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아스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칠 세라 예루살렘에서 사십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시비아요 브엘세바 사람이더라
- 제사장 여호야다가 세상에 사는 모든 날에 요아스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으며
- 여호야다가 그를 두 아내에게 장가들게 하였더니 자녀를 낳았더라
- 그 후에 요아스가 여호와의 전을 보수할 뜻을 두고
-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을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유다 여러 성읍에 가서 모든 이스라엘에게 해마다 너희의 하나님의 전을 수리할 돈을 거두되 그 일을 빨리 하라 하였으나 레위 사람이 빨리 하지 아니한지라
서론)
요아스 왕은 이스라엘 남북 왕조 분열기 시대에 , 이른바 남쪽 유대나라의 제 10대왕으로서 선하게 시작하여 악하게 끝난 비운의 왕입니다.
이 요아스 왕은 7살에 왕이 된 후, 사십 년을 통치 했습니다. 그는 47세에 살해 당하였는데…그 비극적인 죽음은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이런 비극의 역사는 그의 할아버지 여호람 때 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한편, 여호람의 아내는 북왕국 이세벨 왕비(북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의 최선봉자, 가장 악한 아합 왕의 아내)의 딸 아달랴로서 그 여호람 왕은 악한 왕비 아달랴의 말을 듣고 자기 동생들 7명을 모두 살해 했습니다.
그리고 여호람이 하나님의 징계로 일찍 죽고 그의 아들 아하시야가 등극했으나 북 이스라엘 왕의 문병을 갔다가 그만… 반란군을 만나서 죽임을 당합니다. 그러자 아달랴는 자기 손자들을 다 죽임으로써 왕가의 혈통을 다 끊어 버리고, 자기가 친히 유다 여왕이 되어 나라를 다스리게 됩니다.
이때가 남 유다 왕국의 가장 어두웠던 시기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달랴의 여인천하는 6년이었는데…… 본격적으로 시돈의 신 바알과 아세라 여신을 숭배하며 여호와 신앙이 끊어진 영적 어둠의 시대요, 어둠의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아달랴가 왕자들을 모조리 죽이는 중에, 왕자들의 고모인 여호세바-라는 여인이 이제 막 돌이 된 막내 요아스를 품에 감추고 자기 남편 여호야댜 대제사장의 집에서 숨어, 몰래 6년을 길렀습니다. 그리고 요아스가 7살 되던 해에 대제사장 여호야다의 반정이 성공의 거두어 아달랴는 유다의 국민들의 칼에 죽고 어린 요아스가 왕위에 올랐던 것입니다. 드디어 유다의 최악의 영적 암흑시대는 끝이 났습니다.
그리고 어린 요아스 왕은 처음엔 그의 양육자요 스승이자 제사장이었던 여호야다가 섭정을 했으나 나이가 들면서 점점 스스로의 의지대로 유대를 통치했습니다. 특히 아달랴 여왕 때 파괴되었던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수리하고 매일 드리는 번제도 다시 회복하게 되어 전국에 걸쳐 하나님을 섬기는 영적부흥이 크게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스승 여호야다가 살아있을 때까지 뿐이었습니다. 그가 죽은 후 요아스는 그만 변절하고 맙니다.
요아스는 성숙한 신앙인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유다의 왕은 정치지도자일 뿐만 아니라, 신앙적 지도자가 되어야 했으나 그 자신이 나약한 신앙인이었기 때문에 신앙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세속적 정치인들과 결탁하여 신앙이 변절하고 말았다 했습니다.
여러분, 나를 지도해 주시는 분들이 안 계실 때도 믿음을 똑바로 지킬 수 있어야 합니다. 이사 가셔서 교회를 옮기면 신앙이 위태위태한 분 많아요. 이사를 가서도 잘 믿어야지요. 신실한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방탕해지는 분들도 많아요. 왜 그럴까요? 신앙심이 깊지 않기 때문이요 믿음의 기초가 연약한 탓입니다.
사울 왕은 사무엘이 왔을 때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나를 위해 기도해 주세 요!" 부탁합니다. 당신의 하나님이라니….이 무슨 해괴한 말입니까?
