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모음(Korean sermons)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단 3:10-18)

호걸영웅 2020. 8. 21. 22:28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 3:10-18)

10. 왕이여 왕이 명령을 내리사 모든 사람이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듣거든 엎드려  신상에게 절할 것이라

 

 

 

  1. 누구든지 엎드려 절하지 아니하는 자는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져 넣음을 당하리라 하지 아니하셨나이까
  2. 이제 몇 유다 사람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왕이 세워 바벨론 지방을 다스리게 하신 자이거늘 왕이여 이 사람들이 왕을 높이지 아니하며 왕의 신들을 섬기지 아니하며 왕이 세우신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나이다
  3. 느부갓네살 왕이 노하고 분하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끌어오라 말하매 드디어 그 사람들을 왕의 앞으로 끌어온지라
  4. 느부갓네살이 그들에게 물어 이르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너희가 내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내가 세운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한다 하니 사실이냐
  5. 이제라도 너희가 준비하였다가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들을 때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려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에서 건져낼 신이 누구이겠느냐 하니

 

 

 

  1.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2.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3.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서론)

초대교회의 교부들 중에 설교를 하도 잘 하여서…’황금의 입이라는 별명을 가진 크리소스톰이라는 분이 있었는데, 그분의 일화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당시 로마 정부는 기독교를 법으로 금지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크리소스톰은 기독교의 복음을 전했다는 죄목으로 체포되어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는 감옥에서 기도하기를 "주여! 이제는 감옥에 갇힌 죄수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저를 이곳으로 보내 주셨군요. 감사합니다" 라고 감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감옥에서도 쉬지 않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결국 그는 사형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다시 기도하기를 "주님! 감사합니다. 성도의 가장 아름다운 죽음이 순교라고 했는데, 저 같은 사람을 순교의 반열에 동참케 하시니 감사합니다." 라고 기도한 후 사형장으로 끌려갔습니다. 그런데 사형을 집행하기 직전에 갑자기 사형중지 명령이 내렸습니다. 그러자 그는 또 기도하기를 "하나님! 감사합니다. 아직도 종에게 할 일이 남았으면 죽도록 충성할 수 있도록 도와주옵서소" 라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흔히 하나님 앞에 감사할 때 좋은 조건을 달고 감사합니다. 내게 이런 문제가 있었는데 해결해 주셔서 감사하고, 내게 이런 소원이 있어 기도했는데 응답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합니다. 혹은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어주시면 하나님께 헌신하겠습니다 라고 기도 합니다. 또한 하나님이 먼저 축복해 주시면 열심히 봉사하고 충성하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실 그러한 감사의 이면에는 한 가지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곧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감사할 수 없다는 마음입니다. 내가 외형적으로 잘 되지 않으면 감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더 쉽게 말하면 내가 건강한 것은 감사할 수 있지만 병들면 감사할 수 없고, 내가 기도한대로 이루어지면 감사하지만 내가 기도한대로 되지 않으면 감사할 수 없다는 마음도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기복주의라고 합니다.)

그러나 크리소스톰의 감사는 살아도 감사요, 죽어도 감사였습니다. 이러한 감사는 사도 바울에게도 찾아 볼 수 있는 감사입니다. 바울 역시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다시 자유를 얻어 감옥을 나갈 수 있을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대로 순교의 제물이 될지도 몰랐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바울은 감옥 속에서도 예수의 복음이 전파됨을 기뻐하며 감사하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다시 한번 위대한 신앙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다니엘 선지자의 세 친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입니다.)

본론)

