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느헤미야11장 강해(누가 예루살렘 성을 채웠나!)

호걸영웅 2020. 3. 7. 08:19

느헤미야11장 강해(누가 예루살렘 성을 채웠나!)
서론)
1. 모토롤라 본사가 발행한 어느 잡지엔 ‘고릴라를 주목하라(Keep your eye on the gorilla in the room)’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삼성 셀레폰을 높이 평가한 기사가 나왔습니다. 그리고‘넘을 수 없는 벽, 2%’라는 말을 했습니다.
옛날에는 성공과 실패에는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닙니다. 바로 단지 그저 2%의 차이라 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물어봐야 합니다, 무엇이 이 2%의 간격을 만들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2%는 지금부터 2,500여년 전에도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2. 우리는 지난 주까지 느 10장까지 기록된 말씀을 보았습니다. 지난 시간, 하나님의 부흥을 경험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몇 가지 결의에 대해서 나누었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을 이방인과 통혼시키지 않겠다” “안식일과 안식년을 지키겠다” “성전을 방치하지 않겠다”헌금과 헌물에 최선을 다하겠 다등입니다. , 오늘 본문 말씀 11장부터 마지막 13장까지는 느헤미야의 결론 단락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벽건축을 완성하고, 말씀으로 부흥을 체험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국가의 안정적 발전을 위해 실제적인 삶의 영역에서 개혁을 이루어가는 과정을 다루게 됩니다. , “말씀의 부흥을 경험한 이들이 어떻게 삶 에서 이 부흥을 이루어 나가느냐” 라는 것에 대한 말씀이라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어찌 이스라엘 백성들만이 아니라 우리들의 숙제이며, 동시에 2%의 성공과 실패의 차이를 발견하게 됩니다.

, 그렇다면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서 온전한 100% 2%가 부족한 98%로 머물게 했던 사건은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오늘 본문 11장의 사건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루살렘 성내의 거주자들에 대한 기록입니다.

본론)

)재건한 에루살렘 성을 채워라

예나 지금이나 한 나라의 수도는 그 나라의 정치, 경제, 군사력의 노른자위요, 자긍심입니다.
항상 전쟁이 일어나면 상대의 수도를 먼저 공략함으로, 상대의 자존심을 파괴시키고, 핵심을 시설을 마비시킵니다. 9.11사건이 그토록 미국을 분노케했던 이유도 정치적 수도인 워싱톤과 경제적 수도인 뉴욕의 심장을 공격했기 때문입니다. 아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수도 예루살렘이 가지는 의미는 대단했습 니다. 특히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곳으로, 매년 절기마다 전국에서 사람들이 모였으며, 가지 못하는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전 쪽을 향해 창문을 열고 엎드려 예배드릴 정도로 그 존재의 가치는 절대적이었 습니다. 이 때문에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의 성벽을 상징적으로라도 재건하여 다시 튼튼하게 번영하는 하나님의 도시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 예루살렘 성벽이 잘 완성되었습니다. 그러나 도시가 번성하려면 성벽이나 건물도 잘 지어야 하겠지만, 무엇보다 사람들로 가득 차야 합니다. 그렇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성벽만 재건되었지, 그 안은 폐허 상태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1, 2차 귀환과 더불어 새로운 인구 조사를 통해 그 예루살렘 성안에 인구를 재정착 시키는 작업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또한 예루살렘 성벽은 둘레가 거의 6.5킬로미터가 되었기 때문에 그 성을 지킬 사람들도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징적인 장소인 예루살렘의 성벽을 짓기는 했지만 그 안에 들어가 살고 싶어하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아직 예루살렘 성안에는 정리된 것이 아무 것도 없었고,  상권 또한 형성되지도 않아 살기에는 매우 불편한 장소였습니다. 그야말로 예루살렘은 도로도 제대로 안딱이고 가게나 교육시설도 부족한 한국의 어느 아파트 단지 같았습니다.

, 이제 다시 느헤미야를 다시 보십시오. 그 왕의 술을 맡은 관원장으로, 이른바 경호실장 격의 아주 높은 직위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던 그는 궁궐에서 하나님의 도시인 예루살렘의 성벽이 훼파되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몹시 괴로워합니다. 결국 그는 왕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 귀하고 안정된 자리를 버리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훼파된 성벽을 다시 수축하게 됩니다.. 

