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

에스더 서론

호걸영웅 2020. 4. 21. 00:40

에스더 서론


바사 (페르시아) 제국(BC 539-331)을 배경으로 한 에스더서는 아하수에로(일명 크세르 크세스, BC 485-464) 시대에 발생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에스더서의 사건은 아하수에로 3(BC 483, 1:3)에서부터 아하수에로 12(BC 473, 3:7)에 일어난 9년 간의 사건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에스라 6장과 7장에 언급된 사건들 사이에서 발생하였습니다. 이때는 바벨론의 포로 생활에서 귀환한 제1차 귀환자들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재건(BC 515)된 이후였습니다.

1.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

바벨론의 포로 생활로부터 귀환한 자들은 성전 제의를 재 수립하는 임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성전 재건에는 20여 년(BC 536-515)의 시간이 걸렸는데 이것은 적대자들의 반대 공작 때문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스라엘 공동체는 주변 적대자들의 반대로 인하여 성전 재건 공사에 큰 어려움을 겪어야 했었습니다. 그 후에도 대적자들은 이스라엘 공동체를 향하여 지속적인 박해를 가하였었습니다(에스라 4장 강해 참고).이스라엘 공동체는 대적자들의 박해를 받아가며 성전 재건을 이룩했고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립함으로써 신앙 공동체를 확고히 세워 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스라엘 신앙 공동체도 점차 와해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비록 성전이 재건되었다 할지라도 그들이 소망했던 메시아 왕국 건설은 아직도 기약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지속적인 대적자들의 박해는 그들의 삶을 피곤하게 만들었고 급기야 이스라엘 공동체는 점차 주변 정황의 상황에 따라 변질되어 갔던 것입니다.

특히 페르시아의 속주인 사마리아의 관리 아래 있던 이스라엘 신앙 공동체는 더 이상 다윗 왕국과 같은 정치 체제를 회복할 수 없다는 사실과 주변 이방인들과 하나의 정치 체제 아래에서 산업을 지속해야 한다는 여건 속에서 점차 그들과 교류를 확대시켜 나가면서 마침내 이스라엘 공동체 역시 사마리아 속주의 한 일원으로 변질되어 갔습니다. 그 중 가장 큰 문제는 이방인들 과의 잡혼이었습니다. 잡혼은 이스라엘 신앙 공동체의 정체성을 와해시키는 가장 강력한 힘으 로 작용했습니다. 이 상황에서 그들의 신앙을 회복한 인물이 2차로 귀환(BC 458)한 에스라 였습니다. 에스라는 이스라엘 신앙 공동체가 국가적인 체제가 아닌 신앙 공동체로서 신령한 나라를 건설해야 한다는 역사적 사명을 일깨웠던 것입니다.한편 페르시아에 남아 있던 이스라 엘 백성들은 성격이 약간 다르기는 하지만 이스라엘 공동체를 멸망시키려는 적대 세력과 싸우 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아하수에로 12(BC 473)에 발생했는데, 그것은 사울 가문의 후손인 모르드개 (2:5)와 아말렉 족속의 왕 아각 가문의 후손인 하만(3:1)과 갈등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하만은 아하수에로 왕에 의해 고관으로 세움을 받았으며 왕의 신복들조차 그 앞에 절하는 고위직에 오르게 되었습니다(3:2). 그러나 모르드개는 하만에게 절을 함으로서 그를 높일 수 없다는 자세를 취했고 이 일로 말미암아 급기야 하만의 공작으로 인해 이스라엘 공동체가 몰살 당하는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모르드개가 하만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은 것은 하만이 페르 시아의 고위직에 있다는 이유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오로지 하만이 아말렉의 후손이라 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말렉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선 가장 비열하고 악랄한 적대 세력이었으며 철저하게 진멸되어야 할 대상이었기 때문입니다( 17:16; 24:20; 25:17-19).

그리고 아이러니컬하게도 모르드개는 아말렉 족속을 진멸하라는 명령을 받은 사울 왕가의 후손이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과 아말렉의 오래된 적대 관계가 모르드개와 하만의 적대 관계로 역사상에 표출되었던 것이 에스라서의 주된 줄거리가 되었습니다.이스라엘과 아말렉 족의 갈등은 출애굽 시대부터 계속된 것이었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향해 행군할 때 가장 먼저 아말렉 족이 이스라엘을 공격한 것이 그 시초였습니다. 이 때부터 모세는 “여호와가 아말렉으로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17:16)고 선포하였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아말렉의 이름을 천하에서 도말”( 25:17-19; 17:14; 삼상 15:23)하라는 명령을 부여받았습니다.

성경에는 이스라엘과 아말렉 족의 계속적인 갈등을 기록되어 있습니다( 3:13; 5:14;6:3, 33; 7:12; 10:12; 삼상 27:8; 30:13-18).이스라엘의 왕국 체제가 출범한 후 사울 왕은 아말렉 족과 그 왕인 아각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지만 사울은 이 명령을 바르게 수행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삼상 15). 결국 이 일로 말미암아 사울은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한 것이 되었고 마침내 다윗에 의해 사울의 왕조가 무너지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습니다(삼상 28:18).

