우고 다스리시는 하나님)

호걸영웅 2018. 10. 19. 23:29

열왕기상1장 강해(왕들을 세우고 다스리시는 하나님)

서론)

열왕기상하 말씀은 마치 중국의 나관중이 쓴 중국의 삼국지를 읽으면서 대면하는 수많은 인간들의 군상들처럼 열왕기서는 방대한 신앙의 인물들의 역사를 대면하게 합니다. 타산지석이란 말이 있듯이 이 열왕기서 말씀을 연구하면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수많은 영적 교훈들을 찾을 수 있게 됩니다.

  본론)

  )다윗의 말년

1절을 보겠습니다. “다윗 왕이 나이가 많아 늙으니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아니한지라”고 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가장 존경 받았던 다윗 왕의 통치가 거의 끝나 가고 있었습니다. 흐르는 세월은 어느 누구도 멈추게 할 수 없습니다. 다윗은 30세에 왕위에 올라 40년간 이스라엘을 통치하였습니다. 이제 그의 나이도 70세의 황혼기에 이르러 서 이불을 덮어도 몸이 따뜻하지 않을 정도로 기력이 쇠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다윗이 이러한 상태에 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찌 된 일인지 후계자를 세우지 않았습니다.

이 때 신하들은 어찌하든지 다윗이 왕으로서 정상적인 업무를 진행 할 수 있도록 그의 기력을 회복시키고자 했습니다. 결국 신하들이 생각한 방법은 젊고 아름다운 처녀 아비삭을 데려다가 왕을 따뜻하게 하려는 시도를 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녀와 동침하지 않았고 단순히 간호만 하게 했습니다. 여기서 다윗의 신사적인 면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수넴 처녀 아비삭을 구하여 다윗을 간호인 혹은 첩으로 들였다는 소문은 다윗의 넷째 아들 아도니야에게 다윗의 건강이 악화되어 더는 통치를 하기 어려운 것으로 오판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아직 이스라엘 왕의 후계자도 공식적으로 정해지지 않은 그런 상황에서 재빨리 움직이는 성급하고 교만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다윗 왕의 넷째 아들 아도니야가 그였습니다.

)아도니야가 한 잘못된 일들, 세가지

 다윗 왕이 연로하여 국정을 이끌어갈 처지가 되지 못하자 아도니야는 자신이 왕이 될 것을 당연시하고자 3가지 일을 시도했습니다.

  1. 첫째는 자신을 보좌할 군사들을 모은 일입니다.

5절을 보십시오. “그 때에 (후궁인)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스스로 높여서 이르기를 내가 왕이 되리라 하고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기병과 호위병 오십 명을 준비하니...” 왜? 아도니야가 이런 결심을 쉽게 할 수 있었을까요?

그는 공식적으로 왕의 후계자로서 서열 1위였습니다. 자기 형들인 암논과 길르압과 압살롬이 모두 죽었기에, 그는 다윗 가문의 장자가 되었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장자로서 다윗 왕의 후계자로서 정당성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용모가 심히 준수하고 아버지 다윗이 ‘네가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고 하는 말로 한 번도 그를 섭섭하게 한 일이 없을 정도로 사랑 받는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후궁의 아들이라 했습니다. 권력 서열로 보면 왕후의 아들인 솔로몬에게 뒤졌습니다.

 6절에 보면 “그의 아버지가 네가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고 하는 말로 한 번도 그를 섭섭하게 한 일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아도니야는 태어난 날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아버지의 꾸중을 들은 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인간적으로 괜찮은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도니야는 지금 아버지의 허락도 받지 않고 스스로 왕이 되는 길을 시작한 것입니다.

  2. 둘째로는 군사적 참모인 요압과 종교적 조언자인 아비아달을 측근으로 세운 일입니다.

7절을 보겠습니다. “아도니야가 스루야의 아들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과 모의하니 그들이 따르고 도우나” 국가적인 정부 장악은 혼자 할 순 없습니다. 아도니아의 정권 장악에도 동참 세력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 자들이 바로 군대장관이었던 요압과 당시 대제사장이었던 아비아달이었습니다. 요압은 다윗의 야인시절부터 함께 생사고락을 함께한 다윗 왕국의 개국공신과도 같은 충신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압의 충성은 종종 자신의 이기적 동기에서 기인되었습니다. 자신의 이권에 저해가 되면 심지어 왕의 말도 여러 번 거스르고 자신의 욕망대로 행동했던 자입니다. 그는 다윗의 명령 없이 동맹을 맺으러 온 아브넬을 죽였고, 압살롬 왕자를 죽였으며, 세바의 반란 때 군대장관이었던 아마사를 죽였습니다. 요압은 이번에도 순수한 동기로 아도니야 편에 선 것이 아닙니다. 아비아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경쟁자인 제사장 사독에 대하여 제사장 권력을 독점코자 하는 욕망이 있었습니다.

