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모음(Korean sermons)

누가 존귀한 자인가? (시16:1-6)

호걸영웅 2022. 8. 18. 02:32

 

                                                     누가 존귀한 자인가? (16:1-6)
 
1.하나님이여 나를 지켜 주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2.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3.    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
  1.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 나는 그들이 드리는 의 전제를 드리지 아니하며 내 입술로 그 이름도 부르지 아니하리로다
  2.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1.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서론)

1. 이 시편 16편 맨 앞에는 “다윗의 믹담”이라는 머리말이 붙어 있습니다.  신학자들은 이 시를 “순금의 시”라고 부르는데, 그 내용이 순금처럼 아름답다고 해서 그리 부릅니다. 신학자인

에인즈워스나 호커 박사 같은 분은 이 시를 “다윗의 보석”같은 시편이라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한편 “믹담”이란 말은  ‘비밀’ 또는 ‘신비’를 뜻하며, 이것은 이 시에 교리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가치가 크고 깊은 의미가 포함되어 있음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이 비밀과 신비는 하나님 으로부터 오는 것이기에 이 시편은 참고로 존귀하고 그 가치는 무한하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또한 한편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는 다양한 종류와 계급의 사람들이 살아 갑니다. 어떤 사람은 무시당하거나 대접을 소홀히 받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존경을 받고 사랑을 받으며 모든 사람에게 인기가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귀한 대접을 받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옷도 맵시 있게 입으려 하고, 차도 고급차를 타려 하며, 신분의 상승을 위하여 수많은 투자와 노력을 기울이 기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서 대접을 받고 존귀함을 입는 것은 차원이 또 다른 문제입니다.

3. 사실 우리는 원래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존귀한 사람입니다. 비록 죄로 인하여 지금 우리의 모습이 아름답게 보이지 않을지 몰라도,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존귀한 존재로 지음을 받은 피조물들 입니다. 어떤 이는 다른 사람에 비해 얼굴이 덜 예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건강이 좋지 않을 수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나와 성격이 달라서 내 맘에 들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심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지니고 있는 겉 모습이나 성격들이 비록 서로 다르기도 하고, 이상해 보이는 부분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두고 보시기에도 아까울 정도로 귀하게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고로 때로는 내가 죄악의 진흙탕에 뒹굴었을 때에 조차도 우리가 회개하고 돌아설 때,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여 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하는 독생자를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가 그 사실을 믿기만 하면! 우리의 모든 죄악의 흙탕물과 오물들을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하고 정결하게 씻어 주시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연약하여 인생길에서 넘어지고 쓰러져도 다시금 일으켜 세워주시고, 성령으로 강건케 해 주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오늘 이런 부분과 관련하여 과연 하나님 앞에서 누가 존귀한 자인가에 대해 5가지로 나누어 잠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본론)

)성도가 하나님 앞에 존귀한 자가 된다

오늘 본문 시편 16:3=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도다."라고 했습니다.  시편 16편은 다윗이 지은 시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심을 받았고, 또 하나님의 은혜로 부르심 받아 하나님을 거룩하게 섬기는 모든 성도들이 지극히 존귀한 자들이다 라고  노래하였습니다. 다윗은 왕으로 세움을 받은 자신이 존귀한 자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된 모든 성도들이 다 하나님 앞에 존귀한 자들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거룩히 섬기고 예배하시는 분들이라면 누구나 존귀합니다. 하나님께서 귀하게 대접해 주시는 분들이 됩니다. 남들보다 가진 것이 적고 배운 것이 부족하고 인물이 탈렌트들 같지 않아도 힘이 많이 약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보호하시고 채우시고 붙잡아 주시는 존귀한 존재임을 의심치 마시길 바랍니다.


)두번째로 하나님께 존귀히 여김을 받는 사람은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는 사람입니다.

