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에베소서 제5장 강해(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호걸영웅 2022. 4. 6. 01:41

에베소서 5 강해(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서론)

5장은 성도가 마땅히 행할 바에 대해 강조하는 몇 가지를 권면한 말씀입니다. 먼저는 하나님을 본받아 서로 사랑하라 했습니다. 그리고 생활 속에 거룩함을 이루어야 하고 선함과 착한 행실이 중요함을 말합니다. 아울러 남녀 간의 가정 생활과 그 의무와 권면에 대해서도 언급한 내용입니다.

문단 구분=1)하나님을 본받는 삶을 살라(1~14) 2)그리스도 안에서 감사하라(15~21)

3)믿음 안에서 부부에 관한 말씀과 권면(22~33).

 

본론)

)예수님의 사랑 가운데 행하라(1-2 )

 (5:1)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2)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여기서 우리는 사랑 가운데 행하기 위해서는 취해야 것과 버려야 것이 있는데,  부분(5:1-2) 바로 취할 것이며 다음에 설명하는 (5:3-6) 바로 버려야 것들이라 했습니다.

 그렇다면 성도가 먼저 취해야 것은 무엇인가? 바울은 먼저 사랑을 받는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라고 하셨죠. 따라서 하나님을 받는” 자가 되라는 것이죠. 신약성 경에 유일하게 이곳에서만 하나님을 받는” 자가 되라 했는데,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을 받는다는 것은 예수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자들이기에 우리에게 보여주신 당신의 성품을 닮아가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 우리는 사실상 우리의 모습을 하나님의 사랑을 감히 기대할 없는 존재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우리를 먼저 사랑하셔서, 자녀 같지 않은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아 주신 것이니, 그럼으로 우리도 이렇게 사랑받은 자녀가 되었으니, 이제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본받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같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는 하나님의 사랑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실현되셨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을 우리의 죄를 위하여 향기로운 희생의 제물로, 속죄의 제물로 십자가에 죽으심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독생자도 우리를 위하여 아끼시지 않으시는 사랑, 그리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사랑을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자신을 제물로 드리기까지 순종의 제사가 되신 것은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드러난 것이기 때문이죠. 이와 같이 사랑을 입은 우리들에게, 사도는 구체적으로 사랑 가운데 행하라 ”라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아가페적 사랑을 말하죠. 

 

)음행과 헛된 말을 하지 말라. (3~6 )

 (3)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 (4)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 (5) 너 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우상 숭배자는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6)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이제 3절에서는 이기적인 거짓 사랑으로 말미암아 초래되는 것들에 대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자로서 

금할 것을 명합니다. 먼저 사도는 음행과 온갖 더러운 , 그리고 탐욕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음행(porneia)이란 부정한 성적인 행동을 말하는 것이라면 더러운 (akath-arsia)이라는 말은 불순한 , 더러운 것이 되었는데, 여기서 말하는 불순은 비단 육체적인 것뿐만 아니라 도덕적 또는 정신적인 부분까지 포함하는 의미이죠.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온갖 더러운 위에서 말한 음행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동성연애와 성적 부정을 의미합니다.   탐욕이란 다른 사람의 소유를 탐내(covetousness, desire for advantage)(갈취, 사기, 늑탈, 고리대금, 사기 등등)이고, 사도는 이러한 행위를 버리거 나 멀리할 뿐 아니라 이름조차 부르지 말라 경고합니다. 

