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

에스더 4장 강해(유다 백성을 구원하려는 에스더)

호걸영웅 2020. 10. 3. 22:57

에스더 4장 강해(유다 백성을 구원하려는 에스더)

서론)
 에스더서 4장은 모르드개의 지도와 도움으로 에스더가 ‘죽으면 죽으리라’고 고백하며, 아하수에로 왕 앞에 나아가 모르드개가 명한 대로 다 행하겠다고 하는 그녀의 신앙을 다루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에스더의 이 ‘죽으면 죽으리라 ’고 하는 결단적 신앙에 은혜를 받습니다.

본론)

1-3절을 보면 “모르드개가 이 모든 일을 알고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를 입으며 재를 무릅쓰고 성중에 나가서 대성통곡하며 대궐 문 앞까지 이르렀으니 굵은 베를 입은 자는 대궐 문에 들어가지 못함이라. 왕의 조명이 각 도에 이르매 유다인이 크게 애통하여 금식하며 곡읍하며 부르짖고 굵은 베를 입고 재에 누운 자가 무수하더라”고 했습니다. 하만의 유다인 학살에 대한 조서가 페르시아 전국에 반포되자 마자 바사의 수산성은 큰 소동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당시 온 유다 민족이 당하는 심적 고통과 정신적 충격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었습니다. 모르드개도 이 모든 일을 알고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로 만든 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 쓰고 성 문 앞으로 나아가서 대성통곡을 하였습니다. 베옷(상복?)을 입은 자는  대궐 안으로는 들어가지 못하는 규례 때문이었습니다. 모르드개는 자신의 하만에 대한 개인적이고 신앙적인 차원의 적개심이 유다 민족 전체로 확대된 사실을 알고 큰 충격에서 벗어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모르드개 뿐만 아니라 각 도에 있던 유다인들 또한 크게 애통하며 금식하며 통곡하여 울며 부르짖고 굵은 베를 입고 재에 누운 자가 무수히 많게 되었습니다.

 4= “에스더의 시녀와 내시가 나아와 고하니 왕후가 심히 근심하여 입을 의복을 모르드개에게 보내어 그 굵은 베를 벗기고자 하나 모르드개가 받지 아니하는지라”라고 했습니다. 모르드개가 대궐 문 앞에서 굵은 베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 쓰고 대성통곡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에스더의 시녀와 내시가 알려 주자, 이 소식을 들은 에스더는 심히 근심하며 새 옷을 보내어 모르드개로 하여금 베옷을 벗고 자신이 보낸 옷으로 갈아입게 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모르드개는 에스더가 보낸 옷을 받지 아니하였습니다.

 5-6절을 보면 에스더는 내시 하닥을 모르드개에게 보내어 이것이 무슨 연고이며, 무슨 일인지를 알아보게 합니다. 이에 모르드개는 이 모든 일의 자초지종을 에스더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7-8절을 보면 “모르드개가 자기의 당한 모든 일과 하만이 유다인을 멸하려고 왕의 부고에 바치기로 한 은의 정확한 수효를 하닥에게 말하고 또 유다인을 진멸하라고 수산궁에서 내린 조서 초본을 하닥에게 주어 에스더에게 뵈어 알게 하고 또 저에게 부탁하여 왕에게 나아가서 그 앞에서 자기의 민족을 위하여 간절히 구하라 ”라고 했습니다.

9절에 보면 이에 하닥이 돌아와서 이 모든 사실을 에스더에게 고합니다.

