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전서 서론 & 1장(1:1~ )
서론)
1)도시에 관해; 데살로니가 전서를 이번 주부터 함께 공부하면서 은혜를 받으려고 합니다. 데살로니가 전서의 총 주제는 “모범적인 교회”입니다.
이 데살로니가 교회는 현재는 살로니키(Saloniki)라고 불리는 곳인데, 마케도니아의 거대한 항구 도시이며 언덕의 비탈진 곳에 둘러 쌓인 평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라고 하는 이름은 주전 315년에 마케도니아의 왕 카산더(Cassander)가 건설했으며 자기 아내의 이름을 기념하기 위해서 데살로니가로 바꾸게 되었습니다.
그곳의 본래의 이름은 데르마(Therma)였습니다. 카산더 왕의 아내 이름은 바로 데살로니가였습니다.
이 데살로니가는 전 유럽을 점령했던 알렉산더 대왕의 누이였습니다. 이 데살로니가에는 헬라인과 로마인, 그리고 유대인이 섞여 살았던 지역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서론 & 1장(1:1~ )
서론)
1)도시에 관해; 데살로니가 전서를 이번 주부터 함께 공부하면서 은혜를 받으려고 합니다. 데살로니가 전서의 총 주제는 “모범적인 교회”입니다.
이 데살로니가 교회는 현재는 살로니키(Saloniki)라고 불리는 곳인데, 마케도니아의 거대한 항구 도시이며 언덕의 비탈진 곳에 둘러 쌓인 평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라고 하는 이름은 주전 315년에 마케도니아의 왕 카산더(Cassander)가 건설했으며 자기 아내의 이름을 기념하기 위해서 데살로니가로 바꾸게 되었습니다.
그곳의 본래의 이름은 데르마(Therma)였습니다. 카산더 왕의 아내 이름은 바로 데살로니가였습니다.
이 데살로니가는 전 유럽을 점령했던 알렉산더 대왕의 누이였습니다. 이 데살로니가에는 헬라인과 로마인, 그리고 유대인이 섞여 살았던 지역입니다.
그런데 주후 52년경에 바울이 제 2차 전도 여행 때에 유럽으로 건너가 빌립보 교회 다음으로 세운 교회가 데살로니가 교회입니다.
여기에 대한 기록이 사도행전 17장 1절에서 9절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2차 전도 여행 때에 바울은 실루아노와 디모데를 데리고 데살로니가 회당에 들어가서 3주 동안 복음을 전파했다고 하였습니다(행17:2).
사실 3주간이라고 해야 불과 20여일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짧은 기간이었지만 성령이 역사 하셔서 많은 결실을 보게 되었습니다.
행17:4를 보니 “그 중의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따르니”라 했죠.
그러나 이런 결실이 있었던 반면에 유대인들의 핍박도 강하여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바로 그 옆 지방이라고 할 수 있는 베뢰아로 눈물을 흘리며 떠나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쫓기다시피 데살로니가를 떠난 후 약 1년이 넘도록 그곳 교회를 방문하지 못하였습니다. 그저 풍문에 겨우 소식을 들을 뿐이었습니다.
2)기록 동기; 그러면 바울이 이 데살로니가서를 쓰게 된 동기를 한번 같이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실 베뢰아로 쫓겨오다시피 떠나온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얼마나 그 교회가 보고 싶었겠습니까? 그러나 갈 수가 없었습니다. 베뢰아로 쫓겨왔던 바울 일행은 그곳에서도 포악한 유대인들의 박해와 방해를 받고 또 다시 아덴을 거처서 고린도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뜻밖에 데살로니가 교회의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편지를 쓰게 된 것입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기록 동기 3가지를 말씀드리면……
ㄱ). 데살로니가 교회 방문이 좌절됨으로 편지를 쓰게 된 것입니다.
사실은 두 번씩이나 데살로니가 교회 방문 계획을 세웠었습니다. 그러나 가지 못했다고 살전2:18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계속적으로 핍박이 그들에게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동역자 디모데를 보내게 됩니다.