 

그리고 3절에 이어 4절에서도 사도는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대신에 감사하는 말을 하라고 합니. 여기서 말하는 누추함이란 본래의 뜻은 음담패설 야비한 말을 의미합니다. 그 리고 어리석은  희롱하는  역시 누추한 속에 포함될 있으나,  생각해 본다면 이치에 맞지 않은 말을 하는 것이 어리석은 말일 있고, 희롱하는 말이란 좋게는 위트가 있어 말을 받아 넘기는 것을 말하지만 나쁘게 말하면 상대방을 비아냥거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도는 이러한 말이 공동체 가운데 난무할 때에, 공동체는 거룩한 모습을 잃게 것이며 서로에 대하여 상처만 주게 되어 공동체의 연합을 깨트릴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대신에 감사하는 말을 하라고 합니.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7~10 )

 (7) 그러므로 그들과 함께 하는 자가 되지 말라 (8)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9)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10) 주를 기쁘시게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사도는 이상에서 하나님을 받는 자로서 사랑 가운데 행하는 자가 되고,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며 헛된 말을 하지 말라고 하였는데, 이러한 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7절에 보는 바와 같이 빛의 자녀들은 어둠에 거하는 자들과 함께하는 자가 되지 않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도 믿지않는 자들과 함께 멍에를 메지 말라(동업, 결혼 등) 하셨죠.

 

사도는 이러한 자들과 함께 하지 않아야 이유로 8절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둠과 빛을 대조시킵 니다. 어둠(skotos) 감추며 죄악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면 빛은 드러내는 것이며 바름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사도는 너희가 전에는 어둠에 거하여 하나님을 모르는 무식자였고 도덕적 으로 부패하고 우매한 자들이었으나 이제는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이라 합니. 

 

 그리고 이러한 빛의 자녀들처럼 걸어가게 때에 9절에서는 맺히는 빛의 열매가 있으니 이는 모든 착함(agathosyne) 의로움(dikaiosyne) 진실함(aletheia)이라 했습니. 그리고 자신의 행위가 정말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있는 있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항상 점검해야 한다고 했죠. 말하자면 자신을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조명해 보며 살펴보아야 하는데, 사도는 10절에서 이를 시험하여 보라라고 것이죠. (양심, 성경에 비추어 보라)

)너의 삶을 통하여 빛을 드러내어라(11~14) 

(11)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12) 그들이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운 것들이라 (13)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은 빛으로 말미암아 드러나나니 드러나는 것마다 빛이니라

 사도는 11절에서 빛의 열매는 앞에서 바와 같이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 ”인데, 이와 달리 어둠의 일에 참여하는 경우 이와 같은 열매가 있을 없다고 보아,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이러한 일을 하는 자들에 대하여 책망하라고 합니.  그런데 12절에서는 어둠의 열매를 맺는 자들, 그 들이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운 것들을 은밀히 행하는 것들이란 이미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은 음행, 곧 동성연애와 간통 강간, 호색함 등과 온갖 더러운 죄들을 의미합니다. 고로 14절은 그런 잠자는 자를 깨워 빛으로 나오게 하라 하십니다.

 

)지혜롭게 그리고 성령 충만하게 살아라 (15~16 )

 (15)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같이 하여 (16)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런즉이라는 말은 이미 우리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빛의 자녀들처럼 살아야 존재들이기에 사도는 앞에서 언급한 가지의 명령 이외에 하나를 여기서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asophoi) 아니라 지혜 있는 (sophoi) 행하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하나의 명령, 그것은 바로 지혜롭게 행하라 것이죠. 

 

첫째는 세월을 아끼는 삶이다.  말의 원어적인 의미는 ‘시간이라는 기회를 잘 쇼핑해라’라는 의미로, 우리의 남은 날을 계수하며 사는 , 하루하루가 습관처럼 흘러 보내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삶의 기회 앞에서 주의를 다하며선을 행하며 사는 것이며, 거기엔 엄청난 가치나 가격이 있다는  뜻입니다.

  

둘째는 주의 뜻이 무엇인가 헤아리고 성령 충만함으로 그 뜻을 이루라. (17-18 )

 (17)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18)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우리는 술에 취하면 이성을 잃고 정신없이 방탕한 행동을 하게 되겠지만, 성령의 지배를 받게 되면 오히려 자연스럽고 단정하고 자신의 직무에 충성하면서 강력한 도덕적 실행력을 가지게 됩니. 

