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빌립보서 2장 강해(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

호걸영웅 2022. 4. 29. 23:27

빌립보서 2강해(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

 

서론)

오늘은 2장 공부의 시간입니다. 오늘 우리가 주의하여 볼 본문은 2:1-11 부분입니다. 특히 5-11절까지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라 는 제목으로 널려 알려진 본문이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먼저 2장의 전체 구조를 살펴봅시다.

1. 1-11절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살아라, 2. 12-18절 복음에 합당한 삶을 통해 구원을 온전히 이루라, 3. 19-30절 주의 일꾼을 존귀히 여기라-라는 내용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세 단락들을 어떻게 연결시키고 이해해야할까요? 먼저 1-11절까지의 내용은 빌립보 교회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을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마음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할까요?

본론)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1~5)

  1.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2.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더 귀하고 존중히)여기고
  4.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부분들의 말씀을 조금 깊이 생각해보면 바울의 많은 칭찬이 있었던 빌립보 교회에도 약간의 문제는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음을 같이 하지 못하고 다툼이나 허영이나 교만한 행동들이 제법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이런 문제 해결의 열쇠는 곧 예수의 마음을 품어야 한다는 권면을 하게 됩니다.

여기서 품는다는 의미는 목표로 삼는다. 그것을 위해 부단한 노력에 힘쓴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 품는다는 잠시 생각하고 스쳐 지나가는 것과 완전히 다른 강한 신념이나 목표 지향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빌립보 성도들이 먼저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일체)이셨지만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자기를 비우고 종의 형체를 입으신 점을 강조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성육신이라고 말합니다. 다음 주님은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성육신 사건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인간이 개미가 되거나 날파리가 되는 차원과 같습니다. 그리 되도록 자기를 낮추신 그리스도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쉽게 교만해지고 자랑하고 나를 내 세우기 쉬운 인간의 연약한 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것이 드러나지 않도록 항상 조심하고 그리스도처럼, 또 성령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야 할 존재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께선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시 사시고 부활 승천하심으로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그로 인해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하늘에 있는 자들이나 땅에 있는 모든 자들이 예수의 이름에 무릎을 꿇고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하게 하셨습니다.

 

기서 바울이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철저히 하나님 앞에서 예수님처럼 자신을 낮추면 예수님처럼 우리를 높여 주실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지금은 낮추어야할 때다’라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이러한 원리를 따라 3절에서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고 충고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낮추셨기 때문입니다.

 2:27을 보십시오. 바울은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라고 말합니다.

한편, 에베소서 말씀을 잠시 생각해 보십시.

바울은 4:22-24에서 ‘너희는 .. 새 사람을 입으라’라고 말하고, 5:1에서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5:8에서는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라고 권면합니다.

에베소서 강조하고 있는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말합니다. 그런데 빌립보서에서는 ‘한 마음’과 ‘한 뜻’이란 단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이방 교회들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분쟁’이기 때문입니다. 고린도교회 역시 그랬지만 빌릴보 교회도 심하진 않았어도 제법 빈번하게 분쟁이 드러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함으로써 교회가 일체가 됨으로써 하나님께와 바울 자신에게도 기쁨이 되길 원했습니다.

14.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15.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16.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고 했어요.

 

4:2에서 바울은 유오디아와 순두게에게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라고 말합니다. 아마도 빌리보 교회의 유아디오와 순두게도 교회 내에선 꽤 중요한 리더였다고 보여집니다.  그래서 그들을 거론하기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2:5에서 권유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온전히 알고 온 마음으로 예수님을 따를 때 같은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등하셨으나 자기를 비움으로 낮추시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복종하신 것처럼, 우리도 주님처럼 그렇게 자신을 낮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야 하나님께서 우리를 높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제 그리스도처럼 자신을 낮추고 헌신의 삶을 살았던 이를 소개합니다. 전면에 드러나지는 않지만 빌립보서에 명의 소개되는 주의 일꾼들은 타의 모범이 될만한 귀한 자들입니다.

)주님을 위해 헌신했던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에 관하여

2장에서는 두 명의 인물이 중요하게 소개됩니다. 먼저 디모데입니다. 19-24절에서 디모데가 어떤 일을 했는지 이야기합니다. 바울은 20-22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20 이는 뜻을 같이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밖에 내게 없음이라 21 그들이(보통 사람들, 혹은 다투는 비성숙한 그리스도인들)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 22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버지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라고 합니다.

 디모데는 바울의 그림자와 같았습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항상 바울 곁에서 바울의 손과 발이 되어 주었습니다.

