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 상하

사무엘하 19장 강해(다시 왕권을 회복하는 다윗)

호걸영웅 2022. 4. 6. 01:35

사무엘하 19장 강해(다시 왕권을 회복하는 다윗)

서론)

사무엘하 19장은 아들 압살롬 때문에 도망가야만 했던 다윗을  이스라엘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모시는 내용입니다. 다윗의 왕권이 회복되는 이야기입니다. 

19장의 내용은 1)다윗의 왕권 회복 1~23, 2) 므비보셋과 바르실래와의 만남 등(24~43)입니다.

 

본론)

)요압의 충언(19:1-8a)

사무엘하 19:1-8a절은 죽은 압살롬 때문에 슬픔에 빠진 다윗에게 요압이 찾아 가서 죽은 아들도 중요하지만 왕을 위해 목숨 걸고 싸운 백성들을 먼저 생각하라 충고한 내용입니다. 

왕이 목놓아 울면서 압살롬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다는 소문이 요압에게 전해졌습니다. 그래서 모든 군인에게도  날의 승리가 슬픔으로 바뀌었습니다. 왕이 자기의 아들 때문에 몹시 슬퍼한다는 소문이,   모든 군사들에게 퍼졌기 때문입니다. 왕이 아들 죽었다고 슬퍼하는데 군인들만 전쟁에서 이겼다고 기뻐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군인들은, 마치 싸움터에서 도망쳐 나올 때에 부끄러워서 빠져 나가는 것처럼, 슬며시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런데도 왕은  손으로 여전히 얼굴을 가린 채로, 큰소리로 “내 아들 압살롬아,  아들아,  아들 압살롬아! 하고 울부짖었습니다. 

마침내 요압이 왕을 찾아가서 항의하였습니다. “왕이시여! 모든 부하가 오늘 왕의 목숨을 건지고, 왕자와 공주들의 목숨도 건지고, 모든 왕비의 목숨과 후궁들의 목숨까지 건져 드렸습니다. 그런데 임금님께서는 오히려 오늘 부하들을 부끄럽게 만드셨습니다. 왕께선 어찌하여 임금님을 반역한 무리들은 사랑하시고, 임금님께 충성을 바친 부하들은 미워하시는 것처럼 행하십니까? 우리 지휘관들이나 부하들은 왕께는 있으나 마나  사람들입니까? 왕께서는 오늘 왕의 본심을 드러내신 것입니까? 차라리 오늘날, 압살롬이 살고, 우리가 모두 죽었더라면, 임금님께서는  기뻐하셨을 것같습니다. 그렇지 않으시다면, 이제라도 일어나 밖으로 나가셔서, 임금님의 부하들을 위로의 말로 격려해 주세요. 제가 주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지만, 지금 왕께서 밖으로 나가지 않으시면, 오늘 밤에  사람도 왕의 곁에 남아 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임금님께서, 젊은 시절부터 이제까지 당한  모든 환난보다도  무서운 환난을 당하실 수 있습니다.”라고요. 그러자 왕이 간신히 일어나서 성문으로 나와 앉았습니다. 다윗 왕이 성문에 앉아 있다는 소식이 모든 부하에게 전해지니, 모든 부하가 왕의 앞으로 다시 나아왔습니다. 위기를 넘긴  같습니다.

 

)다윗을 왕궁으로 다시 모시려는 논의(사무엘하 19:8b-15)

사무엘하 19:8b-10절은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다윗을 다시 예루살렘으로 모셔오려고 의논하는 내용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윗에게 대항하여 압살롬에게 기름 부어서 왕으로 세웠는데, 압살롬이 그만 전사하고 맙니다. 이거  당황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남 유다 지파보다 먼저 나서서 다윗 왕을 왕궁으로 모셔 와야  길이 생길 것 같습니다. 주저할 사이가 없습니다. 

 

 19:11-15절은 다윗이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을 통해서 유다 장로들에게 자신을 왕궁으로 모시도록 요청하는 내용입니다.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나서서 다윗을 왕궁으로 모셔오자고 난린데, 다윗의 형제요 골육인 유다 지파는 늑장을 부리고 있었습니다. 다윗이 유다 지파에 대해 한 편으론 섭섭하고  편으론 괘씸하게 생각했나 봅니다. 

다윗 왕은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에게 사람을 보내서, 유다 장로들에게 어찌하여 왕을 다시 왕궁으로 모시는 일에 앞장서야  사람들이 이렇게 늑장을 부리는지 말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아마사를 요압 대신 이스라엘의 군대장관으로 임명합니다. 요압도 다윗의 조카,  마사도 다윗의 조카입니다. 지금 요압은 다윗과 함께 예루살렘 밖에 있었기 때문에 예루살렘에서 다윗을 위해 가까이서 일할 사람이 필요해서 아마사를 세웠습니다.  다른 이유는 사실 요압이  (압살롬을 죽임) 마음에  들어서 이번 기회에 군대장관을 바꾸고 싶기도 했었습니다.  그러자 유다 사람들이 왕에게 사람을 보내서 부하들을 모두 거느리고, 어서 빨리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시라고 요청의 말을 전했습니다. 다윗 왕이 돌아오는 길에 요단  가에 이르렀는데, 약속한 대로 유다 사람들이 왕을 맞이하여 요단 강을 건너게 하려고, 이미 길갈  있었습니다. 

