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모음(Korean sermons)

여호와를 앙망하라 (이사야 40장 26~31)

호걸영웅 2022. 12. 17. 23:58

여호와를 앙망하라 (이사야 4026~31)

 

26.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그들의 모든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
27. 야곱 어찌하여 네가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이르기를 내 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냐
28.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29.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30.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31.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서론)

인생은 피곤한 일들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루도 그저 아무 일 없이 지나가는 날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지지난 주엔 눈이 너무 많이 내리는 바람에 많은 가게들이 문을 이틀 삼일 닫고 눈치는 비용도 어지간히 지출이 되고 힘은 힘대로 들었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눈을 치우다 돌아가시기도 하고 차량 들이 수없이 눈길에 빠져 방치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으로 다들 경제적으로도 힘이 듭니다. 283일이 넘은 우크라이나 전쟁은 너무도 치열해 세계적으로 포탄이 모자랄 정도 라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미국은 한국에 10만발의 155mm 포탄을 구입하는 계약을 맺었다 합니다. 아직 코로나도 다 종료되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요즘만 그러냐? 이사야 선지자의 때에도 여러 모양의 전쟁이 많았고 유대의 왕들과 백성들도 고뇌와 불안에 수없이 떨어야 했습니다. 사람 사는 세상엔 비바 람이 끊일 날이 없는 것 같습니다. 문제는 문제가 있어서 문제가 아니고 문제를 극복할 힘이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입니다.

오늘의 본문 이사야서의 기록자인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 그리스도가 오실 것과 그분이 어떤 분인가에 대한 예언을 가장 많이 하신 분입니다. 이분이 한 예언의 시대는 예수 오시기 약 700년 전입니다. 이사야는 예수가 오시는데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셨고 처녀의 몸에서 예수는 나실 것이고 그는 진정 의인이시로되 많은 죄인들의 죄를 지고 대신 죽으신다고 예언하셨습니다. 참 놀라운 분이시죠.

(그런데 이사야 선지자는 당시 유다를 위협하는 앗수르와 바벨론에 대하여 극히 힘들고 어려운 전쟁을 치루던 유다 백성들이 그런 어려움을 이길 방법을 제시해 줍니다.  그것은 창과 칼을 더 만들고 성을 더 쌓고 같은 일이 아니라 희안하게도 여호와 하나님을 앙망하라고 하십니다. 앙망한다는 말은 하나님을 우러 러 바라보며 소망을 가지라는 뜻입니다. 이는 유다 백성이 여호와 하나님께 모든 소망을 걸고 기다림 으로써 세상의 다른 것들로부터는 전혀 얻을 수 없는 새 힘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체적 으로 과연 성도는 하나님을 어떻게 앙망할 때 새 힘을 얻게 됩니까?)

본론)

)우리가 앙망해야 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 줄 알아야 한다
아시야가 말한
여호와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너무나도 크고 능력이 무궁하시므로 인간 의 능력으로는 그 위대하심을 판단조차 완전히 할 수 없을 만큼 크시다는 사실을 깨닫고 인정하라는 의미입니다.  본문 12절부터 17절까지의 말씀이 바로 이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은 우선 인간의 그 어떤 '과학 기술'로도 측량할 수 없음을 12절 이하의 말씀이 밝히 말합니다.  "12누가 손바닥으로 바다 물을 헤아렸으며 뼘으로 하늘을 재었으며 땅의 티끌을 되에 담아 보았으며 명칭(양팔 접시저울 )으로 산들을, 간칭(막대저울)으로 작은 산들을 달아 보았으랴"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너무나도 위대하셔서 사람은 그 하나님은 커녕 하나님께서 만드신 창조물의 일부조차도 아직까지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바닷물의 깊이와 하늘 공간의 크기와 땅을 이루고 있는 흙의 양과 성분을 사람이 그 만들어낸 여러 가지 계량기와 도구들을 이용하여 '재어보고 달아보고' 했지만 여전히 오차가 포함된 미지수투성이입니다.

요즘은 과학 기술이 많이 발달이 되어서, 제법 심해 탐사도 하고 우주선도 쏘아 올리지만 아직도 사람 의 기술이 하나님의 창조물 전체를 알아내기엔 여전히 '빙산의 일각'이며 '장님이 코끼리 만지는 식'에 불과함을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13절과 14절의 "13누가 여호와의 신을 지도하였으며 그의 모사(상담자)가 되어 그를 가르쳤으랴 14그가 누구로 더불어 의논하셨으며 누가 그를 교훈하였으며 그에게 공평의 도로 가르쳤으며 지식을 가르쳤 으며 통달의 도를 보여주었느뇨"라는 말씀은, '인간의 탁월한 지혜'로도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판단하기엔 무리가 많다는 말씀입니다. 할 수 없음을 상기시켜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한치 앞을 못 내다보는 한계투성이의 존재입니다.(이번 한국과 가나 축구 예상/ 영국전문가 1:0, 박지성 2:1, 푸틴의 승리 3~10일이면다 틀림)
 
