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 상하

사무엘하 20장 강해( 세바의 반란과 요압의 진압)

호걸영웅 2022. 4. 6. 01:36

사무엘하 20장 강해( 세바의 반란과 요압의 진압)

 

서론)

지난 주 우리는 압살롬이 죽자, 이를 몹시 애통해 하던 다윗이 그 슬픔을 딛고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던 길에 요단강 가에 이르렀을 때에 그곳에서 벌어졌던 여러가지 일들을 살펴 보았습니다.
그 중 마지막으로 등장했던 사건이 이스라엘 사람들과 유다 사람들간의 충돌이었는데 미처 자기 이스라엘 지파들이 다 모이기도 전에 다윗 왕 일행이 요단 강을 건너자, 온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 함께 다윗 앞에 나아와 유다 사람들에게 따지기를 '너희는 어찌하여 우리가 다 함께 모일 때까지 기다려 우리와 같이 왕을 모시고 강을 건너지 아니하고 너희들만 있을 때 왕과 그 권속들을 인도하여 요단을 건너게 하였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유다 사람들이 대답하기를 '다윗 왕은 원래 유다 지파 출신이 아니냐'라고 하면서 다윗을 예루살 렘으로 다시 모셔들이는 과정에서 유다와 이스라엘 간에 커다란 논쟁이 벌어지게 되었는데 유다 사람의 말이 이스라엘 사람의 말보다 더 강경했다 했습니다. 그런데 이 와중을 틈타 불량자 세바라는 사람이 등장하여 이스라엘과 다윗 사이를 이간시키게 됩니다.

본론)

가) 세바의 반란

(20:1)="마침 거기 불량배 하나가 있으니 베냐민 사람 비그리의 아들 세바라 하는 자라 저가 나팔을 불며 가로되 우리는 다윗과 함께할 분깃(part)이 없으며 이새의 아들과 함께할 기업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각각 장막으로 돌아가라 하매"라며 다윗과 동조하지 말라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은 유다와, 그리고 나아가서는 다윗과 상관이 없는 백성들이므로 다윗에게 기대를 걸 것 없이 모두 자기 집으로 돌아갈 것을 종용하였습니다.
"이에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윗 좇기를 그치고 올라가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좇으나 유다 사람들은 왕에게 합하여 요단에서 예루살렘까지 좇으니라"(20:2)고 합니다.

이로써 이스라엘과 유다 사이에 확실한 분열이 생기게 되었고, 훗날 이 분열은 한 때 솔로몬의 막강한 힘과 부에 의하여 치유되는 듯하였으나
……그가 죽자마자 다시 고개를 들고 일어나 이스라엘은 북왕국과 남 왕국 두 나라로 갈라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이 분열의 움직임이 다윗 왕 시절부터 생겨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압살롬과 동침한 후궁들에게 내린 징계

"다윗이 예루살렘 본궁에 이르러 전에 머물러 궁을 지키게 한 후궁 열 명을 잡아 별실에 가두고 먹을 것만 주고 더불어 동침치 아니하니 저희가 죽는 날까지 갇혀서 생과부로 지내니라"(20:3)

이것은 압살롬이 저 다윗의 후궁들과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동침하였었기 때문에 취해진 조처였습니다.

)아마사를 파병하여 세바를 징계하려 한 다윗
"왕이 아마사에게 이르되"(20:4a)
여러분들은 다윗이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접하라고 했던 명령을 어기고 압살롬을 살해한 요압에 대하여 다윗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음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다윗은 이 일로 요압에게 분노하게 되었고 그리하여 자신의 또 다른 사촌이요 압살롬이 군대장관으로 세웠던 아마사에게 사람을 보내어 요압 대신 그를 자신의 군대장관으로 삼으리라는 뜻을 전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너는 나를 위하여 삼 일 내로 유다 사람을 소집하고 너도 여기 있으라 아마사가 유다 사람을 소집하러 가더니 왕의 정한 기한에 지체된지라"(20:4b-5)
왜 아마사가 이같이 지체하였는 가에 관해서는 기록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 였는지, 아마사는 다윗이 삼 일 내로 유다 청년들을 소집해 놓고 그곳에서 함께 기다리고 있으라는 다윗의 명을 지키지 못하고 그 삼 일을 넘기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다윗은 아마사의 동생을 불러 일을 진척시키고자 합니다.
"다윗이 이에 아비새에게 이르되"(20:6a)