그러나 다윗왕은 사무엘의 하나님이라든지, 나단선지자의 하나님이라고 하지 않고, 나의 하나님, 나의 목자, 나의 반석이신 여호와여! 이렇게 기도 했습니다. 참 신앙은 환경에 의해 변질되지 않고 어두워도 더욱 참 빛을 발하며 여호와만 섬기는 신앙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런 신앙을 다 소유하시길 바란다.
<본론>
가) 요아스 왕의 변절과정을 봅니다.
17절에 스승 여호야다가 죽은 후 유다 방백들이 와서 왕에게 절하매.... "절하매"=왕에게 청원을 했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 청원 내용이 무엇이냐면, 18절에 ‘ 여호와의 전을 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섬기자’라는 내용이었던 것이죠.
1) 요아스는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시하지 않고 방백들과 국민들의 인기를 얻으려고 그들의 말대로 따라 여호와를 버리고 맙니다. 백성들의 인기를 너무 의식하여 바르지 못한 정책을 펴는 것은 모두를 더 불행하게 합니다. 우리는 민주주의가 가장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신앙의 세계에서는 그 민주주의- 라는 것이 매우 그릇될 수도 있습니다. 오늘날의 동성 결혼 합법화 같은 겁니다. 일찍이 다수결의 민주주의를 따랐더라면 이스라엘 백성은 결코 가나안 땅을 밟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성도는 성경중심 주의, 하나님의 계명 우선주의로 살아야 합니다.
2) 요아스는 하나님의 경계의 말씀을 무시해 버렸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릇하여 하나님이 벌하실 때 반드시 그냥 벌하지 않으십니다. 먼저 말씀을 통하여 결고해 주십니다. 본문 18,19절에서 여러차례 선지자들이 견책하고 권면합니다. 그 중에 스승의 아들 스가랴의 경책이 마지막이었습니다.
3) 요아스는 은혜를 원수로 갚았습니다. 대제사장 여호야다는 생명의 은인이요, 생애 의 스승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그 은혜를 갚을까 생각해야 마땅한데, 오히려 그는 은혜를 갚기는 커녕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듣기 싫은 말을 했다고 해서 그를 돌로 쳐 죽였습니다. 스승 여호야다를 생각해서라도 그가 신앙의 배신해서는 안됐습니다. 더구나 그 아들 스가랴가 자기를 견책하는 말을 했다 하더라도 달게 받았어야지, 그를 죽이게 했다는 것은 은혜를 져버리고 너무도 배은망덕한 행위였습니다. 본문 22절= "요아스가 스가랴의 아비 여호야다의 베푼 은혜를 생각지 아니하고 그 아들을 죽이니, 저가 죽을 때에 이르되 여호와는 감찰하시고 신원하여 주옵소서 하니라. -고 했습니다.
악인은 배은망덕을 일삼아 행하는 자입니다.
악인은 사랑을 모르는 자이니 자기만 아는 이기주의자입니다.
악인은 받을 줄만 알고 갚을 줄 모르는 어린아이의 인격에 소유자입니다. 매정합니다. 자아가 성숙하지 못한 자 입니다.
옛날 다윗 왕은 사울 왕이 그렇게도 자기를 악랄하게 괴롭혔어도 그 친구 요나단과의 언약을 지키기 위해, 사울과 요나단이 죽은 뒤에도 요나단의 아들 모비보셋이라는 다리 저는 왕자를 왕궁으로 데려와 왕의 식탁에서 함께 음식을 먹도록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의인은 은혜를 아는 자요 갚을 줄 아는 자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시 116:12에서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라고 늘 안타까워 하는 시인과 같이, 그런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쉽게 망각하는지 모릅니다. 많은 악한 사람이 은혜는 물에 새기고 원수는 돌에 새깁니다. 그러나 우리는 원수는 흐르는 물같이 사라지게 하고 은혜는 돌에 새겨 갚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될 줄 믿습니다.
나)변절의 댓가
훗날 요아스는 배은망덕 했을 뿐 아니라 은혜를 원수로 갚았습니다. 고로 하나님의 징계가 내렸습니다. 이런 요아스 왕의 변절에 대하여 하나님은 어떻게 갚으셨습니까?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가 죽은 뒤 1년 후, 하나님께서는 아람(오늘날 시리아 지역)왕 하사엘을 일으켜 유다를 치게 했습니다. 그러자 유약한 요아스는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의 금을 다 거두어 아람왕에게 주어 그로 예루살렘을 떠나게 했지만 별로 효과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전쟁으로 많은 방백들이 죽었고 요아스도 크게 부상을 당하여 돌아 오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의 신하들의 반란으로 요아스는 살해 당하고 맙니다. 요아스는 죽은 후에도 하나님의 은혜와 스승의 은혜를 저버린 죄와 불명예로 인하여 왕가의 묘실에는 영원히 장사되지 못했습니다. 유다의 왕으로서 죽은 후에도 그 영광을 빼앗기고 말았던 것입니다.
