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빌립보서 4장 강해(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호걸영웅 2022. 5. 25. 00:57

빌립 4장 강해(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서론)

빌립보서 4장은 매우 친밀하고 다정한 바울의 권면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편지를 빌립보 성도들에 대한 편지를 마치면서 몇 가지를 조언하고 안부 인사를 전합니다. 4장은 다음과 같이 구분할 수 있습니다.

2-9절 서로 화목하라, 10-20절 빌립보 교회를 향한 감사, 21-23절 마지막 인사-등입니다.

본론)

)1. 2-9절 서로 화목하라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위한 편지를 마치면서 유오디아와 순두게가 화목하기를 권하고 있습니다. ‘권하다’라는 ‘파라칼레오(παρακαλέω)’란 단어가 사용되었는데, 이는 간청한 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같은 마음을 품으라’라는 단어는 생각하다’ ‘보살피다’라는 의미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무심하거나 건성으로 일을 하지 말고 주의할 점을 염두에 두고서 행동하라,,,는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점을 미루어 보면, 당시 빌립보 교회에선 지도자급 여성 헌신자들로 여겨지는 유오디아와 순두게는 단순한 감정뿐, 다소 심각한 관점의 차이로 인해 사역의 갈등이 일어난 적이 분명히 있었던 것으로 볼수 있습니다.

물론 유오디아와 순두게 간의 불편했던 문제는 서로 교회를 향한 열심으로 인해, 혹은 악하지 않은 동기로 일어난 의견 충돌로 보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비록 이들이 서로 충돌을 일으킨다 해도 그들이 서로 존중하라고 권면합니다. 왜냐하면 그 여인?들이 참으로 구원받고 헌신하는 사람들로서, 역시 예수님의 생명책에 있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이 말은 비록 의견이 충돌이 다소간 있었다 할지라도 주의 일에 동역하는 자요, 주님의 피로 사신 주의 백성들이요, 주 안에서 한 가족이기 때문이라는 의미가 되겠습니다. 우리는 종종 서로 좋은 뜻으로 주의 일을 시작하다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 원수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일은 사단의 역사에 빠져 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라

 고로4-9절은 이러한 배경 속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라는 권면으로 보입니다. 4-5절을 보십시오. 4절에서는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조언하고, 5절에서는 ‘너희의 관용을 사람에게 알게 하라’고 충고합니다. 관용은 너그러운 마음을 이야기합니다. 여기에 덧붙여 ‘주께서 가까우시니라’고 경고합니다. 이 말은 우리가 항상 주님의 심판대 앞에서 선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성도는 날마다 ‘주 앞에서(Coram Deo)’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항상’ 기뻐해야하고, ‘모든 사람에게’ 관용을 베풀어야 합니다. 관용이란 너그러운 마음으로 상대방의 의견이 실수를 용서해주고 이해해 주려 힘쓴다는 것입니다. 이해가 잘 안돼는 행동이 상대방에게 나올지라도 무언가 까닭이 있겠지, 다 말하거나 설명치 못한 문제가 있었겠지.하고 용서하고 참아 넘기는 일이 쉽진 않지만 부단히 노력하고 힘쓰라는 권면이 되겠습니다.  우리도 이 점을 잘 명심하고 실천해야 할 줄 믿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바울은 우리에게 날마다 주 앞에서 ‘기도하라’고 말합니다.

 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하십니다. (일 중심보다는 사람 중심으로 일을 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우리 스스로를 늘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할 때 우리는 ‘감사거리’를 찾아야 합니다. 감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 주시고 선으로 인도하실 것을 믿는 믿음에 근거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최선으로 이끄실 것을 믿을 때 감사할 수 있습니다. 두려움은 주님을 신뢰하지 않음으로 일어나는 영적 어두움입니다.

)항상 생각해야 할 것들 몇 가지

아울러 바울 사도는 결국 성도들이 날마다 종말론적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점을 말해 줍니다. 그래서 바울은 기도를 권면한 다음 항상‘생각하라’할 것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조목조목 몇 가지 점검 사항들 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는지 이것들을 생각하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생각하라’ 라는 헬라어 ‘로기조마이(λογίζομαι)’는 ‘로고스’에서 왔으며,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결국 4-9절에서 다섯 개의 동사가 사용되어, 빌립보 성도들을 권면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게 됩니다.

4절에서 ‘기뻐하라’, 5절에서는 ‘관용을 베풀어라’, 6절에서는 ‘기도하라’, 8절에서 ‘생각하라’, 마지막 9절에서 ‘행하라 ’라고 권면합니다.

9절의 ‘행하라 ’는 앞선 네 동사를 정리하는 역할을 합니다. 어쩌면 9절의 ‘행하라 ’라는 동사는 그리스도인의 앎과 믿음은 결국 삶으로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 같습니다. 삶으로 실천할 때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9절 하)고 위로했습니다.

