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갈라디아서 3장 강해(행위로냐 믿음으로냐?)

호걸영웅 2022. 1. 27. 00:08

갈라디아서 3장 강해(행위로냐 믿음으로냐?)

 

지난 주 , 2장에서…… 바울은 자신의 사도직을 변증하고 자기가 전한 복음이 예루살렘의 사도들과 상관 없이 주님께로부터 직접 계시된 것임을 밝혔습니다. 복음은 유대적 전통이나 율법과 상관없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고 의롭게 되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이제 3장에서는 그리스도를 믿은 믿음이 무엇인가를 밝힙니다. 3장은 아래와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1-14절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성령을 받았음에 대해
2. 15-22
절 율법과 약속에 대해
3. 23-29
절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율법의 기능에 대해

 

본론)

) 1-14절 율법적 행위가 아니라 바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성령을 받았었다 

1. 믿음으로 성령을 받았음에 대하여.(1-5)

3:1절은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로 시작합니다. 이 부분을 원어를 직역해 보면 ‘정말 어리석은 갈라디아인들아!’가 됩니다.

 

바울이 일반적으로 교인들을 향해 대체로 ‘형제들아’ 라고 부르는 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인 호칭입니다. 토마스 R. 슈라이더는 ‘그들의 의무를 환기시키기 위해, 그들을 더 공식적이고 퉁명스럽게 부른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갈라디아 교인들이 복음의 원리나 그 기능이 너무나 분명하게 드러나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무엇인가에 홀린 것처럼 거짓 교사들의 논리에 빠져들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꼬이더냐?”라고요.

즉 십자가가 명백하게 복음을 설명해 주고 있는데도 어떻게 갈라디아 교인들이 잘못된 가르침에 빠져들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도무지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2절에서 그 책망의 이유를 설명합니다. 갈라디아 교인들이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듣고 믿음’으로 인한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즉 로마서 10:10 말씀처럼 구원은 복음을 듣고,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릅니다. 바울은 분명히 말합니다.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에 이르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왜 다시 율법으로 돌아가려는가? 바울은 어처구니 없는 갈라디아인들을 향해 안타까움을 토하고 있습니다. 성령 받음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예수 복음을 듣고 믿었기 때문입니다.(5)이 부분을 미루어 생각해 보면 갈라디아 지방에서도 많은 성령의 역사가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방언이나 예언, 귀신 좇음, 병고침 등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2, 믿음의 내용에 대하여

그렇다면 무엇을 믿는다는 말입니까? 사도 바울은 아브람이 하나님을 믿었던 창세기의 기록을 실례로 언급합니다.

6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고 했어요.

 

이 말씀은 창세기 15:6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15: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라는 부분입니다.

이 부분은 횃불 언약으로 불리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자손을 약속하시면서, 후손들이 애굽에서 많은 재물을 가지고 나올 것을 예언한 부분입니다. 횃불언약이 있기 직전,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아브라함에게서 나온 씨가 상속자가 되어 하늘의 별처럼 많은 민족을 이룰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로 여기셨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그대로 가져와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은 믿음으로 되는 것이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 3:7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라 합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을 육신적 자손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 것처럼 신약의 모든 이방인들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26절을 보십시오.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됩니다. 29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그리스도의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아브라함처럼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입니다.

 

그렇다면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을 믿습니까? 바울은 10-14절에서 십자가의 도를 설명합니다.

 

하나님은 율법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율법을 지켜야할 의무를 갖게 됩니다. 그러나 율법을 모두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은 율법의 저주?(속박,굴레,테두리,준수의 책임감) 아래 놓이게도 됩니다.(10)

 

 바울은 13절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해 율법의 저주를 받으심으로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셨다고 선언합니다.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합니다.

 

13절의 말씀은 신명기 21:23을 인용한 것입니다. 신명기 21:22-23을 봅시다.

[신명기 21:22-23]

 22 사람이 만일 죽을 죄를 범하므로 네가 그를 죽여 나무 위에 달거든 23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그 날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율법을 어겨 저주를 받아 죽은 형벌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모든 인간들이 죄를 율법을 어김으로 죽어 마땅한 존재이지만, 예수님께서 친히 그 형벌을 감당하심으로 우리를 속량하신 것입니다. 바로 이 사실을 믿으면 의롭게 됩니다.