아비새는 요압의 친척 동생이기도 합니다.
"이제 비그리의 아들 세바가 압살롬보다 우리를 더 해하리니 너는 네 주의 신복들을 거느리고 쫓아가라 저가 견고한 성에 들어가서 우리들을 피할까 염려하노라 하매 요압을 좇는 자들과 그렛 사람들과 블렛 사람들과"(20:6b-7a)

)아마사의 죽음

여기 이 그렛 사람들과 블렛 사람들이라고 되어있는 것은 다윗을 호위하던 정예부대들을 말합니다.
"모든 용사들이 다 아비새를 따라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쫓으려고 예루살렘에서 나와서 기브온 큰 바위 곁에 이르매 아마사가 맞으러 오니 때에 요압이 군복을 입고 띠를 띠고"(20:7b-8a)
성경에 보면 '띠를 띠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것은 당시 사람들이 긴 도포와 같은 옷을 입었으므로 일을 하거나 달음박질을 할 때에는 이 도포자락들이 거추장스럽지 않도록 도포의 뒷자락 끝을 가랑이 사이로 빼어 허리깨까지 끌어 올린 후 허리깨에 띠를 사용하여 묶어 두었던 풍습에서 유래한 표현입 니다. 그렇게 하면 발목까지 내려오던 도포자락이 이제는 미니스커트처럼 짧아져서 달릴 때나 일을 할 때에 방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요압은 바로 이 허리 띠 속에 칼집에 꽂은 칼을 숨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집에 꽂은 칼을 허리에 매었는데 저가 행할 때에 칼이 빠져 떨어졌더라 요압이 아마사에게 이르되 형은 평안하뇨 하며 오른손으로 아마사의 수염을 잡고 그 입을 맞추려는 체하매 아마사가 요압의 손에 있는 칼은 주의치 아니한지라 요압이 칼로 그 배를 찌르매 그 창자가 땅에 흐리니 다시 치지 아니하여도 죽으니라"(20:8b-10a)

이렇게 하여 요압은 다윗이 자신을 제치고 군대장관으로 임명해 두었던 아마사를 제거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이것은 요압이 저질렀던 세 번째 의도적인 살인으로써, 모두 자신의 경쟁자를 제거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제일 먼저는 다윗이 사울의 군대장관이었던 아브넬을 자신의 진영으로 불러들이려 하자 그를 처치하였었고, 다음으로는 압살롬을 제거하였으며, 이번에 그 세 번째로 다윗이 자신의 군대장관으로 삼으려 했던 아마사를 없애 버린 것입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다윗은 자신의 임종 시 그 아들 솔로몬에게 이르기를 이같이 무고한 피를 흘려 다윗으로 하여금 근심케 만들었던 이 요압을 그냥 내버려 두지 말고 반드시 그 백발로 평안히 음부에 내려가지 못하게 하라고 지시했던 것입니다.

"요압과 그 동생 아비새가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쫓을새, 요압의 소년 중 하나가 쓰러진 아마사의 곁에 서서 가로되 요압을 좋아하는 자와 다윗을 위하는 자는 요압을 따르라 할 때에 아마사가 길 가운데 피 속에 굴러졌는지라 그 소년이 모든 백성의 섰는 것을 보고 아마사를 큰 길에서부터 밭으로 옮겼으나 거기 이르는 자도 다 멈추어 서는 것을 보고 옷을 그 위에 덮으니라. 아마사를 큰 길에서 옮겨가매 사람들 이 다 요압을 따라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쫓아가니라 .

 

) 세바의 죽음

(세바)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 두루 행하여 아벨과 벧마아가와 베림 온 땅에 이르니 그 무리도 다 모여 저를 따르더라"(20:10b-14)
여기 보니 이 세바라는 친구는 대단한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최북단 오늘날의 텔 단 바로 서쪽에 위치한 네둘라 지방의 벧마아가 아벨까지 올라가 다윗을 대항하여 싸울 반군들을 모집하 였습니다.