 그때 에스더의 반응=?, 10-11절을 보면 “에스더가 하닥에게 이르되 너는 모르드개에게 고하기를 왕의 신복과 왕의 각 도 백성이 다 알거니와 무론 남녀하고 부름을 받지 아니하고 안뜰에 들어가서 왕에게 나아가면 오직 죽이는 법이요, 왕이 그 자에게 금홀을 내어 밀어야 살 것이라. 이제 내가 부름을 입어 왕에게 나아가지 못한지가 이미 삼십일이라 하라”고 했습니다. 에스더는 모르드개의 요청에 즉각적으로 순종하지 못했으니 이는 바사의 법 때문이었습니다. 바사의 국법에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왕의 신변안전을 도모하기 위해서 사전에 왕으로부터 부름을 받지 않고 왕이 거하는 내실 안 뜰에 들어오면 왕의 경호원들에 의해 누구를 막론하고 죽임을 당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이때 왕이 준 금홀을 내밀 경우에만 죽음을 면할 수가 있었습니다. 여기에는 왕후라 해도 예외가 없었습니다. 에스더는 이런 사실을 모르드개에게 전하면서 자신이 왕을 알현하고 모신지가 벌써 삼십일이 지났다고 하며 지금 당장 왕 앞에 나아갈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유다 민족의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에스더의 이런 조심스런 거절은 같은 민족과 사촌 오라비인 모르드개의 위험을 외면해서라기보다는 페르시아의 법 상황 속에서는 당연한 반응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이런 에스더에게 모르드개가 어떻게 합니까? 13-14=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면하리라 생각지 말라.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라고 전했습니다.

모르드개는 유다인이 처한 현재적 위기의 상황을 하나님의 구속사적인 예리한 신앙적 안목으로 해석하는 가운데 에스더의 영적 무지와 안일하고 연약함을 일깨워 줍니다. 모르드개가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주저하고 염려하는 에스더의 연약한 마음을 결정적으로 하나님을 향해 돌이키게 한 권면의 말씀의 내용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구속의 섭리였습니다.

모르드개는 페르시아의 초대 왕 고레스의 칙령에 의해 유다인들 중 제 일진이 스룹바벨에 의해 이미 귀국 길에 오른 사실을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합니다( 1-6, B.C. 537). 이런 사실은 예레미야나 이사야 선지자들에 의해 선포된 유다의 멸망과 회복에 관한 하나님의 구속사적 섭리, 혹은 경륜이 때가 차매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의 역사로 말미암아 성취되고 있음을 확신하고 있었음이 틀림없습니다( 44:28, 45:1-4, 25:8-13).

 

13-14=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면하리라 생각지 말라. 이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몇 가지 하나님의 구속사를 해석하는 모르드개의 깊은 영적 통찰력을 발견하게 됩니다.

 첫째는, 전 유다인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하나님의 단일한 신앙공동체이며, 동시에 운명공동체라는 사실입니다. 모르드개는 에스더와 유다인을 동일시 했습니다. 공생 공사의 관계를 말합니다. 이런 사실은 오늘날 주님의 몸된 교회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연합된 단일 신앙공동체인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린도전서 12:12-13절을 보면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침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이런 보편의 우주적 교회(공동체적인 교회)를 지향하는 지상의 지역교회에서 교회에서 몸의 거룩성을 해치는 범죄적 행동을 권징으로 다스려야 하는 이유가 ( 18:15-20) 주님의 몸 전체를 욕되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유다인은 아브라함 언약의 당사자들로 하나님의 구속사의 경륜(계획하심)에 깊이 관련돼 있다는 사실입니다. 모르드개는 지금도 여전히 구속의 역사를 진행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적 손길이 유다인을 주도적으로 간섭하고 계시기에 어떤 형태의 이기심이나 방해나 안일함 때문에  하나님의 계획은 결코 취소될 수 없음을 믿었습니다.

모르드개는 이미 스룹바벨에 의해 제1차 바벨론 포로의 귀환이 이루어진 사실을 통해서 유다 민족을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섭리적 손길이 본격적으로 역사 되고 있음을 직감하고 있었음에 틀림없습니다. 이런 사실은 이미 여러 선지자들을 통해서 포로 전부터 수없이 예언적으로 선포된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지금 에스더가 왕후의 자리에 오른 것은 하나님의 섭리적 간섭의 일부라고 보았습니다.

다시 말해서 유다인을 오늘의 위기에서 구원하시고자 하나님께서 앞서 에스더를 왕후의 자리에 오르도록 섭리하셨다는 지적입니다. 오늘날도 우리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궁극적인 성취라는 구속사 진행의 최종적 목표를 위해서, 성도들 개개인을 섭리하고 부르셔서 하나님 나라를 반포하며, 교회를 세우시는 일을 감당하고 계십니다.