ㄴ). 너무나 고맙고 기쁜 마음으로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디모데가 데살로니가 교회에 다녀와서 바울에게 보고합니다. 그 보고가 살전1:2절 이하입니다. 교역자도 없는 상황 속에서 바울이 가르쳐 준 그 말씀을 붙들고 교회를 섬기는데 믿음의 역사가 있고, 사랑의 수고가 있고, 소망으로 인내 할 뿐만 아니라 환난 시험 중에도 신앙을 굳게 세우고(1:6,2:14, 3:7), 또 형제끼리 사랑이 충만하고(1:3,4:9), 그래서 사도 바울은 사랑에 대해서는 아무 할 (책망의) 말이 없다고 까지 했습니다.
ㄷ)그리고 또 한가지는 자기들에게 복음을 가르쳐 주었던 사도 바울을 사모하는 정이 그렇게 뜨거웠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3:6).
사실 이것이 모범적인 교회의 표상입니다.
3)기록 시기; 그러면 이 데살로니가서를 언제 기록하였는가 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들어가서 3주간 성경을 가르치고 떠나 올 때가 A. D52년경이므로 그후 약 1년 뒤로 보면
A. D 53-54년경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데살로니가 전서가 바울 서신으로는 제일 먼저 쓰여진 서신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4)기록 장소; 이 책이 쓰여진 장소는 아마도 그리스 남부의 고린도 지방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행18:1,5 살전3:6)
5)기록자; 이제 다음으로 이 편지를 쓴 사람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절에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울에 대한 설명은 생략하고…
2). 다음으로 실루아노입니다. 성경에는 실루아노라는 이름과 실라라고 하는 이름이 나옵니다. 이 두사람은 동일한 인물입니다. “실루아노”라는 이름은 히브리식 이름이고, “실라”라고 하는 이름은 헬라식 이름입니다.
여기에 실라, 실루아노는 어떤 인물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벧전5:12에 보니 “신실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둘째로 행15:23,32에 보면 “예루살렘 교회의 대표”라고 했습니다. 셋째는 행15:40에 보니 “책임감이 있는 사람”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넷째, 행16:25, 17:4, 18:5에 의지해 볼 때에 동역자들과 생사 고락을 같이하는 의리의 사나이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바울과 함께 이방 전도의 공로자였습니다. 다섯째로 그는 행16:20,37에 “...로마 사람인 우리를...”하고 표현 한 것을 보면 실루아노도 “로마의 시민권을 가진 자”였다고 볼수 있습니다.
3). 디모데입니다.
디모데는 혼혈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헬라인 아버지와 유대인의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바울에겐 믿음의 아들입니다. 바울이 제 1차 전도 여행 시에 소아시아 중남부인 루스드라 지방에서 전도할 때였습니다. 루스드라 성에서 유대인들에 의해서 돌을 맞고 쓰러진 것을 성 사람들이 죽은 줄 알고 성밖으로 내다 버렸습니다.
그때 그 모습을 어린 디모데가 지켜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가 정신이 들 때까지 말입니다. 사도행전 14장부터 나옵니다. 그는 훗날 바울의 신실한 동역자가 되어 복음을 전파하게 되었습니다.
디모데의 신앙 인격은 디모데 후서 1장 3절 이하에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첫째는 청결한 양심을 가진 사람이요(딤후1:3),둘째는 거짓 없는 신앙의 소유자요(딤후1:5),
셋째는 감사하는 신앙의 소유자(딤후1:4)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바울과 함께 예수 믿은 후에 일평생을 하나님과 복음을 위해 희생한 전도자인 것입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세사람의 공통점은 낙심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낙심은 마귀의 선물입니다. 그러나 용기는 성령의 선물입니다.
한편, 어떤 학자는 바울이 목회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디모데와 실라 같은 훌륭한 조력자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6)수신자; 그러면 이 편지를 받는 사람들은 누구인지 알아보겠습니다. 물론 그리스 중남부 항구지역인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입니다.
