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둘람 굴에서의 기도(시편 142:1-7)
(1절) 내가 소리 내어 여호와께 부르짖으며 소리 내어 여호와께 간구하는도다
(2절) 내가 내 원통함을 그의 앞에 토로하며 내 우환을 그의 앞에 진술하는도다
(3절) 내 영이 내 속에서 상할 때에도 주께서 내 길을 아셨나이다 내가 가는 길에 그들이 나를 잡으려고 올무를 숨겼나이다
(4절) 오른쪽을 살펴 보소서 나를 아는 이도 없고 나의 피난처도 없고 내 영혼을 돌보는 이도 없나이다
(5절)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어 말하기를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살아 있는 사람들의 땅에서 나의 분깃이시라 하였나이다
(6절)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소서 나는 심히 비천하니이다 나를 핍박하는 자들에게서 나를 건지소서 그들은 나보다 강하니이다
(7절) 내 영혼을 옥에서 이끌어 내사 주의 이름을 감사하게 하소서 주께서 나에게 갚아 주시리니 의인들이 나를 두르리이다
서론)
1. 오늘 본문의 표제어(부제)가 <다윗이 굴에 있을 때에 지은 마스길 곧 기도>입니다. ‘마스길’이라는 글자 앞에 작은 숫자가 쓰여 있고, 아래에 그 의미가 기록되어 있는데 ‘교훈’이라는 뜻입니다. ‘인생의 동굴에 숨어 있을 때’, 즉 ‘인생에서 환난을 만날 때’에는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며 찬양을 드리는 것이 지혜로운 해결책임을 교훈하여 주는 시편입니다.
시편에 다윗이 ‘굴에 (피하여) 있을 때’라고 표제어가 붙은 시편은 모두 두 편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시편 142편과 시편 57편입니다. 다윗이 자신의 주군이자 장인인 사울왕에게서 오해와 모함을 받아 도망을 다닐 때에 숨었던 굴 2개가 성경에 나타납니다. 하나는 아둘람 지역에 있는 굴(사무엘상 22장)이고 또 하나는 엔게디 광야에 있던 굴(사무엘상 24장)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 두 굴 중에서는 아둘람 지역에 있는 굴 지역에 있을 때에 지은 것으로 보입니다. 사울왕은 다윗을 잡기 위해서 이스라엘 전역에 뽑은 3000명의 군인들을 데리고 다녔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에서 최정예 군인들이었습니다. 그 군인들은 사울왕의 사위 다윗을 잡고 말겠다는 의지와 다윗을 이 땅에서 사라지게 해야 한다는 사명을 가진 자들 이였습니다.
시편 57편도 동굴에 피해 있을 때 지은 시이지만, 거기에는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찬송하리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리도다”,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오며 뭇 나라 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시편 57편은 다윗이 엔게디 황무지에서 신앙적으로 승리하게 해 주신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시이고(다윗이 사울왕을 죽일 기회가 있었지만 겉옷자락만 가만히 베고서 나옴), 오늘 본문은 사무엘상 22장의 아둘람 지역에 있는 동굴에 있을 때의 처절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다윗이 아둘람에 있는 굴에 몸을 피하여 있을 때는 제 몸 하나도 건사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얼마 후, 그의 형들과 온 집안사람들이 소식을 듣고 찾아와 동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400여명의 백성들이 몰려왔는데, 그들은 모두 사울 왕의 핍박과 학정에 시달리며 억울하고 원통한 일을 당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다윗이 그 사람들과 아둘람 굴들에서 머물며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기도문과 같은 시를 썼으니, 곧 시편 142편 시편의 배경이 되었습니다.
본론)
가) 하나님을 향한 탄원(1-2절)
(1) 내가 소리 내어 여호와께 부르짖으며 소리 내어 여호와께 간구하는도다
(2) 내가 내 원통함을 그의 앞에 토로하며 내 우환을 그의 앞에 진술하는도다-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처절한 상황을 하나님 앞에서 울부짖고 또 호소합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 속에 있는 ‘원통함’을 다 쏟아내었습니다. 다윗이 말한 ‘우환’은 여인이 ‘해산할 때의 고통’을 표현할 때도 쓰는 동일한 단어라고 합니다. 여인이 출산을 할 때에 죽음을 넘나드는 고통과 같이 다윗은 고통 중에 있었다 했습니다.
나)하나님께 대한 신뢰의 고백(3-5절)
다윗이 그토록 울부짖으며 기도하고, 자기 속에 있는 모든 것을 다 쏟아낼 정도로 호소하는 이유를 이렇게 밝힙니다.
(3) 내 영이 내 속에서 상할 때에도 주께서 내 길을 아셨나이다. 내가 가는 길에 그들이 나를 잡으려고 올무를 숨겼나이다
다윗은 주변의 상황으로 인해서 몹시도 눌리고, 고통스러웠습니다. 본절에서‘상하다’는 단어의 의미는 ‘기력이 없다’와 ‘실신하다’의 뜻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내 영이 내 속에서 상할 때’는 ‘내 영혼이 절망 가운데 있을 때’나 ‘내가 숨이 넘어갈 듯 헐떡일 때’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그런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자신의 길을 알고 계시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석회암이 녹아서 만들어진 크고 작은 숱한 동굴 지대에 숨은 채 이 시편을 지었습니다. 밖에는 다윗을 잡기 위한 사울왕의 군인들이 득실거립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아무런 계획을 세울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불확실하게만 보였습니다. 그런데도 다윗은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가야할 길을 알고 계신다고 고백합니다. 즉 모든 상황이 절망스러워도 절망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가야할 길을 알고 계시는 하나님의 계시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을 잡으려는 사람들은 다윗이 가는 ‘길 ’에 올무를 놓았습니다. 즉 다윗의 대적들은 다윗을 잡기 위해서 현상금을 걸고 길목마다 군사를 풀어 놓고 수색대와 밀정들을 보내어 여기 저기를 샅샅이 훑어가며 찾아 다녔습니다. 영문도 모르고 다윗을 도왔던 제사장 아히멜렉과 그 마을의 제사장 85명이 학살을 당하였고 제사장의 가족들도 아이와 여인들 상관 없이 모두 살육을 당했습니다. 다윗은 침으로 기가 막혀 주저 앉아 눈물을 후리며 가슴을 칠 수 밖엔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다시 하나님께 참담한 낙망 가운데 도움을 간청합니다.