 

) 15-22절 율법과 약속에 대해

바울은 두 번째 논증으로 넘어갑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네 씨’로 말미암아 약속을 상속하게 될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아브라함의 ‘그 씨’를 이삭이 아닌 ‘그리스도’(16)라고 선언합니다. 사도행전으로 돌아가 볼까요? 그곳에서 베드로가 오순절 성령 임함을 설명하면서 이렇게 선포합니다.

[사도행전 2:29-31] 29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30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31 미리 본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되 그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그의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라고 했습니다. (이 부분으 시16:10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신다는부분을 주목하라, 참고:110:1~7=메시야의 맬기세댁 이심과 하나님의 오른편 앉으실 자 임을 예언한 부분이다 )

 

,다윗은 예수님의 부활을 약 천년 전에 미리 듣고 알고 보았습니다. 이처럼 아브라함 역시 자신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루어가실 구속사를 보았습니다. ‘미리 봄’은 약속 즉 언약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믿음의 눈으로 본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메시아에 대한 약속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17절에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언약을 아브라함과 약속하신지 사백삼십 년 후에 생긴 율법이 폐기하지’ 못한다고 선언합니다.

율법보다 앞선 것은 바로 약속입니다. 복음은 약속의 성취를 통해 이루어진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입니다. 율법이 저주를 선포하고, 죄 아래 가두지만(22)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믿는 모든 이들에게 구원과 해방과 자유를 허락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11)고 선언했습니다.

 

) 23-29절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율법의 기능에 대해

그럼 율법이 하는 일은 무엇일까요? 이곳에서 간략하게 살펴봅시다.

1. 모든 율법은 모두가 지켜야할 의무를 가집니다.

10절 말씀을 보면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행하지 않는 자는 저주 아래 있다-고 말합니다. 즉 모든 율법은 단 하나라도 범해서는 안 됩니다. 모든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면 저주를 받게 됩니다.

 

2. 성령은 율법의 행위로 받을 수 없습니다.

5절에 의하면 성령은 율법의 행위로 받을 수는 없습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가능했습니다.

 

3. 율법은 죄를 범하지 않기 위해 주어진 것입니다.

19절을 보십시오. 바울은 율법이 주어진 이유를 범범함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율법은 하나님께서 지키라고 주신 것입니다. 즉 율법을 통해 거룩함을 유지하고, 하나님을 기억하기 위해 주신 것입니다. 자유를 누리라고 주시진 않았습니다. 죄를 막기 위해 율법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4. 율법은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목적과 기능이 있습니다.

마지막 네 번째 율법의 기능은 본문 23~25절에서 나타난 대로 그리스도께 사람들을 인도하는것입니다. 특히 24절에 주목하시길 바랍니다.

 

23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24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25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라고 했습니다.

(;운전면허를 따면 더는 운전 강사가 필요 없음)

 

결론)

율법은 하나님께로 온 것이기 때문에 자체적으로는 의롭고 거룩합니다. 그러나 율법을 지키는 자들을 온전히 의롭게 하지는 못합니다. 하나라도 어기면 바로 죄인이 됩니다. 통제하는 기능을 가진 것 뿐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복음을 믿는 자들을 온전히 의롭게 합니다. 아담은 우리를 죽게 한 영이지만, 예수님은 우리를 영원히 살게 하시는 생명의 영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논리적으로 원래 영생의 영을 가졌던 아담 한사람의 죄로 인한 저주와 사망이 예수 한사람의 대속과 희생으로 사함 받은 것이 복음입니다.

[고전]15:45에서,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Living Soul)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라고 한 바와 같습니다.

 또한 사망도 한 사람에서 시작 되었으니 영생도 한 사람으로 가능한 것은 자연스러운 원리입니다.

 

복음을 믿음으로 주신 온전한 자유를 영원토록 환영하고 기뻐하고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소원하고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122821 안익선 목사/ 참고:샤마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