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의 교훈 (에스더 4장 10 ~ 1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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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오늘 본문은 바사(페르샤)의 왕비 에스더와 그의 사촌인 모르드개 사이에서 오간 편지 혹은 대화의 내용입니다. 에스더는 유다를 멸망시킨 바벨론을 점령한 오늘날의 '이란’이라 불리우는 왕국의 왕후입 니다. 에스더의 남편은 아하수에로 왕이었는데 그의 통치시기는 기원전 5 세기경이었습니다. 에스더의 원래 히브리 이름은 “하닷사”인데 그 이름의 뜻은 ‘도금양’이란 뜻입니다.(에 2:7) 도금양은 키가 4미터 정도로 크는 나무인데 그 꽃이 연보라 빛을 띠는 다섯개의 꽃잎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녀는 바벨론의 포로의 딸이었으나 바사 나라로부터 자유를 얻어 바사 땅에서 살면서, 바사 식 이름으로는 ‘ 에스더’로 불리웠습니다. 그 뜻이 바로 별 곧 스타(그리스어로 별은 에스테르)입니다. 에스더는 그 이름 그대로 별처럼 빛나는 스타가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민족을 멸망의 위기로부터 구원해 냅니다. 그리고 그녀이 이름과 이야기는 이스라엘의 절기 ‘부림절’을 통해 오늘까지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여전히 빛나고 있습니다.
에스더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섭리 가운데 왕후가 됐습니다. 그래서 에스더서 5장 이후, 그녀는 “왕후 에스더”라고 불리게 됩니다. ( 그러면 진정한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위대한 스타라 할 수 있는 에스더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본론)
가) 하나님의 섭리하심
1. 유대인 포로였던 에스더가 바사의 왕후가 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바사 왕 아하수에로에게 엄연히 왕후가 있었기 때문이요 에스더는 포로로 끌려온 소수 민족 유대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가 있었습니다. 우선 본토인인자 바사인이었던 왕후 와스 디가 폐위됩니다. 에스더서 1장을 보면, 아하수에로 왕이 잔치를 베풀었었다고 했습니다. 잔치 7일째 되던 날, 뭇 백성과 지방 관리들에게 왕후의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싶어서 술에 취해 자기 왕후를 속히 단장하고 잔치 자리에 나오도록 불렀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왕후 와스디도 그 때 왕궁에서 여러 여인들과 함께 잔치를 베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왕후가 왕명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왕의 심기가 좋지 않았습니다.
아하수에로 왕이 어떻게 하면 좋을 지 신하들에게 물었습니다. 신하들은 그런 무례한 왕후를 폐위하라고 고합니다. 그대로 두었다가는 모든 바사의 여인들이 남편의 말을 듣지 않게 될 것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왕은 결국 왕후를 폐위시키고 맙니다.
왜 하필이면 그 때 왕후가 왕의 명령을 듣지 않았을까요? 왜 하필이면 그 때 신하들이 그렇게 심한 처벌을 청원했을까요? 하나님께서 에스더를 왕후로 세우시기 위한 눈에 보이지 않는 섭리를 하셨기 때문입니다.
2. 다음으로 에스더가 왕후로 선택됩니다. 에스더서 2장을 보면, 새 왕후 간택(선택)에 관한 조서와 명령이 반포되자 사촌 오빠 모르드개가 조카인 에스더를 들여 보냈습니다.
또 모르드개와 에스더가 왕후 간택을 위해 수산성에 들어갔을 때, 그 책임을 맡은 ‘헤개’라는 내시를 만나게 됩니다. 그가 에스더를 특별히 좋게 보아 특별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 ‘헤개’라는 사람의 도움이 왕후 간택에 큰 힘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헤개를 움직이셨습니다.
3. 그리고 아하수에로 왕이 간택에 나온 모든 여자들 중에서 하필이면 에스더를 눈여겨보게 되었습 니다. 그리고 에스더를 왕후로 선택하게 됩니다. 그래서 에스더가 유대인임에도 불구하고 왕후가 되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에스더를 왕후로 세우시기 위한 눈에 보이지 않는 섭리로 역사하셨습 니다.
