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모음(Korean sermons)

충성된 종입니까? (마24:44-51)

호걸영웅 2021. 1. 8. 00:49

충성된 종입니까? (24:44-51)

44.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45.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

 

 

 

  1.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이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2.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의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
  3.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4. 동료들을 때리며 술친구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5.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1.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가 받는 벌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서론)

본문 마태복음24장은 예수님의 재림을 예고한 말씀의 일부 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전혀 생각지 않은 때에 마치 도적같이 오실 것이니 모두 항상 깨어 있어 준비하여야 함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준비하여야 할까요? 한마디로 “충성된 종이 되어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충성된 종은 어떤 종일까요?( 본문을 통하여 충성된 종의 세 가지 조건에 대하여 생각해 보길 원합니다.)

본론)
)첫째, 지혜로우라 했습니다.

 본문 45절에,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라고 말씀하십니다. 충성된 종이 되려면 지혜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충성과 지혜는 결코 나눌 수 없습니다. 여러분, 지혜가 무엇일까요? 지혜는 한마디로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 마음’입니다. 왕상 3장에, 솔로몬이 왕위에 즉위한 후, 하나님께 감사해서 일 천 번제를 드렸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환상 중에 나타나셔서 묻습니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 무엇이든지 말하라.” 그러자 솔로몬 왕이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라고 대답합니다.

여기 ‘지혜로운 마음’의 원어적 의미는 ‘듣는 마음’이라고 합니다. 즉 “하나님, 제가 하나님 말씀을 잘 귀담아 듣게 해 주십시오.” 그게 지혜라는 것입니다.

이솝우화에 ‘수레에 치인 개구리’ 이야기가 있습니다. 옛날에 개구리 두 마리가 있었습니다. 한 마리는 사람과 수레가 많이 다니는 길가 웅덩이에 살고 있었고, 다른 한 마리는 한적한 곳에 있는 큰 연못에 살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큰 연못에 사는 개구리가 길가 웅덩이에 사는 개구리에게 찾아 왔습니다. “친구야, 이렇게 좁고 위험한데서 살지 말고 나랑 같이 넓고 안전한 연못에서 살자”. 그러자 좁은 웅덩이에 사는 개구리는 “난 좋기만 한데 왜 그래? 너나 거기서 잘 살아라” 하고는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난 어느 날, 연못에 사는 개구리가 길가 좁은 웅덩이에 사는 개구리에게 다시 찾아 왔습니다. 그런데 친구 개구리가 보이질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제 친구가 어떻게 됐나요? 그러자 “그 개구리요? 수레에 치여 죽었어요”라고 하더랍니다.

 여러분, 친구 아니라 아이 말이라도 옳은 말이면 들어야 합니다. 그게 지혜입니다. 여러분, 학교 다닐 때 제일 많이 들었던 부모님 잔소리가 뭐죠? ‘공부 열심히 해라’지요?. 그런데 성인이 된 어른들에게 “학창시절로 다시 돌아가면 무엇을 하고 싶으냐?” 하고 물으면 95%가 다시 공부를 열심히 하고 싶다고 대답합니다. 그때는 왜 그 소리가 안 들리는지요. 여러분, 부모님 말씀도 그렇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은혜 받고 구원을 받고  복을 받습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잘 듣는 두개의 귀는 100개의 혀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쉬지 않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성경을 통해서 말씀합니다. 강단을 통해 말씀합니다. 라디오나 인터넷을 통해 주변 사람들을 통해서 말씀해 주십니다. 어떤 사건을 통해서 말씀합니다.

그래서 시19:3이하에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가 없으나 하나님의 소리가 온 땅에 가득하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이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믿음과 관심, 노력이 곧 지혜자가 되는 길입니다.

)둘째, 책임감이 있어야 합니다.

