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모음(Korean sermons)

악인들의 최후(시편 1:1-6절)

호걸영웅 2021. 3. 18. 05:05

악인들의 최후(시편 1:1-6)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2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3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4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5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6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서론)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면서 매우 중요한 것들 중의 하나는 삶의 많은 영향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좋은 교회를 다니면 좋은 영향을 , 나쁜 교회를 다니면 나쁜 영향을 받습니다.참기름도 좋은 참기름이 있고 가짜 참기름이 있듯이
.신앙도 좋은 신앙 혹은 나쁜 신앙이 있습니다.  목사도 탐욕에 가득 차서 하나님을 이용해 부하고 권세를 쥐려는 목사가 있는가 하면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하고 예수 사랑으로 성도들을 돌보며 희생하는 목사가 있습니다.

예수께서도 그런 것들을 경계하시면서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했습니다. 천국에 들어 갈 자는 곧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자들이지 자기 욕심을 이루려 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교회에는 진리와 사랑과 공의(3박자)가 꼭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사랑이 많아도 진리가 없으면 교회가 아니라 그저 가족이거나 가정입니다. 여기엔 현재는 있지만 미래의 구원과 죄사함은 없습니다.

어쨌든 좋은 교회를 만난다는 것은 참 감사하고 고마운 일입니다. 좋은 믿음의 동역자들, 교우들을 만나는 것도 굉장히 큰 축복입니다. 무엇을 보고, 어떤 영향을 받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이 달라집니다.

 

어쨌든 교회에서 받는 영향력 중 가장 큰 영향력이 성경의 말씀을 통한 영향입니다. 기독교의 특징은 말씀을 강조하고 예수를 강조합니다. 그래서 예배시간에도 말씀 듣는 시간이 가장 깁니다. 그리고 말씀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우리 삶을 결정해 줍니다.

그것이 의인과 악인을 구분 시켜 줍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엄청난 행복과 불행의 차이가 됩니다.

 

본론)

) 두 갈래의 길이 늘 우리 앞에 있다
시편 1편을 보면 선명한 그림을 보게 됩니다. 하나는 생명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멸망의 길입니다. 가는 길이 다르고 또 그 끝도 분명히 다릅니다. 시편 1 1절은 복 있는 사람으로 시작하여, 마지막 6절에서는 악인의 길은 망한다고 합니다. 복과 멸망이 시작과 끝에서 대조되는 모습입니다. 성경은 복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복과 함께 저주도 이야기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12장에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도 복을 약속하시고 또 저주도

언급하십니다(아브라함을 축복하는 자를 하나님이 축복하시고 그를 저주하는 자는 하나님도 저주하시리라 하심). 인간은 로봇트?가 아니예요, 자주적인 인격체입니다. 선택하며 살 공간(부분, 상황)이 많습니다.  

출애굽 때에도 유월절의 사건은 한쪽은 구원이고 한쪽에는 사망이었습니다. 본문에서도 의인과 악인의 두 갈래의 길이 선명하게 나누어져 있습니다. 고로 본문 1~3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1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2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3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할렐루야!

 

복 있는 자는 악인의 길을 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여 묵상하고 연구하고 실천하기 힘쓰는 자들입니다. 구분이 선명하지요? 그리 복잡할 것이 없어요.

그리하여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처럼 늘 싱싱하고 푸르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형통합니다.

) 악인의 차이점

4절에서는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로 시작합니다. 악인은 무엇이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까?

악인은 여호와 하나님의 율법을 즐거워하지 않고 멸시합니다. 그 율법을 주야로 무시하고 반대합니다. 하나님은 없다고 합니다. 주야로 재산을 늘리고 권력을 늘리고 성공가도를 위해 아주 많이 힘쓰고 노력하고 내 힘으로 뭔가 할 수 있다는 집념에 가득 차 있습니다. 악인에게 사람이란 존재는 자기 이익을 위해 도구로 생각하도 합니다.

선명하게 구분이 됩니다. 뭐 혼란스러울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등진 이런 사람들에겐 하나님의 말씀의 빛이 비추어지지 않고, 말씀이 영혼에 계속해서 주어지지 않는 사람의 삶은 악해지고 그 끝은 심판입니다. 그래서 본문 4절부터 6절까지는 악인에 대한 심판을 다루고 있습니다.