  15절 말씀은 인간의 강력한 '사회 조직' 또한 하나님의 위대하심 앞에는 전혀 상대가 될 수 없음을 선언합니다.  "15보라 그에게는 열방은 통의 한 방울 물 같고 저울의 적은 티끌 같으며 섬들은 떠오르 는 먼지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나폴레옹부터 로마의 황제들, 몽골제국, 중국 진나라, 페르시아나 알렉산더 제국 등지금 다 어디 있나요? 얼마 못되어 다 사라져 버렸습니다. 거대한 제국들이 엄청나 보일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계산의 가치에도 별로 포함 못 될, 그저 "" 한 방울, "티끌" 하나, "먼지" 한 톨에 불과하다 했습니다.
 

 16절은  "16레바논 짐승들은 번제 소용에도 부족하겠고 그 삼림은 그 화목 소용에도 부족할 것이 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사람이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예물' 같은 거들도 하나님의 요구를 다 만족시킬 수 없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레바논은 목축이 성행하고 나무도 정말 울창한 나라입니다. 레바논의 푸른 초장과 산들에서 자라는 수천 수백만 마리의 짐승도, 그리고 수없이 많은 삼림들도 하나님께는 하찮은 제사 제물이요 제사용 땔감이라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인간들이란 정말 비교의 대상조차 되지 않습니다. 우주 끝까지 관찰한다는 최첨단의 '과학 기술'로도, 노벨상들에 빛나는 모든 석학들의 머리들을 총망라한 '지혜'로도, 강력한 군대와 대 재벌 기업과 최고 선진 국가를 만들어 내는 인간 '사회의 조직력'으로도,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상대하 기는 어림도 없고 아예 제대로 측량조차 할 수 없습니다. 그런 인간들이 얼마나 교만한지요. 하나님이 있네 없네하고 있습니다.
 고로 천지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지극히 높고 크심을 믿지 않는 사람, 당신의 절대적 주권을 인정하지도 않는 사람에게는 당신의 능력을 전혀 발휘해 도와주지 않으십니다.

  유명한 영화 '대부 1'의 첫 장면에 보면, 어떤 장의사가 대부를 찾아와서 자기 딸을 해친 자들을 복수해 달라고 부탁하면서 돈은 얼마든지 주겠다고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자 그 대부는 "당신은 여기까지 찾아와서도 나를 'God-father'라고 부르지도 않고 아무 경의도 표하지 않으면서 그저 내게 살인청부업을 시키려하느냐?"라고 거절합니다.
  그러자 그 장의사가 허리를 굽혀 그의 손에 입 맞추면서 "대부님"이라고 부르자 비로소 대부는 그 소원을 들어주게 됩니다. 그 대부가 자신의 힘을 발휘해 주고자 하는 상대방에게서 바란 것은 오직 자신을 높이 받들어주는 절대적 존경심, 이것 한 가지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는 오죽하겠습니까?  사람이 자신의 유한한 지혜와 능력으로 는 어림도 없는 문제에 대하여 하나님의 무한하신 힘의 도움을 받는 길 역시, 단 한 가지 밖에 없습니 다.   오직 사람이 견주어 보기는 고사하고 판단조차 다 할 수 없는 그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먼저 깨닫 고 경배하고 기도하며 앙망함으로써 그 위대하신 하나님께서만이 내려 주실 수 있는 새 힘을 얻는 우리가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앙망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도우신다.
  이것은 사람이 의지하고 소망할만한 대상 가운데 하나님에 비교할만한 다른 존재가 결코 없음을 믿고 하나님만을 앙망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바로 본문 18절에서 "18그런즉 너희가 하나님을 누구와 같다 하겠으며 무슨 형상에 비기겠느냐" 라 고 시작하여 25절까지 계속하는 말씀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하나님은 다른 그 어떤 '비슷해 보이는 것'과도 비교조차 될 수 없는 유일무이하신 창조자요 통치자인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 세계 밖에 계시는'  하나님의 존재를 자신의 '경험 세계 안에 있는' 피조물들과 나란히 놓고 하나님을 찾으려는 죄를 반복해 왔습니다.
  대표적인 것으로서 '우상'을 하나님과 같이 여긴 것이었습니다. 한국에선 부처상이 그 대표적 예입니다.