본문 45절 중반에, 종에게 주어진 사명이 나옵니다. “그 집사람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줄 자” 라고 했습니다. 여기 ‘집사람’은 주인의 식솔들을 가리킵니다. 예를 들면, 주인의 아내나 자녀들 그리고 수하의 여러 종과 가족들입니다. 그들에게 때를 따라 식사를 제공하는 것이 이 종의 사명입니 다. 사람은 대개 하루 세 끼를 먹습니다. 이 종의 사명은 하루에 세 번 정한 시간에 맞춰 음식을 장만해 내거나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주인이 올 때 까지요. 여기에 요구되는 종의 성품이 있습니다. 바로 책임감입니다. 여러분, 어떤 때는 늘 해야 하는 일이라도 하기 싫을 때도 있지 않겠습니까? 몸이 힘들 때도 있지 않겠습니까? 예기치 않은 개인적인 사정도 있지 않겠습니까? 어디 놀러라도 가고 싶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음식을 장만하거나 공급하는 일, 생필품을 챙겨주는 일 등을 위해서 모두 포기하거나 견뎌내야 합니다. 그게 충성입니다. 충성은 부여 받은 하나의 사명을 위해서 다른 것들을 기꺼이 내려놓거나 미루는 태도나 결단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충성(Royalty)’을 다른 말로 ‘신실함(Faithfulness)’이라고 합니다. 신실함은 변하지 않는 일관된 마음입니다. 신앙생활 하다 보면 항상 좋은 일만 있겠어요? 맡은 일을 하기 어려울 때도 있고, 하기 어려워지는 때도 있고, 하기 싫을 때도 있을 것입니다. 충성이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맡겨진 일에 책임을 다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뭐든 한가 지 일을 맡았으면 끝까지 하십시오. 끝까지 할 때 복이 있습니다. 신앙은 마라톤과 같습니다. 골인할 때까지 힘들어도 지쳐도 심장이 터질 듯 해도 달려가야 합니다. 정 힘들면 속도를 늦출 수는 있지만 포기하면 무익합니다.

A.D 79년에 이탈리아의 폼페이시 근처에 있는 베스비우스 산이 폭발했습니다. 이 폭발로 폼페이시가 폐허가 되었습니다. 훗날, 고고학자들이 폼페이 시가지를 발굴하게 되었습니다. 발굴하면서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화석이 나왔습니다. 그것은 폼페이 성의 성문을 지키는 한 보초병의 화석입니다. 용암이 흘러내라고 화산재가 날라 오는데도, 그는 무기를 손에 들고 부동자세로 최후를 맞은 것입니다. 여러분, 일의 시작보다 중요한 건 일의 끝입니다. 하나님은 일의 시작보다 일의 끝을 보십니다. 왜냐하면, 충성은 일의 시작에서 드러나는 게 아니라 일의 끝에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따라 합시다. “처음보다 끝이 좋은 사람이 되자! 아멘?

)셋째, 해야 할 일을 실천할 수 있어야 합니다.

49절에, 악한 종이 나옵니다. 이들이 뭘 했다고 했습니까? 술친구들과 함께 먹고 마셨다고 했습니다. 왜요? 48절 보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종들 역시 자신들의 사명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종들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명령을 실천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악한 종으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베토벤은 하녀인 어머니와 3류 극단의 악사인 아버지에게서 태어났답니다. 어머니는 베토벤이 13살 나던 해 죽고, 아버지는 술주정뱅이로 그가 17살이 되던 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불운한 가운데서도 베토벤은 천만다행으로 그의 아버지에게서 음악을 배웠고, 그런 음악을 무척이나 사랑하게 됩니다. 그는 어려운 소년기를 보내면서도 내가 앞으로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하면서 살 것인가를 생각하다가베토벤은 “가난한 사람들의 영혼을 흔들어 깨워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살도록 그들에게 좋은 음악을 만들어 주자”는 결심을 하게 된다.
그러다가 그는 청년이 되어 연애를 하다가 실패합니다. 사실 부모도, 집 한 칸도 없는 가난뱅이에게 누가 선 듯 결혼을 하겠다고 나서겠습니까? 그래서 그는 자살을 결심하게 되지만, “내가 죽으면 누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좋은 음악을 들려주나!”하는 생각 때문에 죽지 못하고, 오로지 음악공부에 자신을 몰입시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베토벤이 한 가난한 집 앞을 지나가는데 그 안에서 피아노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가만히 듣고 보니 자기가 작곡한 곡이었어요. “그는 자기의 소원이 이루어졌구나!” 생각하니 너무나 기뻐서 그 집 안으로 들어가 보게 됐습니다. 거기엔 거의 못쓰게 된 낡아빠진 피아노가 한 대와 가난한 농부 부부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베토벤은 “내가 한번 피아노를 쳐 볼 수 있겠느냐?”고 묻습니다. 주인이 그것을 허락해 주자, 베토벤은 마치 신들린 사람처럼 연주를 했는데, 그 가난한 농부 부부의 영혼을 뒤흔들어 놓았습니다.

