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모음(Korean sermons)

순종과 헌신의 축복(왕상 17:8~16)

호걸영웅 2021. 2. 28. 01:15

순종과 헌신의 축복(왕상 17:8~16)

8.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9.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 내가 그 곳 과부에게 명령하여 네게 음식을 주게 하였느니라

10.그가 일어나 사르밧으로 가서 성문에 이를 때에 한 과부가 그 곳에서 나뭇가지를 줍는지라 이에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그릇에 을 조금 가져다가 내가 마시게 하라

 

 

 

  1. 그가 가지러 갈 때에 엘리야가 그를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네 의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
  2. 그가 이르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둘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3.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4.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를 지면에 내리는 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5. 그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그와 엘리야와 그의 식구가 여러  먹었으나

 

 

 

16.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 같이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서론)

이스라엘의 가장 악한 우상숭배자이자 최악의 왕이었던 아합 왕이 여호와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극렬히 핍박하거나 살육할 때, 엘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아합 왕을 피해 그릿 시냇가에 숨어 한 동안을 지냈습니다. 그러던 중 공교롭게도 숨어 지내던 그릿 시냇가에 물이 말라버리는 가뭄이 들게 되었습니다. 시냇물이 말라버린 이유는 엘리야가 비가 오지 않기를 선포하고 그렇게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물이 말라버린 그릿 시냇가에 계속 머물자니 엘리야 조차도 마실 물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나님의 지시할 말씀을 기다렸습니다. 우리 신앙의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구하는 것이요. 그 뜻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본론)

)엘리야를 시돈으로 보내시다

엘리야가 기근이 든 땅에서 그렇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리며 머물고 있을 때에마침내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 내가 그 곳 과부에게 명령하여 네게 음식을 주게 하였느니라”(9)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사르 밧 땅은 이스라엘 북부에서 오늘날 레바논의 지중해 가에 위치한 항구 도시입니다. 이 시돈은 두로라는 항구와 더불어 지중해 북부의 최대 항구이자 무역항입니다. 이 시돈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들 중 하나라고도 하고, 옛날엔 페니키아라는 지명으로 불린 곳인데 여기서 우리가 미국인들이 쓰는 영어의 알파벳의 기초문자가 처음 만들어진 곳이라고도 합니다. 그리고 아합의 악한 아내 이세벨이 바로 이 시돈 출신의 여자였습니다. 그리고 당시 그 시돈 땅은 열렬한 우상숭배자였던 이세벨의 아버지 엣바알-이 통치하던 지역이었습니다.

그런데, 등잔 밑이 어둡다는 한국 속담처럼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시돈이라는 이방 땅, 우상숭배의 땅을, 엘리야를 죽이려고 혈안이 된 이세벨의 고향 땅을 통하여 당신의 종 엘리야가 안전하게 숨어 지내도록 하는 생각을 보여주십니다.

결국 우리의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어떤 장소보다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여부’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여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엘리야를 극빈한 과부에게 보내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큰 부자나 힘있는 권세자에게 보내지 않으시고 사르밧이란 동네의 과부의 집에게 보내시겠답니다. 한마디로 먼 타지의 낯선 사내와 다를 바 없는 엘리야를 하핑 과부 댁에 보내심은 무슨 이유일까요? 남의 말을 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르밧 동네사람들에게 무슨 안 좋은 소문이라도 나면 어쩌실려고 그러셨을까요? 그런데 하나님 생각은 사람의 생각과 더 다르고 높은 차원의 계획을 가지고 계심을 우리는 언뜻 이해하지 못하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그래도 순종해보면 하나님의 뜻을 잘 이해하게 됩니다.

믿음은 이해하건 못하건 상관없이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믿는 일이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쓰고자 하시면 아무리 작고 하찮아 보이는 것이라도 위대한 역사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다윗이 어떻게 골리앗을 죽였습니까? 자그마한 고운 소년이 키가 2미터가 넘는 천하장사, 거인 장수를 물맷돌 하나로 기절시킨 후, 그 목을 베어 죽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우리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방법으로도 일하실 때가 있습니다.

)순종할 때 기적을 만납니다
오늘 말씀에 중요한 것은 엘리야가 하나님의 뜻을 미리 알고 있었든, 모르고 있었든, 결과적으로는 순종했다는 사실입니다. 순종은 결과를 미리 알아야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엘리야가 그릿 시냇가로부터 사르밧까지의 매우 먼 길을 걸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보통 사람이라면 이런 생각을 하면서 걸었을 것 같습니다. “사르밧으로 가라고? 왜 하필 시돈 땅이지? 이스라엘도 꽤 숨을 곳이 많은데.그리고 과부를 통해 날 돌보게 하시겠다고? 왜 하필 남녀가 유별한 이때에 과부의 집이란 말인가? 그 여인은 꽤나 부자인가?.”라구요.

어쨌든 엘리야가 말씀에 순종하여 먼 길을 여행하여 사르밧 성문에 도착했을 때 마침 한 여인을 만났습니다. 엘리야는 이 여인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 사람인 줄 알아보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에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그릇에 물을 조금 가져다가 내가 마시게 하라. 그가 가지러 갈 때에 엘리야가 그녀를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네 손의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10, 11)고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중동지역에서는 자기 집을 찾아온 어려운 나그네나 손님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이 매우 아름다운 풍습으로 지켜져 왔습니다. 엘리야 당시에도 지켜진 풍습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녀도 굶어 죽게 생긴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도 엘리야가 선지자인 줄을 알아보았습니다. 그 여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둘을 주워 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고 생각하고 있다었다고 했습니다.  이 여인의 형편을 듣고 보면 아무리 엘리야라도 미안해서 아, 그러세요. 그럼 내가 먹을 것은 내가 알아서 해결할겠소-라고 해야 할 상황입니다. 벼룩의 간을 빼먹는 것 같은 일을 할 순 없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이 여인의 말에 대해 엘리야가 대답하는 말이 기가 막힙니다.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13, 14)고 하는 것이예요.