)10-20절 빌립보 교회를 향한 감사

빌립보교회 성도들을 향한 바울의 애정이 깊다는 것은 10-20에서도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아마 생각만 해도 기쁜 것 같습니다. 10절을 보십시오. 10절을 의역하면, ‘다시 너희들을 생각하니 주님 안에서 나의 마음이 너무나 기쁘구나.’가 될 것입니다. 아마 전에 말했겠지만 지금도 기쁘다는 뜻입니다.

 그 이유는 바울의  2차 전도여행 당시,  마케도냐(북부 그리스 지역)에 도착해 어려움을 당할 때, 빌립보교회가 바울을 적극적으로 도왔기 때문입니다.(15) 바울은 이 일을 잊을 수 없었고 , 그들의 도움에 대해 감사를 표하였습니다. 빌립보교회 성도들의 마음은 어찌나 아름다웠던지…… 16절에도 보니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도 헌금을 보내와 바울을 두 번이나 도왔다 했습니다.(16)

 [빌립보서 4:15-16] 15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16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라고 기록했듯이, 이러한 도움에 감사하면서 칭찬을 할 수 밖엔 없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젠 자신에게는 모든 것이 풍부하기 때문에 이미 풍족하다고 말합니다.(18) 바울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그들의 도움이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고 선언합니다.(18) 또한 하나님께서 빌립보교회 성도들의 쓸 것을 채우실 것을 간구하듯 말합니다. 여기서 바울의 자족하는 마음을 볼 수 있고 또 빌립보 성도들이 마음에 자기 자신(바울)을 염려를 하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 등도 엿볼 수 잇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한 가지 점검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 자체가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물로 인정된다 점입니다. 많은 부분에서 이것을 언급하고 있지만, 에베소서 5:2절에서 비슷한 내용을 발견합니다.

5:2 그리스도께서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고 한 바와 같습니다.

 이 구절은 대속제물로서의 예수님의 사역을 언급하고 있지만, 성도들의 순종도 의미합니다. 성도들의 행함은 곧 그리스도의 제물로서 드려짐과 다르지 않습니다.

로마서 12:1로 돌아가 봅시다. 이곳에서 역시 비슷한 내용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예배니라”-고 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삶 자체가 하나님께 드려진 예배이며, 제물인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목적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결국 4장은 다시 9절로 돌아가 ‘행하라’는 권면에 묶여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답게 살기 위해서는 성경을 통해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해야 합니다. 여기서 받고=믿고.라고 해석하면 좋을 듯 합니다.

 )21-23절 마지막 인사

 이제 바울은 마지막으로 인사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성도들에게’ 서로 문안하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서로를 돌아보고 사랑해야 합니다. 문안하다는 말은 서로 마음과 관심을 나누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각각’이란 단어도 생각해 봅시다. ‘각각’은 우리나라 말로는 ‘따로 따로’란 의미이지만 헬라어 성경은 ‘모두’란 뜻의 ‘판타(πντα)’입니다. 그래서 제가 가진 NIV 성경에는 ‘all God's people’로 번역했습니다. 즉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든 성도에게 문안하라는 뜻이 됩니다. 우리 교회가 광고시간이 좀 길기도 하고 헌금 전에 하는 이유도 다 그런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 기도해 주기 위해서도 그렇고 실질적 도움을 주기 위해서도 성도가 서로 간의 형편을 아는 것이 중요한 교회 생활의 요소 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이 권면 속에는 서로 마음이 맞거나 좋아하는 사람들끼리만 서로 교제하고 좋아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 되기도 합니다.

 22절에서 바울은 이것을 염두에 둔 것처럼 ‘모든 성도들이 너희에게 문안’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가이사의 집 사람들 중 몇이’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문안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점을 미루어 짐작해보면, 빌립보서가 기록되기 훨씬 이전에 벌써, 로마 감옥에서 잠시 풀려난 바울이  황제의 집 사람들, 곧 황족들에게도 이미 복음을 제법 전파한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결론)

오늘의 결론은  4-9절에서 다섯 개의 동사가 사용되었음을 복습하면서 마무리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4절에서 ‘기뻐하라’, 5절에서는 ‘관용을 베풀어라’, 6절에서는 ‘기도하라’, 8절에서 ‘생각하라’, 마지막 9절에서 ‘행하라’라고 권면합니다.

9절의 ‘행하라’는 앞 선 네 동사를 정리하는 역할을 했다고 했습니다.  고로 9절의 ‘행하라’라는 동사는 그리스도인의 앎과 믿음은 결국 삶으로 실천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우리가 늘 배운 바와 믿은 바를 효력있게 하려면, 그런 것들을 삶으로 실천할 때이며, 또 그리할 때 ‘평강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실 것입니다. (9절 하)

 

                                      050322 안익선 목사/ 참조: [Pensé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