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

에스더 5장 강해(에스더가 왕과 하만을 잔치에 초청하다)

호걸영웅 2020. 10. 25. 03:22

에스더 5장 강해(에스더가 왕과 하만을 잔치에 초청하다)

 서론)

우리는 지난 에스더서 3장과 4장 에서 사단이 바사 곧 페르시아의 2인자 하만을 사단의 대리인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모르드개와 하만의 상호 적대적 적개심은 개인과 민족의 차원에서 영적으로는 하나님과 사단의 세력 간의 영적 투쟁으로 발전되었음을 봅니다. 마침내 이것을 깨우친 에스더는 역사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신 사실과 어떤 힘든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사실을 확신하며 왕 앞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이제 5장에서 부터는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들을 구원하시고자 보다 적극적이고 강권적인 섭리로  에스더를 사용하시게 됩니다.

본론)

)왕 앞에 나아가는 에스더

  본문 1절을 보면 “(금식한 지)제 삼일에 에스더가 왕후의 예복을 입고 왕궁 안 뜰 곧 어전 맞은편에 서니. 왕이 어전에서 전 문을 대하여 보좌에 앉았다가”라고 했습니다. 삼일간의 금식 기도가 끝난 후에 마침내 에스더 왕후는 아하수에로 왕 앞에 나아갑니다. 에스더는 사전에 아무런 예고도 없이 왕의 눈에 잘 보이도록 왕의 내실 안뜰 어전 맞은편에 섰습니다. 에스더는 금식기간을 통해 통회 자복하는 심정으로 자신의 신앙적 연약함과 부족함을 철저히 고백하고 회개하며,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구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에스더의 왕궁 어전에서의 돌발적인 출현은 아무리 왕후의 신분이라고 해도 죽음을 각오한 돌발적인 행동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에스더서 4:11절에 보면 에스더는 왕을 알현한 것이 이미 삼십 일이 지났고 에스더가 왕후의 자리에 오른지 이미 오 년이 지나고 있는 시점입니다. 에스더는 아하수에로 왕의 통치 칠 년에 왕후에 간택됐습니다( 2:16). 현 시점은 그의 통치 십이 년째 되는 해 입니다(3:7). 따라서 당시에 에스더 왕후에 대한 아하수에로 왕의 총애가 여전한지의 여부는 확인할 길도 없습니다. 게다가 에스더는 최근에 자신이 왕을 모신지가 벌써 한 달이 돼 가는데도 불구하고 이렇다 할 부름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고도 없이 일방적으로 왕 앞에 나아간다는 것은 그야말로 위험한 도박이라 힐 수 있습니다. 참으로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나아간 것입니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왕후 에스더의 방문에 대한 아하수에로 왕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2절을 보면 “왕후 에스더가 뜰에 선 것을 본 즉 심히 사랑스러우므로 손에 잡았던 금홀(Golden Septre)을 그에게 내어미니 에스더가 가까이 가서 금홀 끝을 만진지라”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의 역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3절을 보면 “왕이 이르되 왕후 에스더여! 그대의 소원이 무엇이며, 요구가 무엇이뇨. 나라의 절반이라도 그대에게 주겠노라”고 했습니다. 아하수에로 왕은 왕후 에스더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에스더에게 무슨 급한 소원이나 요구가 있는 것으로 생각된 듯 합니다. 그래서 아하수에로 왕은 에스더 왕후가 사랑스러운 나머지 그녀에게 “그대의 소원이 무엇이며, 요구가 무엇이냐? 나라의 절반이라도 그대에게 주겠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섭리로 역사하셔서 아하수에로의 마음에 왕후 에스더가 사랑스러워 보이게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녀를 위해서 무엇이든지 다 해 주고 싶은 관대한 마음이 생기도록 하셨습니다.

 )잔치에 초대된 왕과 하만

 4= “에스더가 가로되 오늘 내가 왕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사오니 왕이 선히 여기시거든 하만과 함께 임하소서”라고 했습니다. 에스더는 왕이 무엇이나 구하라고 했을 때 선뜻 유다 백성이 처한 상황을 이야기 하고 하만에 관해 이야기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어전에 여러 신하들 앞에서 대놓고 말하기엔 너무도 당황스러웁고 민감하고 조심스러운 이야기였기 때문입니다. 에스더는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를 따라서 잔치를 준비하고 왕과 하만을 초대한 것입니다.

