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더 약해지십시다(고린도후서 12장 1-1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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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가끔 텔레비전을 보면 ……동물들은 싸움을 하거나 짝을 차지하려고 시도할 때, 자기 몸을 평소보다 부풀려서 크게 만듭니다. 자신이 강하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서 입니다. 개구리 중에도 자기 목을 크게 부풀리는 것도 있고, 도마뱀 중에도 목에 막 같은 것이 있어 그 막을 활짝 펴 자신이 엄청 커 보이게 하기도 하고, 코브라도 평소에는 가는데 공격을 하거나 위협을 가할 때 목 주변이 넓어지도록 합니다.
그런데 사람도 참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약하게 보이지 않으려고 무척 애를 씁니다. 강한 자를 더 인정해주는 세상이기 때문에 약한 모습은 감추고 강하게 보이려고 굉장히 애를 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르게 생각하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연약함에 대해 관심이 많으십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는 그 이유를 발견하게 됩니다. 연약함의 참된 정체가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역설의 진리입니다.)
본론)
1. 약함은 우리를 겸손하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도구입니다
모든 사람은 나름대로 다 약점이 있습니다. 종류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약한 부분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약함은 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나의 삶과 능력을 제한하는 한계입니다. 사도 바울도 치명적인 약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7절)=“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약함을 가리켜 ‘육체에 가시’라고 불렀고 ‘사탄의 사자’라고 불렀습니다. 학자들 이것이 매우 불편한 시각 장애라고 보기도 합니다.
이 육체의 가시에 대한 바울의 괴로움은 그가 이것을 “사탄의 사자”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더욱 분명히 가벼운 질환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에게 주어진 연약함이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바울은 이 가세(질병)의 목적을 깨달았습니다. 7절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또 “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고 합니다.
사실 바울은 보통 사람이 흉내 내지 못할 정도로 엄청난 사람이었습니다. 빌립보서 3장에 보면, 그는 아주 부잣집 출신에다가 최고 명문 학교를 나온 사람입니다. 로마의 시민권자요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이요 율법에 능통한 자라 했습니다. 그렇게 대단한 사람인데도 그런 것들을 자랑하지 않고 다 배설물처럼 버렸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나중에 예수님을 만난 후에는 영적으로도 엄청난 경험을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만 봐도 놀라운 영적 체험을 했습니다.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1-4절)라고 했어요.
이런 엄청난 환상과 계시와 영적 체험들로 인해 그는 영적 교만에 빠질 위험에 처해 있었습니다.
2. 약함은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경험케 해주는 도구입니다
물론 육체의 가시는 결코 즐거운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연약함이 너무 괴로웠기 때문에 그것을 없애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8절)……
바울은 주님께 세 번을 기도했었는데, 이것은 가벼운 기도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식사 전에 기도하면서 “감사합니다, 아멘.” 하는 정도를 말하는 게 결코 아닙니다. 온 힘을 다해 간절히 간절히 세 번이나 기도했었다는 말입니다. 이를테면 금식기도와 같은 것을 그렇게 세 번이나 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바울의 간절한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무엇이었습니까?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9절)고 하셨습니다.
물론 바울의 기도는 거절 되었지만… 동시에 하나님은 그런 연약함 중에서도 바울에게 은혜가 충분할
것임을 알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가시를 없애주심으로써가 아니라, 더 큰 은혜를 더해 주심으 로써 연약함의 문제를 극복하도록 해 주셨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우리가 원하는 것보다 더 많이 우리에게 응답하거나 채워 주십니다. 물론 우리가 그것을 언제나 잘 알아채지는 못합니다. 모를 때가 더 많습니다. 바울은 가시를 없애 달라고 구했지만 하나님은 더 많은 은혜를 부어 주셨습니다. 우리도 당장은 알아채지 못할 수 있어도 결국 더 나은 것을 받았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직장을 구하는데, 모든 면에서 처음 생각한 어느 한 직장이 좋았답니다. 거기에 가면 회사 자체도 좋지만 영적으로도 좋고 더 많이 신앙적인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 직장이 아니라 다른 직장을 주셨다는 겁니다. 그리고 나중에 알고 보니,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다른 직장이 훨씬 더 나은 직장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사도 바울은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10절)
“내가 약한 그때에 강함이라”는 이 말이 하나님 나라의 역설이며, 이것은 진리입니다. 인간의 능력이 넘칠 때 하나님의 능력은 잘 보이지 않게 됩니다. 그러나 인간의 능력이 사라질 때 하나님의 능력이 크게 드러납니다.
이에 대해 아주 좋은 예가 바로 모세입니다. 모세는 이집트에서 바로 왕이 이스라엘의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다 죽이라고 했는데, 그 부모가 죽이지 못하고 아이를 바구니에 담아서 나일 강에 떠내려 보냅니다. 그런데 마침 이집트의 공주가 발견하고 자기 양자로 삼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이집트의 왕자가 됩니다.
