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

에스더 3장 강해(아말렉 후손 하만이 유대민족을 진멸하려 하다)

호걸영웅 2020. 10. 3. 22:56

에스더 3장 강해(아말렉 후손 하만이 유대민족을 진멸하려 하다)

서론)

에스더서 1장과 2장은 전체 에스더서의 도입 부분에 해당됩니다. 우리는 1장과 2장을 통해서 와스디 왕후가 폐위되고, 에스더가 왕후로 간택되는 과장을 살펴봤습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놀라운 섭리의 초기적 혹은 배경적 역사하심을 봤습니다. 오늘은 에스더서 3장 말씀을 공부하고자 합니다.

 

본론)

1절을 보면 “그 후에 아하수에로 왕이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의 지위를 높이 올려 모든 함께 있는 대신 위에 두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그 후에’라는 말은 에스더가 왕후로 간택되고 모르드개에 의해 아하수에로 왕에 대한 살해 모의가 적발된 후를 말합니다. 아하수에로 왕은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의 지위를 높여 모든 대신들 위에(국무총리?) 두었습니다. 곧 아하수에로 왕은 하만을 바사의 2인자의 자리에 앉힌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에스더서 저자가 하만을 아각 사람이라 고 밝히고 있는데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만이 아각 사람이라는 말은 그가 아말렉 사람의 후손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에스더서 저자는 이 사실을 의도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서 앞으로 전개 될 일의 성격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아말렉 사람들은 어떤 족속입니까? 출애굽기 17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한 후에 홍해를 건너 광야로 진행할 때에 르비딤이라는 곳에서 이스라엘을 공격하여 가나안으로의 진행을 방해한 족속입니다. 다시 말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르비딤에서 물이 없어 하나님을 원망하던 영적으로 어려움 가운데 있던 이스라엘을 공격하여 왔던 족속입니다. 이들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에도 끊임없이 이스라엘을 대적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상 15장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사울 왕에게 이런 아말렉 족속을 진멸하라고 하셨습니다. 진멸하되 남녀와 노소와 젖먹는 아이와 우양과 약대와 나귀까지 다 죽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볼 때 아말렉은 이스라엘의 대적자요, 하나님의 원수였습니다. 그런데 사울 왕은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아각 왕과 그 양과 소의 기름지고 좋은 것은 남겨 두었습니다. 사무엘상 15:7-9절을 보면 “사울이 하윌라(아라비아 북부)에서부터 애굽 앞 술(시나이반도 지역)에 이르기까지 아말렉 사람을 치고 아말렉 사람의 왕 아각을 사로잡고 칼날로 그 모든 백성을 진멸 하였으되 사울과 백성이 아각과 그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키를 즐겨 아니하고 가치 없고 낮은 것은 진멸하니라”고 했습니다. 이 일로 인해 사울 왕이 하나님의 버림을 받습니다. 사무엘상 15:22-23절을 보면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만이 바로 이와 같은 아말렉 족속 아각의 후손이었습니다. 에스더서 저자가 하만을 등장시키면서 그의 조상이 아각이라고 밝히는 것은 바로 하만이 아말렉 왕 아각의 후손임을 시사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앞으로 있을 모르드개와의 피할 수 없는 일전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모르드개는 유다 사람일 뿐만 아니라 사울 왕이 속한 베냐민 지파의 사람( 2:5)이므로 하만과 모르드개는 상종할 수 없는 철천지원수지간 입니다. 그래서 모르드개와 하만 사이에 앞으로 일어날 전쟁은 단순히 개인적인 원한 관계의 싸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자들과의 싸움인 영적인 전쟁인 것입니다.

 

 2-4절을 보면 아하수에로 왕이 하만을 모든 대신들 위에 군림하는 최고의 지위에 오르게 하고 그에게 꿇어 절하게 하였습니다. 이에 궁궐에 있는 왕의 모든 신복들이 하만에게 꿇어 절하였습니다. 그러나 모르드개는 꿇지도 아니하고 절하지도 아니하였습니다. 아하수에로 왕의 신복들이 모르드개에게 “너는 어찌하여 왕의 명령을 거역하느냐”고 하며 날마다 꿇어 절하도록 명하였지만 모르드개는 듣지 아니하였습니다. 도리어 모르드개는 자신이 유다인임을 밝혔습니다.

 그렇다면 모르드개가 하만에게 절하지 않는 것은 자신은 하나님을 섬기는 유다인이기 때문에 이스라엘과 조상 대대로 원수지간으로 내려온 아말렉의 후손인 하만에게 결코 머리를 숙일 수 없다는 결연한 신앙적인 태도의 표현이었습니다. 지금 모르드개가 현실을 보는 시각은 단순히 상사와 부하라는 정치적이고 현실적인 차원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보다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하나님과의 깊은 신앙 속에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이미 모세를 통해서 대대로 아말렉과 친히 싸우실 것을 천명하셨고, 하나님께서 친히 아말렉과 더불어 싸우시겠다는 맹세를 하셨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17:16절을 보면 “가로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으로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모르드개가 하만에게 꿇지도 아니하고 절하지도 아니한 것은 이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강력한 신앙적인 표현이었습니다.

