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 상하

사무엘 상 21장 강해(놉과 가드로 피신한 다윗)

호걸영웅 2020. 3. 7. 08:17

사무엘 상 21장 강해(놉과 가드로 피신한 다윗)

 

서론)

다윗의 도피 생활은 3기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 1) 19:9-22:23로 기브아에서부터 헤렛 수풀 까지로서, 비교적 도피에만 급급했던 시기였습니다. (2)는 다윗이 자신의 추적자 사울의 목숨을 두 번이나 살려주고 나아가서 도피 생활 중에서 나마 충직한 추종 세력들의 도움으로 백성들에게 신망을 얻는 23:1-26:25의 시기입니다. (3)는 삼상27:1-삼하 2:1까지로 절대적인 위기에 몰린 다윗이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블레셋 땅으로 망명한 시기입니다.

 

이러한 다윗의 도피는 이스라엘의 새로운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아 준비된 왕 다윗을 사울이 부당하게 핍박하였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와 함께 다윗의 신앙 및 대처 자세를 통하여 선으로 악을 이기는 다윗의 신앙적 성숙과 아량을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본론)

)1-9: 다윗이 놉 땅으로 피신한 기사입니다.

이 같은 다윗의 도피 생활은 그를 연단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의 결과로 이해해야 합니다. 놉 땅으로 피신한 다윗은 피신자란 자신의 처지를 숨긴 채,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먹을 것을 구하여 먹고 골리앗을 죽였ㅇ르 때 빼앗은 칼을 얻어 부장을 갖춘 후 계속적인 피신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다윗이 아히멜렉에게 본의 아니게 거짓말을 하였는데, 이는 그 곳에 사울의 목자장이었던 도엑이 있었기 때문 인 듯합니다. 그러나 본의 아니 거짓말이었더라도 결국 이 사건의 아히멜렉과 그 일족과 제사장들이 모두 학살을 당하는 사건의 원인제공이 되었습니다. 차라리 아히멜렉을 살해하겠다고 위협하여 먹을 것과 칼을 빼앗았다면 그들이 무사했겠지만 그 정도로 다윗이 생각을 깊이 못 한 듯합니다.

 

1: 다윗이 놉에 가서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이르니 아히멜렉이 떨며 다윗을 영접하며 그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네가 홀로 있고 함께하는 자가 아무도 없느냐

다윗은 요나단과 작별한 후에 놉 땅으로 도망쳤습니다. ‘놉(נב)’은 예루살렘 북방 4km 지점에 있는 성읍으로 제사장들이 거주하던 소이라는 지역이 있는 곳입니다(삼상 22:19). 과거 블레셋의 공격으로 법궤를 빼앗기고 실로가 파괴되자 제사장들은 에봇을 가지고 놉으로 간 듯 합니다(삼상 4:11). 따라서 놉에는 제사장이 여호와께 제사 지내던 성소가 있었습니다. 다윗이 이와 같이 제사장과 성소를 찾아간 이유는 자신이 어디로 피해야 될지를 여호와께 물으며 피신에 필요한 양식과 무기를 아울러 구하기 위함인 듯 했습니다(삼상 22:10).

 

아히멜렉은 엘리 제사장의 증손 즉 엘리의 아들인 비느하스의 손자로서 사울 당시 대제사장이었던 ‘아히야’와 동일 인물로 추정됩니다(삼상 14:3;22:9). 히브리어로 ‘떨며(하라드: חרד)’는 불안하여 떠는 상태입니다. 통상 수행원을 거느리고 다녀야 할 사울 왕의 사위인 다윗이 시중을 드는 사람도 없이 뜻밖에 혼자 나타나자 아히멜렉은 의아해 하기도 하고 무슨 불길한 명령이 있는지도 두려워 했습니다.

 

2: 다윗이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이르되 왕이 내게 일을 명하고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보내는 바와 네게

명한 바 일의 아무것이라도 사람에게 알게 하지 말라 하시기로 내가 나의 소년들을 여차여차한 곳으로 약정하였나이다.

다윗의 다급한 심정에서 나온 악의는 없는 거짓말입니다. 아히멜렉은 사울과 다윗 사이에 있었던 최근의 사건을 알리 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제사장이 그 사실을 알게 되면 사울 왕의 보복이 두려워 자신을 도와주 지 않을까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3: 이제 당신의 수중에 무엇이 있나이까 떡 다섯 덩이나 무엇이든지 있는 대로 내 손에 주소서

다윗은 매우 허기진 상태라 먹을 것을 구했습니다. ‘떡 다섯 개’는 다윗이 당분간 먹을 수 있는 식량이며, ‘무엇이든지’는  떡과 함께 먹거나 마실 수 있는 음료를 말합니다.

