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느헤미야 13장 강해(거룩함을 위한 개혁)

호걸영웅 2020. 4. 21. 00:33

느헤미야  13  강해(거룩함을 위한 개혁)

서론)

12장은 중요한 내용이 없어 생략하고 본서의 마지막 장인 13장으로 넘어 옵니다.

느헤미야는 기도의 사람, 비전의 사람, 말씀의 사람, 순종의 사람, 섬김의 사람, 열정의 사람, 위기 속에서 더욱 진가를 드러낸 사람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려는 비전을 가지고 아닥사스다 왕 20년에 예루살렘 총독으로 부임하였습니다. 12년 동안 재직하면서 대적들의 끈질긴 방해와 위협에도 불구하고 무너진 성벽을 재건합니다. 계보와 직능에 따라 백성들을 재조직하고 그들에게 적합한 임무를 맡깁니다. 에스라와 함께 말씀을 통하여 부흥을 경험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보겠다고 다짐을 합니다. 여호수아 이후로 천년 동안 제대로 지키지 못했던 초막절을 지킵니다. 회개 운동이 일어납니다. 기쁨과 감사가 충만합니다. 은혜를 체험한 백성들이 자진하여 십일조를 들고 와 하나님의 성전에 바칩니다. 그런데 느헤미야가 잠시 예루살렘을 떠났다가 다시 오니 유다 사회는 이전의 모습으로 상당부분 돌아갔습니다. 느헤미야는 위기감을 느끼며 개혁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을 하나님의 뜻대로 회복시키려고 힘을 쓰게 됩니다. 13장에 나타나는 개혁은 느헤미야가 처음 총독으로 있을 때와 다시 부임하였을 때의 한 것으로 나뉩니다.

본론)

)이방인들을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분리시킵니다.(1~3)

 1~3절은 느헤미야가 첫 번째 총독으로 있을 때에 시행했던 개혁의 내용을 적고 있습니다. 이때만 해도 성벽 낙성식을 마치고 아직까지 은혜가 충만하던 때입니다. 율법이 낭독되자 유다 백성들은 자기들이 율법대로 살지 못하고 있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는 부분이 그들의 마음에 찔렸습니다. 14:2, “너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라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택하여 자기의 기업의 백성으로 삼으셨느니 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세상에서 구별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자칫하면 우상 숭배의 위험에 노출되어 영적으로 더러워지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인들과 교제하면서 하나님 중심의 신앙에서 떠나 이방신을 섬기는 신앙으로 타락하였기에 하나님이 진노하셨습니다. 그 결과 망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포로에서 돌아온 후에도 얼마간은 이방인들과 교제하였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말씀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책망합니다.  '섞인 무리'란 종교적으로 유다에 귀화하지 않고 상업이나 결혼 등을 이유로 유다 백성들 가운데 거주하는 이방인들을 가리킵니다. 암몬 사람들과 모압 사람들이 그들을 대표합니다. 모압과 암몬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나와 광야를 지나갈 때에 이스라엘이 자기들의 땅을 지나가지 못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발람을 시켜 이스라엘을 저주케 하였으므로, 모세는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그들에게 속한 자는 10대 뿐 아니라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 23:3) 선포하였습니다. 그동안 자기들과 함께 살아온 사람들을 쫓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말씀대로 순종하여 과감한 조치를 취합니다. 느헤미야는 첫 번째 개혁을 마치고 페르샤로 돌아갑니다.  

)바사로 갔다가 다시 돌아 온 후의 개혁

6절에는 느헤미야가 ‘며칠 후’에 왕에게 말미를 청하였다고 나와 있으나 실상은 이삼년 정도 경과된 후였습니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을 비운 동안 유대 사회는 상당부분 엉망이 되었습니다. 대적들은 애써 이루어 놓은 개혁을 망쳐 놓았습니다.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습니다. 느헤미야는 또  개혁을 추진합니다. 4절부터 언급되는 개혁은 느헤미야가 두 번째 총독으로 부임한 후에 수행한 것들입니다. 총독으로 재부임한 느헤미야가 어떻게 개혁을 추진합니까?

