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모음(Korean sermons)

성숙한 믿음의 특징,두가지 (살후 1:1-5)

호걸영웅 2020. 12. 20. 01:56

성숙한 믿음의 특징,두가지  (살후 1:1-5)

  1. 바울 실루아노 디모데는 하나님 우리 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2.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3.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의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니
  4. 그러므로 너희가 견디고 있는 모든 박해와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하노라
  5.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게 하려 함이니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느니라

서론)

우리가 우리의 죄인됨을 깨닭아 회개하고 예수를 믿는 것을 영적인 출생, 곧 새로 태어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거듭난다, 중생했다, Born again 이란 말을 사용합니다.

 그래서 처음 예수 믿은 분들은 신령한 젖을 먹어야 한다 라고 했습니다.  고로 벧전 2:1~3=

  1.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2.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3.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고 했습니다.

신령한 젖은 곧 하나님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고 처음부터 힘쓸 일은 갓 나은 아기가 엄마의 젖을 사모하며 온 힘을 다해 열심히 빨아먹어야 크듯이 열심히 하나님 말씀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 배우기를 게을리하면 건강한 믿음 성숙한 믿음의 성도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 믿음이 성장하는데 가장 좋은 젖은 물론 성경 자체이지만 성경은 젖과 이유식, 어른의 음식이 고루 섞여 있어서 설교를 통하여 믿음이 정도에 따라 적용하여 먹을 수 있습니다. 또 초신자 성경 공부반을 통해서도 먹을 수 있습니다. 큐티를 통해서도 먹을 수 있습니다. 어찌 되었든 성경 말씀을 모르면 성장하는 믿음으로 자라긴 어렵습니다.

 

오늘 보문을 보면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쓴 귀한 편지의 일부 내용이 나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마케도니아, 곧 유럽의 첫 교회가 개척되었던 빌립보 교회 이후 개척된 교회로서 바울의 2차 전도 여행을 통해 이루어진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가 데살로니가에서 사역한 기간은 3주 정도로 매우 짧았습니다. 그 이유는 빌립보 교회와 달리 그 지역에 사는 유대인들의 심각한 핍박과 배척을 받아 그만 그 도시에서 쫓겨나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짧은 기간 동안에도 그곳에서 바울의 전도를 받고 유대인들과 헬라인들 일부가 회개하고 예수를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들 중에 예배장소를 제공한 사람들은 야손과 아리스다고, 세군도, 데마 등이 있었습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쫓겨나게 된 후, 유대인들은 헬라인들의 사회를 소요케 한다는 이유로 데살로니가 교회에 남아 있는 교인들을 여전히 심하게 핍박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단자들이 들어와 교회를 소란케 하였습니다. 이처럼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외부적인 핍박과 내부적인 이단사상으로 큰 어려움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한 어려움을 잘 이기고 칭찬받고 사랑받는 성숙한 믿음의 교회가 되었습니다.  본문은 이때 바울이 그들에게 전한 편지라고 합니다.

오늘날 여러가지로 믿음에 시험을 받고 힘든 환경에서 살아가는 현대 교회와 성도들에게도 이러한

바울의 편지는 깨닫게 해 주는 바가 클 것입니다. (오늘은 성숙한 성도가 되기 위한 두 가지 큰 덕목에 대해 배워보도록 합니다.)


본론)

)자라나는 믿음이 돼야 합니다.
1930년대로 추정됩니다. 그때에 어느 영국 등반대가 세계 최고봉이라는 에베레스트 산을 오르려고 도전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악천후와 낙후된 기술로 말미암아 에베레스트 등정에 실패하고 되돌아가야 했습니다. 모든 등반대원들의 실망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때, 짐을 운반하는 셀파(Sherpa) 중 한 사람이 그 에베레스트의 높은 봉우리를 보면서 말했습니다.

