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에베소서6장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호걸영웅 2022. 4. 6. 01:43

에베소서6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5장에서는 바울은 빛의 일과 어둠의 일을 구분했습니다. 빛의 일은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고, 어둠의 일은 육신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아야하는 근거는 5:1-2에서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 제물로 드리셨다는 것입니다.(5:2) 6장은 이에 근거하여 6:1-9절까지 계속하여 삶의 문제를 다룹니다. 대지 구분은?

1)1-9 그리스도인의 부모와 자녀의 관계,2)5-9,주종 관계에 대해 3)10-20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4)21-24 마지막 인사-입니다.

 

본론)

) 1-9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

 1) 자녀와 부모에 대하여(1-4)

 1-4절까지는 자녀와 부모 사이를 다룹니다. 순서를 보겠습니다. 먼저 자녀들에게 말합니다. 자녀들이 가져야할 덕목(德目) 순종입니다. 바울은 이것이 옳으니라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것은 순종하다 번역한 후파코우오(πακούω)라는 단어는 순종하다’와 ‘듣다 경청하다 뜻이기도 합니다. 단어는 주인이 명령을 하면 종은 주인의 이야기를 듣고 그대로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자녀는 해야 순종은 먼저 부모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듣고 다음 말씀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이게 순종 의미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안에서 순종하라고 가르칩니다. 사실 안에서라는 표현은 주님께서 이루신 언약의 원리 안에서 해석할 있습니다.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해야 하는 것은 억지나 강요가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서 마땅한 삶의 방식이기 때문에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하늘 아버지께 완전히 순종하심을 통해 인류를 위한 구속을 이루신 까닭입니다.

 

바울은 부모를 향한 자녀의 자세가 순종으로 끝나지 않고, 좀더 적극적인 공경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2절과 3절을 보십시오. 2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계명이니 3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합니다. 바울이 말하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말하면서 약속이 있는 계명이라고 말한 것은 분명히 십계명에서 5번째 계명인 부모 공경에 대한 것으로 보입니다. []20:12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땅에서 생명이 길리라-했죠?

 레위기 19:3 너희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고 하십니다.

 

4절의 말씀은 부모들이 어린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라 뜻은 비인격적으로 대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자녀들도 인격체이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이들입니다.

 하지만 본문은 아비들이 자녀를 대할 , 특히 자녀를 훈계할 민감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아버지는 자녀에게 반응하기 전에 자신의 말과 행동이 지닌 잠재적 영향력을 주의 깊게 비교하고 생각해야 합니. 본문은 반사적으로 벌컥 화를 내는 , 지나치게 심한 말이나 모욕, 비꼬는 , 잔소리, 비하하는 , 부적절한 괴롭힘, 불합리한 요구 화를 돋굴 만한 다른 모든 것을 사실상 배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골로새서에서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 3:21) 아비들에게 권면합니다.

 

) 종과 주인의 관계성에 대하여(5-9)

 우리는 본문을 읽을 바울이 노예제도를 찬성했으니 하지 않았나 하는 관점으로 읽어서는 됩니다. 바울은 당시의 시대적 상황 속에서 자신의 자리에서 해야할 일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노예들은 조선시대의 노비처럼 공부도 하지 못하고 어리석은 인간들로 치부해서는 됩니다. 당시 노예들은 전쟁의 포로나 적당한 기회에 학습의 기회를 얻기도 해서 주인보다 많은 학력을 소지하고 명석한 두뇌를 가진 이들이 많았습니다. 노예들이 종종 자유롭게 되어 적지 않은 부와 권력을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노예는 노예였고, 주인의 소유에 불과하다는 것은 명백합니다.

