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전서 4장 강해(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과 주의 강림에 대해)
서론)
오늘부터 강해하게 될 살전 4장부터 5장까지는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바른 지식을 알게하고, 재림을 소망하며 사는 성도들의 바른 삶의 태도에 대해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그 중 4장 1절부터 12절까지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행실에 대해 교훈하고 13절부터 18절 까지는 예수님의 재림 혹은 휴거 등에 대해 교훈합니다.
1992년 9월경, 한국에서 예수께서 재림하신다고 다미선교회란 무리를 중심으로 시끄러웠던 사건이 있었는데…… 기억하시지요?
데살로니가 교회에도 그 당시 예수님 재림에 대한 열망이 지나쳐 예수님 오시기 전에 더 많이 봉사하고자 직장을 그만두고 재산도 다 처분하여 교회에 바친 사람들이 꽤 있었는가 봅니다. 그러나 자기들이 예상했던 시기에 예수께서 오시지 않으시므로 수입이 없는 그런 사람들은 다른 교인들의 가정을 돌아 다니면서 얻어먹고 살게 된 적도 있었던 모양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형편에 직면한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행실이 무엇인지를 소개하며 성도로서의 마땅한 삶을 살도록 충고하였습니다.
본론)
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 3가지 (4:1-12)
[1]더욱 많이 힘쓰라(1-2)
[1]사도 바울은 이 편지를 쓰기 이전에 데살로니가 교회 개척시대의 성도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성도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떻게 사는 생활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인지를 이미 권면한 바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데살로니가 교회에 준 이 권면을 주님의 명령이라고 강조하며 명심하라는 의미를 주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가 사도 바울이 가르치고 권했 던 대로 잘 행하고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다시 주 예수의 이름으로, 주 예수의 권위로 권면하며 부탁하기를 “더욱 많이 힘쓰라”고 했습니다. 현재의 믿음으로 만족하지 말고 더욱 많이 힘쓰고 노력해야 한다는 권면인 것입니다. 이는 그들 중에 게으름의 소문과 부정한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2]3절부터 8절까지의 “거룩하라”에 대해
3절부터 12절까지에서는 더욱 많이 힘써야 할 것 그 중 첫 번째가 “거룩하라” 였습니다. 여기에서 말한 ‘거룩’은 성적으로 순결한 것을 말한 듯합니다. 우리들은 기독교에서 가르치는 윤리와 도덕의 기준에 따라 부부관계가 아닌 다른 성적인 간음 간통행위는 음란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편지가 쓰여진 1세기의 이방 사회에서는 우상을 섬기는 제사에 관련 해 음란한 행위가 공공연히 행해졌기 때문에, 부부 이외의 성적 행위가 합법화? 되었고 음란에 대한 죄의 관념이 별로 적었던 사회였습니다. 그런 사회에서 오래 생활을 해오던 사람들이 기독교로 개종을 한 후에도, 한 동안은 죄의식 없이 과거의 우상 숭배적 습관에 따라 부부관계가 아닌 성적 문란한 행위를 하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환경에 있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기독교에서는 심각한 죄임을 지적해주면서 거룩한
삶을 살도록 권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은 성도가 음란에서 벗어나 거룩하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세상에서 불러내신 것은 음란한 생활을 하도록 하기 위함이 아니라 거룩하도록 부르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의해 불리움을 당한 성도들은 결혼 관계가 아닌 성적인 행위는 상대방 본인에게 해를 끼칠 뿐 아니라 그 상대방의 가족에게도 해를 끼는 일이 되므로 결과적으로 이웃 형제에게 피해를 주는 그런 행위를 삼가라는 권면인 것입니다.
[3]세번째로 9절부터 12절까지의 “형제를 사랑하라”에 대해
사도 바울은 형제 사랑에 대해서는 데살로니가 교회에 더 쓸것이 없다고 전제하면서도 권면의 말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이 알기로는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자기 교회 성도들끼리 내적으로 사랑하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심지어 다른 교회나 불신자들에게까지도 사랑의 폭을 넓혀 실천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형제 사랑에도 미흡함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권면의 말씀을 보태게 됩니다. 형제 사랑에 대해 그들의 부족한 점 두 가지를 지적하고 권하고 있습니다.
1) 그 중 하나가 종용하여 자기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현대 교회도 마찬가지지만 교회들이 어떤 이유로 시끄럽습니다. 서로 헐뜯고 다투는 이유로 교회란 본질적으로 평화여야 함에도 평화 대신 싸움이 자리를 차지하곤 하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도 남의 일에 참견하여 자꾸 말을 만드는 자들로 인해 성도간에 갈등과 불화가 있었으며 심지어는 사도 바울을 헐뜯는 일까지도 있었던 것입니다. 이들을 향해 종용하고 남의 일에 간섭하지 말고 자기 일에 충실하라는 권면을 준 것입니다.