 고로 19절과 20절에 "19우상은 장인이 부어 만들었고 장색이 금으로 입혔고 또 위하여 은사슬을 만든 것이니라 20궁핍하여 이런 것을 드리지 못하는 자는 썩지 않는 나무를 택하고 공교한 장인을 구하여 우상을 만들어서 흔들리지 않도록 세우느니라"고 기록했습니다. 결국
우상의 존재란 순전히 사람의 능력에 좌우되는 보잘것 없는 것입니다.   어떤 "장인(기술자)"이 얼마나 그럴듯한 형상을 부어 만들어 내느냐에 그 존재 가치가 달려 있고, 어떤 "장색(Gold smith,금세공업자)"이 얼마나 금과 은으로 잘 만드느냐에 따라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우상을 사모하고 앞에 와서 손을 비비느냐가 좌우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우상의 창조주는 인간이란 말이죠. 그런 우상이 어찌 인간에게 무한한 능력을 줄 수 있을까요? 없죠.
    본문 21절과 22= "21너희가 알지 못하였느냐 너희가 듣지 못하였느냐 태초부터 너희에게 전하지 아니하였느냐 땅의 기초가 창조될 때부터 너희가 깨닫지 못하였느냐 22그는 땅 위 궁창에 앉으시나니 땅의 거민들은 메뚜기 같으니라 그가 하늘을 차일(커튼) 같이 펴셨으며 거할 천막 같이 베푸셨고"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은 오늘도 자연 즉 물질세계 그 자체가 온 우주 존재의 시작이며 근원이라고 생각합니다.  만물이 스스로 존재하게 되었고 스스로 변화하게 되었고 스스로 진화하게 되어 무생물계가 생물계를 만들어 내고 생물계는 점점 더 발전하여 인간을 창조해 내게 되었고 그 인간이 정신과 영의 세계를 만들어 내었다고 합니다(곧 진화론). 이거도 우상숭배와 같습니다. 천지는 하나님이 만들었는데 저절로 생겼다고 우기는 겁니다. 세상엔 이유없는 무덤은 없어요. 설계자없이 지어진 집도 없어요. 그걸 이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들을 향하여 "너희가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깨닫지 못하였느냐"라 고 책망하십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면 얻을 결과는?

 당시 유다 백성들은 불평 불만이 많았습니다. 27절 이하= "27b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들어주심)을 받지 못한다"라고 탄식했습니다.
  북조 이스라엘과 남조 유다가 차례로 망하고 왕과 귀인들이 마구잡이로 바벨론 나라에 잡혀 가기도 했습니다. 그 얼마나 암담한 현실이었겠습니까? 현실만 보면 낙심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들은 30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그런 상황에서도 "31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라고  당신의 백성들을 격려해 주십니다. 그리고 70년 후 너희는 해방되어 고국으로 다 돌아올것이다 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역사는 그대로 되었음을 증거해 줍니다. 7 0년간 바벨론 포로 사건은 유다 백성이 우상을 섬긴 죄의 징계였어. 징계가 끝나고 해방이 찾아옵니다. 그래서 그들이 뭐라고 노래했느냐 하면 우리가 꿈꾸는 것 같도다라고 했어요. 근대의 말기 조선이 일본에게서 해방됐을 때, 자기 힘으로 해방됐나요? 아니죠. 2차 세계대전 승전국들의 힘으로 해방되었죠. 그때 한국 민족도 꿈꾸는 것 같았죠.

 

결론)

우리가 진정 하나님을 앙망하면 독수리 날개 치며 올라가는 것 같은 힘을 주시고 지치지도 피곤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독수리는요 하늘의 제왕이죠. 그 움키는 발톱의 힘은 사자가 짐승들을 물 때 보다 더 강하다고 합니다. 이 독수리는 무려 시속 320킬로 미터(시속 200마일)로 날아가기도 합니 다. 엄청난 힘이죠. 그런 독수리같이 힘찬 존재가 된다는 거예요. 놀랍죠?
  우릴 도우실 수 있는 하나님은 영원하신 하나님" 이시요, 땅끝까지 창조하신 자" 시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놀라우신 하나님의 도움을 어떻게 받는다고요? 여호와를 앙망할 때!

  우리는 이번 한 주간, 그리고 평생토록 살아가는 것이 녹녹치는 않을 것입니다. 피곤한 일도 많이 있을 것이고 괴로운 일도 있을 것이고 절망적인 일도 자주 생길 것입니다.  그러나 두려워 마십시다.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 면 능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무엇입니까? 내가 여호와와 함께 하느냐 마느냐입니다. 내가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인정하느냐 마느냐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앙망하느냐 마느냐입니다. 여러분, 어찌 하시렵니까? 기도하십시다.

 

112922 안익선목사/ 참조: 석기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