본문 5절에는 “그러므로”로 시작는데, 이 말은 앞에서 일어난 어떤 행동에 대한 결과 를 이야기합니다. 앞에 어떤 행동이 있고, 이젠 결과가 있다는 것 입니다. 지금 현재의 삶은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에는 어떤 가능성이 다 열려 있는데 그것에 대한 원인 제공은 인간의 편에서 한다는 겁니다. 칼빈 신학의 문젯점은 지나치게 운명론적이라는 것입니다. 곧 예정론입니다. 하나님은 우릴 구원하시기로 다 예정하셨 고 예정되지 않은 자는 구원받지 못한다는 거죠. 물론 구원론에서 그런 부분은 꽤 있다 는 것은 인정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더 강조되야 할 것이 있어요. 선택입니다.  우리 앞에 복과 화를 하나님이 두셨어요. 그리고 무엇을 선택할 건지를 하나님은 허락하셨 다는 것이예요. 요한3:16은 분명히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요것이 예정론이예요. 그런데 침례교적 구원론은 이겁니다. 누구든 예수 믿으 면 멸망하지 않고입니다. 그러니까 개인의 선택이 있어요. 믿거나 말거나에요. 믿으면 천당! 안 믿으면 지옥! 선택하라! 그리고 결과는 그 선택에 따라 달라진다! 이것이 복음주의이고 현대적 침례교 신앙의 특징입니다. 여호수아도 신 30:17~20에서 그런 설교를 한 바 있습니다.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었다고 했습니다.

 

, 다시 본문으로 돌아갑니다. 4=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라고 했습니다. 씨를 뿌리는 대로 열매를 거둡니다. 매일 우리는 씨를 뿌립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우리의 생각 안에 어떤 씨앗을 뿌릴 것인가에 따라서 행동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매일 어떻게 말씀을 대할 것인가를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말씀을 무시하고 살 것인가 아니면 말씀을 존중히 여기고 살 것인가? 자유롭죠. 자유로운 것 자체는 좋아요.

 

그런데, 매일 우리의 영혼을 말씀으로 경작하지 않으면 우리의 영혼은 척박한(기름지지 않고 메마른) 영혼이 될 것입니다. 그런 메마르고 척박한 영혼에서 나올 것은 악한 꾀나 자기의 자랑뿐입니다.

 

그리고 악함이 자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자기만 지옥 가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것이 옳다고 하는 자들과 무리를 이룹니다. 나라를 이룹니다. 그러면 끔찍한 전쟁과 범죄가 역사를 피투성이가 되게도 합니다. 이 세상이 지옥으로 변하기도 합니다.

 

1차 세계 대전도 2차 세계 대전도 한국 전쟁도 다 그런 원인이 있습니다. 히틀러라고 하는 잘못된 신앙을 가진 악인이 온 세상을 피로 물들였습니다. 악한 일본의 미국과  아시아 침공이 온 아시아 대륙과 태평양을 피로 물들였습니다. 하와이의 진주만이 피바다가 되었습니다(미국인 2400여명이 사망). 그들의 악랄함이 한국과 필리핀과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의 사람들을 노예로 만들고 위안부로 만들고 전쟁의 앞잡이로 만들었습니다. 처음에 미국은 정치논리 때문에 방관하였고 자기들의 이익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가면 갈수록 정도가 지나치게 됩니다. 하와이 진주만 사건이 터지자 그제서야 아차 하고 정신을 차렸지만 그 희생은 천문학적이지요. 수십만명이 목숨을 잃고 맙니다.(2차 세계 대전 총 사망자 약 7000)

한국 전쟁도 결국 미국의 방관주의에 그 책임이 있습니다. 지금도 북한 핵에 대한 미적 지근한 태도가 계속된다면 한국에서 핵전쟁은 피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제 개인적 생각으로는 미국이나 서방이 중심이 되어, 남한에도 핵이 배치되고 일본이나 필리핀 대만 등에도 다 핵이 배치되어서 남하하려는 중공과 러시아와 북한의 악한 세력을  견제해야 한다고 생각이 됩니다. 이제 온 세계는 종말에 다가섰어요. 이것은 세계적 미래 학자들 다 똑같이 하는 말입니다. 세계 핵 개발은 지구를 능히 여러 번 파괴하고도 남을 만한 수준에 와 있습니다. 결국 이 문제의 해결자는 예수님의 재림뿐이십니다. 트럼프도 바이든도 아닙니다. 시진핑도 푸틴도 아니예요.