2)두 번째의 충고는 자기 손으로 일을 하라는 충고입니다. 서론에서도 밝혔지만 주님께서 곧 재림하신다고 사업도 그만두고 직장도 안 나가고 날마다 주님 오시기까지 심방이나 전도만 하기도 하는 등….그리고 탁발승인양 다른 성실한 교인들에게 폐를 끼치는 존재들이 되어 버리기도 하였습니다. 형제와 함께 음식을 나누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더군다나 일도 안 하는 자들이 땀 흘려 일하는 자의 땀과 수고를 도적질?하고 있다면 교회의 큰 문제가 아니었겠습 니까?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들을 책망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나) 재림에 대한 소망 에 대해(4:13-18)
4:13-18=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주님 재림에 대한 소망 때문에 현세의 어려운 핍박과 고난을 잘 참아 내고 있는 그들이, 예수님 오시기 전에 이미 죽어 버린 자들은 재림하신 주님을 만나지 못하는 것으로 잘 못 알고 근심하였기에 , 그들에게 재림에 대한 바른 지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1]자는 자들에 관한 바른 지식(13-15)
13절부터 15절까지의 자는 자들, 곧 이미 죽은 성도들에 관한 바른 지식에 대한 교훈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복음을 받아드리고 주께서 재림하시되 자기들의 생전에 재림하실 것으로 믿었습니다. 주께서 곧 재림하실 것을 확신한 그들은 어떤 핍박도 고난도 견딜 수 있을 뿐 아니라 심지어 순교까지도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재림에 대한 소망, 즉 이 세상의 삶이 끝나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영원한 천국이 있음을 굳게 믿었습니다. 장차 하나님의 나라에서 누리게 될 큰 영광만을 바라보면 고난을 넉넉히 이겨냈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당황하게 만든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재림하시면 지금까지 살아 남아 있는 자들은 주님을 살아 영접하겠지만, 이미 죽어 버린 성도들은 주님을 영접하지 못할 것으로 알아 이미 죽어버린 자들을 생각하며 슬픈 생각을 가졌던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디모데를 통해 전해들은 사도 바울은 13절에서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일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미 죽은 자들도 주님 오실 때에 다시 살아 일어날 것이므로 이미 죽은 성도들을 인해 슬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왜냐하면 한 번 죽으신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살리심 같이 주님 재림시에 죽은 자들도 주님과 함께 하나님께서 부활케 하셔서 데리고 오실 것이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2]주께서 하늘로 좇아 강림하심에 대해(16-18)
두번째로 16절부터 18절= 주께서 하늘로 좇아 강림하심에 대해 말합니다. 16절에서 주께서 재림하심을 보다 실감나게 눈으로 상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신다’고 표현하였습니다. ‘호령이나, 천사장의 소리나, 나팔 소리’란 옛날 왕이나 높은 사람들이 행차하실 때에 길을 비키고 맞을 준비하도록 하는 소리에 연관해서 주님 오신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표현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 재림시에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고 그곳에서 항상 주와 함께 있을 것이라 했습니다. 여기에서 말한 ‘먼저와 그 후’에 대해서도 많은 의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우리들은 그 시간차에 대해 관심을 크게 갖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시간차에 초점을 맞추어 말씀하신 것이 아니고 죽은 자나 산 자나 재림의 때엔 동일하게 주를 영접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론)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 주신 본문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 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의 교훈은 재림의 소망을 뜨겁게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이 세상의 삶이 전부가 아니므로 재림의 소망을 가진 자답게 행동하고 살라는 교훈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소망이 없고 이 세상이 전부인 사람들은 혹 남을 속이고 남의 것을 강도 짓도 하고 뇌물도 받으며 가난한 자를 누르고 권력과 돈에 눈이 어두워 살지 몰라도 우리들은 비록 이 세상에서는 짓눌리고 가난하고 병들고 못살아도 주님 재림 시에 우리의 신랑 되신 예수께서 모든 눈물과 아픔과 외로움과 마음 속 깊이 응어리진 모든 아픔을 다 위로해주실 것이기 때문에 소망이 있는 자 답게 거룩하고 부지런하며 꿋꿋하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소망과 믿음으로 성도들끼리 서로 위로하며 현재의 아픔과 고난을 이겨나가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든지 마귀의 시험에 속아넘어가서는 안됩니다. 마귀는 우리더러 한 세상 뿐인데 세상을 그렇게 살면 되겠느냐고 하더라도 우리들은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고 이 세상이 지나면 주님께서 통치자가 되시고 신랑 되신 새 세상이 있음을 생각하며 마귀의 속임수를 이겨내야 합니다.
이 세상과 교회를 시끄럽게 하는 모든 사건들이 재림의 소망이 없는 자들이나 오해하여 저지른 일들이 태반입니다. 특별히 교회를 시끄럽게 하는 모든 사건들도 새 하늘과 새 땅에 소망을 두지 않고, 눈에 보이는 이 땅의 그 무엇에 눈독을 드리고 있는 자들(이단교주 같은 자들)의 소행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 다시 오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들은 부활의 소망, 재림의 소망을 보다 뜨겁게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재림의 소망을 가진 자답게 언제나 정직하며, 성실하고, 진리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빛의 생활을 해야 합니다. 빛의 생활을 하는 자는 이 세상에서도 행복하고, 주 예수님의 재림 때에도 무한한 영광과 상급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071222 안익선 목사/ 참조: 한인 그리스도의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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