 셋째, 찬송과 감사, 그리고 피차 복종하라. (19-21 )

(19)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20) 범사 에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2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셋째, 19 이하에서번째로 찬송과 감사와 서로 복종하라.

 먼저 19절에서는 시편과 성령의 감화를 받아 부르는 노래, 이는 신령한 노래인데 노래로 서로 화답하고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라고 합니. 이처럼 성도는 신령한 노래로 주께 찬송을 하게 되는데, 이러한 찬송은 노래를 부르는 자들 모두가 서로 화답하면서, 악기로 연주하는 때는 악기들이 마음으로 어울려 불러지고 연주되어야 합니. 이것이 또한 찬송의 본질인 것이죠. 그리고 찬송은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것이며, 찬송하는 자들은 모두 마음으로 올려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 서 찬송은 부르는 자들의 즐거움을 위한 것 이전에 지극히 거룩하시고 영광스러운 주님을 찬양 감사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감사하다 말은 하나님의 선하신 일을 인정하다 또는 하나님의 선하신 은혜를 잊지 않는다 의미로, 결국 여기서 말하는 감사는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감사의식 (感謝意識) 지배되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나아가 사도는 21절에서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라고 합니. 특히 피차

복종하라  말은 교회 안에 있는 구성원들 간에는 높고 낮음이 있어서는 됩니. 그가 사회에서 어떠한 지위에 있었건 그것은 문제되지 않아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 모두는 머리 되신 그리스도를 따라

그의 지체가 사람들이기 때문에 몸이므로 서로 존중해야 합니. 

 

) 복종과 사랑에 통한 부부에 대한 권면. (22-24 )

 (22)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23)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24)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 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고 합니다. 여기서 부터는 신앙과 부부간의 사랑 속의 삶을 강조합니다.

 여기서 주께 하듯 하라 말은 남편의 힘과 권위에 일방적인 지배권에 복종한다는 의미이기 보다 는 앞에 드리는 봉사 같은 의미입니다.  그리고 나아가 구체적으로  24절에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합니.  따라서 아내는 남편의 권위를 인정하며, 나아가 교회의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시는 것과 같이 남편도 아내를 그렇게 사랑하고 보호할 것이라는 점에 하에서 그를 존경해야 합니.

 

“ 남편들아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신 같이 자기 아내를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26) 이는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28)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 하는 것이라 (29) 누구든지 언제나 자기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 서 교회에게 함과 같이 하나니 (30) 우리는 몸의 지체임이라 (31)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육체가 될지니 (32)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33)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 라-고 했습니다.

 

 사도는 남편들이 아내를 사랑함에 있어 사랑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것과 결과를 설명했고,  다시 28절에서 이와 같이 ’로 시작하여 자기를 사랑하는 만큼 아내를 사랑하지 않으면 사랑하는 것이 아님을 변증합니다. 특히 31절에 결혼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하나가 되는 것이니, 이는 그리스도께서 그의 교회를 사랑하신 같이 몸을 이룬 사랑의 결과로서, 이는 32절에서 보는 바와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가 바로 위대한 신비인 것처럼 결혼 역시 동일한 신비로움이 아닐 없다고 했습니다.  마지막 33절에서도 남편이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와 같이 뿐만 아니라 아내 역시 남편을 존경해야 하는 것이라 강조를 하면서 끝을 맺습니다. 

 

결론)

우리는 이상의 말씀들을 통하여 올바른 성도의 삶이 어떠해야 할런지, 또 부부 관계와 교회와의 관계 조차도 영적인 의미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지에 대한 교훈을 들었습니다. 고로 우리는 거룩한 삶과 신령한 삶을 추모하며 언어생활, 성 생활 뿐 아니라 성령 충만, 성도 간의 사랑, 부부 간의 사랑, 이 모든 것들이 우리의 성도의 삶을 구성하며 중요한 부분을 차지 한다는 점들을 더욱 명심하고 살피고 늘 점검 해 나가야 할 줄 믿습니다.                                    

 

 032222 안익선 목사. 참조: 구모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