 

본문 5=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 다” 바람에 나는 겨는 창고에 들여지는 알곡과 구분되어집니다. 공중에 떠돌아다니다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는 겨의 운명은 심판입니다. 하나님은 심판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대하고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갔느 냐에 대한 심판입니다. 탐욕에 대한 심판이요, 악한 생각에 대한 심판이요, 말씀을 무시 한 자들에 대한 심판입니다. 악인들은 스스로 자신의 심판 가운데로 들어갑니다. 일본이 어떻게 멸망했습니까? 지옥불이 떨어졌잖아요? ? 하나님의 심판이지요. 1945년 여름 86일에히로시마에, 89일엔 나가사키에 지옥불이 떨어진거예요. 그 당시 이미 도쿄도 다 미군의 폭격으로 쑥대밭이 되었어요. 그런데 항복을 안 하니까 원자폭탄을 떨어뜨리거죠. 히로시마는 일본의 군수공장이 엄청나게 많은 곳이라 폭탄이 투여됐다고 해요.

 

히틀러도 무솔리니도 다 심판을 받았습니다. 지금도 지옥에서 심판을 받아 마땅한 자들 이지요. 이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린 자들이예요. 하나님의 말씀 을 외면하고 저주하고 박해한 자들입니다. 그리고 영영한 지옥불에 고통 속에 살아 가는 자들입니다. 공산당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오늘날도 일본정부는 종군 위안부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어요. 두 손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자들입니다. 하버드 대학의 램지어 교수를 돈으로 구워 삶아서 거짓 논문을 만들어 발표하게 하고 그것이 옳다고 주장하고 있는 사악한 자들입니다. 미쓰비시-라는 일본 대기업이 그를 후원하고 있습니다. 이 미쓰비씨 회사는 한국인들 무수히 잡아다가 강제노동을 시킨 전범 기업이요 2차 세계대전을 후원한 악랄한 기업이예요. 그래서 요즘 한국과 미국의 일부 지식인들은 미씨비씨 자동차 사지말기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회개하지 않는 민족은 미래가 없다고 했습니다. 일본이 회개하지 않으면 또 다른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 개개인에게도 하나님의 심판은 반드시 찾아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마지막 비유들 은 종말론적인 것이 많아요. 하나님의 심판의 때는 반드시 옵니다. 그래서 5절 말씀은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 다” 6절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고 하십니다.  얼마나 두려운 말씀입니까? 그리고 3절 말씀과 얼마나 대조적입니까? 말씀을 거부하며 자기 마음대로 산 결과가 얼마나 참혹한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부패한 본성을 따라 살아가면 그 자체가 스스로 심판을 당하는 것입니다. 거짓말을 한두 번 한다고 어떻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지속적으로 거짓말을 하다 보면 위기가 옵니다. 매일의 작은 결정들이 나중에 큰 결과를 만들어 냅니다.

 

결론)

여러분, 어떤 선택들이 끝없이 반복되면 반드시 선명한 결과가 찾아옵니다. 근래는 미투 운동으로 온 나라가 야단입니다. 아주 최근엔 학폭 논란(학교폭력)이 엄청나죠. 언젠가 오랜 과거의 잘못이라도 수면 위로 드러나 불행한 결과를 맞이합니다. 악인들은 사회에서 매장되기도 합니다. 대통령도 예외가 아닙니다. 도지사도 시장도 에외가 아니예요. 죄에는 심판이 있어요. 사실 우리 모두가 다 죄인이었습니다. 로마서 3:23절엔 우리가 다 죄를 지었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십자가 지시고 우리 죄를 대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까지 했습니다. 그래도 예수를 안 믿었다면 그 죄에 대한 심판은 피할 수 없습니다. 오늘 날도 우리가 예수를 믿든 안 믿든 우리의 선택의 결과는 여러분 각자의 책임입니다. 그리고 세계 역사는 성경대로 흘러왔고 또 흘러 갑니다. 책임감 있게 하나님을 섬기십시오. 그리고 책임감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가십시오. 정신없이 바쁘게 사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바빠도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해 바쁘시길 바랍니다. 악에 속하지 말고 선에 속하십시오. 할렐루야! 기도합시다.

030221 안익선 목사/ 참조: 수영로교회 설교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