"이에 저희가 벧마아가 아벨로 가서 세바를 에우고 그 성읍을 향하여 해자 언덕 위에 토성을 쌓고 요압과 함께한 모든 백성이 성벽을 쳐서 헐고자 하더니 그 성에서 지혜로운 여인 하나가 외쳐 가로되 들을 지어다. 들을지어다. 청컨대 너희는 요압에게 이르기를 이리로 가까이 오라 내가 네게 말하려 하노라 한다 하라. 요압이 그 여인에게 가까이 가니 여인이 가로되 당신이 요압이니이까 대답하되 그러하다 여인이 저에게 이르되 여종의 말을 들으소서 대답하되 내가 들으리라 여인이 말하여 가로되 옛 사람들이 흔히 말하기를 아벨(성읍)에 가서 물을 것이라 하고 그 일을 끝내었나이다 나는 이스라엘의 화평하고 충성된 자 중 하나이어늘 당신이 이스라엘 가운데 어미 같은 성을 멸하고자 하시는도다. 어찌하여 당신이 여호와의 기업을 삼키고자 하시나이까"(20:15-19)

이 여인의 말은 이 아벨 성이 이스라엘 가운데 역사적으로 유서가 깊은 성이었으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어머니 같은 성이었는데 어찌하여 이 같은 성을 파괴하여 여호와의 기업을 사라지게 하려고 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요압이 대답하여 가로되 결단코 그렇지 아니하다 결단코 그렇지 아니하다 삼키거나 멸하거나 하려 함이 아니니 그 일이 그러한 것이 아니니라 에브라임 산지 사람 비그리의 아들 세바라 하는 자가 손을 들어 왕 다윗을 대적하였나니 너희가 저만 내어 주면 내가 이 성읍에서 떠나가리라 여인이 요압에게 이르되 저의 머리를 성벽에서 당신에게 내어 던지리이다 하고 이에 여인이 그 지혜로 모든 백성에게 말하매 저희가 비그리의 아들 세바의 머리를 베어 요압에게 던진지라 이에 요압이 나팔을 불매 무리가 흩어져 성읍에서 물러나서 각기 장막으로 돌아가고 요압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왕에게 나아가니라"(20:20-22)

)재정비된 왕권

그리고 나서는 이스라엘 정부의 각료 명단 같은 것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요압은 이스라엘 온 군대의 장관이 되고 "(20:23a)이제는 더 이상 아무도 요압의 자리를 넘보고자 했던 사람이 없었습니다.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는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의 장관(호위대장)이 되고"(20:23b)

브나야는 당시 최고 정예부대로써 다윗의 호위를 맡고 있던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을 지휘하는 자리에 있었는데, 그는 나중에 솔로몬의 군대장관이 되어 요압을 처치했던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아도니람은 감역관이 되고 아힐룻의아들 여호사밧은 사관이 되고"(20:24)감역관(監役官)은 오늘날로 말하면 재무부 장관과 같은 자리입니다.
"스와는 서기관이 되고 사독과 아비아달은 제사장이 되고 야일 사람
이라는 다윗의 대신이 되니라"(20:25-26) 이러한 사람들이 당시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있던 중요한 인물들이었습니다.

결론)

이제 다윗이 이스라엘 역사의 무대에서 후반부를 차지하는 기록들이 등장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이 왕궁으로 돌아와 아마사를 군대장관으로 삼았으나 간교하고 악한 요압이 간계를 부려 아마사를 죽이고 자기가 군대장관을 유지하게 됩니다. 그러나 훗날 요압은 제 명대로 살지 못하게 됩니다. 세바는 다윗을 대적했으나 하나님은 그를 지혜로운 여인의 꾀에 빠지게 하여 목을 잃고 맙니다. 끝까지 정절을 지키지 못한 후궁 10명은 죽을 때까지 감옥 같은 별궁에 갇혀 살다 죽게 됩니다.

 

성도의 바람직한 삶은 무엇입니까? 정의를 지키며 믿음에 정절을 지킬 줄 알아야 합니다. 환난과 핍박이 와도 오직 예수만을 따르고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 나라에서 상급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의의 면류관을 받아쓸 수 있습니다.

 

     031722 안익선 목사/ 참조: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가장 낮은자& 꿈꾸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