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강해

레위기 24장 강해( 등잔불과 진설병, 신성모독에 대한 규례)

호걸영웅 2021. 5. 6. 22:59

레위기 24장 강해( 등잔불과 진설병, 신성모독에 대한 규례)


서론)

레위기 24장은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4절까지는 성소의 등잔불 관리 규례과 5~9절에서는 진설병에 관한 규례를 다루었고, 10-23절까지는 신성모독 사건과 더불어 각종 형사 및 민사적 사건에 대한 처벌 규례를 다룹니다.


본론)

)등잔불의 규례(1~4)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2)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감람을 찧어 낸 순결한 기름을 켜기 위하여 네게로 가져오게 하고 끊이지 말고 등잔불을 켤지며(3)아론은 회막안 증거궤 장 밖에서(성소) 저녁부터 아침까지 여호와 앞에 항상 등잔불을 정리할지니 너희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라(4)그가 여호와 앞에서 순결한 등대 위의 등잔들을 끊이지 않고 정리 할지니라


 
그런데 감람을 찧어 낸 순결한 기름은 두 번 걸러낸 최상품의 기름입니다. 순결한 기름은 불순물이 적기 때문에 순결한 기름으로 등불을 켜면 그을음이 없고 아주 밝은 빛을 냅니다.  4= 기름만 순결한 것이 아니라 촛대도 순결하다고 표현합니다. 왜냐하면 일곱 등대도 순수한 금으로만 쳐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순결한 일곱 등대에 순결한 기름이 더해져 그을음이 없는 순결한 빛을 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등잔불 규례에서 핵심은 순결함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무엇이든 온전해야 하며 거룩해야 하고 순결해야 합니다.


그리고 등잔불 규례는 또한 부지런하고 신실한 헌신을 요청합니다. 백성들은 값비싼 최상품의 기름을 제사장에게 제공해주어야 하며, 제사장은 그 기름을 가지고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성소안의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자주 불똥을 정리하며 지속적으로 기름을 공급해야 합니다. 아마도 저녁부터 아침까지 불을 켜 놓아야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 이 규례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밤중에 성소 안을 환하게 밝히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어두움의 하나님이 아니라 빛이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빛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빛이 없으면 모든 사물과 생명체의 존재는 불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 빛을 제일 먼저 창조하신 것도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이 뭐라고 말합니까? 지금 이 세상이 어둠이라고 말합니다. 즉 모든 영혼이 범죄하여 빛 되신 하나님을 떠나 어둠 가운데 거하는 것입니다. 어둠은 곧 비참함이며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어두운 세상에 한줄기 빛이 임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여호와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빛 되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곧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 1:4-5) (4)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5)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고 했어요.

(고후 4:6)(6)어두운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진설병의 규례(5~9)

(5)너는 고운 가루를 취하여 떡 열 둘을 굽되 매 덩이를 에바 십분 이(4리터 정도)로 하여(6)여호와 앞 순결한 상 위에 두 줄로 한 줄에 여섯씩 진설하고(7)너는 또 정결한 유향을 그 매 줄 위에 두어 기념물로 여호와께 화제를 삼을 것이며(8)항상 매 안식일에 이 떡을 여호와 앞에 진설할지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한 것이요 영원한 언약이니라(9)이 떡은 아론과 그 자손에게 돌리고 그들은 그것을 거룩한 곳에서 먹을지니 이는 여호와의 화제중 그에게 돌리는 것으로서 지극히 거룩함이니라 이는 영원한 규례니라


등잔불 규례는 매일 해야 하는 것이지만, 진설병 규례는 매주 한 번씩 하는 것입니다. 매 안식일마다 새로 떡을 구워서 진설해야 하는 것입니다. 떡은 부패하는 것이기 때문에 오래 놔둘 수 없습니다. 매주 지속적으로 새 떡이 공급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떡 12덩이는 이스라엘의 12지파를 상징합니다. 이것은 두 가지를 상징하는데, 첫째는 온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있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진설병’이라는 단어도 원어로 보면 “얼굴의 떡”입니다. 12지파 모두가 늘 하나님의 면전 앞에 있다는 것입니다.


) 신성모독의 죄와 처벌의 규정들(10~   )

하나님께서 법을 주실 때는, 그냥 곧바로 법을 명하실 때도 있지만, 때로는 어떤 사건이 있은 이후에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을 묻고, 그에 따라 필요한 법을 명하실 때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규례는 바로 후자의 경우를 잘 보여줍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


(10)
이스라엘 여인의 아들이요 그 아비는 애굽 사람 된 자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 나가서 한 이스라엘 사람과 진중에서 싸우다가(11)그 이스라엘 여인의 아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훼방하며 저주하므로 무리가 끌고 모세에게로 가니라 그 어미의 이름은 슬로밋이요 단 지파 디브리의 딸이었더라(12)그들이 그를 가두고 여호와의 명령을 기다리더니(13)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14)저주한 사람을 진 밖에 끌어 내어 그 말을 들은 모든 자로 그 머리에 안수하게 하고 온 회중이 돌로 그를 칠지니라(15)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누구든지 자기 하나님을 저주하면 죄를 당할 것이요(16)여호와의 이름을 훼방하면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 온 회중이 돌로 그를 칠 것이라 외국인이든지 본토인이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훼방하면 그를 죽일지니라


아버지는 애굽 사람이고, 어머니는 이스라엘 사람인 사람이 이스라엘 사람과 진중에서 싸우다가 하나님의 이름을 저주하고 훼방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이 그 사람을 모세 앞으로 끌고 갔는데, 모세는 어찌할 바를 몰라서 여호와의 명령을 기다렸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이름을 저주하거나 훼방하는 자는 당연히 죽여야 하는 것입니다. 모세가 이것을 모를 리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부모를 훼방하거나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돌로 쳐 죽이라고 명하셨는데, 하물며 하나님을 저주하고 훼방한 자이겠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이 사람이 이스라 엘 본토인도 아닌 애굽인과 이스라엘 사람의 자식이라는 것이라는 점에서 처리에 고심할 부분이 되었습니다.


