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갈라디아서 2장 강해(예루살렘 방문과 베드로의 책망사건)

호걸영웅 2022. 1. 27. 00:07

갈라디아서 2장 강해(예루살렘 방문과 베드로의 책망사건)

서론)
바울에게 있어서 아킬레스건이라 할 만한 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예수님과 동고동락
한 제자가 아니요 사도도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를 대적하는 모든 자들은 끊임없이
 바울의 사도권에 대해 의문을 제시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전한 복음까지도 믿을 수 없는 것이
라고 호도하였습니다.
 그러자 사도 바울은 자신이 전한 복음이 얼마나 신적 기원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자신의 사도
직이 얼마나 정당한 것인지를 변론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야만이 자신이 전한 복음을 믿고
성령 받고 구원받은 이들을 지켜낼 수 있었고, 미혹 받는 성도들을 건져낼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
. 그래서 오늘 이 시간은 지난 시간에 이어 바울의 사도권에 대한 변호에 대해 좀 더 살펴보고
자 합니다. 그리고 더불어 그가 받았던 복음 진리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도록 합니다. 
 
본론)
)갈라디아서 2장의 주요 내용
갈라디아서 2장은 크게 3부분으로 나눠볼 수 있는데, 첫 부분(2:1~10)에는 바울의 예루살렘
총회 참석과 디도에 대한 할례요구 거부 및 바울의 이방인 사도직에 대한 공식입장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둘째 부분(2:11~14)에서 베드로의 책망사건을 통한 율법주의적 잔재에
대한 지적을 다루며, 셋째 부분에서는 이신득의(以信得義)의 절대성과 확실성 및 율법회귀로의
 부당성(2:15~21)에 대해 언급합니다. 
 
)바울이 예루살렘 총회에 간 이유
바울에게 있어서 예루살렘의 방문은 총 5차례 있었는데요. 그중에 첫번째 방문은 그가 회심한
3년만에 있었습니다. 그는 아라비아로 갔다가 예루살렘을 다시 방문하게 되었는데, 이는 베드
로와 주의 형제 야고보를 만나 자신의 회심과정을 설명하려는 것이었죠. 처음엔 예루살렘의 성도
들과 장로들과 사도들이 바울을 접촉하기를 꺼렸지만, 이내 바나바의 중재로 인하여 베드로와 야
고보가 바울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15일간 함께 있으면서 자초지종을 함께 나누게 됩니다.
 
그리고 그의 두번째 방문은 구제헌금 전달 때문이었죠. 사도행전 11장에 보면, 1차로 예루살
렘을 방문한 후 바울은 자기의 고향 길리기아 다소로 갔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대한 핍박으
로 인하여 흩어진 유대인들이 수리아의? 안디옥에 가서도 복음을 전하는데, 그들은 유대인 뿐만
아니라 헬라인(이방인)에게도 복음을 전파합니다(11:19~20). 그런데 구브로와 구레네의 몇몇
 사람들이 안디옥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데, 그 결과 수많은 사람들이 개종하고 주님을 믿게 되는
놀라운 일이 발생합니다.
 
그러자 예루살렘 교회에서는 구브로 출신의 레위족이었던 요셉이라는 사람 그리고
자기의 밭을 팔아 사도들의 발 앞에 바쳤던 바나바(4:36~37)를 그곳의 교역자로 파송합니다.
그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죠(11:24). 그런데 더욱 사람이
많이 몰려오자, 과거에 바울을 만난 적이 있던 바나바는 안디옥에 가서 바울을 데려다가 같이 사
역을 하게 됩니다.
 
그러던 중 로마황제 글라우디오 때에 선지자 아가보의 예언대로 천하가 큰 흉년이 들었는데, 그 때
예루살렘교회에도 어려움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자 바울과 바나바는 구제헌금을 마련하여, A.D.46
년경  그것을 예루살렘 교회에 전달하기 위해 두번째로 예루살렘을 방문하게 됩니다. 
 
 그리고 바울의 예루살렘의 세번째 방문은 복음의 진리를 파괴하고 있는 "거짓형제들" 때문이었습
(2:4). 수리아?의 안디옥 교회와 그리고 바울이 개척한 갈라디아의 교회들에 가만히 몰래 들어
  거짓 형제들(유대 율법주의자들이면서 복음을 받아들인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방인들이라도 구원을 받으려면, 예수님 한 분을 믿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유대인들처럼 
할례도 받아야 하고 모세의 율법도 지켜야 한다 했습니다. 그때 바울은 충분히 복음의 진리로 그
들을 훈계할 수도 있었겠지만, 사도권까지 문제삼고 있는 그들에게 바울의 사도직과 바울이 전한
 복음이 합당하다는 것을 알게 할 필요성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바울은 그 문제를 예루살렘 교회로 가지고 가서
 논의하기 위해 예루살렘을 방문하게 됩니다. 그때 바울은 바나바와 헬라인 디도 및 몇몇 사람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갑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교회 안에 있는 이들 중 바리새파 사람들은
이방인에게도 자기들처럼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고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하죠.
 하지만 사도들의 대표자였던 베드로가 일어나, 자기가 일전에 보았던 보자기 환상과 그리고 그 일
로 인하여 고넬료 가정에 말씀을 전했을 때, 말씀을 듣는 중에 이방인들도 성령을 받는 것을 보면
, 이제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이나 유대인들이나 상관없이 주 예수님을 믿을 때에 구원을 받는
것이라고 말해 줍니다(15:7~11).
 