본문을 보면 1절에서 다윗은 "하나님이여! 나를 보호하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라고 고백합니다. 다윗은 지금 하나님! 나를 살려 주옵소서 라며 탄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 나를 살려 주십시 오. 내가 지금 죽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명이 위험합니다. 도와주십시오. 내가 주님께 피난 가야 합니다'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피난은 언제 가는 것입니까? 전쟁이 나고 난리가 나서 너무너무 살기가 힘들 때 피난을 갑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당할수록 더욱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가고 더욱 하나님을 잘 믿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아무리 초라하다 하더라도 하나님 품으로 피난을 가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책망하지 않으시고 받아 주십니다. 받아 주실 뿐만 아니라 가장 좋은 것으 로 우리에게 입혀 주시고 먹여 주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하시고 독생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핏 값으로 구원하신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세 번째로 하나님께 존귀히 여김을 받는 사람은 하나님에게서 복을 찾는 자들입니다.

2=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존귀히 여김을 받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서 행복을 찾는 분들입니다. 하나님 안에 행복의 열쇠가 있고, 하나님의 안에 행복의 자원이 있음을 압니다. 세상을 기준으로 삼고, 세상에서만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려는 사람은 존귀할 수 없습니다. 한자로 복 복()자가 있습니다. 그 한자 구성을 자세히 보면 거기엔 하나님( 귀신 )이 왼편과 하늘이 위에 계십니다. 우리는 하늘을 우러러 보며 살아가야 할 존재들인데, 하늘의 유업과 축복은 보지 못하고 세상적인 것에만 연연한다면 어찌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존귀한 자라고 할 수 있을까요? 신앙이 무엇입니까? 믿고 우러러 본다는 뜻입니 다.  곧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우러러 보아야만 존귀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됩니다. 하나님은 만복의 근원 이십니다. 지난 한 주간 하나님께 복을 구한 분들은 분명 존귀한 자들입니다.


)네 번째로 하나님께 존귀히 여김을 받는 사람은 다른 성도를 존귀히 여기는 자들입니다.

다윗은 3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도다."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자신이나 선지자나 제사장이나 고관들만이 존귀한 자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모든 성도가 다 존귀하다고 말합니다. 모든 성도가 하나님 앞에서 존귀하기 때문에 자신도 그 성도들을 존귀히 여기고, 그 성도들을 바라보면서 마음속에 기쁨과 즐거움을 갖게 됩니다.

예수님은 왜 세상 속에 있는 지극히 작은 자 하나를 그렇게 소중하게 생각하시고 자신과 동일시 하셨겠습니까? 거기에는 최소한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1)하나는 세상에서는 버림받을 만큼 작게 취급되는 그 사람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심을 받은 존귀한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사람을 차별하기 일쑤입니다. 권력의 높낮이에 따라서 차별하기도 하고, 재물의 소유에 따라 차별하기도 합니다. 남자냐 여자냐 하는 성 차별과  나이를 얼마나 먹었느냐 하는 것도 차별의 대상입 니다. 심지어 교회에서도 어떤 직분을 가졌느냐로 사람을 차별 합니다. 목사들도 얼마나 큰 교회에서 목회하고 성도는 몇 명이냐 하는 것으로 차별하기도 합니다. 사람이 사는 곳에는 온통 차별이 만연합 니다. 그러나 참 다행스러운 것은 하나님은 그렇게 차별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똑같이 존귀한 자로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모든 성도들, 지극히 작은 어린 아이들 조차 사랑하셨다 했습니다.
2)또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것은 특정한 일부의 사람만을 구원하시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 니다.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셨습니다. 죄를 지고 사망과 저주와 차별과 고통에서 헤매이는 모든 사람이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로 구원함을 받도록 하셨습니다. 고로 사도 바울은 수없이 외쳤습니다. 십자가의 복음은 유대인나 헬라인이나 로마인이나 야만인이나 차별이 없도다! 라고 했습니다. 할렐루야!


)네 번째로 하나님께 존귀히 여김을 받는 사람은 헛된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사람입니다. 다윗은 4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 나는 저희가 드리는 피의 전제를 드리지 아니하며 내 입술로 그 이름도 부르지 아니하리로다." 라고 했습니 다. 다윗은 어떤 경우에도 우상에게 제물을 드리거나 우상을 섬기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주위에 나라들엔 온통 우상숭배의 풍조가 가득 차 있었지만 자신만은 오직 한 마음으로 평생토록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겼습니다. 고로 하나님께서 다윗을 평생 보호하시고 백전백승하게 하시고 그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왕 삼으시고 사랑과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런 다윗이 하나님을 일심으로 섬기시는 여러분들을 존귀하다 했습니다. 여러분, 이제는 어떤 경우에도 "나는 별 볼일 없는 사람, 혹은 나는 별 쓸 모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난날 내 삶의 모습이 아무리 초라하고 또 죄악 가운데서 헤매며 사는 삶이었다 하더라도, 그것 때문 에 우리의 존귀함이 사라지진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우리를 존귀하게 여기시면, 우리는 존귀한 자들이 됩니다. 할렐루야!

