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굴의
기도를 본받자(잠 30:2-9)
서론)
오늘은 잠언에 나오는 아굴의 기도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혹시 여러분 중에는 “성경에는 축복받은 야베스의 기도도 있고, 치유
받은 히스기야의 기도도 있고, 엘리야의 기도도 있는데 왜 하필이면 아굴의 기도입니까?”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그런 기도가 잘 알려져 있긴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굴의 기도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를 원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아굴과 달리,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하되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기도를 드린다고 하지만
결국 세속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동기에서 기도하는 것들이 대부분 인것이 솔직한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과연 아굴은 어떤 자세를 가지고 기도했으며, 그 기도의 내용은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
본론)
첫째, 아굴은 겸손한
심령으로 기도했습니다.(2,3절)
본문 2-3절에서 “나는 다른 사람에게 비하면 짐승이라 내게는 사람의 총명이 있지
아니하니라 나는 지혜를 배우지 못하였고 또 거룩하신 자를 아는 지식이 없거니와”라고 아굴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을 낮추어 아주 겸손한 기도를
했습니다.
성경에서는 말하는 짐승이란 말의 의미는 “도덕적으로 타락한 자, 배덕한 자 죄인”을
가르칠 때에 사용되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은 자기 자신을 죄 많은 인간, 짐승처럼 자랑할 것 도 보여줄 것도 없는 존재로 자기 자신을 낮추고 아주 겸손함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자기 자신 은 지혜도 지식도 없기 때문에 거룩하신 하나님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신앙적 하찮은
죄인이라고 자기를 평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은혜를 입은 아브라함도 창18:27절에서 자기 자신을 ‘티끌’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또한 신약 성경을 2/3을 기록할 만큼 훌륭한 인격이나 신학이나
하나님에 대한 열정이 탁월했던 사도 바울도 그의 서신서에서 자기 자신을 가리켜 [죄인의 괴수](딤전 1:15),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였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전 15:8에서는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신앙고백은 신앙이 깊을수록, 은혜의 밀도가 진할수록 자기의 부족을 강하게 나타내는 고백입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큰 자]라는 뜻을 가진 히브리식 이름인 [사울]이라는 이름보다는, [작은
자]라는 뜻을 가진 헬라식 이름인 [바울]이라는 이름을 더 즐겨 사용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기도 드리는 기도자의 첫 번째 자세는 겸손함입니다. 우리도 아굴처럼 짐승과 같이 미련하고 약점과 결점을 가지고 있는 존재임을 고백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몸가짐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비굴한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교만하면 더욱 안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의
기도는 듣지 아니하시지만 겸손한 자의 기도를 들으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4절에서 “하늘에 올라갔다가 내려온 자가 누구인지, 바람을 그 장중에 모은 자가 누구인지, 물을 옷에 싼 자가 누구인지, 땅의 모든 끝을 정한 자가 누구인지, 그 이름이 무엇인지, 그 아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너는 아느냐”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아굴은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주권을 높이면서 기도했습니다.
사 40:12에서도 "누가 손바닥으로 바닷물을 헤아렸으며 뼘으로 하늘을 재었으며 땅의 티끌을 되에 담아 보았으며 명칭으로 산들을 간칭으로 작은 산들을 달아 보았으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로 잠 3:6에서는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 기도하는 성도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인정하고, 그분을 의지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할 때에도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 나라의 주권을 인정하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올바른 기도자의 자세입니다.
그리고 아굴은 본문 7절에서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나의 죽기 전에 주시옵소서”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아굴은 간절한 자세를 가지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두 가지를 자신이 죽기 전에 응답해 주십사 아주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나) 아굴의 첫번째 기도 제목
먼저 아굴은 성결하고
정직한 인간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8절 상)
본문 8절 상반 절에서 “곧 허탄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아굴은 성결하고 정직한 인간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아굴은 ‘내가 거짓과 허탄으로부터 멀리 떠나겠나이다’라고 기도하지 않고 '허탄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왜
이런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까? 아굴은 자기 자신이 얼마나 부패하고 타락한 존재인가를 너무나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떤 존재입니까? 아굴의 고백처럼 우리는
전적으로 부패하고 타락한 존재입니다. 우리는 선을 행할만한 능력이 전혀 없는 이기적인 존재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죄를 짓고 회개할 때는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라고
기도한 놓은 후에, 얼마 되지 않아서 다시금 또 그 죄를 거듭해서 짓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이처럼 우리는 우리의 의지로는 결코 성결하고 정직하게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아굴은 자기의 죄악된 생활과 허탄한 생활과 거짓투성이의 모순에서 벗어나는 길은 자신의 노력이나 수양이나 결심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능력 도우시는 은혜로만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성결하고 정직한 인간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주님의 기도를 통하여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며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고 기도를 알고 있고, 이런
기도를 끊임없이 드리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는 시험에 들고 있습니다. 악에 빠져서 허덕이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도 아굴과
같은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나를 구하시는 분, 나로 하여금
악에서 발을 빼게 하시는 분, 나의 피 묻고 더러운 손을 씻어 주시는 분, 깡패를 바꾸어 목사가 되게 하시고 장로가 되게 하시는 분, 강도를
붙잡아서 성도를 삼아 주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렇게 기도합시다.