4. 인도의 성자라 불리웠던 ‘썬다 싱’이 인도에서 기차 안에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기차 승객들에게 요한복음이 기록된 작은 책자를 나눠주며 하나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때 왜 그랬는지… 어떤 사람이 보지도 않고 책자를 찢어 창 밖으로 내 던져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 철로 변을 지나던 어떤 한 사람이 무슨 흰 종이가 날리는 것을 보고는 … 호기심에 종이조각 한 장을 주웠습니다. 그 종이의 글씨를 읽어보니, 거기 “생명의 떡”이란 글이 인쇄돼 있었습니다. 그 말의 뜻이 궁금했습니다. 그 종이 조각의 내용이 성경의 내용이라는 것을 알고는… 성경을 한 권 샀습니 다. 그리고 생명의 떡이라는 말이 어디 나오는 지 찾기 위해, 성경을 한 장 한 장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 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성경을 읽으면서… 자신이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었고, 후에 인도 교회를 위해 큰일을 하는 인물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왜 하필이면 그 때 썬다 싱이 그 기차에서 복음을 전했을까요? 왜 하필이면 그 때 그 사람이 전도책자 를 찢어 창 밖으로 버렸을까요? 왜 하필이면 그 때 그 사람이 철로 변을 지나다가 “생명의 떡”이란 부분을 읽게 됐을까요? 모두가 다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우리가 걷는 인생 길에 섭리로 역사하십니다. 그때 그 일이 일어나게 하십니다. 그곳에서 사람을 만나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때 거기에 내가 있게 하십니다. 상상 못할 실패도 하게 하십니다. 설명하기 어려운 사건들이 나타나게 하십니다. 그렇게…오늘도 우리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고 섭리하십니다. 할렐루야!
나) 하나님께 대한 철저한 의지
오늘 본문 사건은 주전 470-480년경일 입니다. 이 때는 바사의 초대 왕 ‘고레스’의 칙령을 따라 유대인들이 고국으로 귀환한 지 이미 50여년이 지난 뒤였습니다. 상당수의 유다 백성들이 예루살 렘으로 돌아가 정착하고 살며 성벽도 재건하고 성전도 다시 짓고 있을 때입니다. 그러니까 에스더서는 이 때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여전히 바사 땅에 남아서 살고 있던 소수의 유대인들 이야기입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여전히 이들 소수에게도 관심을 갖고 계셨을까요? 이들이 여전히 바사 땅에 남아서 믿음을 이어갔었을까요? 궁금한 대목입니다. 에스더서는 이점에 대해 답을 하고 있습니다.
본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전히 저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계시고, 저들도 여전히 속 깊은 곳에는 하나님에 대한 철저한 신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에 3장을 보면, 하만이라는 자가 총리의 자리에 오르자 교만해졌습니다. 왕의 모든 신하들로 하여금 자기에게 절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모르드개와 유대인들은 절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이외에 그 누구에게도 절 할 수 없었기에 그랬습니다.
하만이 이 사실을 알고 모르드개 뿐 아니라 바사 내의 모든 유대인들을 죽이고자 간계를 꾸밉니다. 하만이 이 사실을 왕에게 왜곡해서 보고했습니다. 또한 은 만 달란트를 바쳐 유대인들을 몰살할 계획에 대한 허락을 받아냈습니다. 그리고 전국에 조서(어명)를 보냈습니다. 아달월(오늘날에 2~3월 경)13일 하루 동안에 모든 유대인들을 다 죽이고 그 재산을 빼앗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유대 민족의 큰 멸망의 위기 가 찾아온 것입니다.
그러자 에 4장을 보면, 그 때 유대인들 중 (에 4:1) 먼저 모르드개가 “자기의 옷을 찢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성 중에 나가서 대성통곡을 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4:3을 보면 “유다인이 크게 애통하여 금식하며 울며 부르짖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에 누운 자가 무수하더라”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민족적 위기가 다가오자 자신들의 죄를 하나님 앞에 통회 자복하고 목숨을 걸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저들이 철저하게 하나님만 의지했다는 뜻입니다.
에 4:16= 에스더도“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라며 모르드개에게 에스더가 왕 앞에 나가겠다고 합니다.