) 하나님 잘 섬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

 오늘 본문은 유다가 멸망하여 바벨론에 포로가 되었을 때에 바벨론 땅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바벨론에 처음 끌려간 포로들은 대부분 유다의 귀족들이었습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젊고 유능한 인재들을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그 중에 다니엘과 세명의 친구인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네 사람은 모두 바벨론의 왕궁학교에서 식민지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다니엘은 바벨론의 총리가 되었고, 세 명의 친구들은 도지사가 되었습니다. 이방의 점령국에 포로로 잡혀간 처지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나라의 한 도를 다스리는 방백이 된 것입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도 오늘날로 말하면 소위 성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멀리 이스라엘에서 포로로 잡혀온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의 총애를 받고 총리가 되고 방백이 되었으니 자연스럽게 많은 본토인인 바벨론 사람들의 질시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그들에게 좋은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금으로 신상을 만들고는 낙성식 때에 모든 신하들과 백성들로 하여금 그 신상에게 절하며 섬기게 한 것입니다. 만일 누구든지 신상에게 절하지 않으면 극렬히 타는 용광로에 던져 넣겠다는 조서가 발표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절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유일한 참 신이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우상에게는 절대 절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것 때문에 자신들이 고위 공직에서 쫓겨나거나 , 심지어 펄펄 끓는 용광로에 던져질 것도 알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만 섬기며 살겠다 했습니다. 어떤 유대인들은  그저 적당히 머리를 숙여 자기 자리를 보전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적당히 타협해서 자리를 지켜 유대 나라를 재건하고 하나님 신앙을 확산시키는 것이, 더 큰 애국이요 지혜로운 신앙생활이라고 주장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하나님께서는 사드락 메섹 아벳느고의 손을 들어 주셨습니다.

결국 그들은 발각되고 체포되어 느부갓네살 왕 앞에 끌려왔습니다. 단순히 하나님 한 분만을 믿는 신앙 때문에 촉망받던 도지사의 자리에서 죄인의 신분으로 전락한 것입니다. 그래도 왕은 그들을 아끼고 사랑했기 에 그들의 마음을 돌려보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한마디로 거절하며 죽음을 택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저나 여러분은 오늘날 어떤 신앙 자세로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 다. 오늘날 많은 믿는 사람들이 세상에 살면서 세상 속에 묻혀 그저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를 믿는 사람임을 드러내려 하지 않으며 숨기고 살아갑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애써 감추려 합니다. 일반 회사나 관공서에서 돼지 머리 놓고 고사를 지내면 믿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 앞에 절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타협하지 않는 믿음을 가졌습니 다.

)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하나님을 바로 알고 믿었습니다(16-17).
본문을 보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당시 세계 최고의 왕으로 불리웠던 느부갓네살 왕과 당당히 맞서고 있습니다. 본문 16절과 17절을 다시 말하면 "왕이시여! 왕이 우리를 보고 우상에게 절하고 우상을 섬기라고 하지만, 우리는 이 일에 대하여는 대답할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설령 왕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용광로에 던지신다 해도 하나님은 우리를 건져 내실 것입니다. 그리고 왕의 손에서도 우리를 구해 내실 것입니다" 라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당시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왕으로 불리웠던 느부갓네살 앞이었지만 조금도 위축되거나 비굴함이 없이 자신들의 신앙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어려서부터 하나님에 대하여 잘 배우고 알았던 사람들입니다. 또 그들은 신앙적 지식과 경험을 통해서 하나님을 바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하나님은 펄펄 끓는 쇳물 속에서도, 추상같은 왕의 호령 앞에서도 자신들을 구해줄 수 있는 분이심을 믿었습니다. 그랬기에 대 제국 바벨론의 왕 앞에서 도 분명한 신앙을 고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오늘날 우리의 삶을 어떻습니까? 혹시 여러분은 직장의 상사가 입을 한 번 삐쭉이면 예수님의 ''자도 못 꺼내고, 친구가 한 번 눈을 흘기면 하나님의 ''자도 못 꺼내는 나약한 신앙인은 아닙니까? 주변에서 누가 하나님과 교회를 욕하는 소리만 들어도 주눅드는 신자는 아닙니까? 혹시 신앙 때문에 내 자리가 흔들릴까 염려하는 사람은 아닙니까? 혹시 내가 신앙생활 열심히 하면 친구를 잃을까봐 전전긍긍하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그런데 본문에 나오는 세 청년은 고위공직보다도, 친구보다도 신앙을 더 중요하게 여겼던 사람들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이었기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던 사람들입니다.