그리고 사울은 자신이 아말렉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한 병사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삼하 1:8). 심지어 히스기야 시대에도 이스라엘은 아직도 멸절되지 않은 아말렉 족과 싸워야 했습니다(대상 4:43). 이처럼 사울과 아각의 후손들간의 갈등은 이스라엘과 아말렉 족속간의 오래된 반감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었습니다.

에스더서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통해 세부적인 사항들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 하만은 모르드개에 대한 개인적인 불만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가 유다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난 후부터 는 전체 유다인들에게 분노를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하만은 유다인들이 페르시아에 동화되기를 거부하고 자기들의 법률대로 살기를 고집한다고 아하수에로 왕에게 고발하였습니다( 3:8). 그러나 이것은 겉으로 나타난 명분이었고 그 내부에는 페르시아 전역에 흩어져 살고 있는 모든 유다인들을 멸절시키려는 음모가 감춰져 있었습니다.

하만의 음모를 알지 못하는 아하수에로 왕은 급기야 아달월(2-3) 13일에 유다인들을 멸절시키라는 칙령을 내리도록 하만에게 허락하고 말았습니다. 모든 이스라엘을 멸절시키려고 했던 하만의 조서( 3:13)는 사실상 사울이 아말렉 족속에 대해 실패한 일(삼상 15:3)을 대신 반대로 이스라엘에게 행하려는 음모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멸절 될 위기에 처하자 모르드개는 자신의 사촌동생인 왕후 에스더를 설득하였고 우연하게 발생한 것처럼 일련 의 일들로 인하여 상황은 역전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유다인들을 증오하고 죽이려 했던 원수들이 오히려 화를 입게 되었습니다.

이 때 대적자의 괴수였으며 총 지휘자였던 하만은 모르드개를 처형하려고 준비한 높은 교수대 에 매달려 처형을 당하게 됨으로써, 여호와께서 사울에게 아말렉 족과 그 왕을 희생 제물 (herem)로 삼으라는 명령이 성취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때 하만의 열 명의 아들도 처형되었 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서 아말렉 족의 마지막 남은 자들이 바사에서조차 모두 제거되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사울에게 아말렉 족을 진멸하라고 명령하신 지 560년만의 일이었습니다. 운명이 뒤바뀌자 모르드개와 유다인들은 자신들이 처형한 사람들의 재산을 차지하지는 않았습니다 (9:10, 15).

그들은 사울이 그랬던 것(삼상 15:9-19)처럼 아말렉 족의 재산을 탐하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은 이스라엘이 적들로부터 안식을 누리는 것은 아말렉 족속의 멸망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이미 모세가 유언으로 남긴 말속에서 예견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기업으로 얻게 하시는 땅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 너로 사면에 있는 모든 대적을 벗어나게 하시고 네게 안식을 주실 때에 너는 아말렉의 이름 을 천하에서 도말할지니라 너는 잊지 말지니라”( 25:19).

이 임무가 완성되었을 때 이스라엘 공동체는 비로소 “대적에게서 벗어나서 평안함을 얻어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애통이 변하여 길한 날”( 9:22)을 누릴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출애굽한 이스라엘에 의해 가나안 땅이 정복되고 그곳에 제사장 나라가 들어섰음에도 불구하고, 뿐만 아니라 다윗 왕국이 들어서고 솔로몬 제국의 찬란한 문화가 세워졌음에도 불구 하고 그 나라가 바벨론에 멸망된 사건은 결국 아말렉이 아직도 진멸되지 않았다는 것과도 어떤 관련성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문제는 아말렉 사건을 되돌아봄으로써 해결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말렉은 이스라엘 백성인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가나안으로 진군하는 것을 방해하는 최초의 세력이었기 때문이었습다. 따라서 모든 반 여호와적 세력은 아말렉과 같은 존재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결국 아말렉이 철저히 진멸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적대 세력이 무너졌음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아말렉의 멸망은 사울 왕이 실패했던 것처럼,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순종의 여부에 달려 있었던 것입니다.