 에스더의 왕과 하만을 잔치에 초대한 사건은 왕에게 큰 흥미를 가져다 주었을 것입니다. 무슨 잔치인가? 왜 잔치를 배설하는가? 왜 하필이면 하만과 함께 참석하라고 하는 것일까? 등등의 의문을 왕은 가지게 되었을 것입니다.

 5=아하수에로 왕은 에스더의 요청에 흔쾌히 응하여 급히 하만을 불러서 함께 잔치에 참여 하였다 했습니다.

 6절을 보면 “잔치의 술을 마실 때에 왕이 에스더에게 이르되 그대의 소청이 무엇이뇨. 곧 허락하 겠노라. 그대의 요구가 무엇이뇨. 나라의 절반이라 할지라도 시행하겠노라”고 또 말해줍니다. 아하수에로 왕은 하만이 보는 앞에서 에스더에게 이런 약속을 해 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틀림없이 에스더의 소청을 들어줄 것에 대한 확약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보면 아하수에로 왕은 에스더의 지략에 완전히 매인 바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께서는 아하수에로 왕을 에스더에게 완벽하게 붙이십니다. 더구나 하만을 동참시킴으로 해서 증인을 삼으신 것입니다.

 그러면 아하수에로 왕의 재차 요구에 대한 에스더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7-8절에 보면 “에스더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소청, 나의 요구가 이러하니이다. 내가 만일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었고 왕이 내 소청을 허락하시며 내 요구를 시행하시기를 선히 여기시거든 내가 왕과 하만을 위하여 베푸는 잔치에 또 나아오소서. 내일은 왕의 말씀대로 하리이다”라고 했습니다.

에스더는 왕의 은혜를 입었고, 내 소청을 허락하시며, 내 요구를 시행하기를 선히 여기시면 내일 베푸는 잔치에 또 하만과 함께 나와 달라고 합니다. 에스더는 한 번 더 자신의 소청을 곧바로 말하지 않고 왕으로 하여금 조바심과 호기심을 더욱 발동하도록 하였습니다. 에스더는 오직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는 가운데 시종일관 하나님의 지혜 주심과 일하심에 자신을 의존했습니다.

 9절에 보면 하만은 왕후 에스더가 자신만 왕과 함께 잔치에 청함을 받았기 때문에 기분이 매우 매우 좋았습니다. “이 날에 하만이 마음이 기뻐 즐거이 나오더니”라고 했습니다.

하만은 내일의 잔치에도 여전히 참석할 것을 약속하고 기분 좋게 퇴궐을 하였습니다. 극히 아름다운 왕후가 자기를 위해 잔치를 벌렸음을 생각할 때 그리고 내일도 또 귀한 잔치를 벌려 자기를 대접해 주리라 생각할 때 매우 흡족한 기분이 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하만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궁궐 문 앞에 앉아있던 모르드개 때문이었습니다. 하만이 기분에 도취되어 기쁜 마음으로 궁궐을 나서는데 대궐 문에서 모르드개는 하만을 보고도 여전히 일어나지도 않고 인사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모르드개의 태도는 하만을 완전히 무시하는 태도였습니다. 자신을 무시하는 모르드개를 보고 하만은 심히 노하였습니다. 그러나 자신만 왕과 함께 왕후의 잔치에 초대를 받았고 내일도 자신만 왕과 함께 잔치에 초대를 받았기에 그 기분을 망치지 않으려고? 오늘만은 참는다 -하고 참고 집으로 갔습니다.

 

 )모르드개를 다시 만나 기분이 상한 하만

 

10-13절에 보면 “참고 집에 돌아와서 사람을 보내어 그 친구들과 그 아내 세레스를 청하여 자기의 부성(Riches)한 영광과 자녀가 많은 것과 왕이 자기를 들어 왕의 모든 방백이나 신복들보다 높인 것을 다 말하고 또 가로되 왕후 에스더가 그 베푼 잔치에 왕과 함께 오기를 허락 받은 자는 나 밖에 없었고 내일도 왕과 함께 청함을 받았느니라. 그러나 유다 사람 모르드개가 대궐 문에 앉은 것을 보는 동안에는 이 모든 일이 만족하지 아니하도다”라고 했습니다.