그러자 예루살렘회의 장로들의 대표이며, 예루살렘 총회의 대표격이었던 예수님의 친동생 야보고가
일어나 말하기를, 이방인이 주께 돌아온다면, 그들에게 자기들처럼 율법의 멍에를 두어 그들을 괴
롭게 하지는 말고, 다만 그들이 사는 지역에도 율법을 전하는 자가 있고 율법 말씀을 아는 자가
있으니, 이방인들에게는 4가지 정도만 주의시키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우상의 제물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온 교회와
사도들과 장로들 모두는 야고보 안을 채택하고는, 그 소식을 예루살렘교회의 선지자였던 유다와 실
라를 바울 편에 딸려보내 비시디아의 안디옥 교회에 파송합니다. 이것이 바울의 3차 예루살렘
방문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2차 전도여행을 마친 후에 잠깐 예루살렘에 들렀으며(18:22,4차방문, A.D.52),
그리고 3차 전도 여행을 마치고는 일부러 예루살렘에 들르게 되는데(5차방문), 이것이 바울의
5차방문(A.D.58, 21:17~26)입니다. 
 
)예루살렘 총회 때에 헬라인 디도를 굳이 대동한 이유
그런데 바울은 왜 예루살렘 총회에(3)방문할 때에, 굳이 헬라인이었던 디도를 데리고 간 것
일까?
당시 "디도"는 바울이 자신의 아들같이 여기던 동역자였죠. 바울은 훗날 디모데를 자신의 아들
이라고 말했지만, 그 이전에는 디도를 자신의 참 아들이라고 불렀습니다(1:4).
이때 바울이 예루살렘에 데리고 간 디도는 신약성경에 나오는 "디도서"의 저자입니다. 그는 헬라
인 곧 이방인으로서 안디옥 교회에서 사역자가 된 사람인데, 먼저는 고린도교회에 파송을 받고
사역한 자였으며, 그후에는 그레데 교회에서 사역하였고(1:5), 마지막으로 달마디아 지역(그리
스 북서부보다 더 북부의 지역, 오늘날 크로아티아에 속함, 달마시안 견종의 출현지)에 가서 복
음을 전파한 사역자입니다(딤후4:10).
 
이때 바울은 고린도후서에서 디도를 고린도교회의 훌륭한 사역자로서 소개하는데, 그때 바울은
 "그는 나의 동료요, 너희를 위한 나의 동역자요, 우리 형제들로 말하면 여러 교회의 사자들이요
 그리스도의 영광(고후8:23)"이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이방의 헬라인이었죠. 그는 할례받지 아니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고로 바울이
그를 예루살렘총회에 데려간 이유는 할례를 받지 않아도 구원받는다는 것을 알리기 위함이었죠.
 바울은 자신이 있는 곳이 비록 예루살렘일지라도 디도로 하여금 억지로 할례를 받지 않게 하였죠.
 그 이유는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은 외적 할례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을
 보여 주려 함이었습니다.
그때 바울은 예루살렘의 유력한 자들(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같은 예루살렘교회의 지도자들)
따로 불러 사정을 이야기했는데, 실은 아무도 디도의 할례문제를 지적하지 않았으며 그를 억지로
 할례받게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일로 인하여 바울은 이방인들이 할례를 받지 않아도 얼마든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약속에 참여한 자가 될 수 있음이 확증할 수 있었습니다. 
 
) 유대 율법주의자들인 거짓형제들이 이방 교회에 들어오려 한 이유
유대율법주의자들이면서 믿는 자들 중에는 예수님을 믿는 것만으로 구원받을 수 없고 할례를
받고 모세의 율법도 지켜야 한다는 그릇된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방인들이 너무나 쉽게
율법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게 된 듯 보이자(2:4) 율법주의자였던 형제들은 이방인일
지라도 자기들처럼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가르치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바울이 복음을 전파
한 지역의 교회들을 찾아다니면서 "다른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1:6~9).
그때 그들이 사람들을 쉽게 속일 수 있었던 것은 바울이 과연 사도로서 합당한가 하는 반문이었고,
바울이 전한 복음이 과연 예루살렘의 사도들이 전했던 복음과 일치하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바울은 일부러 믿는 이들의 구원에 있어서 중요한 2가지 문제 곧 할례 행함과 모세율법
 준수 문제를 예루살렘으로 가져가서 확답을 받아오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교회의 유력한 지도자들도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듣고서 더 이상 다른 것을 요구한
복음엔 없었다고 확정하게 됩니다(2:6b).  
 