분명 당시 사람들이 보기에는 느헤미야가 어리석어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저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단순한 바사의 단순한 관리 느헤미야를 넘어 하나님께 쓰임받고 은혜받은 자, 그리고 무너진 하나님의 성을 수축하는 인생으로 산 사람이었습니다.
                                                 
3.  다시 본문으로 예루살렘은 현실적으로 분명 변방과 다를 바 없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그 곳에서 살며 하나님의 영광이 재현되도록 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세 종류의 사람들 이 예루살렘에서 생활을 시작하였다 했습니다.

 1,2절입니다.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루살렘에 자리잡았다. 나머지 백성은 주사위를 던져서, 십분의 일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서 살게 하고, 십분의 구는 저마다 자기의 성읍에서 살게 하였다. 스스로 예루살렘에서 살겠다고 자원하는 사람 모두에게는 백성이 '복을 빌어 주었다'.”했습니다.

)세 부류의 선택된 거주민들

1.첫째 그룹은, 백성의 지도자들이었습니다(개역성경에는 ‘두목’이라고 나옵니다). 리더란, ‘아무도 가지 않으려 할 때 앞장 서서 가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위험하고 힘이 들어도 리더는 먼저 솔선하여 모범을 보이는 ‘맏형의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또한  리더란, ‘다 떠날 때, 끝까지 자기의 자리를 지키는 사람’입니다. 자식이 집을 나가도 부모가 집을 떠나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기다려주는 ‘아비의 마음을 가진 사람’곧 리더입니다.

2. 두 번째 그룹은, 제비를 뽑아 결정한 인구 십분의 일에 해당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방법을 택하지 않고는 이주민을 결정하기 어려웠기에, 이렇게 라도 등 떠밀어서 반 강제적으로? 예루살렘성에 들어가게 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스스로의 선택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복 받은 사람들의 반열에 들어가게 된 사람들입니다. 때로 우리의 인생이 이와 같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결단하지 못할 때 떠밀려서라도 은혜를 경험하게 하시고 당신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게도 하십니다. 이렇게라도 순종하게 하시고 헌신하게 하십니다. 돌아보면 감사한 일임에 분명합니다. 고집을 피우지 않고 순종할 때 순종하는 것도 은혜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기꺼이? 진 사람들 입니다. (바울 같은 경우)

3. 세 번째 그룹은, 스스로 자원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얼마나 소수이고 얼마나 대단한 결심이었던 지, 나머지 백성들 모두가 이들의 결단을 칭찬하고 ‘복을 빌어 주었다’고 하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소위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Arnold J. Toynbee)가 말하는 ‘소수의 창조자’(creative minority)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들은 비록 드러난 리더들은 아니었지만, 백성들 사이에 숨겨진 빛과 소금 같은 존재였던 것입니다.
) 중요한 교훈들
우리는 이같은 역사적인 사실 속에서 우리는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1)첫째, 믿음의 변방을 택하라.

하나님의 성 예루살렘은 당시 처음에는 변방 같은 곳이었다-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축복의 성, 예루살렘은 오히려 한적한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님도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축복의 땅 예루살렘을 찾으려는 사람들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고 매력이 없는 변방을 먼저 찾아 보아야만 합니다(워터타운 같이?). 세상사람들이 좋아하고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곳은 예루살렘이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2)둘째, 예루살렘은 결국 중심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예루살렘은 처음에는 변방이었지만 나중에는 중심이 되었습니다. 오히려 중심에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변방에 살게 되었습니다. 변방 같던 예루살렘이 중심이 되니, 당시 중심이었던 곳이 변방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고로 시편 122 6절의 말씀이 있습니다.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 . 저는 이 말씀을 믿습니다.


거창고등학교...전영창 교장 선생님이란 분이 처음 직장을 찾는 졸업하는 학생들에게 주는 직업 10계 명이 있었습니다.  
1.
월급이 적은 곳을 택하라.
2.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선택하라.
3. 승진의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선택하라.
4.모든 것이 갖춰지지 않은 황무지를 택하라.

