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갈라디아서 5장 강해(자유케 하신 예수와 성령의 열매)

호걸영웅 2022. 1. 27. 00:11

갈라디아서 5장 강해(자유케 하신 예수와 성령의 열매)

 

서론)

갈라디아서 5장은 선언과 명령으로 시작합니다. 선언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다’는 것이고, 명령은 ‘그러므로 굳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는 것입니다. 5:1은 갈라디아서의 전체 요약인 동시에 권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5장은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1. 1-12절 율법주의와 거짓 교사들을 배척하라

2. 13-26절 성령을 따라 행하라.

 

본론)

1. 1-12절 율법주의와 거짓 교사들을 배척하라

5:2에서 당시 갈라디아 교회들에 대한 주요 문제 혹은 이슈가 드러납니다. 그것은 바로 할례입 니다. 실제로 당시 유대인들은 율법을 완벽하게 지키진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율법의 저주에서 벗어나 아브라함의 자손인 것을 확신케 해주었던 근거는 바로 할례였습니다. 할례를 하나님께서 자녀를 약속하신 후에 언약의 표로서 할례를 받도록 했습니다. 창세기 17장으로 가보겠습니다. 이곳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나이 구십 구세에 나타나 언약을 재확신시켜 줍니다.

[창세기 17:9-14] 9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10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11 너희는 포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12 너희의 대대로 모든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또는 너희 자손이 아니라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막론하고 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13 너희 집에서 난 자든지 너희 돈으로 산 자든지 할례를 받아야 하리니 이에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려니와 14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포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할례는 하나님과 아브라함과의 언약이며, 동시에 할례를 받게 된다면 그 언약이 유효하게 됩니다. 예루살렘에서 내려왔던 거짓 교사들은 다른 부분도 그랬지만, 바로 이 부분을 집요하게 파고들었고, 이것으로 갈라디아인들을 유혹했습니다.

 

여러분, 이러한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성도가 몇이나 있을까요? 그런데 바울은 이들의 거짓에 대해 명백하게 선언합니다. 2절 후반부를 보십시오.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

 

즉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가 할례 받은 갈라디아인들에게 아무런 효능도 가져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할례를 한 가지를 행하게 되면,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모든 율법을 다 행해야 한다-라는 논리입니다.(3)

 

 결국 율법으로 의롭다함을 받으려 하는 자들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4)지게 됩니다. 참으로 무서운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할례는 예수님을 믿고 추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할례를 받게 되면 그리스도의 공로가 무가치하게 되어 결국 모든 구원이 취소되고 율법아래 다시 갇혀 버리고 예수의 십자가는 헛것이 될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 교인들은 율법을 행하든지, 그리스도를 믿든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율법도 행하고 예수도 함께 믿을 수 없습니다.

 

2. 13-26절 성령을 따라 행하라.

1. 그럼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바울은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합니다. 13절을 보십시오.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얻었으니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사랑 안에 모든 율법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사랑이야 말로 율법의 핵심이고, 원리입니다.

 

그럼 우리가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까요? 노력한다고 될까요? 바울은 ‘성령을 따라 행하 라 ’며 16절에서 조언합니다.

 

성령과 육체의 소욕은 서로 대결하며 경쟁합니다. 우리 안에는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성령이 함께 합니다. 그러나 육신을 벗지 못했기 때문에 악의 소욕이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성도는 육체의 욕망과 성령의 인도하심 사이에서 긴장된 삶을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2. 육체의 일

육체의 일을 보십시오.(19-21) 육체의 일은 음행, 더러운 것, 호색(好色), 시기, 분냄, 당 짓는 것, 분열함, 이단, 투기, 술 취함, 방탕함, 그와 같은 것들이라고 말합니다.

 

육체의 일은 특징은 24절에서 언급하고 있듯이 탐심입니다. 모세는 출애굽기 20장에서 십계명의 마지막 열 번째 계명을 ‘탐심으로 규정했습니다. 아마도 바울은 골로새서 3:5에서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라고 선언했습니다.

 

육체를 따르는 것은 오직 자신의 유익과 쾌락만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수단으로 사용하고 이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에게 경배를 받으시지만 피조물을 사랑하시고 돌보십니다. 하지만 악의 본성은 오직 경배만을 받으려고 돌보지도 사랑하지도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타락의 본질입니다.

 

3.성령의 열매를 맺으라

이어서 사도 바울은 오히려 육체의 일보다는 성령의 열매를 맺는 일에 집중하라고 하십니다.

이제 성령의 열매를 보십시오. 22-23절에서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언급합니다.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입니다. 이 모든 것들은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얻어지는 것들로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기 위해 필요한 덕목들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성령의 열매가 충만히 맺힐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마땅합니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에 대해 잠시 알아 봅니다]

사랑(γάπη, Love)

갈라디아교회가 고린도교회처럼 현저하게 드러난 분당과 다툼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거짓

교사들로 인해 적지 않은 다툼이 일어났고, 교회는 혼란에 빠졌습니다. 율법의 목적이자 전제, 핵심은 바로 사랑입니다. 신약의 저자들은 아가페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사랑하시는 사랑에 종종 빗대어 사용하며, 성도들의 삶이 그러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더글라스 무는 “사랑은 하나님과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가지신 사랑과 서로를 향한 우리의 사랑을 나타낸다”라고 말합니다. 이 사랑 아가페는 무조건 적이고 사랑의 근원이신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사랑입니다. (육체만의 사랑인 에로스, 친구와의 우정을 말하는 필로스, 육친의 사랑인 스트로게와 비교해 봅시다)

 

희락(χαρά, Joy)

카라는 선이 나열된 목록 중에서 이곳에서만 사용된 단어입니다. 희락 즉 기쁨은 육신의 쾌락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 오는 기쁨이며,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감정으로부터 나오는 평안한 마음의 상태이며 어려움과 시련 가운데서도 여전히 존재하는 감정’입니다.