그의 삶은 40년씩 세 단계로 나뉘는데, 첫 40년 동안 이집트 왕궁에서 자랐습니다. 40세가 되어 자기 백성을 돌아볼 마음이 생겼을 때, 그에게는 부족함이 없었고 강했습니다. 최강대국인 애굽의 왕자였고, 용사였고, 최고의 엘리트 교육을 받았고, 자기 백성에 대한 열정도 강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그를 하나님은 쓰실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 모세 자신이 강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애굽 사람을 쳐죽이고 도망가 광야에서 40년을 지내야 했습니다. 그제서야 …그가 약해졌을 때에 하나님은 그를 부르셨습 니다. 그리고 그를 사용하실 수 있었습니다. 약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필요 없습니다.
누군가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When we work, we work. When we pray, God works.”
(우리가 일하면 우리가 일하는 것이지만,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일하신다.) 할렐루야!
3. 약함을 기뻐하고 자랑하라
좋은 일이 생기면 자랑하고 싶은 사람의 본성입니다. 자녀가 좋은 대학교에 가게 되면 누구나 자랑을 하게 되지만 자녀가 대학진학에 실패를 했다면 그것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할 수만 있다면… 우리의 연약함을 숨기고 싶어 합니다. 우리는 연약함을 싫어하고 부끄러워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자신의 연약함을 기뻐하며 자랑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9b-10절)고 합니다.
그렇다면 연약함을 자랑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뜻입니까?
1)먼저, 자기의 연약함을 인정한다는 의미입니다. 자신에게 있는 연약함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연약함이 있는데도 없는 척하며 숨기는 것이 더 부끄러운 일입니다.
2)둘째, 연약함을 자랑한다는 것은 연약함에 대해 감사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쉬운 일은 아니지만, 나의 연약함을 하나님께서 능력과 복의 통로로 사용하신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을때 가능해집니다.
3)셋째, 연약함을 자랑한다는 것은 연약함을 나눈다는 것입니다. 자꾸 숨기고 쉬쉬 하고 아닌 척하는 것이 아니라, 솔직히 연약함을 드러내고 기도를 지체들에게 요청합니다. 그러면 다른 지체들은 함께 마음을 모아 합심해서 간절히 기도해줍니다. 그럴 때 치유가 일어나거나 교훈을 얻거나 환경적 변화가 오게 됩니다.
4)넷째, 연약함을 자랑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자랑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점점 자기 자신에 대해 적게 말하고 하나님에 대해 더 많이 말해야 합니다.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분은 내가 아니라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영광을 받으셔야 합니다. 바로 그것이 간증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해 주신 일로 인해 그분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감사하며 그것을 나눌 때, 그리고 강하신 주님께 이 연약함을 맡길 때, 우리는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약함을 통해 세상을 구원하신 주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참으로 약함의 강함이라는 이 위대한 역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호주사람인 닉 부이치치(Nick Vujicic)는 팔다리가 없이 태어났습니다. 그는 자살을 두 번이나 시도했지만, 15세가 되던 해, 성경을 통해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하시며 자기 인생을 향한 계획을 갖고 계시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을 주님께 드리기로 했습니다. 그 후 그는 전 세계를 다니며 간증을 하는 등, 놀랍게 쓰임을 받고 있습니다. 회계학과 경영학 학사를 따고 전도사가 되었습니다.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 결혼하여 행복한 가정도 이루고 살고 있습니다.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통해 희망과 용기를 얻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팔다리가 없는 사람을 들어 이처럼 귀하고 위대하게 쓰실 수 있다면, 팔다리가 멀쩡한 우리도 당연히 쓰실 수 있지 않겠습니까?
결론) 결국 우리에게 약함이 문제가 아니라, 문제는 우리가 얼마나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며 하나님을 바라보 고 사랑하고 인정하고 기도하는가 라는 것입니다. 모세는 충분히 약하지 않았기에 가나안에 들어 가지 못했습니다. 사울은 충분히 약하지 않았기에 왕에서 결국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욥도 더욱 약해졌을 때 에야, 하나님을 두 눈으로 뵐 수 있었습니다. 요나도 더 약해졌을 때 비로소 니느웨 백성을 구원할 수 있었습니다. 할렐루야!
우리가 충분히 약할 때 그분의 강함이 드러납니다. 내가 약점이라고 생각하는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능력과 복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너무 강합니다. 더 약해져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연약함이 그분의 강하심과 능하심을 체험하거나 드러낼 수 있을 것입니다.
053120 안익선 목사/ 참조: 콜롬부스 장로교회 설교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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