5. 앞을 다투어 모여드는 곳은 절대 가지 말라.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가라.
6. 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
8. 한 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9. 부모나 아내나, 약혼자가 결사반대를 하는 곳이면 틀림 없다. 의심치 말고 가라.
10.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있는 곳으로 가라. 였습니다. 매우 의미 깊은 말씀입니다.

 

3)셋째, 참된 지도자의 모습을 보고 닮으라

그리고 변방같던 예루살렘 성에 살기로 작정한 사람들, 즉 리더들을 주목해서 보아야 합니다. 그 나라가 흥할 나라인가 아니면 망할 나라인가를 알아보려면 그 나라의 지도자들이 변방에 있는가 아니면 중심에 있으려 하는가를 먼저 보면 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교회가 될 교회인가 아닌가를 알아보려면 교회의 지도자들이 어떤 자세로 교회를 섬기고 있는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힘들고 귀찮고 또 체면이 안 서는 변방에는 일반교인들만 있고 교회의 중직자라고 하는 지도자는 존귀하고 대접받는 자리에만 있으려고 하니, 그 교회는 결코 좋은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도자들이 선한 목자인가 아니면 삯군 목자인가를 알아보려면 어느 쪽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까? 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변방에 있는 사람들입니까? 아니면 중심에 있는 사람들입 니까? 정답은 둘 다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순서가 있습니다 먼저 변방에 있는 자에게는 ‘돌봄의 마음’으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중심에 있는 자들에게는 ‘양육의 마음’으로 관심을 가져 그들 스스로가 변방에 있는 분들을 섬기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교회에도 리더들, 즉 ‘두목’들이 있습니다. 교회의 리더들은 교회의 변방에서 언제나 ‘힘들고 무거운 일’을 교인들 앞서서 잘 감당해야 합니다.

4)넷째,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지키시고 복 주십니다.

. 하나님은 스스로 얼마든지 당신의 성과 교회를 지키십니다. 교회를 세우시고 주신 분이 교회를 못 지키시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당신 스스로가 당신의 교회를 지키시는 것은 좋아하시지 않으십니다. 그것을 우리에게 맡기시어 우리가 당신의 교회를 지켜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자 그런데 문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성을, 주님의 교회를 지킬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가 당신의 교회를 지켜 주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이때 필요한 것을 가르켜 우리는 ‘헌신'(獻身) 이라고 부릅니다. 헌신이란, 그 말의 뜻 그대로 바칠 ‘헌’, 몸 ‘신’입니다.  바로 헌신하느냐 마느냐가 바로  결정적인 보이지 않는2%의 차이입니다. 사람들은 마음으로는 주님의 교회를 사랑합니다. 그러나 몸으로는 사랑하지 않습니다. 힘들어하는 이웃을 마음으로는 사랑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몸으로는 사랑 안 합니다.

사실 실제적으로 이 땅 위에 존재하는 모든 교회는 변방과 같은 모습입니다. 온전한 교회로 하나님께 드려지기 위하여 해야 할 많은 일들이 남아 있는 교회입니다.

그런데 주 예수님의 교회는 비밀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이 교회의 신비를, 비밀을 알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비밀은 헌신’ 될 때 비로소 그 밝히 드러납니다. 이 헌신의 비밀을 아는 자들이 교회에 많으면 많을 수록 교회는 능력이 커집니다.

결론)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예루살렘이 변방에 있는 시간은 영원하거나 생각보다 길지 않습니다. 즉 우리가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길 수 있는 시간이 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때를 놓치면 헌신하고 싶어도 헌신하지 못합니다. 여러분이 어떤 것을 주님으로부터 받으셨습니까? 그것을 무엇이든 간에 다시 주님께로 돌리십시오. 이것이 축복의 기회입니다. 인생 성공의 절호의 찬스입니다. 그와 같은 때를 놓치지 마십시오.

2%의 리더십.과 ‘헌신’이  … 결국 성공과 실패를 가름 짓습니다. 이것이 최선의 인생과 차선의 인생을 만나게 합니다. 마음에서 행동으로, 몸으로 땀 흘리며 수고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로마서 12:1) 하신 바울의 권면을 기억하시는 모두 되시길 축복합니다.

                          030320 안익선 목사/ 참조:장찬영 목사                                                   

찬송/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