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모음(Korean sermons)

호세아의 교훈 (호6:1-6)

호걸영웅 2022. 7. 23. 04:40

호세아의 교훈 (호6:1-6)

  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2.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 없나니 와 같이, 을 적시는 늦은 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4.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
  5. 그러므로 내가 선지자들로 그들을 치고 내 입의 말로 그들을 죽였노니 내 심판은 처럼 나오느니라
 

 

  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참고:에브라임은 북 이스라엘 대표지파.

서론)

   마지막 때가 되면, 점점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고, 이기적이어서 자기밖에 모르게 된다고 했습니다. 남을 돌아볼 여유도 없고 힘도 거의 없습니다. 주님은 이런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마지막 때의 너희들의 믿음을 보겠느냐고 탄식하십니다. 이런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믿음이고, 믿음으로 나와 이웃과 사회를 돌아보고, 시대를 분별하며 사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믿음이 필요하고, 믿음으로 살던 사람들을 통해 믿음을 배우고, 키워야 합니다. 오늘은 북 이스라엘 왕조 때에 신실했던 선지자였던 호세아를 통해 하나님이 과연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에 대한 함께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본론)

)첫째, 하나님을 바로 아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호세아는 북쪽 이스라엘 왕국의 제 13대 왕이었던 여로보암 2(기원전 790~750) 때에 활동했던 선지자입니다. 여로보암은 우상숭배를 열심히 한 어리석은 왕의 하나입니다.

 

구약의 선지서(예언자의 책들)를 크게 2그룹으로 나눕니다. 대선지서와 소선지서로 구분합니다. 그 분류 기준은 어느 선지자가 성경을 기록한 분량이 많으냐 아니면 적으냐에 따라 나눕니다.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서는 대선지서라 부르고, 그 외에 남은 선지서를 소선지서라고 부릅니다.

 

호세아는 소선지서를 기록한 선지자의 한 사람으로서 성경의 기록 14장 분량으로 아주 그리 많지 않지만 그리 적은 것도 아닙니다. 호세아는 조용하고도 힘있게, 당시 타락한 이스라엘을 향해 하나님의 뜻을 선포한 분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은 그의 사역에 절정에 이른 선포의 말씀이면서, 그가 개인적으로 깨달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신앙을 보여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여기에서 우선적으로 주목할 말씀은 3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빛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했습니다.

   그가 여기서 믿음으로 신앙으로 강조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알자는 것입니다. 힘써 여호와를 알자고 선포합니다. 이것이 그의 믿음의 기초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 ‘알자’는 것은 바른 지식, 체험적 지식 등 전반적이고 종합적인 앎을 말합니다. 먼저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생각을 가지고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에 매우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로 아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품에 대하여, 성경에 대하여 알아야 하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인생을 바르고 참되게 사는 길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 인생살이의 지침, 곧 메뉴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바로 이런 아는 믿음에서 튼튼한 기초를 세워 흔들림이 없는 신앙으로 세워지고 다져 가게 되는 것입니다.

   호세아가 활동할 때,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멀리 떠나 있었습니다. 왕은 물론이고 백성들도 하나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가다가 나라는 곧 멸망하고 말 것입니다. 결국 선지자들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북쪽도 남쪽도 다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선지자들, 특히 호세아 선지자가 진단한 이들이 멸망의 가장 큰 원인이 무엇이었을까요? 호세아4장에서 그것을 밝혀주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이 땅 거민과 쟁변하시나니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오직 저주와 사위(거짓)와 살인과 투절(도적질)과 간음 뿐이요 강포하여 피가 피를 뒤대임이라.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네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은 곧 하나님을 바로 아는 지식이 없었기에 망했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제대로 아는 지식이 있으면 망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넉넉하고 풍요롭게 삽니다. 아는 것이 힘이요, 아는 것이 튼튼한 믿음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은 생각하는 믿음이어야 하고, 연구하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때로는 사단의 유혹으로 하나님을 잘못 아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 땅에 잘못된 많은 이단들은 다 그런 이유로 탄생하게 됩니다. 우상숭배는 더욱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바로 아는 믿음이 중요한 믿음입니다.

 

)둘째, 체험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계속되는 말씀을 보면, 호세아는 아는 믿음만을 강조하지 않았음을 발견합니다. 2절에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고 강조합니다.

 

이 말씀은 3절의 아는 믿음과 대비되는 것으로서 경험과 체험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특히 이틀, 삼일을 강조하는 말씀은 신앙과 삶에 무엇보다도 구체적인 체험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아는 믿음도 중요하지만 체험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사실 어떤 사람들은 체험(방언, 신유,축귀,입신,예언 등등)을 더 중시하거나 강조하지만 지식적인 믿음도 그 이상으로 필요한 기초적 믿음입니다.

그런데 만약 아는 믿음이 우리 신앙의 전부라고 한다면 성경을 많이 알고, 말씀을 통달한 사람이 가장 믿음이 좋다 할 것입니다. 성경을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줄줄 외우고, 말씀의 한마디 한마디를 정확하게 분석하고 터득한 신학교 교수들이 가장 믿음이 좋아야 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과 말씀을 단순히 지식에서 머무는 것은 완벽한 믿음은 아닙니다. 우리의 신앙은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와야 합니다. 이런 것을 30센티미터 여행이라 합니다.