 

4: 제사장이 다윗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항용(恒用) 떡은 내 수중에 없으나 거룩한 떡은 있나니 그 소년들이 부녀를 가까이만 아니하였으면 주리라.

‘항용의 떡’은 평상시에 먹는 일반 떡을 말합니다. 당시 아히멜렉은  거룩한 떡 즉 여호와 앞에서 물려낸 진설병 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은 제사장들만이 신성한 장소에서 먹을 수 있는 것이었으나 그는 다윗에게 몇 덩어리를 건네주는 융통성을 보였습니다. 다윗이 왕의 중요한 임무를 띠고 여행을 하고 있다고 말했기 때문에 ‘그 소년들이 부녀를 가까이만 아니하였으면’ 즉 청년들이 성결한 상태라면  거룩한 떡을 먹을 수 있다 했습니다.( 15:18) 이는 긴급 상황에서 아히멜렉이 율법의 근본정신인 이웃 사랑( 22:39)을 실천하기 위하여 허락한 일입니다.

 

5: 다윗이 제사장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가 참으로 삼 일 동안이나 부녀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나 이다. 나의 떠난 길이 보통 여행이라도 소년들의 그릇이 성결하겠거든 하물며 오늘날 그들의 그릇이 성결치 아니하겠나이까 하매

‘삼 일’은 다윗이 도피했던 기간입니다. 다윗이 아히멜렉 제사장에게 ’성결‘이란 용어를 거듭 사용한 것은 그를 안심시키기 위함 이었습니다.

 

6: 제사장이 그 거룩한 떡을 주었으니 거기는 진설병 곧 여호와 앞에서 물려 낸 떡밖에 없음이라 이 떡은 더운 떡을 드리는 날에 물려 낸 것이더라.

진설병(레헴 하파님: לחם הפנים)은 ‘면전의 떡’이라는 뜻입니다. KJV에서는 ‘진열된 빵(Showbread)', NIV에서는 ’면전의 빵(the bread of the Presences)'로 번역했습니다. 이 떡은 12지파를 상징하는 것으로서, 여호와의 목전에 즉 성소의 떡 상에 진열해 놓는 것입니다. 이 떡은 일주일에 한 번씩 교체했으며 율법의 규례에 따라 성소에서 사는 제사장 외에는 먹지 못하는 것입니다( 24:9). ‘여호와 앞에서 물려 낸 떡’은 7일 동안 성소의 제단 위에 놓였다가 더운 떡을 드리는 날, 즉 안식일에 물려 낸 떡을 말합니다. 이것은 다윗이 온 후 일부러 물려 낸 것이 아니라 이미 교체하여 물려 낸 것이었습니다.

 

7: 그 날에 사울의 신하 한 사람이 여호와 앞에 머물러 있었는데 그는 도엑이라 이름하는 에돔 사람이요 사울의 목자장이었더라.

본절에서 에돔 사람 도엑이 소개된 것은 아히멜렉이 다윗에게 한 행동을 도엑이 보았고 후일 이 일을 사울에게 알리게 된 경위를 설명(삼상 22:9, 10)하기 위함입니다. ‘여호와 앞에 머물러 있었는데’ 도엑이 성막에 일정 기간 머문 것이 종교적 이유 때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단순히  ’성 소‘ 앞에 머물렀다고 표현하지 않고 굳이 ’여호와‘ 앞에 머물렀다고 표현함은 의무에 따른 행위임을 암시하기 때문입니다.

사울의 목자장‘ 도엑은 이스라엘이 에돔을 원정한 후(삼상 14:47) 사울을 섬기기 시작하여 사울의 목자장이라는 지위까지 올랐습니다. 당시 목자장이란 한 가정의 중요한 재산이었던 가축을 지키는 우두머리이니 왕실의 재산과 관련되어 있기에 주인의 신임을 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로 삼상 22:17, 18에 보면 도엑이 시위대와 함께 있었다는 사실과 그에게 상당한 병력과 신임이 있었음르 보여 줍니다.

 

8: 다윗이 아히멜렉에게 이르되 여기 당신의 수중에 창이나 칼이 없나이까 왕의 일이 급하므로 내가 내 칼과 병기를 가지지 못하였나이다.  다윗은 음식 외에 아히멜렉에게 무기를 요구했습니다. 신변의 위협에서 스스로를 지키려는 이도였습니다.

 

9: 제사장이 가로되 네가 엘라 골짜기에서 죽인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칼이 보자기에 싸여 에봇 뒤에 있으니 네가 그것을 가지려거든 가지라 여기는 그 밖에 다른 것이 없느니라 다윗이 가로되 그 같은 것이 또 없나니 내게 주소서 - 다윗은 공교롭게도 자기가 죽인 골리앗을 명검? 을 손에 넣게 되었고 그 길로 그곳을 떠나 피신을 계속하였습니다.

