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

에스더 1장 강해(아하수에로 왕과 왕후의 폐위)

호걸영웅 2020. 9. 16. 03:56

에스더 1장 강해(아하수에로 왕과 왕후의 폐위)

서론)

1장은 아하수에로 왕의 즉위 및 통치, 그리고 왕후 와스디의 폐위에 관한 기록입니다.

본론)

1 이 일은 아하수에로왕 때에 된 것이니 아하수에로는 인도로 구스까지 일백 이십
(127)도를 치리하는 왕이라
아하수에로 왕 = 에스라 4 : 6에서도 언급되는 B.C. 485-464년까지 통치했던 페르시아 왕입니다. 그는 크세르크세스(Xerxes)와 동일 인물이며(Josephus), 9: 1의 아하수에로와는 별개의  인물입 니다. 그는 인도로 구스까지 - 여기의 '인도'는 인더스 강 서쪽 지역, 즉 오늘의 파키스탄 지역을 가리키며 인도 반도 전체 지역을 뜻하지는 않는다(Baldwin)고 봅니다. 이 지역은 아하수에로 왕의 부친 다리오에 의해서 정복되었으나 아하수에로 당대에도 그곳 거민들과의 전쟁은 완전히 종식되지 않았지만 대부분은 정복되었거나 화평조약을 맺은 걸로 볼 수 있습니다. (Herodotus vii, 65, 70). 한편, '구스'는 오늘날의 '이디오피아' 지역 곧 나일 강 상류 지역을 가리킵니다.
ㅇ일백 이십 칠 도() - 페르시아 제국은 기본적으로 20개의 행정구역으로 나뉘어져 소위 '왕의 대신'들에 의해 통치되었고(3 :12), 보다 세부적으로는 127도로 구분되어 각 도의 '방백'들에 의해 다스려졌습니다.

2= 당시에 아하수에로왕이 수산 궁에서 즉위하고
ㅇ수산 궁 - '수산'(오늘날의 이라크 남부, 슈쉬(shush)라고 불리는 곳) 은 고대 엘람 지역에 위치했던 페르시아의 수도였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페르시아 왕들은 이 '수산'에서는 봄과 가을에만 통치를 하였 을 뿐이고, 겨을에는 바벨론에서 여름에는 메대의 악메다에서 정무(政務)를 보았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산' (1) 왕이 일년 중 가장 오래 머무는 곳이었으며, (2) 행정부 대부분의
기관들이 위치했었고, (3) 왕의 보호를 목적으로 철저히 요새화되었다(느헤미야 1)고 합니다.
고로 '수산 궁은 단연 최고의 바사의 수도였음이 분명합니다.

3 위에 있은지 삼년에 그 모든 방백과 신복을 위하여 잔치를 베푸니 바사와 메대의
장수와 각 도의 귀족과 방백들이 다 왕 앞에 있는지라
ㅇ위에 있은 지 삼 년 - 아하수에로 왕의 즉위는 B.C. 458 12 23일에 있었습니다.

. 고로 B.C. 482년을 말합니다(Paton).

ㅇ모든 방백과 신복을 위하여 잔치를 베푸니 - 헤로도투스(Herodotus)에 의하면, 아하수에로 왕은 그리이스 정복을 위해 즉위한 이후부터 2년 동안 철저한 계획에 따라 무력을 증강해갔다고 했는데, 본절의 잔치는 아마도 전쟁에 돌입하기 앞서 최후 점검을하기 위한 목적에서 열린 듯하다(Baldwin, Huey, Keil, Schultz)고 봅니다. 한편, 고대 사가인크테시아스(Ctesias)에 따르면, 페르시아 왕들은 보통 15,000명 정도가 참석할 수 있는 정도의 잔치를 베풀었다고 한다.


