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를 바라보자(사 5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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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서론) 세계에서 제일 높은 교회 십자가는 미국 시카고 제일 연합 감리 교회에 세운 십자가라고 하는데요. 그 높이가 무려 173미터(568피트)라고 합니다. 몇 년 전 이 교회 주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십자가를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고 합니다. 지나가던 차들도 다 멈춰 서서 그 십자가를 바라보았습니 다. 왜냐하면 그 십자가에 특별한 관심거리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그 높은 십자가에 올라가서 십자가를 수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아무도 그 십자가를 관심있게 쳐다보지 않았는데…… 사람이 올라가니 쳐다보며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점점 잊어버리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십자가에 대하여 무관심하게 되고, 성도들과도 멀어지고 있다고들 합니다. 오늘은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고난의 상징인 십자가와 관련하여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기독교의 상징은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기독교의 상징인 동시에 기독교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보여줍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현대인들과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십자가에 대한 믿음과 자세가 점차 약해지고 있고, 또 십자가는 한갓 장식품에 불과한 것으로 착각되는 현실을 보게 됩니다. 현대 교회들은 예전과 달리, 고난이나 십자가 보다는 부활에 대한 강조를 더 힘쓰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부활이 중요한 만큼, 예수의 고난과 십자가의 죽으심도 여전히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이 없는 부활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십자가와 부활은 불가분리의 관계이며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을 봐도 초대 교회의 사도들과 성도들은 십자가와 부활을 동시에 강력하게 증거 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고로 아무리 신앙이 좋다고 자타가 인정할지라도 십자가와 관계없는 신앙은 무익합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십자가에 대한 의미를 깊이 생각하며, 고난주일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기를 원합니다.) 본론) 가)용서의 십자가를 바라보자. |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거룩한 희생을 치루심으로써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우리는 구약 시대의 두 가지 모습을 생각할 때, 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희생되셨는지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1) 구약 시대에는 죄를 지은 사람이 그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 흠 없는 양이나 소를 희생 제물로 하나님께 번제로 바쳐야 했습니다. 제물을 드리는 사람은 짐승의 머리에 손을 얹고 자신의 죄를 그 짐승에게 전가(대신 죄를 지도록)시켜 자기 죄를 대신하여 짐승이 죽음을 당하고 피 흘리게 하였습 니다. 고로 피 흘림이 없으면 죄사함이 없느니라-라는 구약의 율법을 만족시켜야만 했습니다. 또 피는 곧 생명입니다.
그리고 희생 제물을 제단에 올려 그 짐승이 불에 태워짐으로 하나님 앞에서 자기 죄가 불살라 지고, 태워지고, 없어진다는 하나님의 법을 따라 살았습니다.
2) 그리고 구약 시대에는 1년에 한 번씩 속죄의 절기가 있었습니다.
속죄일에 제사장은 모든 백성들 앞에서 수 염소의 머리에 손을 얹어 백성들의 죄를 염소에게 전가시킨 다음 광야로 내쫓습니다. 결국 염소는 광야에서 맹수의 먹이가 되어 죽습니다. 이로써 백성들의 죄가 사해진다고 율법은 규정하였습니다. 이러한 구약의 죄사함의 규례는 결국 예수님의 십자가의 희생을 미리 보여준 예표(foretelling Sign)였습니다.
고로 침례 요한이 예수님을 가리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라고 했던 것은 이것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선악과를 먹은 사건 이후, 인간의 역사는 온통 죄로 물들게 되었습니다.
죄는 사망을 낳습니다. 사망은 곧 인간을 지옥으로 이끄는 도구이며 결국은 영원한 멸망을 가져옵니다.
이처럼 죄로 말미암아 지옥으로 가게 된 온 인류를 살리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모든 죄악을 한 몸에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희생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십자가의 희생은 그 동물이나 사람의 희생과는 전혀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지극히 거룩하고 위대한 온 인류 구속의 세계적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십자가를 바라보고 예수의 죽음이 우리 죄 사함의 역사적 사건임을 믿을 때, 우리 죄는 사함을 받습니다. 모세 때에,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원망과 불평을 하자, 하나님이 불뱀을 보내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물려 죽게하는 벌을 내리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죽음을 앞 둔 사람들이 장대에 달린 뱀의 형상을 바라만 보아도 살게 하시는 은혜를 베풀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그 뱀을 바라보아 살았으되 그 뱀을 무시하고 쳐다보지 않은 사람들은 죽었다 했습니다. 바라보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바라보는 것은 너무나 간단하고 쉬운 행동이지만 믿음이 없으면 바라 보려 들지 않고 코웃음을 치게 됩니다. 그리고 죽었습니다. 구원의 십자가, 죄 사하시는 십자가를 바라 보고 죽지 않고 사시는 여러분들 되시길 바랍니다.