성도들의 입장에선, 성도가 좋은 목회자를 만나는 것도 복이고, 목회자의 입장에서는 좋은 성도를 만나는 것도 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좋다’는 말은 어떤 의미일까요? 단순히 성경이나 인품의 문제일까 요? 물론 성격과 인품도 절대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진정한 좋음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매우 간단합니다.

목회자는 성도를 위해 그리스도가 죽은 것처럼 최선을 다해 그 성도들을 사랑하고 섬겨야 합니다. 오직 진리의 말씀으로 양육하고 죄를 책망하되 ,회개하고 돌아오면 만사를 제쳐두고 안아주고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주님처럼 성도를 사랑하는 목회자가 좋은 목회자입니다.

그럼 좋은 교인, 성도는 누구입니까?  저는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와 같은 성도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진리를 위해 수고하고 애쓰는 교회의 지도자들을 잘 섬기고 순종하고, 함께 고난을 받는 것입니다.

* 에바브로디도( 사랑스러운,존귀한 자) 보십시오. 바울은 25절에서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내가 것을 돕는 자라라고 말합니다. 에바브로디도는 단지 수고를 넘어 마음 씀씀이가 극히 아름다운 사람이었습니다. 자기가 병들었을 , 소식이 빌립보교회 전해지자 빌립보교회 성도들이 자신 때문에 걱정할 까봐 그것을 더 걱정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에바브로디도를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심으로 자신과 빌립보교회 성도들이 근심을 덜어주었다고 말합니다. 병에서 회복된 것을 의미합니 다. (27-28)   

여기서 중요한 교훈이 하나 있습니다. 모든 성도들이 구원받고 새생명 얻는 것도 사역자들에겐 너무도 큰 기쁨과 감사의 제목입니다. 거룩한 탄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역자나 하나님께서는 또  다른 바램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성장과 성숙입니다. 그리스도를 닮는 것입니다. 그러할 때 사역자나 하나님의 마음은 온전한 기쁨으로 충만 할 수 있습니다. 태어나긴 했는데태어난 자녀들이 성장하지 못하고 성숙을 이루지 못하고 분쟁과 다툼을 일삼는다면 어찌 사역의 기쁨이 있으며 하나님의 기쁨을 있을 수 있겠는가 하는 점입니다.

이제 29절을 보십시오. 바울은 또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 안에서 모든 기쁨으로 에바브로디도를 영접하 고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라고 말합니다.

‘존귀하다’의 헬라어 엔티모스( ἔντιμος)는 자신과 비교해 더 탁월하고 높은 지위나 인격을 가진 사람이란 뜻입니다. 누가복음 14:8을 봅시다.

“네가 누구에게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에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보다 더 높은 사람이 청함을 받은 경우에”(눅 14:8)란 구절이 있습니다.

여기서 ‘높은’이란 단어가 바로 엔티모스, 존귀한 이란 뜻입니다. 다시 2:3를 봅시다. 바울은 다툼과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마음의 자세에서 바로 ‘자기보다 남은 낫게(훨씬 더 훌륭하고 귀하게,존중하는 맘으로) 여기’는 것이라 했습니다.

이 원리는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사역 속에 담겨있습니다.

바울은 주님께서 너희들을 존귀히 여기 기꺼이 자신을 낮추고 헌신한 것처럼, 너희도 주의 복음을 위해 일하는 자들에게 마땅히 낮추고 그들을 존귀히 여겨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에서 누가 존귀히 여김을 받아야 합니까? 돈이 많은 사람입니까? 아니면 학벌이 높은 사람입니까? 아니면 명예가 많은 사람입니까? 바울은 이 모든 것은 모 버려야할 배설물에 불과하며 주를 위해, 복음을 위해, 교회를 위해 수고하고 애쓰는 자들을 마땅히 존귀히 여겨야 한다고 말합니다. 왜일까요?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결론)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인 성경을 읽고 그 가르침을 바르게 배우고 익히고 실천해야 합니다. 성경의 핵심은 십자가이고, 성경의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이고, 성경의 목적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우기 위함입니다.

 본문이 가르치시는 바, 우리가 품어야 할 예수의 마음이란 결국 무엇 무엇입니까?

1)    먼저 겸손한 마음입니다.  2)그리고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는 마음입니다. 3)그리고 하나님 아버지께 죽기까지 순종하는 마음입니다.

 

늘도 우리가 빌립서 2을 통해 배운 바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한 마음을 품고, 겸손하게 하나님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여러분 모두와 제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041922
안익선 목사/ 참조:[Pensées] & 홍윤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