대개 율법에 보면 본토인과 타국인, 나그네에 대하여 적용되는 법들이 다릅니다. 본토인에게 가장 엄격한 규율이 명해지고, 타국인이나 나그네의 경우는 비교적이 느슨하게 적용됩니다. 그래서 모세는 이 사람을 처벌하는 것이 과연 맞는지 의문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대답은 본토인이든지 타국인이든지 상관없이 무조건 돌로 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비록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불과 몇 달 전에 하나님의 놀라운 권능의 기적을 체험했고, 하나님의 은혜로 출애굽의 대열에 합류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은혜의 체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아주 고의적으로 신성모독을 행한 것은 성령을 훼방하는 죄에 준하는 아주 중대한 죄였습니다. 그러므로 속죄제사 없이 곧바로 돌로 쳐서 죽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죽일 때 저주의 말을 들은 사람들이 그 사람의 머리에 안수한 후에 죽인다는 것입니다. 왜 안수를 할까요? 여러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첫 번째 견해는... 저주의 말은 그 말을 들은 사람을 부정하게 하기 때문에 안수를 하여 그 부정을 그 사람에게 다시 전가하는 의미가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고, 두 번째 해석은 처형하는 것이 불법적인 살인행위가 아니며 그 피가 자기 머리로 돌아갈 것이라는 의미로 안수한다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본문의 내용은 처벌과 관련한 재판법들입니다. 신성모독자에 대한 처형 규례를 명하시는 김에, 여러 가지 처벌방법과 처벌원리를 추가적으로 명하십니다.


(17)
사람을 쳐 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요(18)짐승을 쳐 죽인 자는 짐승으로 짐승을 갚을 것이며(19)사람이 만일 그 이웃을 상하였으면 그 행한 대로 그에게 행할 것이니(20)파상은 파상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을지라 남에게 손상을 입힌 대로 그에게 그렇게 할 것이며(21)짐승을 죽인 자는 그것을 물어 줄 것이요 사람을 죽인 자는 죽일지니 (22)외국인에게든지 본토인에게든지 그 법을 동일히 할 것은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임이니라(23)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니 그들이 저주한 자를 진 밖에 끌어 내어 돌로 쳤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행하였더라


하나님은 여러 가지 사례마다 어떻게 처벌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명하십니다. 그러면서 두 가지 원리를 말씀하십니다. 첫째는 이런 도덕적인 범죄에 대한 처벌은 본토인이나 타국인이나 상관없이 동일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피해를 입힌 만큼 배상하거나 처벌해야 한다는 동해복수법입니다. 이러한 원리에 대한 강조가 16-22절의 동심원적인 구조를 통해 잘 나타납니다.


이 구조의 중심에는 동해복수법이 있습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의 동해복수법은 어떤 사람에게 피해를 입혔으면 정당한 보상을 해주어야 한다는 원리를 가르쳐주는 것이고, 또 피해자는 복수할 때 지나치게 복수해서도 안 된다는 원리를 동시에 가르쳐줍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의 핵심이며 공평의 원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마지막 때에 어떻게 심판하십니까? 철두철미하게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원리는 하나님의 일반 은총 가운데 모든 나라의 법의 근간정신으로 자리 잡았으며, 바로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법들을 통해 이 세상을 통치하고 계신 것입니다. 즉 일반은총 가운데 이 땅에서부터 공의와 정의가 어느 정도 실현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통치는 신약에서도 마찬가지이고 세상 끝 날까지 지속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놀랍게도 이 말씀을 언급하시면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동해복수법대로 살면 안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38)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39)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40)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41)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42)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43)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44)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5:38-44)


아니, 하나님께서 구약에서는 복수할 수 있도록 하셨고, 또 그것이 이 세상에 있어야만 하는 공평의 원리인데, 신약의 성도들은 왜 복수하면 안 되는 것입니까? 그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원수였던 우리에게 복수하지 아니하시고 도리어 용서해주셨기 때문에,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원수를 사랑하셨고, 악인과 선인에게 동일하게 해와 비를 주시는 선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최선과 차선의 차이)


둘째로 우리가 이 땅에서 복수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친히 복수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종말의 심판을 믿는 사람은 이 땅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고 몹쓸 짓을 당해도 반드시 복수하 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에게 큰 잘못을 행한 그 사람이 장차 당하게 될 일을 생각하 면서 불쌍히 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이것이 바로 복수를 하나님께 맡기고 악을 선으로 갚는 것입니다.


결론)

그러면 실제 삶속에서 이 원리를 어떻게 실천할 수 있겠습니까? 모든 재산상의, 그리고 인명상의 피해를 입었을 때 무조건 없었던 일로 하고 넘어가라는 말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어떨 때는 용서하고 넘어갈 때도 있지만 어떨 때는 정당한 배상을 요구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것은 상황에 따라 성령께서 주시는 지혜를 따라서 각 상황에 맞게 대처하면 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원수를 사랑하고 위하여 기도하는 자세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내’가 없어야만 합니다. 십자가 은혜 안에서 내 정과 욕심을 못 박지 않으면 결코 이렇게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우리의 자아와 우리의 자존심과 우리의 욕심을 다 죽여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당한대로 갚는 것이 아니라, 용서하고 사랑하며 원수를 위하여 기도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042120 안익선 목사/ 참고: 창원한결교회 수요강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