나)우리를 살리신 그리스도를 바라보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은 그분의 살과 피를 자원하여 희생하심으로 우리의 영혼을 살리신 것입니다.
예화)
연어는 자신이 태어났던 곳을 찾아와 알을 낳고 새끼가 부화하게 되면 곧 죽곤 합니다. 그 이유는 어린 새끼가 어미 연어의 살을 먹고 자라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야말로 새끼를 위한 어미의 지극한 사랑이요 거룩한 희생입니다.
하나님은 죄에 빠진 우리를 살리기 위하여 하나님의 어린양, 주 예수 그리스도가 죽음을 당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흘리신 보혈로써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씻을 수 있으며,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살을 찢기심으로 인하여, 마치 어미 연어가 제 살을 파먹도록 함과 같이, 주 예수 그리스 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써, 우리의 영혼이 살게 된 것임을 잊어서는 아니 될 줄 믿습니다.
예수께서는 잡히시던 날 밤에,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나누시며, 제자들에게 떡을 떼어 주시면서 "받아먹으라. 이는 너희를 위한 내 살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또 잔에 포도주를 부어 나눠주시면서 "받아 마시라. 이는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과 같이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저와 여러분의 생명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살이 찢기셨고, 피를 흘리셨습니다. 십자가를 믿음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은 오늘도 그분의 피를 마시고, 살을 먹는 것이고,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습니다.
다)하나님 사이의 다리가 된 십자가를 바라보자.
우리는 예수님을 "중보자"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중보자란 중매장이란 말과 같은데 처녀, 총각을 중매하여 연결해 주는 중매장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중매 맺으신 분이시기에 '중보자'라고 합니다.
만약에 예수님께서 이 땅에 중보자로서 오시지 않으셨더라면 우리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맺어질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희생은 바로 우리와 하나님을 관계 맺어주셨습니다.
예화)
프랑스 파리에서 있었던 일이라 합니다. 파리의 어떤 4층집의 아랫층에서 불이 나 점점 윗층으로 불이 타 올라가고 있었답니다. 그중 4층에는 한 아버지와 어린 세 아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아들들은 아래층에서 불이 타올라오자 여러 번 탈출을 시도했지만 출입구가 막혀 있고 불이 워낙 세차게 타올라서 도저히 탈출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아들들을 데리고 옆에 있는 건물을 향한 창문으로 달려갔습니다. 다행히 그 창문에서 옆집 창까지는 불과 1m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아들들을 향하여 건너뛰라고 재촉했으나 아이들은 건물 아래를 내려다보고는 그 높이에 무서워 벌벌 떨고만 서 있습니다. 불은 자꾸만 타올라서 이제는 4층까지 번졌습니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게 된 아버지는 자기편의 창문에 발을 걸고, 건너편 건물의 창문을 향하여 몸을 던져 그 건너편 창문 창틀을 붙잡고 몸으로 다리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곤 아버지는 아들들에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얘들아, 어서 내 몸을 밟고 건너. 어서 어서!" 아버지의 외침을 들은 아들들은 용기를 내어 아버지의 몸을 밟고 무사히 옆집으로 건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힘이 빠진 아버지는 거기서 창틀에서 손이 미끌어지며 4층에서 떨어져 죽고 말았다고 합니다. 결국 세 아들이 생명을 위해 희생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구원의 다리, 생명의 다리가 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 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몸을 밟고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로 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오늘날, 우리가 아버지 하나님을 만나는 길이요 다리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지 않고서는 그 누구도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요 14:6절에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했던 것은 바로 우리들의 죄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 오시기 전, 700여젼 전에 이미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고 탄식하며 말하였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 5,6절의 말씀입니다.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라고 했습니다. |
결론)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예수께서 가시 면류관을 머리에 쓰시고, 온 몸에 채찍을 맞아 피 흘리시고, 양손과 발에 못이 박히고 옆구리는 창에 찔려서 물과 피를 한 방울도 남김없이 우릴 위해 흘리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1) 진홍같이 붉은 우리의 죄가 흰 눈같이 깨끗하게 씻김을 받았으며,
2) 그분의 십자가에서 찢기우고 상한 살과 흘리신 피로서 믿음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고
3) 그분의 십자가 희생으로 하나님과 구원의 다리로써 연결되어 영원한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런 것들이 바로 우리 모두가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오늘 예배에 참석한 모든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도 우릴 위해 죽기까지 구원을 이루신 예수의 십자가를 보다 새로운 눈으로 보다, 사랑하고 높이는 눈으로, 그리고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또 하나님의 이 신비하고도 놀라운 사랑에 감사와 찬양을 돌려 드리며, 그리고 이번 한 주간도 하나님의 사랑, 예수님의 사랑, 그리고 십자가의 은혜를 깊이 묵상하며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을 돌리 드리도록 하십시다. 할렐루야!!!
040522 안익선 목사 / 참조: 박광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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