ㅇ바사와 메대의 장수...각 도의 귀족...방백 - '바사와 메대'라는 독특한 표현은 페르시아 제국 전체를 가리키는 술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바사' '메대'는 페르시아 제국을 구성하던 가장 중요한 두 민족 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메대' '바사'에 의해 합병? 되었지만 , 두 민족은 동일하게 유사한 언어 사용 민족에 속하여 언어나 관습 및 종교 등이 서로 거의 같았기에 그 두 민족은 거의 하나라고 할 만했습니다.
'장수'(헤일) 2천 명의 창을 가진 병사, 2천의 기병(騎丙). 그리고 1만의 보병 등 총 1 4천의 병력을 거느렸던 지휘관을 뜻함(Keil1, Paton, Baldwin). 그리고 '귀족'(파르템)은 문자적으로는 '으뜸되는 사람'의 뜻을 갖는 단어로서 구체적으로는 (1) 페르시아 전역을 스물로 나눈 행정 구역을 맡은 총독(Paton), (2) 왕의 곁에서 왕에게 필요한 조언을 하는 모사(Baldwin) 등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한편, '방백'(사르) 127개로 나눈 행정 구역을 다스렸던 행정관이라 합니다.

4 왕이 여러 날 곧 일백 팔십일 동안에 그 영화로운 나라의 부함과 위엄의 혁혁함을 나타내니라
ㅇ일백 팔십 일 동안 잔치는 6개월간 열렸습니다. 제국의 각처를 다스리던 '방백'이나 '장수'는 그렇게 오랫동안 자신들의 임지(任地)를 떠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에  '방백' 등이 번갈아 가면서 그
잔치에 참여했었다고 봅니다.
ㅇ그 영화로운 나라의 부함 - 이와 같은 페르시아 제국의 경제적 강성은 여러 고대 저술가들에 의하여 언급된 바있다. 그중 헤로도투스는 페르시아 왕이 매년금 14,560달란트를 공물로 받아서 그것으로 커다란 금궤를 만들어 창고에 보관하였다고 했고 또한 아하수에로 왕은 금과 은으로 씌워진 장막, 금으로 된 긴 의자, 금으로 된 주발과 잔, 그리고 금주전자 등을 스파르타로부터 약탈하여 갖고 있었다 고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이스퀼루스(Aeschylus)도 페르시아 왕궁의 방들이 금으로 씌워졌다고 말하였습니다(Paton).

5 이 날이 다하매 왕이 또 도성 수산 대소 인민을 위하여 왕궁 후원 뜰에서 칠일 동안 잔치를 베풀새
ㅇ이 날이 다하매 - 왕이 '방백' '신복'을 위하여 베풀었던 180일간의 잔치(3,4)
가 끝날 때 즈음의 사건을 가리킵니다.
ㅇ대소 인민 - 신분 고하를 막론한 모든 남자들을 가리킴(9).
ㅇ왕궁 후원 뜰 - 페르시아 왕궁은 요새화된 성벽으로 둘러싸인 정원의 중간에 자리잡고 있었고 (Paton) ''에 해당되는 공간의 넓이는 약6 6백평방 미터 (1.63 에이커)정도였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 정도 넓이의 '후원 뜰'은 대단히 많은 시민들을 위한 잔치를 갖기에 충분하였을 것입니다.

6 백색, 녹색, 청색 휘장을 자색 가는 베줄로 대리석 기둥 은고리에 매고 금과 은으로 만든 걸상을 화반 석, 백석, 운모석, 흑석을 깐 땅에 진설하고 ㅇ백색, 녹색, 청색 휘장 - 이러한 '휘장'은 잔치 장소를 화려하게 장식하기 위한 것이기도하지만, 따가운 햇살을 막으려는 목적 때문에 설치되었을 것입니다.