 1. 성전의 기능을 회복시킵니다.
 느헤미야가 총독으로 있었을 때는 대적들의 도전을 잘 막아내었으나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을 떠난 후에는 유대인 어느 누구도 그들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도비야는 예루살렘 에서 자기 영향력을 넓혀갔습니다. 도비야는 산발랏과 함께 느헤미야를 대적하는 대표적인 인물이었습니다. 느헤미야를 죽이려는 음모를 꾸몄을 뿐 아니라 유대인 지도층 인사들까지 포섭하여 느헤미야를 곤경에 빠뜨리려고 하였습니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총독으로 부임하였을 때 자기가 누리던 기득권이 없어질까 염려하여 심히 근심하였고 (1:10), 성벽 중건을 하려고 할 때 너희들이 무엇을 하려느냐 왕을 배반코자 하느냐 하며 모함하며 비웃었습니다 (2:19).  또“유대인 지도자들과 인척관계를 맺은 것을 이용하여 그들과(6:18) 내통하면서 지속적으로 느헤미야에게 부담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느헤미야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한심한 제사장 엘리아십은 성전에 딸린 큰 방 하나를 비워 도비야에게 제공하였습니다. 그곳은 제사에 쓰이는 제물과 성전 봉사자들을 위한 양식, 제사장들에게 주는 거제물을 보관하던 골방입니다. 그런데 엘리야십은 이방인이 성전에 마음대로 출입하며 처소를 삼는 것을 허용하며 성전을 더럽혔습니다. 도비야는 성전의 방을 차지하였을 뿐 아니라 제사 지내는데 필요한 여러 도구들을 바깥에 내어놓았습니다. 예루살렘에 다시 돌아온 느헤미야는 엘리아십이 도비야를 위해 행한 일을 알고 크게 근심하고 분노했습니다.

성전의 기능을 살리는 것은 유대 사회를 성전 중심으로 바로 세우는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도비야의 세간들을 밖으로 다 내어 던지고 그 방을 정결케 한 다음 하나님의 전의 그릇과 소제물과 유향을 다시 들여놓았습니다.
 
 2. 안식일의 전통을 회복시킵니다.
 느헤미야가 두 번째로 안식일 준수에 대한 개혁을 실시합니다. 사실 안식일 준수 문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포로로 끌려가기 전에도 예레미야 선지자가 경고한 적이 있습니다. “너희는 스스로 삼가서 안식일에 짐을 지고 예루살렘 문으로 들어오지 말며 안식일에 너희 집에서 짐을 내지 말며 어떤 일이라도 하지 말고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명령함 같이 안식일을 거룩히 할지어다”( 12:22-23)라고요.  그런데 포로에서 돌아와서도 안식일에 대한 그들의 자세가 제대로 바뀌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술 틀을 밟고 곡식단을 나귀에 실어 운반하며 포도주와 포도와 무화과와 여러 가지 짐을 지고 안식일에 예루살렘에 들어와서 음식물을 팝니다. 이방인인 두로 사람도 예루살렘에 살면서 안식일에도 물고기와 여러 물건들을 팝니다. 
  
 느헤미야는 먼저 지도자들을 소집하여 물건을 사고 팔며 운반하도록 허락한 것을 꾸짖습니다.  '너희가 어찌 이 악을 행하여 안식일을 범하느냐' 하면서 안식일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것이 얼마나 큰 죄악인지를 일깨웁니다. 느헤미야는 성문마다 신복들을 세워 안식일 전날 해질 때에 성문을 닫고 안식일이 지나기 전에는 성문을 열지 않게 함으로 안식일에 아예 장사꾼들이 짐을 가지고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일부 상인들이 안식일에 성 밖에서 잠을 자며 때를 기다리니 그들을 체포하겠다고 경고하여 다 쫓아버립니다. 그리고 나서 레위 사람들에게 몸을 정결하게 하고 와서 성문을 지켜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라고 합니다. 성문을 지키는 목적이 대적으로부터 성을 보호하기 위함이라기보다는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도록 성문 통제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3. 민족의 정체성을 회복시킵니다.
 포로 귀환 시대의 유다가 처리해야 할 가장 어려운 문제 중의 하나가 이방인과 결혼 문제였습니다. 1차 귀국 당시에 백성들이 언약한 조항 중에 '우리 딸은 이 땅 백성에게 주지 아니하고 우리 아들을 위하여 저희 딸을 데려오지 아니한다'고 하였지만 이방인과의 결혼은 계속되었습니다. 그런데 느헤미야에게 충격을 준 것은 유다 사람들이 아스돗과 암몬과 모압의 여자들과 결혼하였는데 그 자녀들의 태반이 아스돗 말과 그 밖의 다른 말은 하면서도 유다 말을 할 줄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릴 때는 자녀들이 아무래도 엄마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많고 그러다 보니 자연히 자녀들이 엄마가 쓰던 나라의 말을 배우면서 유다 말은 잘 못하였습니다. 이것은 유다 사회로서는 하나의 위기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잡혼을 금한 것은 단지 혈통의 순수성을 보존하기 위한 것보다는 여호와 신앙에서 떠나지 못하게 하려함이었습니다. 히브리어를 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수도 들을 수도 없습니다.

느헤미야는 사태의 심각성을 의식하고 그 부모들을 책망하며 저주하고 몇 사람을 때리며 그 머리털을 뽑고 다시는 그들의 자녀들을 이방 사람과 결혼시키지 않겠다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를 시킵니다.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손자 요야다의 아들 중 한 사람이 대적의 우두머리인 산발랏의 사위가 되었습니 다. 이것은 매우 수치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제사장의 결혼에 관한 법률은 명백하게 이를 금하고 있습니다. ( 21:10-15)= '대제사장은…자기 백성 중 처녀를 취하여 아내를 삼아 그 자손으로 백성 중에서 더럽히지 말지니'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엘리야십은 대제사장직의 직권을 남용한 죄와 성전을 더럽히는 신성 모독의 죄를 범하였습니다. 느헤미야는 관련자를 즉각 쫓았습니다. 그리고 성전에서 섬길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을 새로이 세웠습니다.