 3. 셋째로 아도니야는 여러 왕자들과 자기를 따르는 자들을 모아 자칭 왕위에 오른 것을 선포하고 자축하는 잔치를 선왕인 아비 다윗의 아무런 허락도 없이 벌렸습니다.

9~10=“아도니야가 엔으로겔 근방 소헬렛 바위 곁에서 양과 소와 살찐 송아지를 잡고 왕자 곧 자기의 모든 동생과 왕의 신하 된 유다 모든 사람을 다 청하였으나 / 선지자 나단과 브나야와 용사들과 자기 동생 솔로몬은 청하지 아니하였더라”

엔으로겔은 예루살렘 성에서 멀지 않은 남쪽, 곧 헤브론 방향의 한 동네인 듯 합니다. 헤브론은 예루살렘 남쪽 30km 지점에 있는 도시입니다. 아도니야는 스스로 자신을 왕으로 선포하는 즉위식을 가졌습니다.

이것은 어떠한 행정절차도 걸치지 않는 불법적인 즉위식이었습니다. 아도니야는 자신의 즉위식에 왕자들 14명을 불렀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청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왕의 신하 된 유다 모든 사람을 다 청하였습니다. 아도니야의 정치적 기반은 유다 헤브론에 있었기 때문에 남쪽 유다 사람들을 부른 것입니다. 반면에 예루살렘의 친왕파 세력들은 부르지 않았습니다. 아도니야는 철저히 계산된 자신의 정치세력들을 규합한 것입니다.

 . 이스라엘은 신본주의 나라입니다.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입니다. 그래서 반드시 하나님의 선지자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아야 합니다. 아무리 하나님으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아도 하나님께 불순종하면 사울처럼 버림받는 것이 이스라엘 왕의 자리입니다. 아도니야는 자신의 다윗 왕가의 장자라는 한 가지 명분으로 왕이 되고자 했던 지극히 철없는 짓을 한 것입니다. 결국 선지자 나단이 브레이크를 걸었습니다. 먼저 왕후를 찾아갔고 다음은 기회를 왕후가 만들어 왕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일이 잘못되었음을 알리고 솔로몬의 왕 책봉의 끌어내어 공포하는 정식적인 행정 절차를 이루어 냅니다.

사실, 역대상 22 9~10절에 보면, 하나님은 다윗에게 그에게서 난 아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 할 것이라고 미리 약속해 주셨습니다. “보라 한 아들이 네게서 나리니 그는 온순한 사람이라 내가 그로 주변 모든 대적에게 평온을 얻게 하리라 그의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그의 생전에 평안과 안일함을 이스라엘에게 줄 것임이니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할지라 그는 내 아들이 되고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어 그 나라 왕위를 이스라엘 위에 굳게 세워 영원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셨나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솔로몬을 다윗 왕국의 후계자로 내정하셨습니다. 다윗은 이미 계시를 통해서 이 사실을 알고 있었고 나단을 비롯해, 여러 측근들에게 이 사실을 공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이 솔로몬의 왕의 즉위식을 공식적으로 미루고 있었던 것은 아직 솔로몬이 어렸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도니야는 교만했습 니다. 자기가 왕임을 공공연하게 선포하려 들었습니다. 잠언서 18:12절을 보면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때에 다윗 왕의 명령을 받아 솔로몬이 기혼에서 기습적으로 왕위 즉위식을 대대적으로 진행하자, 형 아도니야를 따르던 자들은 그 소식을 듣자마자 기겁을 하여 순식간에 다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기혼은 예루살렘 성 밖 동편에 있는 기혼샘과 성막이 있는 장소였습니다. 이제 아도니야를 위해서 목숨 걸고 지키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이기적인 동기로 뭉친 자들은 항상 쉽게 흩어집니다. 그리고 아도니야는 제단 뿔을 잡고 목숨을 솔로몬에게 구걸합니다. 마음이 어진 솔로몬은 그 아도니야를 살려 주고 선하게 살도록 권면하며 1장이 마감되어 있습니다.  

결론)

이스라엘의 지도자를 세우거나 높이는 것은 하나님의 몫입니다. 스스로 높아지려는 자는 낮아질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이 엄청난 진리를 배웁시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본체이시지만 지극히 자신을 낮추어 사람의 형체를 가지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님의 이름에 꿇게 하셨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자 자기를 비우고 종의 위치에 내려가서 때를 기다리며 섬기는 인생을 살면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높이십니다. 할렐루야!

092618 안익선 목사/참조:대예장 새숲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