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느헤미야 1장 강해(느헤미야의 기도)

호걸영웅 2020. 1. 17. 04:59

느헤미야 1장 강해(느헤미야의 기도)


 서론)

느헤미야는 에스라와 원래 한권의 책이었습니. 그런데 후대에 학자들에 의해서 저자별로 분리된 것입니. 그래서 에스라서와 내용이 공통적으로 얽혀 있습니. 에스라서를 제대로 이해해야 느헤미야서가 이해된다 할 수 있습니다.

 ‘느헤미야’의 이름은 “하나님은 위로자이시다”라는 의미입니.

. 느헤미야는 마지막 포로 3차 귀환기의 사람입니다.


11절 보니까 그는 술 관원이었습니. 그 당시는 바사 왕궁에도 정변이 자주 일어나고 정치 체제가  독재와 같은 왕정시대이다 보니 독살, 암살 등이 많이 일어나서 항상 황제나 왕은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있었습니. 그래서 부하들 중 성품이 돈독하고 인격적으로 신망이 두터운 사람들을 뽑아 그들에게 왕의 음식과 왕의 상에 올려지는 술을 검하는 역할을 맡깁니. 이들은 하루에 적어도 두세 번은 반드시 왕을 직접 알현하는 신분이굉장히 신망이 두텁고 매우 높은 지위였습니.

 그러다 고국의  예루살렘의 성벽 재건이 근방 지역인들의 방해와 훼방으로 매우 지지부진하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선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위해 1000킬로도 넘게 떨어진 곳에 남겨진 느헤미야의 가슴에 울분과 슬픔을 통해 새로운 사역을 일으키셨습니다. 

 

 본론)

1. 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의 말이라 /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 기슬르월에 내가 수산 궁에 있는데

2. 내 형제들 가운데 하나인 하나니가 두어 사람과 함께 유다에서 내게 이르렀기로, 내가 그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의 형편을 물은 즉

 하나니는 느헤미야의 친형제인듯 합니다. 이들 앞의 아마 2포로귀환 때 이미 돌아갔던 사람들이었거나 그 후에 예루살렘에 어떤 일로 방문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국의 소식이 느헤미야에게 전해지게 됩니.

 3. 그들이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 하는지라

 느헤미야가 전해들은 좋은 소식이 아니었습니. 슬프고 안타깝고 처참하고 비통한 소식이 전해진 것입니.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였다했습니다. 게다가 “능욕을 받으며 성이 허물어지고 성문이 불탔다”는 소식을 전해 듣습니.

 

지금 느헤미야는 이방 땅에서 태어난 이민 2입니. 미국 교포 2세는 10대 후반에 가면 정체성의 혼란이 옵니. 그때까지는 자기가 미국인인 줄로 압니. 그러다가 10대 후반 되면 “나의 뿌리는 어디인가?”하는 근본적인 자의식이 일어나면서 아이덴티티가 흔들리고 정체성의 혼란이 옵니. 그런 애들을 바나나라고도 부릅니. 겉은 동양인, 속은 백인이다. 그들은 부모세대와 갈등이 많이 일어난다. 부모세대는 한국인의 정서가 있고 김치 된장 고추장을 찾지만 이민 2세는 피자와 햄버거에서 위인을 찾습니다.

. 그런데 놀랍게도 그는 부모의 신앙의 유산의 영향 때문인지 고국에 대한 부채감과 그리움, 목마름이 항상 있었다. 그는 이 소식을 듣고 운다. 그리고 그는 페르시아 왕의 휴양지인 수산궁에 술 맡은 관원으로서 모든 생활이 최고급 궁궐 생활이니 안락함이 보장되어 있고 삶이 안정되어 있었습니.  그러나 그는 수일 동안 슬퍼하면서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통곡의 기도습니. 속이 변화되지 않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4.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느헤미야가 기도 할 때 하나님이 일하셨습니. “네가 가라!고 하셨습니다.

5.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언약’이라는 단어에 집중하라-인데, 우리가 기도할 때 이 “언약, 긍휼”이라는 말을 주장하고 반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첫 번째 중요 단어는 ‘언약’입니. 이 언약은 약속했으니까 하는 옵션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함에 기초가 된 언약입니. 그런데 우리는 그분과 상호계약, 언약을 맺을 상대와 수준이 안 됩니다.  그러나  오직 그분의 긍휼하심이 기초가 되어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우리 인생에 개입하셔서 우리와 언약을 하신 것이다.

“내가 나의 이름을 불렀고 네가 나를 인정했고 네가 나를 믿었고 네가 나를 경외하므로….너를 아들 삼는다. 그래 좋다! 너는 이제부터 내 백성이다. 내 말을 듣고 지키면 내 앞에는 이러이러한 축복들이 준비될 것이다.”라고 언약을 하셨음을 기초로 합니.