 

)시므이를 만나다

사무엘하 19:16-23절은 다윗을 저주하던 시므이가 다윗을 영접하러  내용입니다. 

바후림에 사는 베냐민 사람으로 게라의 아들인 시므이도 급히 와서, 다윗 왕을 맞이하려고, 모든 유다 사람들과 함께 내려왔습니다. 시므이가 누군지 기억하시나요?

시므이는 아주 못된 짓을 한 자입니다. 사무엘하 16:5-8절에서는 압살롬의 반역으로 인해 예루살렘을 떠나 피난을 가는 길에, 다윗을 향해 저주하면서 돌을 던진 자가 바로 시므이입니다. 다윗이 쫓겨나는 것은  흘린 죄가 많아서 하나님께 벌을 받는 거라고 저주하던 시므이가 무슨 생각으로 다윗을 영접하러 왔을까요? 게라의 아들인 시므이가 베냐민 사람  명을 거느리고, 사울 집안의  시바와 함께 왔는데, 시바도 자기의 아들 열다섯 명과 자기의  스무 명을  데리고 나아왔습니다. 이들은 요단 강을 건너서,  앞으로 나아왔습니다. 시므이와 시바는 왕의 가족이 강을 건너는 일을 도와서, 왕의 환심을 사려고, 나룻배로 건너갔습니다.

다윗 왕이 요단 강을 건너려고  때에,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앞에 엎드려서 지은 죄를 고하며 용서를 빕니다. 다윗이 예루살렘에서 떠나시던 , 자기가 저지른 죄악을, 기억하시거나 마음에 품지 말아 달라고 부탁합니다. 시므이는 자신이 지은 죄가 얼마나    알기 때문에, 오늘 자기가 요셉 지파의 모든 사람 가운데서  먼저 높으신 왕을 맞으러 왔다고 합니다. 여기서 이상한 것은 시므이가 자신을 마치 요셉 지파인 것처럼 소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시므이는 사울이 속한 베냐민 지파입니다. 그래서 시므이가 사울의 친척이 되는 겁니다. 시므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자신은 요셉 지파라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자기가 제일 먼저 다윗 왕을 맞이하러 왔다는 것입니다.  마디로 다윗에게  보이려고 자랑하는 겁니다.  

그러자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다윗에게 여호와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왕을 시므이가 저주하였으니 죽어 마땅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시므이를 죽이지 않겠다고 맹세합니다. 요압과 아비새에게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  오늘같이 좋은  사람을 죽일  없다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다윗이 말한 대로 시므이를 죽이지 않지만 시므이는 다윗의 아들, 솔로몬   죽임을 당합니다. 

 

)므비보셋과 만남

사무엘하 19:24-30절은 사울의 손자요,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 예루살렘에서 다윗을 맞이하는 내용입니다. 

므비보셋은 왕이 떠나간 날부터 평안하게 다시 돌아오는 날까지, 발도 씻지 않고, 수염도 깎지 않고, 옷도 빨아 입지 않았습니다. 다윗에게 받은 은혜가 너무 컸기 때문에  은혜에 보답하려고 나름대로 애쓴 므비보셋을 봅니다. 그가 예루살렘에서 와서, 다윗을 맞이할 , 왕이 그에게 어찌하여 나와 함께 떠나지 않았느냐 물었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날  므비보셋이 다윗과 함께 하지 않은  다윗을 아주 섭섭하게   같습니다. 다윗의 질문에 므비보셋은 자신은 다리를 절기 때문에, 나귀를 타고 임금님과 함께 떠나려고 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나귀에 안장을 얹으라고  시바에게 일렀는데, 종이 자기를 그만 속이는 바람에 다윗과 함께 떠나지 못했고 그 종 시바가 자신을 모함했다고 말합니다. 

 

다윗이 예루살렘을 떠날 , 므비보셋이 다윗을 따르지 않고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이유를 시바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므비보셋은  다리가 장애를 입어서 여기    아닙니다. 할아버지의 나라를 이번 기회에 다시 찾을  있다고 생각해서 일부러  나온 겁니다.(사무엘하 16:3)

므비보셋은 시바의 말이 사실이 아니고 모함이라고 증언합니다. 므비보셋은 다윗에게 자신은 다윗이 베푼 은총으로 살고 있기 때문에 다시  부탁할 염치가 없으니까 오직 왕의 결정대로 따르겠다고 말합니다. 이제 다윗이 결정을 내릴 때입니다.  