연주가 끝나자 그 가난한 농부는 “당신이 바로 그 유명한 베토벤이 아니냐?”고 묻습니다. 그렇다고 하니까 그들은 너무나 기뻐서 서로 끌어 앉고 춤을 추는데, 평생 처음 맛보는 놀라운 기쁨이었다고 했습니다. 베토벤이 이제 막  돌아가려 하는데 달빛이 대단히 아름답게 비취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 가난한 농부의 아내가 장님이었습니다. 그녀가 베토벤의 연주를 듣고 너무나 큰 감동을 받아서 자기 손을 갖다가 피아노 건반을 사정없이 두들겨 대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 밤 달빛은 참으로 아름다웠어요" 음악만 듣고도 장님인 농부의 아내가 달빛의 아름다움을 느꼈다는 거예요. 얼마나 감격스러운 순간이었을까요? 베토벤이 여기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한 곡이 그 유명한 월광곡(Moon Light)이라고 합니다.(한시간 3분 길이의 소나타)

그리고 베토벤의 두 번째 위기는 32살 때 찾아 왔습니다. 귀가 잘 들리지 않았습니다. 듣지 못하는 사람이 음악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그러나 베토벤은 그가 어렸을 때, 지녔던 꿈, “가난한 사람들에게 음악을 들려주어야지, 그래서 그들의 영혼을 흔들어 깨워주어야지, 그들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살게 해야지, 내가 안 들려주면 누가 들려주랴”라며, 끝내 음악을 버리지 않습니다. 그리고는 40대에 음악의 정상에 오릅니다. 그 때, 그는 “다 이루었도다, 영광 ”이라는 곡들을 작곡하게 됩니다. 결국 그는 악성(음악의 성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좋은 음악을 들려주겠다는 그의 소박한 꿈, 하나님께 대한 소명감에 대해 변함없이  충성했습니다. 그것이 그로 하여금 혼과 삶을 바쳐 불멸의 작품을 만들어내게 한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에게 더 큰 일을 해내게 하십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것이 있다면 일의 크기와 상관없이 맡은 바에 대한 충성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께 대한 충성심만 있다면, 지금 나에게 아무것도 없다고 하더라도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것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충성된 자에게는 주인의 소유를 맡기는 축복이 임하게 됩니다.

)불충한 종에게는 엄청난 손해와 엄한 징계가 있다

예수께서는 맡겨진 일에 불충할 때엔 무서운 징계가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그런 불충한 종들은 식 하는 자의 벌에 처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48~51절의 말씀을 다시 보면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동료들을 때리며 술친구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가 받는 벌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외식 하는 자의 벌이란,곧 거짓말 하는 자들,당시의 거짓 선지자들이 받을 형벌을 의미합니다 .  당시의 거짓 선지자들은 곧 복음을 거부한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과 사두개파 귀족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당시에 퇴패 할 때로 퇴패하여 겉으로는 거룩한 척했지만, 실상은 죄와 탐욕이 가득하여 겉으로는 하나님을 찾지만 속으론 부패한 자들이었습 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들을 향 하여 회 칠한 무덤 같은 것들아! 독사의 자식들아 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23:27]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니 구원이 없는 상태이므로 그 영혼들이 결국 지옥불에 던져져서 고통받고 신음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결론)

우리가 하나님께 충성하면 더 큰 축복과 보상을 주십니다. 금년 한 해 마지막 주일을 맞이하면서 나는 정말 우리 하나님께, 우리 주인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충성스러운 종이었나? 충성된 일군이었나를 마음 깊이 헤아려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무얼 달라고 하기 전에 드릴 것을 드렸는 지, 충성을 다했는지 다시금 돌이켜 점검할 때라고 저는 믿습니다. 우리의 충성은 하다 말다 여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재림해 오실 그 날까지 쉬임없이 더욱 성실하게 이어져야만 합니다. 오늘 말씀에 올 한 해를 비추어 보는 여러분 모두와 제가 되길 바랍니다. 할렐루야!


      122220
안익선 목사/ 참조:박원근 목사 ,joyona & 크리스챤월드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