 

화평(ερήνη,Peace)

화평은 히브리어 ‘샬롬’을 번역한 것입니다. 외적인 평화를 표현하지만 신약의 저자들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오는 화평을 더 주요하게 다룹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진 하나님과의 화평이야 말로 진정한 화평입니다.

 

오래 참음(μακροθυμία, patience)

성령을 모신 자는 불신자들에 비해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오래 참고 잘 견딜 수 있게 됩니다. 사람들과의 불편한 관계도 성령의 도우심으로 잘 참아 주게 됩니다.

 

자비(χρηστότης , Kindness)

자비로움은 "인자하심"(창세기19:19), "은혜로우심"(창세기20:13), "긍휼하심"(마태복음9:13)과 동일한 맥락과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히브리어 "라함"이라는 단어도 긍휼의 감정으로 영어로 번역될 때에는 사랑(Love)으로 호칭되었습니다 

우리의 자비는 세상 가운데에서 아주 짧은 형태로 드러나기도 합니다 

이방인(레위기19:34), 고아(스가랴7:9~10), 궁핍한 자(마태복음5:7), 약한 자(사도행전20:35), 우는 자(로마서12:15), 이웃(로마서15:2), 시험을 받는 자(갈라디아서6:1~2), 성도(에베소서4:32), 과부(디모데전서5:9~10), 반대편에 있는 사람(누가복음6:34~35) 들과 같이 자비의 대상과의 관계속에서 성령의 긴밀한 인도하심으로 은밀한 가운데 이루어져 가야 할 것입니다(빌립보서2:1~2)

 

양선(γαθωσύνη, Goodness)

양선을 의미하는 헬라어 "아가도수네"(Agathosune)는 착함, 올바름, 너그러움을 뜻하는 것으로 성경에서는 선()으로 번역되기도 하였습니다(로마서15;14,데살로니가후서1:11) 

성령의 사람으로서 선은 일반적인 윤리와 도덕적 범주를 초월한 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서 선을 행한다는 것은 행위로 이어지는 종교적인 태도로 보았을때 가장 기초적이고 효과적인 측면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선한 영향력으로 사회를 인도하고 공동체를 이어가야 하는 기독교적 가치관에 있어서 선은 하나님의 본질을 형성하는 사랑에게 기인하고 있습니다 

 

충성(πίστις, Faithfulness )

"확실, 진실"이라는 의미의 히브리어 "아만"(aman)에서 유래한 "네에만"(neeman)은 나라, 조직, 지도자 등을 위해 몸바쳐 순종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충성은 종이 가져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덕목이라 할 것입니다  

노아와 모세(민수기12:7)와 요셉과 아브라함(느혜미아9:8)은 성경에서 말하는 대표적인 충성가 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아버지께 죽기까지 충성을 다함으로서 만인의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히브리서3:2,2:17) 

죽도록 충성하는 자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은(요한계시록2:10)

끊임없이 요동치는 세상가운데 변질과 배신으로 얼룩진 조변석개(朝變夕改)와 같은 불신앙적 태도를 제거하라는 명령과도 같은 것입니다  

 

온유(πραΰτης, Gentleness)

히브리어 "아나와"(nawah)에서 유래한 온유함이란 온화하고 부드럽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분냄과 성냄이 없고 자비로운 마음과 절제된 평화가 유지되는 온유함은 모든 사람들에게 자석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온유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배려와 관용으로 한걸음 물러서서 이해해 주는 마음으로 성령님이 주시는 특별한 은사와 같은 것입니다(야고보1:12,갈라디아6:1) 

온유함은 주님의 성품을 본받는 것으로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고 하였습니다(마태복음11:29)  온유한 심령은 한 발 물러서서 주위를 살피고 경계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절제(γκράτεια, Self-control)

절제란 육체적 충동을 억제하는 능력으로 성령을 떠나서는 실현이 불가능한 부분입니다 

정욕의 통제력이 성을 빼앗는 군대보다 낫다고 평할 만큼 절제는 어려운 과제입니다(잠 언16:32) 

절제는 영적 지도자들이 추구해야할 가장 큰 덕목중의 하나라 할 것입니다  

인생의 여정 가운데 어디에서 어느 틈에서 브레이크를 밟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사실 현장에서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 모든 사람에게는 욕망이 있고 욕심이 있으며 성취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 베드로 사도도 절제를 언급한 바 있습니다. (베드로후서1:6)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더 하라 했습니다.

 

결론)

결국 성령의 아홉가지 성령을 통하지 않고서는 어느 한 곳에서라도 바르게 자라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치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모든 성령의 열매들은 독자적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줄기속에서 펼쳐지는 목걸이의 사슬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신앙생활 속에서 성령의 열매가 맺어지도록 기도하고 힘쓰고 노력해야 합니다.

 

011121 안익선 목사/ 참조:인생 메모리 &팡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