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모음(Korean sermons)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라(히 10:19-25)

호걸영웅 2019. 9. 6. 03:35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라( 10:19-25)

 

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21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23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24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서론)

1.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라”는 말씀을 볼 수가 있습니다.  여기서“서로 돌아보아…!”라는 말씀을 사용하고 있는데, ‘서로’라는 이 단어가 우리 성경에서는 아주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서로 문안하라, 서로 화목하라, 서로 발을 씻기라, 서로 용납하라, 서로 용서하라,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서로 사랑하라’고 하시는 말씀은 수 없이 읽게 됩니다.
   사실 ‘서로’라는 이 두 글자를 빼버리면, 성경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기본정신이 아주 없어져버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의 믿음의 생활에는 ‘서로’라는 이 단어가 너무나도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2.  사실 천국은 ‘서로’라는 개념이 강조됩니다.  그 반면에 지옥은‘내가’라는 개념의 산물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 이런 예화가 있습니다. 어떤 분이 천국과 지옥을 여행을 하고 돌아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분이 본 바로는, 천국과 지옥은 어떤 면에 있어서는 똑같더라고 했습니다.
   먼저 지옥에 가 보았더니, 긴 식탁이 놓여있고 음식들이 차려져 있는데, 이상한 것은 손잡이가 아주 긴 수저들이 놓여 있더라고 합니다.  그리고 식사 때에는 반드시 이 수저로만 음식을 먹어야만 합니다.
   시간이 되었는데, 사람들이 몰려와서 그 숟가락으로 음식을 떠서는 아무리 자기 입에 넣으려고 해도 숟가락이 너무 길어서 어디 입 안에 들어가야 말이지요.  결국은 음식을 하나도 먹지를 못하고, 모두가 해골같이 바싹 말라있더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천국으로 가 보았는데, 거기에도 똑같은 식탁과 음식이 있고, 또한 똑같이 아주 긴 수저가 놓여있더라고 합니다.  그리고 식사시간이 되어 사람들이 모두 모여드는데, 모두들 웃어가면서 긴 숟가락으로 음식을 떠서는 서로 상대편의 입 속으로 넣어주더란 것입니다.  그러서 모두가 배불리 먹고, 그래서 혈색이 붉으래한 건강한 모습들을 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물론 누군가가 비유로 만든 이야기겠지만, ‘서로’를 위하고, ‘서로’를 사랑하며, ‘서로’를 돕는 그 곳이 바로 천국과 같은 곳이라는 의미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도 그러합니다.  오늘은 격려와 위로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본론)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법

  잠시 참고로 갈라디아서 6 1절과 2절 말씀을 보면 아주 중요한 말씀을 우리에게 해주십니다.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서로가 짐을 지는 것!’―이것이 ‘그리스도의 법’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법이란 무엇입니까? 법이란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것이지요.  만일 지키지 않는다고 한다면 범법자가 되어버리고 마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서로가 짐을 지는 것’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반드시 실천하여야 하는 ‘법’인 것입니다!

   그러면 ‘서로가 짐을 져 준다’고 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겠습니까?  여기에 대해 사도 바울은 1절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하여 주고 있습니다.
   혹 어떤 사람이 무슨 잘못한 일이 있거나 실수한 일이 드러날 때에는, 또는 못하는 점이나 모자라는 점이 있을 때에는, 조용히 그 실수를, 또는 그 모자란 점을 서로가 감당해 주고, 바로 잡아주고, 서로를 권면함으로써 다시는 서로가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도록 힘쓰는 것 ― 이것이 서로가 짐을 지는 방식이라는 말씀하십니다.

  

)고로 서로 약점과 부족을 받아 주어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모두가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을 배우며 예수님을 따르며, 어떻게 해서든지 예수님을 더욱 닮으려고 힘쓰는 자들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로마서 15 7절에서 이렇게 강조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영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남을 영접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서로 남을 영접하는 것’에 대하여 롬15 1, 2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고 했습니다.
   믿음이 강한 우리는 연약한 사람을 도와 그들의 짐을 함께 져주어야 한다 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자기 자신에게 좋은 대로만 행동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우리 이웃들에게도 유익을 주어, 그들을 기쁘게 함으로써 선을 세워나가야 하겠습니다!

   이제 바로 이 말씀을 생각하시면서 여러분의 직장에서나 이웃관계에서, 혹 여러분이 무관심함으로 인해서 다른 어떤 사람을 소외 시킨 일이 있지는 않은가 한번 꼼꼼히 살펴보아야 합니다.