(4) 오른쪽을 살펴보소서 나를 아는 이도 없고 나의 피난처도 없고 내 영혼을 돌보는 이도 없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성경에서 ‘오른쪽’, ‘오른손’ 등은 ‘하나님의 능력’을 뜻합니다. 시편 16:8에서는 다윗이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 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여기서 다윗은“하나님, 제 오른쪽이 되어 주시옵소서”라고 말하지 않고, “하나님, 제 오른쪽을 살펴보시옵소서”라고 표현합니다.
다윗은 나를 아는 이도 ‘없고’, 나의 피난처(도망갈 길)도 ‘없고’, 내 영혼을 돌보는 이도 ‘없나이다’라고 부정어를 3번을 사용하며, 홀로 있어서 아무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자신을 살펴보아 주시기를 하나님께 간곡하게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도와 주실 분이 누구신지를 이렇게 고백합니다.
(5)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어 말하기를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살아 있는 사람들의 땅에서 나의 분깃이시라 하였나이다
다윗은 아무리 사방을 둘러봐도 피할 피난처는 오직 유일하게 하나님이시며, 혹 모든 것을 잃어서 빈털터리가 된다 할지라도 결코 빼앗길 수 없는 것, 유일한 분깃(재산, 몫)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다)간구와 서원(6-7절)
다윗은 이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요청합니다.
(6)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소서 나는 심히 비천하니이다 나를 핍박하는 자들에게서 나를 건지소서 그들은 나보다 강하니이다
다윗이 하나님께 호소하기를, 하나님께서 자신의 부르짖음을 들어주셔야 하는 이유가 자신이 심히 비천한 상태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나는 심히 비천하니이다”를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나는 매우 낮은 곳으로 가져 감을 당하였습니다.”입니다. 즉, 자신은 심리적으로 아주 많이 눌리고 있고, 물질적으로도 몹시 궁핍하다는 고백입니다. 그럼에 여전히 공격을 당하는 것이 고통스럽다고 호소하는 것입니다.
라) 그리고 소망의 하나님을 찬양하다
이제 오늘 본문은 7절에서 이렇게 막이 내립니다.
(7) 내 영혼을 옥에서 이끌어 내사 주의 이름을 감사하게 하소서 주께서 나에게 갚아 주시리니 의인들이 나를 두르리이다
다윗이 자신을 옥에서 꺼내 주시기를 간구했는데 이는 사울 왕의 포위망을 의미합니다.
다윗은 전국에서 뽑힌 왕의 정예병 군인 3000명에게 쫓겨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누가 아군인지 누가 적군인지 혼란스럽기까지 합니다. 그런 것들을 생각하니 자신이 감옥 속에 있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사무엘 선지자로부터 사울왕의 뒤를 이을 임금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것이 사무엘상 16장에 나옵니다. 그 때 다윗의 나이가 약 15살 정도입니다. 그리고 다윗이 통일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등극하게 된 것은 사무엘하 5장에 나옵니다. 기름부음을 받고서 약 22년이 지난 후인, 약 37살 즈음 되었습니다. 다윗은 결코 짧음 세월 동안만 고통 가운데 지낸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이 그 긴 세월동안 오늘 본문과 같은 처절한 상황을 겪으며 인내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참으로 오랜 시간을 참고 인내하며 하나님의 뜻에 순조코자 인내에 인애를 더하며 살았습니다.
그가 끝까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순종했기 때문에 …… 3000년이 지난 지금도 그는 우리에게 믿음의 사람으로 우리 앞에 우뚝 서 있습니다.
결론)
우리도 다윗처럼 소리를 내어서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간구했을 때가 있었고, 우리 속에 있는 것을 다 쏟아내기까지 하나님께 호소했을 때도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그런 상황에서 그렇게 아뢸 하나님이 계신 것이 얼마나 복인지 모릅니다.
또 우리의 인생길이 때로는 안개가 가득한 것 같고, 때로는 짙은 어두움이 가득하여 어디가 앞인지, 어디가 뒤인지 구분하기 힘들었지라도…… 언제나 소망 가운데 살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가야 할 길을 아시고 인도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하나님은 우릴 인도하시고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또한 우리를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어디 피할 장소도 없고, 홀로 있어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것 같은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기꺼이 우리의 피난처가 되어 주시고, 우리의 분깃이 되어 주시기에 소망가운데 살아갈 수 있습니다. (마28:20; 예수께서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 까지 너희와 항상 있으리라 하심)
이번 한 주간도 하나님의 은혜 주심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이 우리를 통하여 이루어지실 것을 변함없이 확신하며, 간절히 기도하며, 승리하는 삶을 살아 가시길 우리 주 예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060120 안익선 목사/ 참조: 정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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