 "우리는 다시 돌아온다. 우리는 꼭 이기고 말 테다. 산들은 자라나지 않으나 우리의 육체와 정신은 성장한다.”라고 했습니다. 과연 이 젊은이의 말은 옳았습니다. 몇 년이 지난 1953 5 29, 8,848미터의 에베레스트는 세계 최초로 그 정상을 인간에게 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영국의 힐러리와 함께 역사의 주인공이 된 텐징 노르가이(Tenzing Norgay, 19141986)가 있었습니다. 성장해서 다시 돌아오겠다고 한 바로 그 젊은이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믿음도 반드시 성장하여 성숙한 경지에 이르러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성도들은 예수 믿은지 십 몇 년이 지나도 그 믿음이 자라나지 못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예배에 소홀하고, 헌신하는 생활도 잘하지 못합니다.  유혹에 쉽게 빠집니다. 작은 어려움이 닥쳐도 실망하고 좌절하거나 급기야 교회를 저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아무리 교회에 오래 다녔다고 해도 아직 그 믿음이 어리다고 밖에는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교회출석하고 기본적인 헌금생활하는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바울은 우리의 믿음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자라나야 한다고 권면했습니다.
( 4:13-14)="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의 핍박으로 바울은 3주간 동안 전도활동으로 세워진 데살로니가 교회를 떠나서 베뢰아와 아덴을 거쳐 고린도에 머물면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고린도에서 나름대로 바쁜 선교의 일정을 보내던 바울은 한편으로 데살로니가 교회의 사정이 궁금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곳 형편을 알아보도록 제자 디모데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디모데를 통해서 들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사정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만족할 만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열심히 믿음으로 합력하여 교회를 잘 지켜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교인들이 믿음이 계속 잘 자라나고 사랑이 풍성하며, 어려움 가운데서도 인내하고 믿음을 잃지 않는다는 소식은(살후 1:3-4) 바울을 기쁘게 만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데살로니 가 교회 교인들의 믿음이 자라났다고 한 증거들을 어디서 찾았겠습니까? 거기엔 두 가지 증거가 있었습니다.)

) 서로 사랑하는 믿음이 성숙한 믿음이다
바울은 성숙한 신앙의 가장 큰 증거로 '사랑'(아가페, agape-하나님처럼 무조건적인 사랑)을 꼽았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서 바울은 '믿음' '소망' '사랑' 가운데 제일은 '사랑'이라고 할 정도로 사랑에 대해 강조했습니다. 왜 바울은 믿음이나 소망보다 사랑이 더 제일이라고 했겠습니까?

 

예화)어떤 사람이 임종을 맞게 되었습니다. 그의 친구가 임종을 지켜 보러 왔습니다. 임종을 맞는 기독교인이 말했습니다. "여보게, 나는 방금 막 나를 찾아온 세 친구를 만났다네. 그들 중 둘은 헤어졌지만 한 친구는 아마도 영원히 함께 할 걸세. 첫번째 친구는 믿음이었네. 나는 이렇게 말했지. '믿음이여 고맙네. 처음 예수를 믿은 후 언제나 나와 함께 있어준 자네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네. 하지만 이제 헤어져야 할 것 같네. 이제는 자네의 도움이 더 이상 필요치 않는 곳으로 가려는 중일세' 그리고 나선 소망이 찾아왔지. 그에게도 이렇게 말해 주었지. '잘 있게. 소망이여. 자네는 전쟁터에서도, 고난 속에서도 여러 번 나를 도와주었지. 하지만 이제는 자네의 도움이 없어도 될 것 같네. 이젠 소망의 결실이 맺어지는 곳으로 갈테니까' 마지막으로 사랑이 찾아왔네. 나는 이렇게 말했지. '어서 오게, 사랑이여. 자네도 나의 좋은 벗이야 자네는 하나님과 나, 그리고 이웃의 관계를 맺어 주었지. 내 모든 인생 여정에 자네는 언제나 기쁨이 넘치게 해주었지. 자네만은 다른 친구들과 함께 남겨놓고 갈 수 없네. 왜냐면 자네는 나와 함께 천국문을 지나 하나님의 나라에 함께 가야 될테니 말일세. 사랑이란 하늘나라에서 비로소 완성될 수 있기 때문이야."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사랑은 영원한 것이기 때문에 바울은 사랑을 가장 큰 은사로 꼽았던 것입니다. 심리학에서도 성숙한 사람의 특징 중 하나가 타인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이라는 견해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남이 아플 때엔 함께 아파하고, 기쁘면 같이 즐거워합니다. 그리고 고의적으로 그리고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고통이 바로 자신의 고통이기 되기 때문입니다.
남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자신만 잘 되고 자기만 성공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 남이 잘되는 것을 축하해 주기보다는 시기하고 깎아 내리려고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은 아직도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입니다.