다) 네 스승은 다시 숨기지 아니하시리니
사30:20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주께서 너희에게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주시나 네 스승은 다시 숨기지 아니하시리니 네 눈이 네 스승을 볼 것이며(20)…” 라고 하십니다. 곧 이 스승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이사야는 유대백성이 범죄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징계를 받았으나 하나님께서 회복시키실 것에 대한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 활동 시대엔 앗수르나 바벨론 같은 나라들의 잦은 침략으로 인해, 참으로 두렵고 힘들게 살던 유대 민족인들에게 고민이 무척 많았습니다. 그 원인은 그들이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을 멀리한 죄의 대가였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에게 스승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사실은…… 그들이 스승 하나님을 버린 것이지만 그들은 오히려 스승 하나님이 얼굴을 숨긴 것으로 착각을 하고 오해를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종종 하나님께서 어찌 우리들에게 얼굴을 숨기셨는가! 라고 한탄했습니다. 여기서 얼굴을 숨긴다는 말은 은혜를 베풀지 않는다, 혹은 도움을 주시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사30:20은 “스승께서는 더 이상 숨기지 않으시리니…’라고 했습니다.
곧 이 말은 하나님께서 항상 당신의 백성 앞에 은혜를 밝히 드러내시며 심판을 해 주신다는 말입니다.
신약성경에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선생(스승)이라고 자주 불렀습니다만… 스승이란 말은 구약성경에는 자주 나오는 표현은 아닙니다. 세상에 많은 스승이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스승과 예수 스승의 엄청난 차잇점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일반 사람인 스승들이 주지 못하는 영원한 생명과 구원을 주시는 스승이기에 그렇습니다. 세상의 스승은 얼마 못되어 죽거나 변질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영존하시고 오늘도 우리 기도를 들으십니다. 할렐루야!
오늘날 예수가 없어서, 혹은 교회가 없어서, 혹은 성경이 없어서 지옥 가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벧후3:9)=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지금까지 교회시대 2000년을 구원의 기회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누가 거절했습니까? 사람들입니다. 예수께서 여러분께 은혜를 언제든 베풀기 원하셨습니다. 그는 더 이상 숨지 않으시는 우리의 스승이십니다. 여러분! 예수님께 귀를 기울이십시오. 그러면 우리에게 지혜와 축복과 영생의 길을 알려 주십니다.
고로 사 30;21도-너희가 오른쪽으로 치우치든지 왼쪽으로 치우치든지 네 뒤에서 말소리가 네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바른 길이니 너희는 이리로 가라 할 것이며(21)…라고 했습니다.
스승이신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내가 갈 길을 친절하게 가르쳐 주시는 분입니다.
이 예수를 믿으십시오. 이 예수를 따르십시오. 이 예수를 섬기십시오. 그러면 예수님은 영원히 여러분을 떠나지 않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결론>
요아스 왕의 실패와 변절, 그리고 비극적 종말은 한낱 과거의 잊혀져 갈 이야기가 아닙니다. 성경이 있는 한 영원히 알려질 이야기 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삶에서도 숱하게 보여지는 사건들입니다. 사람 간의 기대와 약속을 저버린 것도 크게 비난 받을 일이지만, 하나님께 대한 배신과 변절은 하나님 보시기에도 매우 악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배신은 천국의 영광을 상실하게 합니다. 생명책에서 지워져 버립니다. 이 땅 위에서도 치욕스런 죽음을 맞이 합니다.
하나님을 배신하고 그리스도의 길에서 떠나는 것은 자유입니다. 그러나 심판이 있습니다. 우리의 참된 스승을 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를 늘 찬양하고 십자가 고난을 참으시고 영원히 우리들의 참된 스승 되신 예수님께 순종하고 감사하며 살아 가시길 예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할렐루야!
052521 안익선 목사 / 참고:Godpeople.or.kr & 서동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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