7)교회에 관하여; 그러면 데살로니가 교회는 어떤 교회입니까? 이 교회에서 참된 교회! 모범적인 교회 상을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였습니다.(1,b)
데살로니가 전서에서는 “...안에”라고 하는 말이 8회 사용되고 있습니다(2:14,3:8,4:16,5:12,18).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는 교회는 참 교회가 아닙니다. 그러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라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1). 하나님의 통치하에 있는 교회입니다. 사람이 주관하는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모두 순종하는 그런 교회라는 말씀입니다.
2). 성령의 보호를 받고 있는 교회라는 말씀입니다. 어미 닭이 병아리를 날개 아래 보호하듯이 성령의 인도하심과 소욕에 민감한 교회라는 말씀입니다.(마23:32)
3). 그리스도와 연합된 교회라는 말입니다. 마치 가지가 포도 나무에 붙어있는 것처럼(요15:2) 우리 주님께 굳게 붙어 있는 교회가 참된 교회요, 바른 교회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참된 교회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 구주”로 고백하는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강하게 연합된 교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어린아이를 낳아 양육하고 기르고 보호하듯이 하나님은 성령으로 나를 낳으시고, 그들을 책임지시고, 사랑하고 보호하여 주시는 은총의 주님으로 굳게 믿는 신앙입니다.
이 신앙 고백으로 연합된 교회가 참 교회라 할 수 있습니다.
8)문안의 내용; 다음으로 문안적 축복?의 내용입니다. 1절 하반 절입니다.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 제일 귀한 축복이 이런 것입니다.
1). 은혜
은혜라는 말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값없이 베풀어주시는 호의”입니다. 사실 엄밀하게 따져 보면 이미 우리는 은혜 받은 사람들입니다. 빌1:29를 보겠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했어요. 이는 은혜의 2가지 목적을 말해 줍니다.
은혜 주신 증거가 첫째로 주님을 믿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진실로 주님을 믿으신다면 이미 은혜 받으신 분들입니다.
그리고 둘째로 은혜 받은 성도는 고난도 함께 받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고난도 은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고난은 아무나 받나? ????
그런데 오늘 우리에게 축복하시는 은혜는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그것은 양육하여 주시겠다는 은혜요! 죄와 싸워 이길 수 있는 능력이요, 경건 생활하는데 필요한 능력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들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아이를 낳는 것 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바른 사람으로 자라도록 키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계속적인 은혜를 받을 수가 있겠습니까! “주 예수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것입니다(엡6:24).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절개가 있고 지조가 있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섬기는 주님이 변함이 없으신 분인데 어찌하여 그분을 섬기는 우리가 변덕쟁이가 되어야 합니까?
우리 주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이 없으신 좋으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변함없이 주님을 사랑해야 은혜 생활을 계속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평강.
여기서 말씀하는 평강은 은혜 받은 사람이 누리는 결과를 말합니다. 그것이 바로 평강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잃었던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다시 찾고 누리는 결과가 평강입니다. 흔히들 하는 말씀입니다. 예수 믿고 제일 먼저 우리가 느끼는 것은 “마음이 평안해 졌습니다”라고 하는 말입니다.
이것이 평강입니다. 집이 어떠하냐와 상관이 없습니다. 음식을 무엇을 막느냐 하고도 상관이 없습니다. 옷이 얼마짜리냐 하고도 상관없습니다. 전혀 이 땅에 것과는 상관없는 평강입니다.
은혜도 변함없이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은혜를 주시는 것이요, 평강도 심지가 견고해서 흔들리지 않는 사람! 주님만 의뢰하는 사람에게 반드시 평강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말한다고 이리 기울고, 저 사람이 저런다고 저리 끼울고 한다면 얼마나 마음이 불안하겠습니까?
행12:6에 보면 베드로가 헤롯의 핍박을 받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날만 밝으면 처형당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 밤에 그는 깊은 잠을 잘 잤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합니까?
성령 안에서 은혜 받으면 가능합니다.
결론)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믿음의 심지가 견고하여 흔들리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 평강을 축복해 주십니다.
그 평안은 하늘 위에서 내려 옵니다. 부디 바라기는 이 세상의 삶 속에는 시험도 많고 유혹도 많지만 마귀에게 속지 말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우리 예수님을 굳게 의지하고 바라보면서 은혜와 평강을 풍성히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062122 안익선 목사/ 참조: 코람데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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