 

우리는 종종 내 사명과 직분을 포기하고 싶은 유혹이 들 때가 있습니다. 갈 길이 너무 많아 남아서 포기하고 싶을 때,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길을 걸어왔는지 돌아 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의 뜻대로 되지 않을 때조차 과거보다 얼마나 발전했는지를 생각하면 하나님께 감사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낙심할 때도 좌절할 때도 하나님은 우릴 존귀히 여기십니다.

 

또 우리가 잘못을 저지르는 순간, 하나님이 커다란 붓이나 펜을 꺼내 생명책에서 우리의 이름을 지우시고 “저

놈은 어쩔 수 없군. 내 일에 쓰기엔 적합하지 않은 놈이야.” 라고 말씀하실까요? 천만에요! 하나님은

용서의 하나님이시며 몇 번이라도 또 기회를 주십니다. 세상에 잘못함없이 자라는 자녀가 없음도 하나님은 아십니다. 우리가 아무리 많이 실망을 시켜드려도 하나님이 보시는 우리의 가치는 항상 처음과 똑같습니다.

, 여러분! 제가 여러분에게 빳빳한 새 지폐 100불짜리를 생일 선물로 드리면 받으시겠습니까? 싫다는 분은 안 계실 것입니다. 제가 좀 낡은 지폐로 100불을 드리면 그런 지폐라도 받으시겠습니까? 아마 받으실 것입니다. 그 지폐에 고춧가루가 묻었다면 받으시겠습니까? 아마 여러분들은 받으실 것입니다. 그 돈을 드리다가 잘못 길바닥에 떨어뜨렸는데 누가 모르고 밟고 지나가도 받으시겠습니까? 받으실 줄 믿습니다. 그 지폐는 여전히 100달러 짜리니까요. 아무리 지저분해거나 구겨지거나 낡아도  여전히 그 지폐는 100달러 짜리니까요.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 각자를 그 가치 자체로 보십니다. 우리 인생이 구겨지고 얼룩이지고 고춧가 루가 묻고 때론 짓밟혀도 우리는 하나님 앞에 존귀한 자들입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걸작품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습니다. 누군가가 우리의 가치가 이젠 다 떨어졌다고 속삭일 때, 이런 거짓말에 마음의 틈을 조금도 내주지 마십시오. 희망은 언제나 우리 곁에 그리고 우리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런 과정을 통과한 분이 바로 다윗입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했어요. 다윗은“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 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해 두시고 새 노래를 내 입에 두셨도다.” 라고 간증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에 새로운 희망의 노래를 주시고 우리의 무너진 꿈을 아름다운 꿈으로 바꿔 주십니다. 할렐루야!

결론)

하나님은 우리의 가치와 잠재력을 아십니다. 우리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을 다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우리 삶을 다스리시고 위대한 계획과 목적을 가지고 계십니다. 고로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원하는 그대로 인생이 펼쳐지지 않더라도 성경은 하나님의 방법이 우리의 방법보다 훨씬 더 좋고 뛰어나다고 말씀하십니다.

심지어 다른 모든 사람이 우리를 거부해도 하나님은 우리 앞에서 그 전능하신 팔을 넓게 펴고 계심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영접하시고 우리의 가치를 인정해 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소중한 자녀입니다.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았든지, 얼마나 많은 실패를 경험했든지, 하나님이 보시기에 우리의 가치는 항상 처음과 똑같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언제나 우리는 하나님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귀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절대 포기하지 않으시니 우리도 스스로 포기하지 마십시오.

이사야43:4= "내가(하나님께서)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 ……"이라고 하셨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예수 믿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요 백성이라면! 이 말씀이 우리의 인생 품질을 결정하는 하나님의 나에 대한 평가 선언이요, 가치 선언입니다. 그리고 평생 잊지 말아야 할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입니 다. 아멘!

             071922 안익선 목사/참조:서정호 목사 & 김광석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