왜? 왕의 허락 없이 왕 앞에 나가면 누구라도 죽여도 된다는 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에스더에게도 민족과 자기 가문의 멸망의 위기가 아닐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녀도 그녀의 민족도… 목숨을 걸고 금식으로 기도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기도에 모든 것을 걸었던 것입니다.
다) 하나님 섭리에 깨달음과 순종
왕후 에스더는 원래 부귀영화의 최고 중심에 살수 있었던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민족과 하나님을 위해 목숨을 걸었습니다. “남녀를 막론하고 부름을 받지 아니하고 안 뜰에 들어가서 왕에게 나가면 오직 죽이는 법이요 왕이 그 자에게 금 규를 내밀어야 살 것이라 이제 내가 부름을 입어 왕에게 나가지 못한 지가 이미 삼십 일이라 하라 하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처음엔 에스더가 민족이 위기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별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하였었습니다.
에 4:4를 보면 “에스더의 시녀와 내시가 나아와 전하니 왕후가 매우 근심하여 입을 의복을 모르드개에게 보내어 그 굵은 베 옷을 벗기고자 하나”라고 했어요. 당시 모르드개가 베옷을 입고 통회하며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 기도하고 있는데…그의 베옷을 벗기고 일상 옷을 입으라 했습니다. 지금 민족의 위기를 영적으로 해결하고자 몸부림치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리고 위험한 일에 자기까지 나서야 하나? 라는 회의심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이러던 에스더가 실상을 좀 더 자세히 알고는 그 마음과 태도가 변합니다. 바로 모르드개의 도전적 말이 계기가 됩니다.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4:14) 라고 하자……이 말이 그녀의 심령에 울렸습니다.
에스더는 그 동안의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됐을 것입니다. 내가 왜 왕후가 됐을까? 내가 어떻게 왕후가 됐을까? 왕후가 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왕후가 됐던 과정을 다시 생각하게 됐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하나님께서 그렇게까지 자기를 왕후가 되게 하신 이유가 무엇인지 깨닫게 됐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라는 질문을 우리는 종종 해야만 합니다. 지금 모르드개의 말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도전하고 계시는 것은 아닐까요? 하나님깨서 여러분을 지금 그 자리에 그 위치에 그 부와 명예 위에, 그 축복에 이르게 하심은 어찜인지요? 왜 그렇게 하셨는 지요? 여러분이 누리는 현재의 축복들을 그저 감사만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왜 나를 그 자리에 서게 하셨고 살게하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 이제 에스더는 왕을 만나야 하겠다고 생각했습 니다. 그러나 왕 앞에 함부로 나가는 길은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길입니다. 그래도 가야만 한다고 결단합니다. “죽으면 죽으리라”하는 용기로 나아갔습니다.
천만다행으로 하나님께서 도우셔서, 왕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왕의 부름도 없이 자기 앞에 나온 왕후를 왕이 따뜻하게 맞이하게 하셨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왕은 무슨 소원이라도 들어주겠다고 약속하게 하십니다.(5:3) 그래서 유대인들이 멸망의 억울한 위기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결단을 귀하게 보십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용기를 주목하십니다. 목숨을 걸고서라도 하나님께 드리는 순종을 통해 위대하게 역사해 주십니다.
결론)
오늘날 천국 가는 모든 순례자들에게도 이런 용기가 필요합니다. 지옥 가는 사람에게는 용기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바르게 살려고 하는 사람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바른 말을 하려는 사람에게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죄 짓고 요령껏 사는 사람들에게는 용기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성공하려는 사람들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실패하는 사람들은 용기가 필요치 않습니다. 그냥 포기하면 됩니다. 믿음으로 순종하는 일에도 용기가 필요합니다. 죄와 타협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위험과 손해와 박해를 감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라는 깨달음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위해서라면“죽으면 죽으리라” 우리에게 믿음이 결단과 용기에서 샘솟는 순종이 이 세상에서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에스더와 같은 믿음의 스타를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위해 별처럼 빛나게 쓰임 받을 일군을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철저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용기있게 순종하고 충성하며 도전하는 스타를 찾고 계십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런 믿음의 스타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060920 안익선 목사/ 참고: 박봉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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