 

바울은 5절에서 종들에게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 께 순종하듯 하라 조언합니다. 조언은 일반 종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이 종들에게 주는 조언입니다. 반대로 해석한다면 종들은 주인들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성실하지 않았으며, 육체의 종들을 존중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부분에서 믿음의 도를 가진 종들이 세속 권력자들인 주인을 하찮게 여기고 가볍게 여기는 이들이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이러한 태도는 매우 부당한 것으로 영적인 것을 소유하고 경험했다하여 세속적인 사람이나 주인들에게 무례한 것은 옳지 않은 태도입니다. 그리스도를 존중하듯 세속 주인들에게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6절을 , 그들은 눈가림만하고 제대로 일하지 않을 수 있음을 지적합니다. 주인이 보기에 그들은 바르지 못한 자들이 됩니다. 그리스도를 믿는다하면서 게으른 것은 부당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에 대비(對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뜻을 하라고 말합니다. 종들이 주인에게 해야 하는 태도는 자녀가 부모에게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바울은 8절에서 우리가 행한 것에 대해 주께로부터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라 말합니다. 이것은 확실히 자녀들이 부모에게 순종함으로 얻는 약속처럼, 역시 그들에게 적합한 하나님의 보상이 주어진다는 뜻입니다.

 

)10-20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10-20절까지는 그리스도인들이 영적 전신갑주를 입어야 하는 이유와 영적 전신갑주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전신갑주를 입어야 하는 이유는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6:11)입니다. 여기서 간계는 에베소서 4:14에서 사용된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이라고 말할 간사 한이란 단어와 동일합니다. 마귀가 성도들을 거짓말로 속여 넘어뜨리는 것을 이기기 위해 전신갑주 를 입어야 한다 했습니다. 간계라는 단어가 보여주듯 사단은 자신의 목적을 결정적인 순간까지 드러내지 않습니다. 고린도 교회를 교회를 향한 바울의 권고를 잠시 참고해 봅니.

 

고린도후서 11:14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라 했죠?

사단의 목적은 속이고 빼앗고 죽이기 위함입니다. 사단의 목적을 안다면 아무도 그에게 접근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속이는 것이니다. 사람 아담과 하와가 뱀의 유혹에 넘어간 이유도 때문입니다.

 그럼 하나님의 전신갑주는 무엇입니까? 구약에서 하나님은 종종 강한 용사로 등장하십니다. 적들과 싸우기 위해 갑옷을 입으시고 전쟁에 임하십니다. (참고: 11:5, 52:7, 59:17) . 이러한 구약의 배경들은 궁극적으로 선택하신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헌신과 사랑, 또는 열정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1.   14, 진리의 허리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허리띠는 옷을 거추장스럽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전쟁에 합당한 옷차림을 말합니다.

 참고로, 11:5 =공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했어요.

이사야의 공의로 그의 허리띠를 는다는 표현은 명백한 옳음을 통해 누군가의 비방이나 조롱에 휘둘리지 않음을 이야기합니다. 흠잡을 없는 바른 삶을 살아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리의 허리띠를 띤다는 말은 복음 안에서 하나님의 진리를 따라 것을 결심하라는 ’입니다.

 

의의 호심경( 59:17) 갑옷에서 가슴 부분을 막는 구리판합니다. 적들의 화살이나 등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서입니다. 다른 신체는 상처가 나거나 잘려도 죽지 않습니다. 물론 목이 잘려도 죽겠지만, 그러나 가슴도 찔리면 살아남기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치명적 손상을 입습니다. ,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오는 십자가의 의를 말합니다. 복음으로 무장되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2.   15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이것은 복음이 가진 속성을 말합니다. 바울은 그냥 복음이라하지 않고 평안의 복음이라고 말합니 다. 평안은 복음으로 인해 생긴 하나님과 화목을 통해 오는 진정한 샬롬, 평안을 말합니다. 단순한 심리적 평안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고 복음으로 충만하다면 우리는 하늘의 놀라운 평안을 누리게 것입니다. 이사야는 앞으로 도래할 하나님의 구원을 노래하면 이렇게 말합니다.

  52:7=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라고 했죠?