 본문 25절에서는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고 말씀하십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것도 습관'이라고 말씀하십니다. ― 그렇습니다.  이것은 습관입니다.  서로 돌아보고 격려하고 권면하면 교회의 여러 집회에도 잘 모이는 좋은 습관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예화) 네덜란드 출신인 어떤 사람이 런던에서 그림을 파는 회사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전도자가 되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신학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자기 생애를 드리기 위하여 열정적으로 헌신하였습니다. 열심히 교회 봉사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찾아가 전도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처음 사역했던 교회에서는 그의 서투른 설교에 대하여 이런 저런 비판을 가했습니다. 비판적인 영성으로 충만했던 이 교회는 이 젊은이를 세워주지 못했습니다. 그는 결국 거기서 좌절하고 다른 사람의 권유에 따라 다른 일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거의 신앙을 잃어버릴 뻔한 위기였지만 그렇다고 신앙을 포기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고 결국 세계적인 화가가 되었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빈센트 반 고흐(Gogh, Vincent van)입니다. 그의 전기를 쓴 작가가 그에 대해 이런 흥미로운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 사람이 가지고 있던 열정과 창의력을 보면 그가 만약 전도자로 헌신했더라도 세계에서 위대한 설교가가 될 가능성이 있었다. 인류는 위대한 화가를 얻었지만 위대한 설교가는 잃었다.』 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격려하고 인정해 주는 일은 참으로 귀하고 복된 일입니다.

힘든 우리 모두에게는 당신의 격려 한마디, 『잘될 거야.』 『걱정하지 마.』 『너라면 잘할 수 있을 거야.』등등의 말이 필요합니다.

 

* 19살인 뇌성마비 환자였던 조니 아가르 5천 미터 달리기 경주를 끝냈을 때, 그의 뒤에서 식구들과 친구 등 많은 사람들이 그의 완주를 축하해 주었다 했습니다.

뇌성마비환자인 조니는 신체 활동이 자유롭지 못 헸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빠와 함께 팀이 되어, 아빠는 휠체어를 밀고 그는 타면서 여러 경주에 참여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조니는 혼자서 경주를 끝내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제프는 경주 거리가 반쯤 지났을 때 아들을 태워 달리던 휠체어에서 조니를 내리게 하여 보행보조기를 사용해 그의 두 발로 완주할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이렇게 그가 경주를 끝내자 친구들과 식구들이 그를 축하해주었던 것입니다. 조니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 뒤에 그들이 있었기에 그렇게 하기가 쉬웠어요. 그들의 격려가 저로 하여금 달릴 수 있게 해 주었거든요.』라고 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우리 구주의 사랑( 13:34-35)을 본받아 베풀 때에, 우리 모두가 서로를 격려하기로 한다면,이 세상은 천국과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워낙 섬세하고 예민해서 겉으로 드러나게 격려해주어야만이 지쳐 비틀거리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또 대개는 한번 격려를 받으면 분명하고 꾸준하게 그 박동을 계속합니다. 이 시대는 격려가 더욱 필요한 시대입니다. 시대가 이기적이고 험악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너나없이 우리 모두에게도 격려가 필요합니다. 우리의 살 길은 오직 하나입니다.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며 사는 것입니다.

 

( 40:1)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로하시는 것은 서로 위로하며 살라는 명령입니다. 따라서 위로의 하나님을 바라 본 사람이라면 자신도 누군가에게 위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교회는 상처받은 사람들을 건강하게 치유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상처를 안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싸매어 줌으로써 적극적인 치유 공동체, 위로의 공동체로서 그 사명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아프리카의 쿤타리카 라는 깊은 산 속에는 300여 종류의 원숭이들이 살고 있는데, 영국의 리즈버리 탐험대가 그곳에서 이상한 현상 세 가지를 발견했습니다. 첫째는 어느 날 아침, 온 산이 떠나갈 듯이 원숭이들이 고함을 질러대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지도자격인 원숭이가 세상을 떠났기에 슬퍼하는 표시였습니다. 둘째는, 부부 원숭이가 서로 얼굴을 쓰다듬어 주며 눈물을 닦아주는 모습이었습니다. 작은 새끼가 죽었는데 서로의 슬픔을 위로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셋째는 원숭이 한 마리가 커다란 구렁이에 칭칭 감겨 죽어가고 있는데 수십 마리의 원숭이가 돌을 던지면서 그 구렁이와 대항하여 싸우는 것입니다. 원체 커다란 구렁이라 잡힌 원숭이를 다 잡아 삼키자, 모든 원숭이들이 나무에 거꾸로 매달려서 슬프게 울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 후 영국의 리즈벨리 탐험대는 다른 사람의 슬픔이나 어려움에 참여할 줄 모르고 자기만을 위하여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볼 때면, 아프리카의 쿤타리카의 산 속으로 그런 사람들을보내자 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결론)

우리 가정과 교회, 그리고 이 사회에는 격려와 위로 받아야 할 사람들이 많습니다. 가난해서 끼니를 거르는 사람에게 끼니 한 번 대접한다면 그것이 가장 큰 사랑이며, 병든 사람을 찾아가 용기를 주며 하나님께 기도해주는 그 사람이야말로 위로자요 사랑의 실천자입니다. 세상에서 상처받고 외로운 이들에게 따스한 말 한마디 건네주는 것도 사랑입니다. 우리는 격려와 위로를 주는 사람이 되어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주심같이 우리들도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협력하고, 서로 나누며 또 한 주간을 은혜롭게 살아가므로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시길 축원드립니다.

081319 안익선 목사 / 참고: 한태완 목사, 대예장 벧엘교회 & 빛의 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