 

머리에 가진 모든 아는 지식이 가슴으로 느껴지고, 받아드리고, 체험되고 경험이 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말씀이 믿어져야 돼요! 믿어지지 않으면 헛것이란 말입니다. 고로 우린 믿음 주십사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말씀은 내가 경험되어지는 것만 확실히 알고, 경험할 때 내 것이 됩니다. 객관적인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주관적인 경험을 통해 확실한 믿음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 안다는 말의 의미는 단순히 지식적인 앎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체험적인 앎을 말합니다. 부뚜막의 소금도 집어 넣어야 짜다 했습니다. 신앙생활 열심히 하다보면 체험도 뒤따르게 됩니다. 고로 신앙생활도 깊어지게 됩니다.

   헐버트 웰즈(H. G. Wells)라는 영국의 작가가 쓴 단편소설 중에 ‘대주교의 죽음’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내용은 간단히 말하면 이렇습니다. 대주교는 믿음이 아주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매일 기도하고, 성경보고, 상담하고, 경건하게 사는 사람입니다. 매일 아침에 일어나 묵상으로 기도하고, 하루종일 기도를 반복하면서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에도 매일 했던 것처럼 습관처럼 성당에서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늘 했던 것처럼 그 날도 똑같은 기도를 반복하며 이렇게 하나님을 불렀습니다. "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하고 간절히 하나님을 부르며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 갑자기 하늘에서 "오냐, 무슨 일이냐?" (Yes, what is it?) 하는 하나님의 음성, 하나님의 거룩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런데 이 소리를 듣자마자 대주교는 심장마비를 일으켜 죽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단편은 날카로운 풍자를 담고 있습니다. 대주교는 평생을 하나님을 믿었는데, 그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듣고 있고, 그 기도가 정말 응답되리라고는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지식이 있었지만 체험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 하나님이 응답하시자 너무 놀라 심장마비로 쓰러졌다는 것입니다.

   혹 우리도 이런 사람이 아닌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정말 하나님이 살아 계신 것을 믿는다면, 그 하나님을 마음으로 느껴야 합니다. 나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고백한다면, 날마다 세미 하게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기도하면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안다면, 내가 실제로 기도하여 응답을 체험해야 합니다.

 

) 셋째, 행동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하십니다.

호세아는 무엇보다도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라고 강조해 외칩니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제 행동하자는 것입니다. 내 의지와 결단을 세워 행동으로 옮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중요하고, 내 마음으로 체험되는 것도 필요하지만, 이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필요한 것은 의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라는 행동을 강력하게 촉구하는 것입니다.그래서 징계의 회초리와 매가 있습니다.

   당시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젼혀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모세 시대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이 개인과 민족에 어떤 은혜를 베푸시고, 하나님의 말씀과 율법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아주 모르 지 않았습니다. 또한 그들은 크고 작은 기적과 능력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자기와 함께 하고 있음을 이미 역사를 통해 체험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점 이스라엘이 외적의 침략을 빈번히 당하고 경제가 어려워지고, 왕조가 궁극적으로 쇠약해진 요인이 무엇이었습니까? 그들이 그 지식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 까닭입니다. 아는 것에서만 그치고, 체험되는 것에만 어렴풋이 만족할 뿐, 회개한 자들 답게 행동하지는 않은 것입니다. 문제가 바로 거기에 있었습니다. 호세아는 이런 백성들을 살리기 위하여 이제 여호와께로 돌아오라!고 외친 것입니다.

   ‘호세아서’에서 호세아 선지자의 삶에 가장 강조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행동, 곧 절대순종함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호세아의 믿음을 알려주기 위하여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호세아로 하여금 당시 바람둥이로 소문난 여인인 고멜과 결혼하라는 것입니다. 호세아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그 여인과 결혼하여 세 자녀를 낳았습니다. 그러나 고멜은 욕정에 이끌어 호세아를 버리고 다른 남자의 품에 안기며 방탕한 생활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세아는 또 하나님의 명을 받고 다시금 고멜을 찾아가고, 값을 치루고 감싸고, 마음으로 용서하며 집으로 데려 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합니까? 물론 하나님은 음탕한 고멜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의 영적 간음과 타락을 상기시켜 주려는 의도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세아 개인에게 향한 이런 모습은 무엇보다도 믿음으로 나타나는 ‘행동’을 강조합니다. 보통 사람은 도무지 할 수 없는 결혼과 사랑과 용서를 통해 호세아의 어떤 이유나 변명보다도 하나님 말씀엔 무조건 순종이라는 행동을 강조합니다.

   믿음은 지식에서만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감정에만 머물러도 안됩니다. 믿음은 행동까지 가야 합니다. 이것이 온전한 믿음이요, 성숙한 믿음입니다. 깨달은 말씀, 체험한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결론)

우리 대부분은 그동안 엄청나게 많은 설교와 성경말씀을 들었습니다.  거룩하게 살아라! 주일성수하라! 선을 행하라! 서로 사랑하라! 원수를 사랑하라! 용서하며 살라! 기도하라! 도적질하지 말라! 전도하라! 등등

알고만 있으면 뭐합니까? 실천해야 합니다. 부뚜막의 소금도 집어넣어야 짜다고 했습니다. 순종해야 합니다.  물론 우리는 의지가 약하고 부족합니다. 마음은 원하지만 잘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파하고 괴롭기도 합니다. 그러나 내가 연약하면 할수록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나는 할 수 없기에 성령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면 하나님께서는 나를 이끌어서 점점 강한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 어 가십니다. 내 약한 의지를 강하게 해 주십니다. 세월 지나 갈수록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하나님을 다시 간절한 마음으로 부르고 기도하십시오. 분명 하나님이 도와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로 아는 믿음, 체험하는 믿음, 그리고 행동하고 순종하는 믿음으로 사십시오. 그것이 바로 호세아 선지자의 교훈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영이 살 것입니다. 그러면 이길 것이요 그러면 삶의 행복이 여러분과 함께 회복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071222 안익선 목사/ 참조: 서해원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