엘리야의 말을 다시 좀 더 풀어보면 이렇습니다. “너의 형편 다 안다. 먹을 것이 없어 다 죽죽 생긴 것을 알겠다. 그런데, 일단 내 말대로 순종해 봐! 이단 하나님께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더 크개 보상해 주실거야.”라고 합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여인이 엘리야의 말을 듣고 순종했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그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그와 엘리야와 그의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 같이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15,16)고 했습니다.

순종은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길, 자신과 남을 살리는 길, 하나님의 사람의 기적과 축복이 드러나는 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헌신을 요구하실 때, 아무것도 없는 데서 하지 않으십니다. 1%라도 순종하고 헌신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요구하십니다. 또한 모든 것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무슨 아쉬운 것이 있으셔서 우리에게 구걸하시듯이 순종과 헌신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헌신을 통하여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고 우리에겐 특별한 은혜를 베풀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신학자 아브라함 카이퍼는 “인류 존재의 전 영역에서 만유의 주재이신 그리스도의 것이 아닌 곳은 단 1평방 인치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 50:9~13)은 또 증거합니다.  “내가 네 집에서 수소나 네 우리에서 숫염소를 가져가지 아니하리니 이는 삼림의 짐승들과 뭇 산의 가축이 다 내 것이며 산의 모든 새들도 내가 아는 것이며 들의 짐승도 내 것임이로다 내가 가령 주려도 네게 이르지 아니할 것은 세계와 거기에 충만한 것이 내 것임이로다 내가 수소의 고기를 먹으며 염소의 피를 마시겠느냐”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에게 손해 볼 일을 요구하지 않으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은 우리의 행복이요 우리의 믿음의 승리입니다.

세상 모든 것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그토록 불쌍한 과부에게, 굳이, 그것도 마지막 한 끼라도 먹고 죽으려는 사람에게서 그 마지막 가진 것까지도 요구하셨습니까? 그것은 마지막 남은 것까지 다 빼앗기 위해서가 아니라 믿음 안에서 그녀의 힘으로 이룰 수 없는 것을 채워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까지 이 여인의 주 관심은 한 끼 식사와 죽음뿐입니다. 사는 것이 의미 없고, 살아갈 길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난생 처음 보는 한 선지자가 찾아와 기껏 한다는 말이 축복의 기도나 위로의 말씀도 아니고, 마치 맡겨 둔 것을 내어 놓으라는 듯 음식을 요구하니 얼마나 기가 막히고 막막했을까요?

)순종치 않았다면?

그런데 만약 이 여인이 보통의 여인들처럼‘나 먹고 살기에도 부족하다’며 엘리야의 말을 거절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렇다면 그 여인이 말한 대로, 마지막 한 끼는 죽음 직전의 마지막 한끼였을 겁니다. 그리고 그녀의 아이도 살 길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선지자인 엘리야만 먹여 살리시려고 -가 아니라, 아무 보호자 없는 이 믿음으로 살던 여인을 살리시고 보호하시자, 엘리야를 사르밧까지 보내신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할렐루야!

)아름다운 헌신에는 더 아름다운 보상이 있다

우리도 종종 먹고 살기 힘든 이 세상에서 주일날 예배 드리러 교회 오면, 설교자가 툭하면 이거해라 저거해라! 전도해라, 선교해라, 봉사해라, 헌신해라 라고 하면 마음이 답답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무겁고 짜증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나는 내 문제 해결에 대한 대답을 얼른 듣고 싶어 교회 왔는데 , 설교는 뭘 주겠다가 아니라 뭘 내놓으라고 하는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 내 마음 알아주고 위로해 주고 그럴  한 말씀을 전해주는 교회를 찾기도 합니다. 어쩌면 그것이 바로 우리가 지금까지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하지 못한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왜 예수 믿습니까? 우리 힘으로는 구원을 받을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왜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까? 내 능력, 내 상식 그 이상의 놀라운 하나님 은혜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남다른 복을 주시기 위해 남다른 순종을 요구하시기도 합니다. 종종 하나님은 특별한 복을 주시기 위해, 특별한 헌신을 요구하십니다. 믿음은 말로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인정받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말만이 아니라 순종하는 행동으로 그 믿음이 검증됩니다. 그 믿음의 진실성이 드러납니다.

결론)

엘리야나 과부 모두 순종함과 헌신함으로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엘리야의 순종은 죽음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한 여인을 살렸고, 철없는 아이를 살렸고, 한 가정을 살렸습니다. 홀로 된 여인의 순종과 헌신은 선지자 엘리야를 살렸고, 아이도 살렸고, 자기 인생도 살렸습니다! 홀로 된 여인과 엘리야가 순종과 헌신을 통해 서로를 살렸듯이, 우리도 하나님께 대한 순종과 헌신으로 서로에게 기적의 통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모든 제직들과 직분자들을 통하여 다시금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며, 아울러 오늘 기관임명식 주일을 맞아 이 말씀으로 힘과 용기를 더욱 얻으셨기를 소망합니다.

022321
안익선 목사/ 참조:정명호 목사(서울 혜성교회) & 기독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