다윗은 누구의 말이 맞는  확인하지 않고 사울의 밭을 므비보셋과 그의  시바  사람이 나누어 가질 것을 명령합니다.  밭은 처음에 므비보셋에게 주었던 것인데, 다윗이 도망칠 때, 시바의 말을 듣고 므비보셋이 배신했다고 생각하고 시바에게 주었던 것이었습니다. 므비보셋의 말을 듣고는, 다윗은 이제  밭을  사람이 나누어 가지라고 명령합니다. 

다윗이  이런 결정을 내린 걸까요? 제가  때는 므비보셋의 말이 옳고 시바가 주인 므비보셋을 모함하고 거짓말을   같거든요. 다윗은 므비보셋도 믿을  없고 시바도 믿을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사람  죽이는 것은  부담이지요.  이스라엘의 지지 없이 이스라엘을 다스리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결국 정치적인 결정을   같습니다!  

)바르실래의 영접

사무엘하 19:31-40절은 바르실래가 다윗을 영접하는 내용입니다. 

 바르실래는 다윗이 압살롬의 반역으로 인해 망명할 , 온갖 먹을 것과 물품을 가지고 와서 다윗을 섬긴 사람입니다. 그는 침대와 이부자리와 대야와 질그릇, 밀과 보리와 밀가루와 볶은 곡식과 콩과 팥과 볶은 , 꿀과 버터와 양고기와 치즈를 가져다가, 다윗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주었습니다.   이제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도 또 다시 로글림에서 내려와서, 왕이 요단 강을 건너 예루살렘으로 가려는 일을 도우려고, 요단  가에 이르렀습니다. 바르실래는 나이가 이미 80살이나 되었습니다. 그는  부자였으므로, 왕이 마하나임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도 왕에게 음식을 공급하였습니다. 

다윗은 바르실래에게 예루살렘으로 같이 가 살자고 권합니다.  대접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바르실래는 자신은 너무 늙어 왕궁에서 좋은 음식을 먹어도  맛을   없고, 아름다운 노래를 들어도 들리지 않는다고 정중하게 사양합니다. 바르실래는 고향 마을에 있는 자기 부모의 무덤 곁에서 죽게  달라며, 대신에 자기 아들 ‘김함 데려가서  대접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다윗은 바르실래에게 김함을 데려가 잘 대해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드디어  백성이 요단 강을 건넜고, 왕도 건너갔습니다. 왕이 바르실래에게 입을 맞추고 복을 빌어 주니, 바르실래가 자기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왕이 길갈로 건너갈 , 김함도 왕을 따라건너갔습니다.  유다백성과 이스라엘 백성의 절반이나 왕을 따라서, 요단 강을 건너갔습니다.

 

)다윗의 복위에 선수를 친 유다 사람들을 비난하는 이스라엘 사람들

사무엘하 19:41-43절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윗 왕께 나아와 유다 사람들이 아무 의논도 없이 자기들끼리 다윗 왕을 다시 모시는 일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내용입니다. 

왕을 다시 왕궁으로 모시고 오는 문제에 대해  이스라엘 지파가 먼저 계획을 세웠는데 선수를   유다 지파였습니다.  이스라엘 사람이 몰려와서, 어찌하여 유다 사람들이 아무 의논도 없이, 다윗 왕을 몰래 빼돌려 왕의 가족과 신하들과 함께 요단 강을 건넜느냐고 따집니다. 
 유다 사람이 이스라엘 사람에게 자기들이 다윗 왕과  가깝기 때문이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니 이런 일로 그렇게 화를  이유가 없다며 당당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은 유다 사람에게 자신들이 다윗 왕에게 요구할 권리가 유다 사람들보다  배나 많다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은 10지파이고,  유다는 달랑 2지파밖에  되는데 어찌하여 유다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무시하느냐고 반박했습니다. 다윗을 다시 왕궁으로 모셔와야 되겠다고  먼저 말한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인데,  유다 사람들이 선수를 치느냐고 따집니다. 그래도 유다 사람의 말이 이스라엘 사람의 말보다  강경하였습니다. 목소리가  사람이 이긴다는 말일까요? 아닙니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말이  옳을  같습니다. 유다 사람들이 은근히 혈족인 다윗을 믿고  소리 칩니다.

 

결론)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다윗은 무사히 왕국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러나 압살롬의 죽음은 다윗을 몹시 슬프게 하였습니다. 요압은 아들을 죽였기에 다윗과 관계가 소원해지게 되었습니다. 불충하였다고 보았습니다. 왕의 말을 무시한 결과입니다. 우리가 우리 왕이신 하나님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려면 도무지 순종하여야 합니다. 안 그러면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빛 가운데 거할 수도 없습니다. 축복을 받을 수도 없습니다. 바르실래는 평소에 왕에게 잘 함으로써 그 아들 길함이 복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왕이신 하나님께 평소에 잘 해야 합니다.  

 

031022 안익선 목사/참조:날마다 주님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