ㅇ대리석 기둥 - 뜰 중간에 위치했던 궁전의 옆에 별도로 세워진 기둥을 가리키는데, 수산의 폐허를 탐사했던 고고학자들은 페르시아 왕궁의 기둥들이 검푸른 석회석이었다고 증언하고 있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여기의 '대리석'은 차라리 '석회석'으로 번역함이 타당하며,  한편, '기둥'은 그 꼭대기에 한 사람이 족히 누울 수있을 만큼 굵었다고 합니다(Paton).
ㅇ화반석, 백석, 운모석, 흑석을 깐 땅 - '화반석'(바하트)은 칠십인역에 서 '가짜 에머랄드'라고 번역했 다는 점에서 '에머랄드'처럼 생긴 녹색 돌, 즉 공작석 혹은 사문암을 가리키는듯 하며(Keil). 그리고 '백석'(쉐쉬)은 앞에서 '대리석'으로 번역된 단어이다. '운모석'(다르)은 칠십인역에서 '진주같은 돌 '이 라고 번역했다는 점에서, 진주조개의 껍질 혹은 진주 비슷한 광택과 불규칙한 균열이 있는 진주암(眞珠 岩)을 가리키는 듯합니다. 마지막으로 '흑석'(소헤레트) 검은 돌을 뜻합니다(Keil).

7 금잔으로 마시게 하니 잔의 식양이 각기 다르고 왕의 풍부한대로 어주가 한이 없으며
ㅇ어주(예인 말코트).= 문자적으로는 '나라의 포도주'인데, 이는 왕 자신이 마시기 위해 저장해 놓은 칼리본(Chalybon) ()의 귀한 술이라고 봅니다(Schultz, Paton).

8 마시는 것도 규모가 있어 사람으로 억지로 하지 않게 하니 이는 왕이 모든 궁내
관리에게 명하여 각 사람으로 마음대로 하게 함이더라
ㅇ규모가 있어...억지로 하지 않게 하니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마음대로 마시게 했다는 의미


9 왕후 와스디도 아하수에로 왕궁에서 부녀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푸니라
ㅇ왕후 와스디 - 아하수에로 왕의 여러아내 중 세속사에서 밝혀진 사람은 일곱 모사중의 한 사람이었 던 오타네스(Otanes)의 딸 아메스트리스(Amestris)로 봅니다. 대개의 성경 학자들은 여기의 이 '와스 디'가 바로 그 '아메스트리스'였을 것으로 생각하며, 추측건대 이 '와스디'라는 호칭은 본명이 아니라  그녀의 성품을 나타내 주기 위해 사용했던 별칭으로 , 분명치는 않지만, '와스디' 달콤하 다' 혹은 '사랑을 받는' 이란 뜻이라 합니다(Rawlinson, Baldwin).

ㅇ부녀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푸니라 - 와스디가 남자들과 별도로 잔치를 배설한 까닭은 (1) 남자들의 잔치 분위기는 여성들의 취향과는 거리가 멀며, (2) 남자들의 잔치장소인 '후원 뜰'(5)은 여자들까 지 참석하기엔 장소가 협소하였기 때문으로 봅니다(Baldwin, Paton).

10 제 칠일에 왕이 주흥이 일어나서 어전 내시 므후만과 비스다와 하르보나와 빅다와 아박다와 세달과 가르가스 일곱 사람을 명하여
ㅇ제 칠 일에 왕이 주흥이 일어나서 - '제칠 일'은 백성들을 위해 베푼 잔치의 마지막 날입니다(5). 한편, '주흥이 일어나서'는 문자적으로 '술로 인해 기분이 좋았다'는 뜻이다. 곧 이것은 술을 지나치게 마셔 자신의 온전한 정신을 상실한 상태, 혹은 거나하게 취한 상태였음을 시사합니다.

ㅇ어전 내시  여기서의 '내시'는 왕후의 처소에도 출입할 수 있었다는 사실로 미루어 짐작할 때, '거세된 환관'을 가리킴이 분명합니다.