(그럼 느13장에서 느헤미야가 보여준 개혁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1) 말씀을 기초로 했습니다.
느헤미야의 개혁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이방인들을 분리시키면서 느헤미야는 신명기 23:3~6절의 말씀을 요약하여 전합니다. 백성들은 낭독되는 말씀을 들으면서 자신들의 삶을 그 말씀에 비추어 봅니다. 안식일을 지키게 하면서 유다의 패망과 포로됨이 안식일을 제대로 지키지 아니한 데서 온 것임을 상기시키며 앞으로도 계속 안 지키게 되면 하나님의 진노가 더 심해질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민족의 정체성을 회복하려고 느헤미야는 이방인과의 결혼 때문에 하나님께 범죄한 예로 솔로몬을 듭니다. 솔로몬이 아무리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고 지혜를 가진 사람이었지만 이방 여인들을 아내로 맞아들이므로 결국은 그들의 영향을 받아 이스라엘에 우상 숭배가 만연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왕상 11:3,4, “솔로몬이 나이 늙을 때에 왕비들이 그 마음을 돌이켜 다른 신들을 좇게 하였으므로” 11:9, “솔로몬이 마음을 돌이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므로 여호와께서 저에게 진노하시니라” 하나님이 진노하신 결과 솔로몬이 죽고 나서 나라는 둘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2) 기도를 추진력으로 삼습니다.
느헤미야서는 예루살렘이 황폐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느헤미야가 울며 기도하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내 하나님이여 나를 기억하사 복을 주옵소서”하는 기도로 마무리를 짓습니다. 그야말로 느헤미야서는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끝이 납니다. 13장을 보면 개혁을 하나씩 추진할 때마다 느헤미야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도비야가 있던 성전의 방을 정결하게 하고 레위인들의 성전 업무를 회복시킨 다음에 “내 하나님이여 이 일을 인하여 나를 기억하옵소서. 내 하나님의 전과 그 모든 직무를 위하여 나의 행한 선한 일을 도말하지 마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안식일을 안식일답게 지키도록 한 후에 “내 하나님이여 나를 위하여 이 일도 기억하시옵고 주의 크신 은혜대로 나를 아끼시옵소서”(22)라고 기도합니다. 이방인과의 결혼을 금지하여 백성들을 거룩하게 하고 사역을 마무리 지으면서 “내 하나님이여 나를 기억하사 복을 주옵소서”(31)하며 기도를 드립니다. 현실을 헤쳐 나가기 너무 힘들었지만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엎드렸습니다.
성도들은 개혁하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느헤미야가 없다고 백성들이 그렇게 빨리 영적으로 느슨해질 수 있습니까? 성벽을 재건하고 난 후 말씀을 인하여 생겨난 감격과 열심은 다 어디로 갔습니까? 회개하며 흘린 눈물,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다는 다짐은 어디로 갔습니까? 성벽 낙성식 때의 그들이 드린 감사와 찬송은 어디로 갔습니까? 그들은 포로로 끌려가기 전 조상들의 모습으로 돌아갔습니다. '하나님의 전이 어찌하여 버린 바 되었느냐?' 며 절규하던 느헤미야의 심정을 이해 할 수 있으시길 바랍니다. 나의 나태함 때문에 하나님의 전이 비거나 황폐하게 되지는 않습니까?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고 방황하지는 않습니까? 주위 사람도 다 그렇게 사는데 ……하며 자신의 게으르거나 무뎌진 신앙생활을 합리화하지는 않습니까?

결론)

느헤미야서 전체를 아우르는 key word를 하나 선택하라 한다면 개혁입니다. 개혁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거룩함을 회복하는 것이요, 그 개혁의 열매가 부흥으로 나타납니다. 우리의 삶도 끊임없이 개혁되어야 합니다. 변화해야 합니다. 거룩함을 회복해야 합니다.

 

.예수로 인해, 하나님의 자녀 백성 된 이 자리에 계신 분들 모두는 이 황폐되고 무너진 교회와 가정과 지역사회를 다시 세우고 개혁하는 자여야 합니다. 삶의 현장(신앙생활, 가정, 자녀, 사업)에서 깨어지고 무너지고 부서진 부분을 회복시키고, 변화시키고, 새바람을 일으켜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주님과의 관계가 올바르게 됨으로써 주께서 주시는 지혜와 능력으로 삶 속에서 풍성한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이웃에게는 살아 계신 예수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다음 주부터는 에스더서를 공부합니다)

 

030520 안익선 목사/ 참조:my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