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잠언 3장 강해(하나님의 법을 지킬 때 오는 복들)

호걸영웅 2022. 5. 25. 00:51

잠언 3장 강해(하나님의 법을 지킬 때 오는 복들)

서론)

본 장에서도 지혜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얻게 되는 갖가지 축복들이 소개됩니다. 우리는 여기서, 지혜로운 자와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그리고 여호와를 인정하고 의뢰하는 자가 모두 동일시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1~26절에서는, '...하라, 그리하면...' 라는 형식이 무려 5번이나 반복되는 가운데, 여호와께 순종하는 자들에게 어떤 축복이 임하는지를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 축복이란 장수, 평안, 영예, 부귀 등 모든 인생이 공통으로 희망하는 복된 삶을 말합니다. 그리고 27절 이하는 이웃에게 선을 베푸는 것이 곧 여호와께 복을 받는 길임을 가르칩니다.

본론)
)지혜를 알고 지키면 얻는 유익들(1~10)

(1-2)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그것이 네가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

본문은 2장과 동일하게 ‘내 아들아’라는 부름으로 시작됩니다. 어떤 교훈이나, 중요한 가르침을 전하여 줄 때에 그 대상이 자기 자녀인 것 처럼 다정하고 친근하고 간절한 느낌이 옵니다. 그것이 솔로몬의 심정이었습니다.

우리도 남보다는 자기의 친 자녀에게는 더 진지하게, 더 마음을 쏟아가면서 말할 것입니다. 그 내용이 중요하면 중요할수록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그래서 ‘내 아들아!’라고 시작하는 것은 지금 전하는 내용이 꼭 기억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심정임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됩니다.

솔로몬은‘법을 잊어버리지 말라’고 소극적으로 말한 후에, ‘명령을 지키라’고 적극적으로 말합니다. 바른 신앙과 바른 삶은 하지 말아야할 것을 하지 않고, 해야 할 것을 하라는 것입니다 .

시험을 며칠 앞두고 있는 아들이 계속해서 놀고 만 있을 때, “아들, 이제 그만 놀지!”라고 말했을 때, 소파에 앉아서 가만히 있다면, 부모의 속은 더 뒤집어 질것입니다. 그래서 “그만 놀라고 했잖아?”라고 말하니, “그래서 말대답(반론이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가만히 있잖아요?”라고 말하면, 한숨이 저절로 나올 것입니다.

신앙도 동일합니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 않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지켜야 할 것을 지키는 데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솔로몬은 법을 잊지 않고 명령을 지키는 것이, 장수와 평강을 더하여 준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은 영원한 말씀을 지키는 것이기에, 영원에 연결되어지는 삶을 살게 해 주고, 말씀에 순종하 는 삶에는 세상이 알 수도 없고, 줄 수도 없는 평강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3-4) 인자와 진리가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
‘인자’는 ‘떨어지지 않는 사랑, 실패하지 않는 사랑’이며, ‘진리’는 ‘불변하는 법칙과 하나님 말씀’입니다. 그것을 목에 매고, 마음판에 새기라고 합니다.

‘목에 맨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게 여기며, 자신의 삶에 반드시 적용하라’는 의미입니다. 마치 회사원이 자신의 회사 신분증을 목에 걸고 다닙니다. 그래서 회사를 출입하거나, 사무실을 들어갈 때에, 잠금장치에 대면 문이 열립니다. 그가 그 건물과 방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신분이라는 의미입니다. 인자와 진리를 목에 거는 것은 그 은총을 받은 사람으로 거기에 걸맞게 인정받고 살라는 의미입니다.

본래 새기는 일은 돌, 나무, 금속 등에 합니다. 그래야 오래가기 때문입니다. 만약 모래 위에다 무엇을 새겼다면 비록 아무리 정교하게 새겼다 할지라도 파도가 치거나, 비가 내리면 이내 뭉개집니다. 하지만 돌, 나무, 금속에 새긴 것은 오래 지속됩니다. 그만큼 소중하게 여기라는 의미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습니다.

(5-6)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온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을 신뢰하고, 자신의 명철(이해력)을 의지하지 않아야 하는 것은 인간의 명철은 늘 불완전하고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가 아무리 명철이 뛰어나다 할지라 도 대학시험을 볼 수는 없습니다. 이해력이 모자라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뛰어나도 자신의 인생은 자신이 책임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의지할 수 없습니다.

고로 우리가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는 우리가 가야하는 길의 결과를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 앞에 있는 인생길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생각과 다른 생각을 하시며, 우리의 길보다 높은 길이신 하나님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것도 ‘범사에’ 인정해야 합니다. 즉 좋아 보일 때는 물론이고 좋아 보이지 않을 때도 그렇습니다. 인생에 날씨가 맑을 때는 물론이고 흐릴 때도 그렇습니다. 비바람이 치거나, 눈보라가 휘날릴 때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어떤 길이, 어떤 상황이 나에게 궁극적으로 유익한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지도를 따르는 것이 참된 명철입니다. 또한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 떠납니다.

(9-10)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포도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재물’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게 할 만큼 힘이 셉니다. 하지만 그 재물로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것은 재물보다 하나님을 더욱 소중하게 여기겠다는 결심입니다. 그리고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공경한다는 것의 의미는 “내가 수확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라고 행위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과거엔 자녀가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하여 첫 월급을 타면 부모님의 내의를 사드렸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제가 자라서 어엿한 직장인이 된 것은 전적으로 저를 길러 주신 부모님의 은덕입니 다”라고 고백하는 것과 같습니다.