 

  4-6절을 보면 “날마다 권하되 모르드개가 듣지 아니하고 자기는 유다인임을 고하였더니. 저희가 모르드개의 일이 어찌 되나 보고자 하여 하만에게 고하였더라. 하만이 모르드개가 꿇지도 아니하고 절하지도 아니함을 보고 심히 노하더니, 저희가 모르드개의 민족을 하만에게 고한 고로 하만이 모르드개만 죽이는 것이 경하다 하고 아하수에로의 온 나라에 있는 유다인 곧 모르드개의 민족을 다 멸하고자 하더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도 모르드개와 하만과의 싸움이 개인 간의 감정 차원의 싸움이 아닌 민족 간의 문제요, 더 나아가서는 본질적으로 영적인 문제로 확대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에스더서 저자는 처음부터 이 두 사람의 관계를 보다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차원, 곧 성경적  입장에서 접근하고 있음을 우리는 이해해야만 합니다.

 이제 유다인들을 진멸하고자 하는 하만의 계획은 신속하게 진행되었습니다. 7절을 보면 하만은 아하수에로 왕 십 이년 정월 곧 니산월에 측근들을 소집해서 전 유다인을 몰살시키기 위한 제비를  뽑아 학살의 날을 정하였습니다. 그들이 유다인을 학살하기 위해 제비 뽑은 날은 십이월 곧 아달월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실을 왕의 추인을 받기 위해서 아하수에로 왕에게 보고 합니다.

 

8-9절을 보면 “하만이 아하수에로 왕에게 아뢰되 한 민족이 왕의 나라 각 도 백성 중에 흩어져 거하는데 그 법률이 만민보다 달라서 왕의 법률을 지키지 아니하오니 용납하는 것이 왕에게 무익하니이다. 왕이 옳게 여기시거든 조서를 내려 저희를 진멸하소서. 내가 은 일만 달란트를 왕의 일을 맡은 자의 손에 부쳐 왕의 부고에 드리리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만은 유다인들이 왕의 법률을 따르지 아니한다고 하며 저들을 용납하면 왕에게 무익하다고 하며 조서를 내려 진멸할 것을 간청 하였습니다. 왕이 옳게 여겨 조서를 내려 멸하게 하시면 은 일만 달란트를 왕의 금고에 넣어드리겠다고 합니다.

대규모 처형에 대한 막대한 비용도 비용이거니와 인구가 줄면 세금도 줄기에 하만은 이를 보충하는 일에 자기 소유를 드림으로써 메꾸어 드리겠노라 한듯 합니다.

 하만의 이와 같은 행동 속에는 하나님의 백성인 유다인을 몰살시키는 것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대적할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여자의 후손 언약( 3:15)에 근거해 오실 메시아의 계보를 사전에 차단시킴으로 하나님의 구속사를 방해 하고자 하는 고도의 사단의 계략이 숨겨져 있습니다. 사단은 역사진행의 현장에서 온갖 잔인하고 악랄한 방식으로 끊임없이 하나님의 구속사를 방해해 왔습니다.

애굽의 바로 왕이 이스라엘의 남아를 선택적으로 살해하려는 시도를 통해서( 1),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하만의 모의로 전 유다인 학살명령을 내리는 것에서, 헤롯이 예수를 죽이고자 베들레헴의 두 살 이하의 갓난 사내아이들을 모두 죽인 일 등이 그러합니다.  

 

 에스더서 저자는 하만이 계획적으로 모르드개와 유다인을 살해하려는 시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구속사 적 진행을 방해하는 사단의 하수인으로 나타나 있음을 독자들에게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만이 유다인 살해 계획을 아하수에로 왕에게 보고하는 자리에서도 구체적으로 나타납니다.

 

그는 두 가지 명분을 내세워서 유다인을 학살하려는 자신의 계획을 정당화시킵니다. 첫째는, 하만은 한 민족이 페르시아의 준엄한 국법을 준수하지 않는다는 고발입니다. 이는 왕으로 하여금 왕권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하게 해서 심한 불쾌감을 자아내게 함으로 하만이 건의한 제안에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내려는 그의 교활한 명분 내세우기였습니다. 이런 이유로 하만은 그 백성이 유다 민족인 사실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유다인에 대한 아하수에로 왕의 뜻하지 않은 호의적 반응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사실 페르시아는 역사적으로 유다 민족에게 호의적이었습니다. 이미 페르시아의 초대 왕인 고레스는 칙령을 통해서 바벨론 치하에서 포로생활 하던 유다인들의 예루살렘 귀환을 허락한 바 있습니다( 1:1-3). 지금 하만이 개인적인 적개심을 앞세워 유다인을 민족적으로 살해하려는 의도에서 아하수에로 왕에게 고발하고 있는 불손한 민족이 다름 아닌 유다 민족인 사실을 공개적으로 발설할 수 없었던 이유인 것입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사실 하만의 비위를 건드린 사람은 모르드개 한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만은 모르드개를 유다인 전체와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하만은 이와 같이 거짓된 말로 유다 민족 전체를 페르시아에 반역하는 자들로 낙인을 찍어 버렸습니다.