 

)10-15: 다윗이 사울을 두려워하여 블레셋의 한 성읍인 가드로 피하였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다윗은 자신의 신분이 발각되어 미친 자 행세를 한 후에야 겨우 위기를 넘기고 아둘람 굴로 도망하게 됩니다. 왜 다윗이 블레셋 지역으로 피신했는지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어쩌면 다윗은 자신이 골리앗을 죽인 지가 상당히 오래 되어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을 것으로 생각했을 수도 있으며, 또 적국의 장수가 귀순해서 환영을 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을지는 아무도 모를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다윗의 생각과 달랐습니다. 그는 오히려 그들에게 잡혀 죽을 뻔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이 위기를 간신히 극복한 후 사람에게 피하려 했던 자신의 생각이 실로 어리석었다는 사실과 오직 하나님만이 환난 날의 진정한 피난처 되심을 고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34).

10: 그 날에 다윗이 사울을 두려워하여 일어나 도망하여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가니

다윗은 아히멜렉과 작별한 후에 사울을 매우 두려워하여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도망을 했습니다. 다윗은 놉에서 사울의 목자장 도엑을 보았고 사울이 추격이 임박하리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바로 그 날’ 사울의 얼굴을 피하는 심정으로 급박하게 피신처를 가드로 정했습니다. ‘가드는 가사(오늘날 가자지구) 북쪽 약 32km 지점에 있던 블레셋의 5대 성읍 가운데 하나이며( 13:3) 다윗이 죽였던 골리앗의 고향이고(삼상 17:4), 과거 다윗이 공격했던 곳입니다(삼상 17:52). 이처럼 가드는 다윗과 는 원수 관계에 있었으나 사울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라 생각하고 도망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이런 결정은 결국 자신을 또 다른 곤경에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11: 아기스의 신하들이 아기스에게 고하되 이는 그 땅의 왕 다윗이 아니니이까 무리가 춤추며 이 사람의 일을 창화하여 가로되 사울의 죽인 자는 천 천이요 다윗은 만 만이로다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한지라

다윗의 바람과는 달리 왕궁의 신하들은 다윗을 보고 즉각 알아차렸습니다. 이처럼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이 후에 많은 시간이 경과했지만 다윗을 알아 본 것은 그 싸움이 블레셋 사람들의 뇌리에 깊히 박혀 있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당시 여인들이 불렀던 노래까지도 정확하게 기억을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12: 다윗이 이 말을 그 마음에 두고 가드 왕 아기스를 심히 두려워하여

13: 그들의 앞에서 그 행동을 변하여 미친체하고 대문짝에 그적거리며 침을 수염에 흘리매

 ‘그는 그들 앞에서 행동을 바꾸었고 ‘대문짝에 그적거리며(타와: תוה)= 다윗은 자신을 미친 것으로 보이게 하기 위하여 손가락으로 대문에 낙서하거나, 대문을 때리는 등의 행동을 하였으며 ‘침을 수염에 질질 흘리며’ 미친 자나 하는 행위를 보였습니다.

 

14: 아기스가 그 신하에게 이로되 너희도 보거니와 이 사람이 미치광이로다 어찌하여 그를 내게로 데려왔느냐

다윗은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를 알아보자 갑자기 미친 짓을 했고 이 행동은 가드 왕으로 하여금 미친 자로 판단하게 하였습니다. 다윗이 미쳤기 때문에 더 이상 그에 대해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는 멸시적인 선언을 하고 불결하고 더럽고 꼴 사나운 모습을 더는 보고 싶지 않아 쫓아내라고 하였습니다.

 

15: 내게 미치광이가 부족하여서 너희가 이 자를 데려다가 내 앞에서 미친 짓을 하게 하느냐 이 자가 어찌 내 집에 들어오겠느냐 하니라.

다윗은 아기스 왕 앞에서 추방되어 위기를 모면했습니다. 이런 지혜는 하나님이 주신 지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아기스의 궁에서 추방되자 아둘람 굴이라는 지역으로 피신을 했습니다.

 

 아둘람은 히브리어로 ‘은신처, 피난처, 격리된 장소’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고대도시 아둘람은 예루살렘 남서쪽 36㎞ 지점의 텔 아둘람 언덕 또는 호르바트('유적지'라는 뜻) 아둘람( 텔 에쉬 쉐이크 마드쿠르(Tell Esh Sheikh Madhkur) 지역으로 보는데, 이 지역에는 많은 석회암 동굴들이 산재하고, 적당한 물과 풀 숲이 있어 은신하기 좋은 장소입니다. 그곳에는 무려 400~500명도 거주 할 수 있는 큰 동굴들도 있는 곳입니다.

 

022720 안익선 목사/ 참고:Chugang & 배성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