 

3.   16 모든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방패는 적의 공격을 막기 위함입니다. 바울은 믿음의 방패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적의 공격을 처음부터 차단하는 막강한 힘을 가진 것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이 사용한 방패는 로마 보병들이 사용한 가슴까지 오는 방패를 뜻합니다. 믿음은 예수님의 모든 공로를 신자들의 것으로 만듭니다. 궁극적으로 믿음으로 신자들은 그리스도 안에 숨게 됩니다. 불화살은 의심과 두려움이며, 신자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의심하게 하고, 아무도 자신을 위해 돕는 자가 없다고 믿게 하여 두려움에 떨게 합니다.

 대하 20:15 =야하시엘이 이르되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과 여호사밧 왕이여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라고 했습니다.

 

믿음의 방패라는 뜻은 결국 그리스도를 방패 삼으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나는 방패다( 15:1)라고 소개하십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여 여호와가 너희의 방패라고 소개합니다.(신명기 33:29) 믿음의 사람 다윗은 하나님을 방패로 고백합니다.(시편 28:7) 구약의 선진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방패삼아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이처럼 언약의 백성들은 그리스도를 방패삼아 어둠의 영들과 전쟁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4.   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투구는 머리를 보호합니다. 그런데 구원의 투구라고 했을까요? 구원은 종말에 일어날 하나님의 궁극적인 심판과 직결됩니다. 구원의 투구는 구원에 대한 소망으로 바꾸어 부를 있습니다. 이사야 59:17 보면...

  59:17 공의를 갑옷으로 삼으시며 구원을 자기의 머리에 써서 투구로 삼으시며 보복을 속옷으로 삼으시며 열심을 입어 겉옷으로 삼으시고-라 했어요.

 

이사야는 구원을 자기의 머리에 써서라고 표현합니다. 이것은 구원이 미래에 도래할 어떤 사건이 아니라 이미 승리하셨음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구원은 종말론적인 동시에 현재적 상황을 의미합니다. 이미 승리했고, 또한 마지막에 확실히 승리할 것입니다. 머리가 몸의 대표, 또는 명예를 상징하듯 머리에 쓰는 구원의 투구는 성도들이 그리스도로 인해 회복할 영광의 모습을 말합니다.

 

성경의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는 영적인 전신갑주의 유일한 무기입니다. 이곳에서 사용된 검은 고대 세계에서 1m 되는 장검을 이야기합니다. 말씀은 로고스가 아니라 레마(ῥῆμα)입니다. 클라인 스노드글래스는 보통 가르침이나 예언적인 말씀, 또는 구체적으로는 복음을 가리킨다 말합니다. 성령에 의해 주도되는 말씀은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주관하여 적들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하 고 공격하는 역할을 합니다. 교묘한 술수와 궤계(詭計) 성령께서 성도의 입술을 주관하심으로 승리 하게 하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떠나면 성령이 오셔서 가르친 것들을 생각나게 하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요한복음 14:26 보혜사 아버지께서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하셨습니다.

 

또 히브리서 기자는 고난을 당하는 성도들을 향해 이렇게 위로합니다.

[히브리서 4:12-13]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 여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13 지으신 것이 하나도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같이 드러나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만물의 속성과 본성을 통찰하며, 은밀한 모든 것을 보고 계십니다. 말씀 앞에 어떤 것도 감추어진 것은 없습니다. 이처럼 성령의 , 하나님의 말씀을 가질 악한 사단의 궤계를 깨칠 있는 것입니다.

 

)21-24 , 마지막 인사

 

결론)

성도는 전신갑주를 통하여 마지막 세상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전신갑주를 날마다 점검하 며 사십시다. 근신하십시다. 성령의 지도하심을 기쁘게 날마다 초청하고 의지하십시다. 말씀에 순종 하십시다.  할렐루야!

                                           032922 안익선 목사/ 참조:[Pensé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