 

 둘째는, 하만은 왕의 승낙을 받아내기 위해 아하수에로 왕과 흥정을 벌였습니다.

왕의 법률에 순종하지 않는 한 민족을 처벌하는 대가와 세금 손실을 메꾸어 주고자 은 일만 달란트를 왕의 금고에 넣어드리겠다고 제안을 했습니다.

 

10-11절을 보면 아하수에로 왕은 하만의 제안을 옳게 여겨서 자신의 반지를 빼어 하만에게 주며 그 은과 그 백성도 하만에게 준다고 하며 소견에 옳은 대로 하라고 하였습니다. 하만은 이렇게 왕의 재가를 얻어낸 후에 유다인 진멸을 위한 도모가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갔습니다.

 

12-15절을 보면 왕의 서기관들이 하만의 명을 따라 소집되었습니다. 그리고 유다인 학살에 따른 세부 조서를 각 도의 문자와 각 나라의 방언으로 작성하여 왕의 반지로 인을 쳤습니다. 그리고 그 조서를 페르시아 각 도에 보냈습니다. 그 조서의 내용은 앞으로 11개월 후인 십이월 곧 아달월 십 삼일 하루 동안에 모든 유다인을 남녀노소를 무론하고 죽이고 도륙하고 진멸할 뿐만 아니라 그 모든 재산까지도 다 탈취할 것을 허락하는 내용이었습니다(13).

 

우리는 하만의 유다인 학살명령의 공표와 관련해서 이 일에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섭리적 손길이 선행적으로 작용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유다인 학살 일자의 확정 배경입니다. 7절에서 하만 일당은 유다인 학살일자를 제비뽑아 결정했다고 저자는 기술하였습니다. 그런데 13절에 보면 그들이 제비뽑아 결정한 그 날과 달은 아달월 십 삼일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만이 아하수에로 왕에게 유다인을 학살 할 것을 건의하는 그 당시로부터 11개월 후입니다. 그러므로 유다인들이 하만이 건의하고 곧바로 학살을 당한 것이 아니라 그 기간이 11개월의 기간이 아직 남아 있다는 사실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당시 하만에 의해 사건의 진행이 급박하게 진행되던 것을 감안한다면 11개월의 기간은 상당히 긴 시간입니다. 사실 이런 일은 하만의 입장에서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 일입니다. 예기치 않은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사전에 제거함으로써 후환을 남기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런 사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 일에 깊이 개입하고 간섭하시며 섭리하셔서 제비 뽑은 날이 한참 후로 정해지도록 하셨습니다.

 

 잠언 16:33절을 보면 “사람이 제비는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어쨌든 하만은 측근들과 작당해 유다인을 진멸하는 일을 신속히 계획하고 진행시켰습니다. 그러나 제비 뽑아 결정한 날이 11개월 후로 잡혔습니다. 이것이 유다인에게는 공포와 불안에 떨어야 하는 잔인한 날들이기도 했습니다( 4:3).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그 기간은 유다 민족을 위기에서 구원하시기 위한 섭리의 기간이었습니다. 우리는 구속사적인 안목으로 이러한 하나님의 의중을 간파할 수 있습니다. 에스더서 저자가 제비뽑은 결과를 소상하게 기록하고 있는 배경에는 바로 이런 하나님의 섭리를 계시하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 있었던 것입니다.

 

15절을 보면 아하수에로 왕과 하만은 한 민족의 철저한 멸망을 예견하고 함께 승리의 축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수산성은 어지럽더라(Perplexed)라고 했습니다. 이는 유다인들이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하고 공포에 빠진 공황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는 사단의 쾌재를 반영하는 대목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위기를 기회로 선용하셔서 궁극적 승리로 이끄시는 분이십니다. 하만의 축배는 시기상조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섭리 하셔서 에스더를 통해서 유다인을 구원하시고 도리어 하만이 모르드개 대신에 처형되게 하십니다(7).

 

결론)

 하나님께서는 세상 역사를 섭리 하셔서 당신의 구속의 역사를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을 믿고 우리의 인생을 하나님께 맡기며,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믿음으로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유대민족을 구원하신 섭리의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하시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092920 안익선 목사/참조: 창원한결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