어린아이는 부모에게 주로 '무엇을 달라'고만 합니다. 그러다가 조금 자라면 '무엇을 같이 할까'를 묻습니다. 그러나 그 아이가 자라나 성인이 되면, '무엇을 해 드릴까요?'라고 묻습니다. 이처럼 성장의 증거는 외모의 변화 뿐만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눈과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있습니다. 믿음이 자라나면 사랑이 풍성해지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를 사랑하셔서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그와 같은 사랑을 요구합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요일 3:16)라고 하셨습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환난과 핍박 가운데도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했습니다(살후 1:3). 서로 위로하고 어려운 지체들을 도우면서 격려하며 신앙을 지켜 나갔던 것입니다. 우리들도 이처럼 예수의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야 합니다. 기독교 공동체의 특징은 두말할 것도 없이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무디 선생은 말하기를 "사랑은 죄인들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우리는 죄인들을 우리 편으로 만들고 나서야 그리스도의 편이 되게 할 수 있다. 사람들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게 해야만이 그리스도께로 인도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이웃사랑의 자리로 내려가야 합니다.

) 인내하는 믿음이 성숙한 믿음이다
또한 바울은 환난 중에 '인내'하는 것을 성숙한 믿음의 증거로 보았습니다.
기독교인의 잘못된 편견 가운데 하나는, 신앙이 좋으면 하나님이 모두 도와 주셔서 그 어떤 어려운 일도 없이 만사 형통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잘못된 신앙적 태도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에게도 시험, 환란, 고난, 역경이 다 있습니다. 어쩌면 더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시련과 고난 자체가 아니라, 그에 대한 우리의 반응과 태도입니다. 성숙한 신앙을 가진 사람은 비록 견디기 힘든 시련과 고난이 다가온다고 할지라도 믿음 안에서 이겨 나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시련에 대한 너무 두려워하는 자들에게 이런 권면의 말씀을 하십니다.

(고전 10:13)="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만을 믿고 노구를 이끌고 고향을 떠났을 뿐만 아니라, 100세에 얻은 아들을 바쳐야 했던 아브라함이나, 평생 '험악한 세월'을 보냈다고 고백한 야곱이나, 어린 나이에 형들의 손에 노예로 팔려, 청춘의 대부분을 노예와 죄수로 보낸 요셉이나, 80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평생을 광야에서 보낸 모세나……또 그 밖에도 수많은 믿음의 조상들은 한결같이 숱한 역경과 절망스러운 삶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믿음으로 인내하고 이겨낸 결과, 하나님의 상급을 받고 능력을 받아 크게 쓰임을 받았습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도 견딜 수 없는 로마의 권력의 횡포와 유대인들의 종교적인 핍박, 그리고 이단자들의 공격, 가족 간의 따돌림, 직장생활에서의 실직의 위기 등, 사면초가의 괴로움을 받고 있으면서도 잘 참아 내었습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신앙을 포기하지 않고, 서로 위로하며 인내해 나갔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인내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의 십자가의 구속하심과 하늘나라에 대한 분명한 소망 때문이었습니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길에는 분명히 환난과 핍박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환난 속에서 신앙은 더욱 깊이 뿌리내리고 성장해 나가는 것입니다. ( 23:10)=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고 했습니다.


 1600년대에 활동했던 스코틀랜드 출신의 장로교회 목사인 새뮤얼 루더포드(Samuel Rutherford)는 장로교를 핍박하던 영국정부에 대한 반역적 설교를 했다는 죄목으로 감금과 유배생활을 했는데그때 그는 그가 있던 감옥을 가리켜 "그리스도의 왕궁"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그곳 감옥 속에서 하나님과 매일 만나는 체험과 감격을 경험했다고 했습니다. 그의 인내는 오늘날도 장로교회역사에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 되며 어떠한 시련이나 고난이 다가온다 할지라도 그것을 잘 이겨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런 고백을 한 적이 있습니다. 빌립보서 4:11 이하 입니다.

  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4.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
  5.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1.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2.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함이라


또한 딤전 6:6~9에서도 바울 사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1.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2.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3.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4.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했습니다. 할렐루야!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세상에서 쉴 새 없는 어려움을 피해 갈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방패막이가 되어 주십니다. 비 오는 날엔 우산이 되어 주시고 뜨거운 햇살 아래에선 양산이 되어 주십니다. 한 겨울엔 두툼한 외투가 되어 주시고 폭풍우 속에선 피난처가 되어 주십니다. 어려움이 오고 좌절이 와도 일곱번을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게 하십니다. 그런 고난과 시련의 와중에도 데살로니가 교인들처럼성숙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는 은혜가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우리 가운데 사랑과 인내의 열매를 아름답고 풍성하게 맺으시길 축원드립니다. 그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의 손을 꼭 붙잡고 기도하며 이번 한 주도 승리하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길 예수의 복되고 능하신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할렐루야!

 

112420 안익선 목사/참조:전병금 목사 &  동락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