)지혜의 가치와 지혜가 주는 것들(11-26)
(11-12) 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

본문이 말씀하는‘징계’는 단순한 체벌이나 이유 없는 매질이 아닙니다. 여러 영어성경에서 징계를 ‘훈련(disciplines)’이라고 번역합니다. 그것보다 더 적절한 단어는 ‘자식 만들기,양육’입니다. 바르지 못한 부모는 자녀를 과도하게 대하거나 방치합니다. 그러나 바른 부모는 반드시 자기 자녀를 ‘바른 자녀 만들기’를 합니다. 하물며 하나님이시겠습니까?

고로 지혜와 명철을 얻는 것은 은()을 얻는 보다 낫고, 큰 이윤을 남기는 것보다도 낫습니다. 지혜는 돈(재물)보다 유효기간이 훨씬 길고 효능이 엄청나게 큽니다. 그래서 지혜의 길은 즐거운 길이고, 평강의 길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이렇게 권면합니다.
(21-24) 내 아들아 완전한 지혜와 근신을 지키고 이것들이 네 눈 앞에서 떠나지 말게 하라 그리하면 그것이 네 영혼의 생명이 되며 네 목에 장식이 되리니 네가 네 길을 평안히 행하겠고 네 발이 거치지 아니하겠으며 네가 누울 때에 두려워하지 아니하겠고 네가 누운즉 네 잠이 달리로다

솔로몬은 젊은 사람에게 지혜와 근신(삼가는 마음으로 행하는 것)을 지켜서, 눈 앞에서 떠나지 말게 하라고 합니다. 그것이 생명과 목에 아름답고 영화로운 장식(목걸이)처럼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잠자리가 두렵지 않고, 단잠을 자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선한 인간관계에 대하여(27-35)
27-35절은 지혜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을 강조합니다.
(27-28)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 네게 있거든 이웃에게 이르기를 갔다가 다시 오라 내일 주겠노라 하지 말며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지혜롭게 해 주시고, 근신하는 삶을 살게 해 주셨다면, 이웃이 먹을 것이 없다고 하면, 굶게 하지는 말고, 지금 줄 수 있음에도 내일 다시 오라 하지 말라고 합니다.

꼭 구제가 아니어도, 우리의 격려가 필요한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때에, “언제 밥 한 번 먹자!”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언제’가 ‘언제’인지를 정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를 받은 사람인지 아닌지가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서 나타나듯이, 우리가 하나님께 사랑을 받은 사람인지 아니지도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서 나타납니다.

솔로몬은 이웃들을 향해 시비를 걸지도 말고, 그들을 부러워하지도 말며, 그들의 삶을 본받지도 말라고 한 후에, 또 이렇게 권면합니다.
(32-35) 대저 패역한 자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 정직한 자에게는 그의 교통하심이 있으며 악인의 집에는 여호와의 저주가 있거니와 의인의 집에는 복이 있느니라 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 지혜로운 자는 영광을 기업으로 받거니와 미련한 자의 영달함은 수치가 되느니라

패역한 사람(비뚤어진 사람)은 하나님의 미움의 대상입니다. 실수한 것이 아니라 이미 마음이 비뚤어진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과 소통할 수 없습니다.

패역한 사람은 하나님을 몰라서 하나님과 등진 삶을 살지 않고, 자신의 욕망을 따라서 살기 위해서 스스로 하나님과 등진 것입니다. 반면에 하나님과 정직한 사람 사이에는 교통이 있습니다.

고로 악인의 집에는 하나님의 저주가, 의인의 집에는 복이 있습니다. ‘집’은 좁게 ‘가정’이고, 넓게는 ‘가문’입니다. 하나님과 소통하며,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 사람의 집은 세월이 지날수록 믿음의 명가(名家)가 됩니다.

흔히 ‘거만’, ‘교만’, ‘오만’ 등 세 가지 ‘만’을 조심하라고 하는데, 이 세 가지의 특징은 자기 자신을 크게 여기고 과대평가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커봐야 얼마나 크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 비웃으신다고 합니다. 마치 우리 앞에서 개미 세 마리가 서로 자신이 더 크다고 우긴다면, 얼마나 웃기겠습니까? 그것과 비교될 수 없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거만하게 행하는 것입니다.

결론)

결론적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영광(무거움)을 기업으로 받지만, 미련한 사람이 영달(높은 자리에 올라감)할지라도 수치를 당한다고 합니다. 영광은 ‘모든 것의 풍부함과 존경’을 뜻하며, 미련한 사람에게 영달함이 수치가 된다고 합니다. 마치 유다인들을 몰살시키려 했다가 자신이 죽임을 당한 하만처럼 말입니다.

모든 참된 지혜는 우리에게서 나오지 않고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겨선 아니됩니다. 고로 우리는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신뢰하고,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이 드러나는 곳은 언제나 내 삶의 현장,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는 곳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절대적인 용서를 받은 것이 틀림없다면, 하나님께서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심어 주신 삶의 현장에서 늘 부딪히는 사람들에게 용서를 베풀며 살아야 합니다.
오늘 하루도 은이나 정금보다 나은 지혜, 진주보다 귀한 지혜를 사모하고 지켜 나가며, 삶의 모든 자리에서 하나님을 인정함으로써 우리의 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나날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051222 안익선 목사 / 참고: 정한조 & [BIBLE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