 하나님은 그 언약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항상 유지하고 계신 분인가? 거짓이 없고 성실하십니. 성실의 가장 첫 번째 개념은 일관되시다는 것입니. 불변의 일관 속에는 기도해야 합니.

 6. 이제 종이 주의 종들인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범죄한 죄들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여 내 집과 내 아버지의 집이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나이다”

사실 그는 포로 이후에 타향에서 태어난 자이, 무너진 고토에 70여년 전에 조상들이 지었던 해묵은 죄악의 현장에 그는 분명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러나 그의 기도 속에는 그가 혈통적 죄에 대한 연대적 책임감을 갖고 있었습니. 사실 이것이 진실한 기도입니다. 아무리 작은 죄라도 감지하는 민감한 영적 상태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은 한국과 일본 사이나 독이리나 유태인들 상이에도 존재하는 감정이어야 합니다. 그것이 가해자와 피해자가 화목으로 가는 방법, 혹은 길목이라 할 수 있습니다.

 7. 주를 향하여 크게 악을 행하여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

 8. 옛적에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만일 너희가 범죄하면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 흩을 것이요

9. 만일 내게로 돌아와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그들을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청하건대 기억하옵소서

 놀라운 사실은 조상의 죄에 대한 책임이 분명히 있음을 고백하며 느헤미야는 다시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주장합니. “그런데 하나님, 잘못한 건 맞는데요. 우리가 다시 모세의 율례로 돌아오면 용서해주신다고 약속하셨잖아요?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우리를 부르실 것이고 모으실 것이고 회복시키신다고 약속하셨지 않습니까?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신 성품과 언약에 다시 자비를 구하고 있는 모습을 강조했던 것을 보게 됩니다.

10. 이들은 주께서 일찍이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구속하신 주의 종들이요 주의 백성이니이다

11. 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 종이 형통하여 이 사람들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였나니 그 때에 내가 왕의 술 관원이 되었느니라

 

“오늘 종이 형통하여...”에서 중요한 단어는 “오늘”입니. 오늘은 느헤미야가 간구한 당시 시대…곧 오늘날, 혹은 그때 즈음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은혜를 오늘날 입어 느헤미야 가 형통하여 이 사람 앞에서 은혜를 입게 되었음을 간증합니다.. 그래서 내가 왕의 술 관원이 되었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지만 결국  상당 부분의 경우가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서 은혜를 입게 하십니. 그래서 만남은 원초적인 의 방식입니.

우리들은 “먼저 좋은 부모를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좋은 스승을 만나게 하시고 좋은 배우자를 만나게 하시고 좋은 친구를 만나게 되는 것이 큰 축복들입니다.  그래서 런 복을 받도록 서로 또는 스스로 기도하고 기도해 주어야 합니. 만남은 하나님이 맺어 주시는 관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 만남을 통해서 하나님이 은혜를 부어 주십니다. 고로 좋은 인연을 만난 것을 큰 감사이요 늘 감사의 제목으로 삼아야 합니다.  

 

이제 이렇게 기도한 끝에, 느헤미야는 왕의 예상외로 큰 호의를 베풀어 줌에 힘입어 성벽공사에 대한 흔쾌한 허락과 지원을 힘입어  2장에서는 귀향하여  겨우 52일 만에 ……누구도 쉽게 대거나 완성할 수 없는 예루살렘 성벽 재건의  개혁을 이루어 내고 맙니다.

 

결론)

지금까지 포로들이 돌아가 10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는데 왜 성벽재건에 실패했습니? 개혁은 100년 동안 미뤄져 있었습니. 그런데 이 느헤미야 때 와서 개혁이 완성됩니. 돈이 부족했나요? 제도가 없었나? 사람이 부족했나요? 닙니. 느헤미야서 7-9장을 보면 느헤미야가 그 본질을 꿰뚫습니.

 ‘아하, 이 백성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없구나. 그래서 에스라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 강해의 부흥회를 시작합니. 엄청난 성벽재건의 역사를 앞두고 부흥회를 먼저 시작했습니. 노동력이 문제가 아니고, 제도적 개혁이 우선이 아니, 사람의 심령 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근본적인 뒤집음, 근본적인 새로움이 전제되지 않고는 진정한 개혁이란 존재할 수 없습니. 그 본질을 깨닫고 느헤미야는 놀라운 개혁 완성하게 되었습니. 오늘 말씀에서 보여준 느헤미야의 믿음과 기도를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010720 안익선 목사/ 참고:  송태근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