'주여 부패한 늪에서 나를 건져 주옵소서! 타락한 실수로부터 나를 건져 주옵소서!
헛된 욕망과 욕구불만으로부터 나를 건져주옵소서! 불신앙과 교만의 성곽으로부터 나를 탈출시켜
주옵소서! 죄와 죽음의 사슬에서 나를 해방시켜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합시다.
다)둘째는 아굴은
물질적 시험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8절 하)
아굴은 본문 8절 하반 절에서 “...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물질적 시험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아굴의 이러한 기도는 한마디로 훌륭한 기도입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아굴이 가난하게도 말아 달라는 것은 우리 모두의 기도와 동일합니다. 그러나 부하게도 말라는 것은 우리의 기도와 매우 다르다고 생각지 않습니까? 솔직한 심정으로 말해보십시다. 풍족하게 살기를 원치 않는 분이 계시다면 한 번 손들어 보십시오. 아마 저를 비롯한 우리 모두는 부하게 되기를 원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다 넉넉하게 살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남이 보기에 재산이 많아 보이는 사람도 자기 스스로는 많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가난하게 마옵시고, 부하게만 하옵소서!"를 외칩니다.
그런데 진정 무엇을 위해
부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부함으로 말미암아 저지를 죄에 대해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부자가 되는 것이 나쁜 일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선한 방법으로 노력하고 성실하게 부지런히 일하여 많은 것을 얻어 부하게 사는 것은 바람직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다섯 달란트로 열 달란트를 만든 종을 칭찬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선한 방법으로
얻을 물질을 나를 위해서만 쓰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많은 수입을 얻었다고 자기만 배불리 먹고 살지
말고 주님의 사업, 선한 사업, 배고픈 자들을 위하여 사용하여야
합니다. 많이 가진 자 들이 나누는 삶을 산다면 가난한 자들 의 굶주림은 없을 것입니다. 초대 교회에 핍절한 사람이 없는 이유는 가진 사람들이 자기의 소유를 팔아 그 값을 사도들 앞에 두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물질이 너무 많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잊고,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을 떠나 사는 죄를 짓는 부한 사람이 되지
않도록 기도하여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부유함이 때때로 우리로 하여금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유혹할 때에 많이 있음을 성경도 지적하고 있습니다.
어떤 청년은 예수님을 따르기를 원했지만 재물이 많은 고로 결국 주님을 따르지 못했습니다.
이 청년에게는 주님을 따르는데 물질이 방해물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부자 청년이
예수를 온전히 따르지 못함을 보시고 “부자가 하늘나라에 가는 것이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부자이기 때문에 주님을 따를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으로 부자로 살면서 온전한 신앙생활을 하기가
참으로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또한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통하여 어떤 어리석은 부자가 곡간을 헐고 여러 해 쓸 물건을 비축해 놓고 스스로 만족해하면서 “내 영혼아 내가 여러 해 쓸 물건을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그렇지만 이 어리석은 부자를 향하여 주님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리하면 네 쌓아 둔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고 되물으셨던 것을 기억하시지요? 하나님과 재물은 덩일하게 섬길
수 없습니다.
또 아굴은 본문 9절에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두려워 함이니이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아굴은
가난하게 되는 것도 소원하지 않았습니다. 아굴은 만약 너무 가난해도 도적질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물질은
너무 없어도, 물질이 너무 많아도 범죄 하기가 쉽습니다. 가난과
부가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저해요인(沮害要因)이 된다면 그건 죄악임을 알아야 자족할 수 있는 믿음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마 6:6-9) 특히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라고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는 기본적으로 필요한 양식이 있어야 합니다. 일용할 양식이 없으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없습니다. 이 일용할 양식은
일용할 모든 것들에 대한 공급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너무 많은 것을 쌓아놓고 우리가 살기를 원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적당히 필요한 양식과 재물을
가지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안 그러면 썩거나 상하거나 도적 맞기 쉽습니다.
과거 하나님께서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광야에서 일용할 만나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만나를 매일 아침에 주셨습니다. 욕심을 내어 만나를 많이 거두어 그 이튿날까지 남겨 두면 벌레가 생기고 썩은 냄새가 났습니다.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 남겨 두었을 경우에만 하나님은 허락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적게 주셔도 더욱 주를 사랑하는 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바울 사도처럼 부할 때든지 가난할 때든지 일체의 비결을 배우시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딤전 6:7-10에서 다음과 같이 경고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라고 했습니다.
결론)
그러므로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주여! 나의 사업과 나의 직장과 나의 가정을 통하여 주님의 영광이
드러나도록 축복하여 주옵소서! 나의 건강과 나의 사업과 나의 주머니가 주님을 위하여 쓰여 지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주여! 나는 주의 것입니다. 나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나를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선한 도구로 사용하여 주옵소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굴처럼 자신을 낮추고 아주 겸손하게 기도합시다. 아굴처럼 하나님을 주권과 하나님 나라의 주권을 높이면서 기도합시다. 아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붙잡고 기도합시다. 아굴처럼 성결하고 정직한 인간이 해 달라고 기도합시다. 물질적 시험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합시다. 이런 기도는 우리가
천국에 갈 때까지 계속적으로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합시다.
091019 안익선 목사/ 참고:한국교회 부흥설교 설교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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