 

가까스로 화를 삭이며 집으로 돌아온 하만은 사람을 보내어 그 친구들과 아내 세레스를 청하여 자신의 부귀와 자녀가 많은 것과 왕의 신임으로 말미암은 자신의 위치를 다시 한번 자랑하며 자기도취에 빠졌습니다. 더욱 왕후의 잔치에 왕과 함께 자신만이 초대받은 사실과 내일의 잔치에도 재차 초대받은 사실을 자랑삼아 강조하며 자족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모르드개에 대한 심한 불쾌감과 적개심도 아울러 토로하였습니다. 이에 하만의 아내와 친구들은 이번 기회에 아예 모르드개를 유다인 진멸에 앞서 시범적으로 먼저 처형해 버릴 것을 조언합니다. 오십 규빗을 장대 기둥을 설치하여 거기에 매달아 죽임으로써 하만의 최고 총리로서의 위신과 명예를 높이고 권력의 힘을 드러냄으로써 유대인들을 더욱 공포에 떨게하며 권력에 대항하는 자들에게 경종을 울리자는 의미입니다. 오십 규빗은 약 22.5M의 높이인데 검물로는 7층 반 정도의 높이입니다.

하만은 이를 기쁘게 여기고 높은 장대 기둥에 모르드개를 달아 처형할 것을 준비시킵니다. 그리고 이튿날 이에 대한 왕의 재가를 얻어 시행할 계획을 마련합니다. 이렇게 해서 모르드개는 이변이 없는 한 내일이면 처형될 것이 거의 기정사실화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이제 날이 밝으면 하만은 일찍 왕을 알현해서 모르드개의 불경과 왕에 대한 모독을 빙자해 그의 처형에 대한 승낙을 받아낼 것을 마음 먹습니다. 그날 밤은 자신에 대한 하만의 살해 음모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모르드개에게 있어서는 절망적인 위기의 밤이었던 것입니다.

이제 모르드개 스스로에게는 이런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살아날 방법은 전혀 보이지 않아 보입니다. 하나님이 개입하시는 일 외엔 아무런 살 방법이 없는 지경에 이릅니다.

 결론)

 

밤이 깊으면 새벽이 온다 했습니다. 성도 된 우리의 고난의 날이 깊어지고 사람으로서의 방법이 없을 때하나님의 도우심을 더욱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그 섭리를 구하여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조급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지혜를 따라 행하는 에스더의 믿음도 우리가 본 받을 부분입니다.

고후 4:8,9=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십자가)을 몸에 짐은 예수의 생명(부활적)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라고 했습니다. 이는 힘들어도 십자가를 달게 지는 마음으로 삶아 가자는 이야기 입니다. 이는 곧 인내하는 삶이요 부활과 재림을 고대하는 믿음의 삶입니다.

급히 먹는 음식이 체한다고 했습니다. 범사에 신중하고 지혜롭게 인내하며 살아야 합니다. 급하다고 불법을 행해서는 안됩니다. 하만과 같이 육신의 소욕을 이루고자 인간적이고 비열한 방법을 써서는 아니 됩니다.(권력을 남용한다든지 갑질로써 약자를 괴롭히는 일을 한다든지 하는 것들)

또한 하만은 그 다음 날 자기의 운명이 뒤집힐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스스로 자만하고 들떠 있는 모습을 봅니다. 한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이 세상의 이치를 아직도 하만은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성도된 우리들의 삶도 동일합니다. 고로 우리는 더욱 겸손하여서 내일 내가 무엇을 하리라 라고 큰 소리치기 보다는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이 일을 하리라고 하는 겸손한 삶을 늘 살아야 되겠습니다.

나를 자랑하기에 급급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겸손한 삶, 곧 하나님의 사심과 그 은혜를 인정하며 높이는 삶을 살아야만 합니다.

 

100720 안익선 목사/ 참조: 창원한결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