ㅇ일곱 사람 - 이처럼 아하수에로 왕이  내시 '일곱 사람'을 와스디 왕비에게 보낸 것은, 와스디에 대한 명령(11)이 반드시 이행되어야 한다는 단호한 취지를 '와스디'에게 알려주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봅니다.
11 왕후 와스디를 청하여 왕후의 면류관을 정제하고 왕의 앞으로 나아오게 하여 그 아리따움을 뭇 백성과 방백들에게 보이게 하라 하니 이는 왕후의 용모가 보기에 좋음이라
ㅇ그 아리따움을...보이게 하라 - 아하수에로 왕은 자신의 아름다운 아내를 모든 이에게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탁월성을 과시하려는 욕망을 가졌습니다.

12 그러나 왕후 와스디가 내시의 전하는 왕명을 좇아 오기를 싫어하니 왕이 진노하여 중심이 불 붙는듯하더라
ㅇ왕후 와스디가...싫어하니 - '와스디'의 이 같은 반응은 다음과 같은 이유 중의 하나에 따라 나타난 결과일 것입니다. , (1) '와스디'가 낯선 사람에게는 아내의 얼굴을 보이지 않아야만 한다는 페르시아 관습을 염두에 둔 때문에(Josephus), (2) 와스디가 술 취한 손님들 앞에서 왕후로서의 위엄을 손상당할까 염려한 때문에(Keil1,Rawlinson, Schultz), (3) '와스디'가 당시 외모에 어떤 흠결이 있었기 때문에(유대 랍비들). 등이다. 그러나 위의 세 가지 이유 중 (2)의 것이 가장 타당하다고 봅니다.
ㅇ왕이 진노하여 중심이 불붙는듯하더라 - 이는 문자적으로는 '그의 속에서 불이 탔다'의 뜻으로서,
그의 '진노'가 얼마나 컸는지를 보여줍니다.

13 왕이 사례를 아는 박사들에게 묻되 (왕이 규례와 법률을 아는 자에게 묻는 전례가
있는데
ㅇ 일단 잔치가 끝난 뒤, 아하수에로 왕은 온전한 정신 가운데서 자신의 명령에 불복한 와스디의 징계 문제를 처리하려고 했습니다.
ㅇ왕이 사례를 아는 박사들에게 묻되 -  모사로부터 자문을 얻는 것은 당시 대부분의  왕들의 관례였습니다.
14 때에 왕에게 가까이 하여 왕의 기색을 살피며 나라 첫 자리에 앉은 자는 바사와
메대의 일곱 방백 곧 가르스나와 세달과 아드마다와 다시스와 메레스와 마르스나와
므무간이라
ㅇ왕의 기색을 살피며 먼저 왕의 기분을 살폈다는 겁니다.

15 왕후 와스디가 내시의 전하는 아하수에로 왕명을 좇지 아니하니 규례대로 하면
어떻게 처치할꼬-라며 왕은 모사들의 의견을 묻습니다.

16 므무간이 왕과 방백 앞에서 대답하여 가로되 왕후 와스디가 왕에게만 잘못할뿐 아니라 아하수에로왕의 각 도 방백과 뭇 백성에게도 잘못하였나이다
ㅇ므무간이...대답하여 가로되 - 왕이 와스디 처리와 관련한 자문을 구하자, 일곱 모
사들은 서로 협의를 한 후 그 대변인격인 '므무간'이 그 협의 사항을 왕에게 전달하였습니다.


ㅇ와스디가 왕에게만 잘못할 뿐 아니라 -일차적 죄는  '와스디'의 왕에 대한 '잘못'은 왕의 엄명
을 거역함으로써 왕의 위신을 여지없이 실추시켰다는 데 있었습니다(12).