이 사건은 이스라엘 공동체와 이방과의 관계에 대한 문제를 다시 이해하게 하는 계기가 됩니다. 그동안 이스라엘은 세상의 여러 강대국들에게 오랫동안 굴복 당해야 했습니다. 아시리아, 바벨 론, 페르시아 등의 지배력이 그들을 제압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스라엘 공동체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 에스라서입니다. 에스라서는 이방 세력에 의해 지배되는 세상 속에서도 진정 그들이 추구해야 할 것은 여호와에 대한 충성이며 신앙 공동체로서 건재하는 유일한 길임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은 이스라엘 신앙 공동체가 하나님께 대한 충성과 순종 아래 있다면 어떤 적대 세력이라 할지라도 문제가 되지 않음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 향한 적대적 세력들 앞에서 에스더서는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4:14) 얻을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다른 데’는 천지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2. 에스더서의 메시지

1. 에스더서의 주된 관심사는 역사의 주관자가 누구인가 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유대인들이 기뻐하는 부림절의 기원을 밝히기 위한 것이라고 하기에는 에스더서의 주제로서 너무 빈약합니다. 왜냐하면 당시 부림절은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절기가 아니었습니다. 아울러 부림절은 성전 제의와 관련된 이스라엘의 절기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에스라서는 이스라엘의 구속과 회복을 실제적으로 이끄시는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시 라는 사실에 더 많은 관심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에스더서에는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필연적인 내용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것은 역사에 있어서 결코 우연이 없다는 사실을 반증하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왕후 와스디가 왕의 명령을 수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폐위를 당한 것(1:21-22)은 모르드개의 조카인 에스더가 왕후로 책봉되는 계기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에스더는 다른 여자들처럼 치장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순수한 자연미만으로도 왕의 마음에 들 정도로 아름다웠습니다. 모르드개는 우연히 왕의 내시들이 왕을 모살하려 한 일을 알게 되고 이 공로로 모르드개의 이름은 왕의 일기에 기록되었습니다.

이런 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르드개는 왕으로부터 아무런 보상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반면에 하만은 아무런 공을 세우지 않았지만 왕으로부터 은 일만 달란트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이 상급은 모르드개에게로 돌아갔습니다.

몇 년이 지나 모르드개가 하만의 음모를 알고 에스더에게 알렸을 때 에스더는 왕이 부르지 않았음에도 왕 앞에 나아갔고 왕은 이를 기쁘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그 날 밤에 왕은 잠을 이룰 수 없었고 왕의 연대기를 시종으로 하여금 읽게 하였고 시종은 모르드개에 관련한 사건을 읽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계기로 하만의 음모는 수포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유다인들에게는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릅니다.

에스더서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하여 직접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우연한 사건들이 필연적으로 전개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존재가 끊임없이 암시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연의 일치들은 하나님의 통치와 그 백성에 대한 섭리적인 보호하심의 결과였음이 밝혀집니다. 이처럼 에스더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통치에 대하여 기록하면서도 단 한 번도 하나님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는 특징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있어서 우리가 하나님의 목적을 이해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 어느 것도 하나님의 시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에스더서는 하나님의 주권성에 대하여 강하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2. 인간들에게 주어진 책임감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면하리라 생각지 말라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4:13-14)는 모르드개의 말은 인간의 책임 속에 하나님의 섭리가 담겨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3.  셈족주의(Anti-Semitism) 혹은 반 유대주의에 대한 이해

유대인들에 대한 적대감으로 일컬어지는 반 셈족주의는 애굽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애굽은 히브리 노예들을 적절한 수로 유지시키기 위해 출산한 사내아이들을 죽이는 정책을 시행했습니 다. 그러나 그 결과는 히브리인들을 가나안으로 돌려보내야 하는 유월절 사건을 초래했고 이로 인하여 애굽은 무력한 나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이방 민족의 침략은 여호와에 대한 불신앙과 불순종 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주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방 민족들은 반 셈족주의의 화신처럼 이스라엘을 침략했고 그 때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사들에 의해 번번이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반 셈족주의가 가장 왕성하게 나타난 것은 몇 세기에 걸쳐 지속된 에돔과의 적대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에돔과 이스라엘의 적대 관계는 다윗 왕국에 의해 일단락 되었지 만 이후로도 에돔은 세력을 얻을 때마다 이스라엘을 괴롭혔습니다. 그러나 이보다도 뿌리깊은 반 셈족주의는 아말렉과의 적대 관계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출애굽 시대로부터 시작된 이들의 적대 관계는 무려 1천년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아말렉은 반 셈족주의의 대표적인 위치에 서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말렉은 하나님의 나라를 스스로 대적하는 반신국적 세력으로 대표되었습니다.

“여호와가 아말렉으로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17:16)는 선언은 하나님께서 아말렉을 반 신국 세력의 화신으로 단정하셨음을 선포한 것입니다. 에스더서는 반 신국(유대인) 세력에 대한 하나님의 자의적 심판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신앙 공동체는 오로지 유다인들만을 구원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순순한 신앙을 통해 세계 모든 민족이 여호와의 신앙에 동참할 것을 위해 존재하였습니다.

,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적대적인 세력은 단호하게 거부해야 했는데 무엇보다도 먼저 그들 스스로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 없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반 신국 세력은 하나님께서 철저하 게 심판하신다는 역사적 사실을 통해, 세상의 모든 세력이 여호와의 통치 아래 들어와야 할 것을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주적인 하나님 나라의 건설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기도 합니다.

      041620 안익선 목사/ 참조:본헤럴드(http://www.bonhd.net) & 송영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