( 6:33)=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고 전제하면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의 문제를 하나님 나라의 건설에 방해요소가 되어선 안됨을 지적했습니다. 우리는 단순히 먹고 마시고 입고하는 현재적 육체적 목적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건설이라는 궁극적인 가치를 위해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넷째는, 하나님의 구속사 진행의 최후적 승리에 대한 확신입니다.

유다인의 최종적인 구원과 해방은 하나님의 분명한 약속하심이었고, 또 진행되고 있음을 확신한 모르드개는 한 두 사람의 무관심이나 배신이나 환란이 있을지라도 분명히 성취될 것을 확신했습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는 장차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인해서, 사단과 그의 추종세력들이 불 못에 던져짐을 통해서( 20:10) 그 놀라운 하나님의 승리가 임할 것이며, 결국 하나님 나라의 종말론적 실현이 이루어질 것을 믿어야만 합니다.

 결국, 모르드개의 권면을 들은 에스더는 16절에서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로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라고 전하게 되었습니다. 에스더는 모르드개의 도움으로 에스더는 자신이 아하수에로의 왕후가 된 하나님의 섭리적 손길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 일의 결과와 생사조차도 하나님께 맡기기로 합니다. “나도 나의 시녀로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라”고 결심한 것입니다.

 

결론)

 에스더는 비로소 모르드개의 지도와 도움을 통해서 하나님의 유다인을 향한 구속사적인 신앙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왕후가 된 배경에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적 간섭이 작용하고 있으며, 그것이 결국 지금 이때에 전체적 멸망의 위기에 처해 있는 유다 민족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신묘막측한 구속사의 일부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자 하나님을 신뢰하며 도전하려는 용기와 결단이 생겨 났습니다.

그리하여 에스더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왕궁의 규례를 어기고 왕의 부름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왕 앞에 기꺼이 나설 결심을 합니다.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도 하나님의 모든 구속의 역사의 동참하는 확신과 경험을 갖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으로 붙잡고 범사에 하나님을 보다 전폭적으로 신뢰하게 됩니다. 그리고 선교적인 하나님 복음전도적인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게 됩니다.

 

모세의 경우도 자기 자신만 볼 때는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저는 혀가 어눌합니다어떻게 제가 민족을 구하겠습니까? 우리 민족조차 저의 말을 믿겠습니까? 하물며 바로 왕이 저의 말을 듣겠습니까? 라며 끊임없이 의심하고 열등감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하나님은 믿음을 주십니다. 여러 기적들을 보여 주십니다. 그리고나서야 모세는 하나님이 정말 자기를 쓰시려 하시고 자기를 도우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유대민족을 해방시키러 바로 왕 앞으로 나아갑니다.  다윗의 경우도 하나님은 그로 하여금 온갖 환란과 위험 속에서 그를 도우시고 말씀해 주셔서 왕이 되도록 하셨음을 고백합니다. 신약에서는 베드로의 경우(닭이 세번 울도록 예수를 부인한 사건)도 그러하였고, 바울의 경우도 그러하였습니다. 모든 하나님의 종의 삶들이 다 그러하였습니다. 보고 듣고 만진 바에 따라 그들은 하나님께 생명을 걸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도 세상역사를 당신의 기뻐하시는 뜻 가운데 섭리적으로 주관하시고 역사 하셔서 성경의 말씀대로 이루어 나가십니다. 성경에 하나님의 구속의 경륜, 혹은 설계도가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날에도 우리를 통해, 혹은 누군가를 통해 당신의 남은 구속사의 경륜을 이루어 가십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믿음으로 붙들고 살아야 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런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시길 원하십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새 언약 안에서! 에스더와 같이! ‘죽으면 죽으리라’는 신앙으로 하나님의 구속역사에 동참(한 가닥)하면 우리가 감당할 힘과 은혜, 그리고 합당한 축복과 영광, 그리고 상급을 주십니다. 할렐루야!

 

021020 안익선 목사/ 참조: 창원한결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