17 아하수에로왕이 명하어 왕후 와스디를 청하여도 오지 아니하였다 하는 왕후의 행위의 소문이 모든 부녀에게 전파되면 저희도 그 남편을 멸시할 것인즉 18 오늘이라도 바사와 메대의 귀부인들이 왕후의 행위를 듣고 왕의 모든 방백에게 그렇게 말하리니 멸시와 분노가 많이 일어나리이다
ㅇ와스디의 왕명 거역이 어떻게 해서 방백들이나 일반 백성에게도 그 여파를 미치는지를 말했습니다.
ㅇ남편을 멸시할 것인 즉 - '멸시할 것'(* , 레하브조트) '업신여기다' 혹은 '비웃다'란 뜻의 동사 '바자'(* )입니다.
ㅇ오늘이라도 멸시와 분노가 많이 일어나리이다 - 문자적으로는 '멸시와 분노가 집집마다 오늘부터라 도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의 뜻. 가정의 위계질서가 곧 엉망진창이 될 거라는 뜻입니다.

19 왕이 만일 선히 여기실진대 와스디로 다시는 왕 앞에 오지 못하게 하는 조서를 내리되 바사와 메대의 법률 중에 기록하여 변역함이 없게 하고 그 왕후의 위를 저보다 나은 사람에게 주소서
ㅇ왕이...선히 여기실진대 - 신하들이 왕에게 어떤 공식적인 제안을 옳다 여기시면의 뜻.


ㅇ법률 중에 기록하여 번역함이 없게 하고 - 페르시아 제국의 전통(傳統) 중 하나는
일단 왕의 도장이 찍혀 법률화(法律化)된 사항은 절대 그 효력이 취소되지 않게 하자는 뜻. 그렇게 함으로써 그녀가 권세를 회복하여 자신을 폐서인시킨 데 일조(一助)를 했던 사람들에게 복수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었다고 봅니다(Keil).
ㅇ왕후의 위를 저보다 나은 사람에게 주소서 - '나은'(토바) '더 아름다은' 혹은 '더 덕스러운'이란 뜻이며. '사람'(레우타)은 원래 '동료' 혹은 '친구'의 의미로서 거의 비슷한 범주에 속하는 어떤 사람을 광의적으로 가리킵니다(Paton, 삼상 15 : 28).


20 왕의 조서가 이 광대한 전국에 반포되면 귀천을 무론하고 모든 부녀가 그 남편을
존경하리이다=그리하면 그 결과로 국가와 가정의 기강이 잡히게 되리라고 했습니다.

21 왕과 방백들이 그 말을 선히 여긴지라 왕이 므무간의 말대로 행하여
22 각 도 각 백성의 문자와 방언대로 모든 도에 조서를 내려 이르기를 남편으로 그
집을 주관하게 하고 자기 민족의 방언대로 말하게 하라 하였더라
ㅇ각 백성의 문자와 방언 -  당시 페르시아 제국 내에는 수많은 언어들이 사용되고 있었는데, 페르시아인들은 주로 고대 페르시아어(Old Persian)나 아람어를 사용했고 바빌로니아 지역에서는 아람어와 앗시리아어가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인도에서는 산스크리트어를 위시한 여러 동족어들이, 메소포타미아와 시리아 및 팔레스틴 등지에서는 주로 아람어가 통용되었습니다(Paton).

 ㅇ모든 도에 조서를 내려 - 본절은 페르시아 제국이 당시 매우 조직적인 우편제도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Xenophon, Paton) 우편 업무가 신속히 이루어질 수 있었음을 나타냅니다.
ㅇ남편으로 그 집을 주관하게 하고 - , 백성들은 왕명을 거역한 왕비를 폐서인(廢庶人)시켰다는 조서의 내용을 살펴봄으로써, 한 가정내에서 남편에 대한 아내의 명령불복종은 결코 용납될 수 없음을 새삼 깨닫게 되고, 또한 그 결과로 한 가정 내에서 남편의 위치는 더욱 높아지게 되었습니다.

결론)

결국 이 와스디의 폐위 사건은 에스더가 왕후가 되게 하기 위한 매우 놀랍고도 신기한 배경이 되었고 그로 인해 유대인들의 멸망을 막아내는 일에 큰 준비과정이 되었습니다. 이는 곧 하나님의 놀라우신 예비하심이었습니다.



091520 안익선 목사/ 참조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