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강해

레위기27장 강해(서원과 대속의 규례)

호걸영웅 2021. 6. 3. 04:58

레위기27장 강해(서원과 대속의 규례)

 

서론)

 

오늘의 말씀은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2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사람을 여호와께 드리기로 서원하였으면 너는 그 값을 정할지니 -라고 시작됩니다.

본론)

 

레위기 마지막 장은 서원이라고 하는 주제와 대속이라는 말이 여러 번 나오게 됩니다. 서원이라는 말은 오늘 신약시대 교회에서는 사실은 자주 안 쓰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구약시대는 자주 그런 일이 있었던 것 같아요. 서원이라는 말은 하나님께 어떤 소원이 있었어서 만약 그 소원이 이루어지면 하나님께 어떻게 갚겠다 하고 맹세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소원과 맹서라는 말이 함께 합해져 가지고 서원이라는 말이 생긴 거예요.

 

. 도저히 사람 힘으로 어떤 일을 해결할 수가 없을 때 혹은 하나님께 기도하여 맹세하기를 이번에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시면 제가 제 맏아들을 바치겠나이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너무 힘들고 절박하니까 어떤 사람이 맹세를 합니다. 맹세를 해서 그 문제가 해결되었을 때 그럼 내 맏아들을 바치겠나이다 하면 받쳐야 돼요. 그런데 사람의 마음이 간사해서 해결되고 나니까 마음이 싹 변하는 거예요.(혹은 외아들이 되어 버려서?) 맏아들을 못 받치겠다는 거예요 너무 아까워서 그럴 때는 그러면 대속을 해라 아들을 바치는 대신 하나님께서 돈을 바치라는 겁니다. 계산은 계산대로 해야 하니까, 얼마를 받치라고 해야 하면은 값이 공식가격이 딱 나와 있어요. 어떻게 되느냐? 27 2절에 보면

2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사람을 여호와께 드리기로 서원하였으면 너는 그 값을 정할지니 3 너의 정한 값은 이십 세로 육십 세까지는 그 값이 남자이면 성소의 세겔대로 은 오십 세겔로 하고 4 여자이면 그 값을 삼십 세겔로 하며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한 세겔이라는 유대나라의 돈의 단위가 현대인의 계산으로 하면 은 한 세겔이 사일분의 품삯이에요. 그러면 50세겔이면 200일이죠. 200일 품삯이면 요즘 같으면 노동자 장정 중에 아마 십만원 정도하면 이천만원 내어놓아야 돼. 맏아들 바치려고 했다가 물려고 안 받치려고 할 때는 돈으로 물어내라 그러면 한 이천만원 어떻게 어렵습니까?
그런데 여자는 조금 싸요. 여자를 물어 낼 때는 삼십 세겔을 한다. 삼십 세겔은 얼마예요?. 천이백만원 됩니까, 그 정도를 무르내면 안 바쳐도 됩니다. 돈으로 물어내고 안 받쳐도 됩니다.

5
오 세로 이십 세까지는 남자이면 ,그 값을 이십 세겔로 하고 여자이면 십 세겔로 하며
여자는 반값 등등입니다.


7
육십 세 이상은 (이른바 노인들입니다. 육십 세 이상은 영 값이 안 나가요.)
남자이면 그 값을 십오 세겔로그러면 얼마예요? 육백만원, 좀 나가네요.
하고 여자는 십 세겔로 하라(400여 만원 정도?)

8
그러나 서원자가 가난하여 너의 정가를 감당치 못하겠으면 그를 제사장의 앞으로 데리고 갈 것이요 제 사장은 그 값을 정하되 그 서원자의 형세대로 값을 정할지니라
그 다음 9절에 서원을 무르는 제물로 가축을 드릴 경우입니다.

9
사람이 예물로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 생축이면 서원물로 여호와께 드릴 때는 다 거룩하니10 그것을 변개하여 우열간 바꾸지 못할 것이요 혹 생축으로 생축을 바꾸면 둘 다 거룩할 것이며

표현이 어려운 편인데 사람을 바치는 게 아니고“어떻게 해주시면 소를 한 마리 드리겠나이다.”라고 했을 땐,  소를 바쳐야 돼죠. 사람하고 달리 소는 못 바칠 이유가 없다는 거죠. 그런데 소나 양을 바칠 땐,  저녁에 풀 먹고 돌아 오는 양 중에, 목자의 손 아래로 지나가는 양을 계수할 때 십일조로 드릴 경우도 그렇고짐승이 지나갈 때 하나, , , ,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 하다가 열번째 걸린 거를 바쳐야 돼요.

십분의 일을 바칠 때는 열 번째 지나가는 목자의 손 아랫것은 받쳐야 하는데 너무 잘 생기고 튼튼한 양일 걸렸어! 또 그러면 그걸 너무 아까워서 바꾸고 싶은 겁니다. 다른 놈하고 바꾸면 하나님께서 “두 개 다 받쳐”바꾸면 둘 다 바쳐야 해요. 인간이 쩨쩨하게 못하게 하는 겁니다. 하나님께 약속을 한 것을 지켜야 복을 주신다는 거죠. 그걸 못 믿어 가지고 그렇게 간사하게 하면 둘 다 거룩하게 되어서 둘 다 집으로 못 가져가요. 그런 겁니다.