브룩스 쿡이라는 목사는 "당신의 계획을 믿음으로 세우라" 라는 책에서 이런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미국 남부지방에 사는 어느 청년이 한겨울에 와이오밍에 사는 자기 친구를 방문한 일이 있었답니다. 날씨가 영상 5도 가량(화씨 40도 정도?) 올라간 어느 날 오후에, 둘은 차를 타고 시골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꽁꽁 언 호수를 보고 그들은 차를 세워 놓고 호수를 구경하기로 했습니다. 와이오밍에 사는 친구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호수 한가운데로 뛰어 들어갔으나, 남부에서 온 친구는 조심스럽게 얼음 위를 걸으면서 호수 가운데로는 가지 못하고 호숫가에서만 서 있었습니다. 그것도 발끝을 세우고 조심스럽게 걸어 다녔습니다. 그때 커다란 엔진소리에 그 친구가 소리나는 쪽을 바라보니 그 지방의 농부가 커다란 트랙터를 몰고 호수 한 가운데로 지나가는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그는 발끝을 세우고 있는 자신을 내려다 보았습니다. 농부가 트랙터를 타고 있는 그 똑같은 얼음판 위에 자신은 발 끝으로 서 있으니 자신이 한심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이런 차이가 생긴 것입니까? 그것은 그 지방의 농부는 호수의 얼음을 잘 알고 있었고, 그 남부 청년은 몰랐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얼마나 의지할 만한 분이신지 모르기 때문에 그와의 관계를 발끝으로만 맺고 있다고 그는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 매일 하나님과 정기적으로 만나는 시간을 갖고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고 그는 결론을 맺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지금 시도하고 있는 QT 운동입니다.
하나님을 더 많이 알면 알수록 우리는 하나님을 더 잘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읽고 공부해야 합니다.

)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성숙한 신앙을 가졌습니다(18).
그래서 그들은 무엇이 성숙하고 차원 높은 믿음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하나님께 조르기를 하나님께서 나를 도와 주시면 헌신하겠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축복해 주시고, 하나님이 나를 고쳐주시면,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어 주시면 무엇이든지 하겠다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본문을 보십시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왕이시여! 하나님은 우리를 풀무 불 속에서나 왕의 손에서 건져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설사 하나님이 그렇게 우리를 구해 주시지 않으셔도,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우리는 왕이 세운 우상에게 절할 수 없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죽으면 죽었지 하나님을 배반할 수 없고, 죽으면 죽었지 우상에게 절하고 신앙의 절개를 버릴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이쯤 된다면 하나님도 방관하실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 죽으면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질 테니 말입니다. 우리의 믿음도 이러한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내게 응답해 주셨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게 응답하시든지 그렇지 않든지 간에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믿음의 결과가 무엇인지를 세 가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그들은 풀무불에 던져졌으나 구원을 받았습니다(19-27).
본문을 보면 그들은 풀무에 들어가지 않는 것은 고사하고 평상시보다 7배나 뜨거워진 용광로에 던져졌습니다. 얼핏 보면 실패한 것 같습니다. 그들의 믿음이 헛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불속에서 그들을 하나님은 살려 내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을 때 하나님은 일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상황과 환경 속에서도 저와 여러분을 지켜 주실 수 있습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을 받으셨습니다(29).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의 왕이었지만 느부갓네살은 분명한 말로 하나님만이 참 신이심을 선포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경멸하는 자는 그 몸을 쪼개고, 그 집을 거름터를 삼겠다고 선언하였습니다. 멀쩡한 사람들을 모함한 죄를 묻겠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은 그들의 지위를 더욱 높여 주셨습니다(29,30).
하나님만 섬기고 우상을 거부하는 것은 망하는 길 같았지만 흥하는 길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왕의 명을 거역하는 것은 죽는 길 같았지만 사는 길이었습니다. 본문 29,30절입니다.
29. 그러므로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니 각 백성과 각 나라와 각 언어를 말하는 자가 모두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하나님께 경솔히 말하거든 그 몸을 쪼개고 그 집을 거름터로 삼을지니 이는 이같이 사람을 구원할 다른 신이 없음이니라 하더라

30.왕이 드디어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바벨론 지방에서 더욱 높이니라-고 했습니다.


결론)
위기의 때에라도, 여러분의 삶의 현장에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와 같이 분명한 신앙의 결단을 가지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에 대한 바른 신앙으로 하나님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그를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익히는 일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더 나아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와 같이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라는 성숙한 신앙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축복과 은혜로 여러분을 도우시고 놀라운 복으로 옷 입혀 주실 것입니다. 그러한 믿음과 은혜가 여러분에게 넘치시기를 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할렐루야!

                           072120
안익선 목사 / 참조: 백명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