)바울의 사도권이 모든 교회들에게 널리 받아들여지게 된 결정적인 사건
사실 바울이 ''사도'인 것과 그가 전한 복음이 진짜라는 것은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을까요? 그것
은 먼저는 결과물인 갈라디아 성도들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즉 바울이 전한 복음
을 들었던 자들이 결국에는 성령을 받게 되었고, 구원을 받았기 때문이죠. 또한 율법준수와 할례
문제에 있어서는 예루살렘총회에서, 오직 은혜로서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만 받는 것
 결정됨으로 인하여 또한 확증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의 사도권과 바울이 전한 복음은
 이제 누구든지 공식적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고 인정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바울의 사도권 및 바울이 전한 복음이 하나님의 진리에 속한 것임을
드러내주는 사건이 하나 터집니다.
 그것은 바울이 베드로를 그의 면전에서 책망한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죠(2:11~14).
 
그리고 이러한 일은 사실 있을 수 없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바울은 누구보다도 자신이 어떠한 사
람인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죠. 그는 자신을 일컬어,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다고 말했었고
사도들 중에서도 가장 작은 자라고 말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의 교회를 잔혹하게 핍박
하였고 예수를 직접 모시지도 못했었기 때문입니다(고전15:8~9). 그런데도 바울은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만 베드로 사도를 책망하는 일이 생겼던 것이죠. 그것은 베드로가 복음 진리에서 그만
현저히 벗어나는 행동을 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A.D.49년 예루살렘총회 이후, A.D.52
년경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 출발 직전의 사건입니다.
 그것은 베드로가 수리아의 안디옥교회를 방문하면서 그때 할례파였던 예수님의 친동생 야고보에
게서 온 이들이 안디옥교회에 도착하자,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던 베드로가 슬금슬금
그 자리를  피해서 물러갔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그것을 지켜보던 남은 유대인들도 베드로의 외
식에 물들어  그 자리를 피해버렸고, 심지어 안디옥교회의 지도자였던 바나바도 역시 베드로의
 행동을 따라 함께 행동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바울은 베드로에게 그의 면전에서 즉 모든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서  그를 책망하기를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이방인과 함께 지냈으면서, 이제는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이방인들을 떠나 멀리 하려고 하느냐"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예수님을 믿음으로 한 형제와 자매된 것을 깨뜨리는 행위였기 때문입니다.
 
) 바울이 전한 복음의 핵심
그렇다면 바울이 그토록 목숨걸고 전하려 하였고, 위대한 예수님의 수석 사도였던 베드로를 책
망하면서까지 전하려했던 "복음의 진리"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요약하면 2:16의 말씀이죠.
 종교개혁자 루터도 이 말씀 때문에 중세의 잘못된 구원관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
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라는 말씀입니다.(이신득의)
 
그렇습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어지는 것은 율법을 지킨 결과 자신의 의로운 행위로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죠.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을 통하여서 주어집니다. 율법의 행위로 따진다면
 이 세상 사람 어느 누구도 의롭게 될 사람은 없어요. 왜냐하면 모든 율법을 아무리 잘 지키다가도
 어느 조항 하나만 지키지 못해도 그 사람은 율법을 지키지 못한 자가 되기 때문이다(2:10~11).
고로 바울은 사람은 어느 누구도 율법의 모든 조항들을 지킬 수 없다고 하였죠. 그런데 만약 그것
이 가능한 일이라고 한다면, 그리스도는 헛되이 죽은 것이라고 했습니다(2:21).
 
결론)
우리는 바울의 이런 모습을 볼 때 감탄하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특히 예수님의 수석 사도였던
베드로 앞에서도 바울이 굽히지 않고 복음의 순수성을 변호하는 장면이야말로 그가 얼마나 성령
의 사람이었고 순전한 복음의 사람이었는지를 우리에게 알게 해 줍니다. 그는 사람이 어떻게 되어
서 의롭게 되는 것이며, 어떻게 해야 구원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지를 분명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처음부터 그리스도로부터 받았던 참된 복음의 계시를 초지일관 그대로 붙들고
살았으며, 그것과 씨름했고 그것을 전하기 위해 몸부림쳤으며, 그것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까
지도 내놓았던 위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할례자들에게만 주로 복음을 전했던 예루살렘교
회의 믿음은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없어졌지만,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한 수리아의 안디옥 교회의
 믿음은 유럽과 미국을 거쳐 한국에까지 교회들을 세워 나가고 있습니다. 우리도 바울 사도와
안디옥 교회의 믿음을 세상  끝날까지 잘 지켜 나가기 위해 수고와 헌신을 아끼지 말아야 하겠습
니다.
 
122121 안익선 목사 / 참조: 정병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