11
부정하여 여호와께 예물로 드리지 못할 생축이면 그 생축을 제사장 앞으로 끌어갈 것이요 12 제사장은 그 우열간에 정가할지니 그 값이 제사장의 정한 대로 될것이며
13
그가 그것을 무르려면 정가에 그 오분 일을 더할지니라

만약에 간사하게 바꾸지 않고 열 번째 손아래 지나가는 양이 너무 새끼 잘 낳게 생겨서 암양이고 그러면 씨 암양으로 집에 남겨야 되겠습니다 하고 제사장에게 사정하면 그 값에 오분의 일을 더해야 됩니다. 만약에 십 만원 가격의 짐승이면 십이만원을 물어내고 대속 될 수 있습니다. 또 역시 융통성이 있는 거예요.
집도 그렇고 밭도 그렇고 다 그렇습니다.

19
밭을 구별하여 드린 자가 그것을 무르려면 정가한 돈에 그 오분 일을 더할지니 그리하면 그것이 자기 소유가 될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중략)

 

 26 오직 생축의 첫 새끼는 여호와께 돌릴 첫 새끼라 우양을 물론하고 여호와의 것이니 누구든지 그것으로는 구별하여 드리지 못할 것이며
하나님이 이미 지정하신 것이 있어요. 따로 이미 결정된 거니까 그것을 가지고 다른 재물로 삼을 수 없다 그 말이죠.
27
부정한 짐승이면 너의 정가에 그 오분 일을 더하여 속할 것이요 만일 속하지 아니하거든 너의 정가대로 팔지니라
27
절은 어려운 말인데 바칠 때 어떤 변수도 없이 아주 받쳤다 할 때는 그것은 대속이 안 됩니다.
28
오직 여호와께 아주 바친 그 물건은 사람이든지 생축이든지 기업의 밭이든지 팔지도 못하고 속하지도 못하나니 바친 것은 다 여호와께 지극히 거룩함이며
29
아주 바친 그 사람은 다시 속하지 못하나니 반드시 죽일지니라

그래서 아주 바친(최종적으로?) 사람은 속하지 못한다는 것 입니다. 사람을 속한다는 말이 아니고 아주 바친다는 말이 밭이나 생축이나 이런 것을 아주 바친 사람은 그걸 속하지 못하고 반드시 생축은 죽여서 바쳐야 합니다. 두 번씩?은 못 바꿉니다.

라는 의미인 듯 합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하나님께 헌금을 드려 놓고 싸움이 일어나 그 헌금을 몇  달 혹은 몇 년 후 돌려 받겠다는 사람들이 있는데.그것은 돌려 줄 수 없는 일입니다. ? 최종적으로 그가 하나님께 결정해 드린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헌금을 돌려 받으려면 죽어야 합니다. 그러면 돌려 받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헌금 돌려 받겠다고 목숨 내 놓을 성도는 없겠지요?

 

(중략)

33 그 우열을 교계하거나 바꾸거나 하지 말라 바꾸면 둘 다 거룩하리니 속하지 못하리라 34 이상은 여호와께서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모세에게 명하신 계명이니라

결론)

 

끝으로, 마태복음 5 33절 이하는 맹세는 될 수 있는대로 하지 말라는 교훈을 주십니다. (마태복음 5:33~37)


33
또 옛 사람에게(구약시대 사람들에게) 말한 바 헛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3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찌니 하늘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35 땅으로도 말라 (땅이 네 거냐? 어떤 사람들은 하늘과 땅을 걸고 맹세한다. 그게 네 건가? 말이 안 되느니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말라(예루살렘이 네 거냐, 그게)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36 네 머리(Head)로도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Hair)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37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옳은 것은 옳다), 아닌 것은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가능한한)절대 (함부로) 맹세하지 말고 순리를 따라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은 가르치셨습니다. 그래도 맹세했다면 꼭 지켜야 하고 못 지킬 경우는 오분의 일을 더해 보상하셔야 합니다.


고로 우리의 기도는 다음과 같아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 옛적에는 세상에 내 것이 있는 줄 알고 이것, 저것을 걸고 맹세하고 서원하고 또 그것을 지키지 못해서 또 대속해 내고 이런 일이 있었으나. 주님 말씀을 생각해 보면 우리가 아무것도 우리 것이 없기 때문에 무엇을 걸고 맹세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가 알게 됩니다. 또 우리가 세상에서 항상 옳은 것은 옳다 하고 아닌 것은 아니라 하는 편에 서서 하나님의 영광 가리우지 않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드며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051821
안익선 목사/ 참조:노우호 & 유앙겔리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