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모음(Korean sermons)

형통으로 가는 길 (시 1:1-6)

호걸영웅 2022. 11. 10. 04:18

형통으로 가는 길 ( 1:1-6)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인들의 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4.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와 같도다
  5.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1. 무릇 의인들의 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은 망하리로다

 

서론)

1.    오늘의 본문 시편 1편은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고 암송하는 시편입니다. 1편 시편은 '축복으로

가는 길, 형통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저부터 시작해서 모든 사람들은 복받기를 좋아합니다. 중국사람들은 천장과 벽, 대문 등에  () 자를 거꾸로 붙여 놓습니다. '왜 복() 자가 거꾸로 매달려 있느냐?'고 물으면 '하늘에서 복이 잘 내려오되 유턴해 되돌아가지 말라는 의미 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중국사람들은 복의 기본 원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복은 '하늘'에서 내려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복이 되돌아 갈 수도 있다는 뜻이지요.


2.우리가 말하는 복이라는 개념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복이란 말에는 '좋은 것, 옳은 것, 최상의 것, 기쁜 것, 아름다운 것, 유쾌하고 풍성한 것' 등의 뜻이 있고, 이 모든 말을 다 포함하는 말로 '행복한 것' 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한국사람들은 오복(다섯가지 복)을 말합니다. '오래 살고, 부자로 살고, 귀하게 살고, 아들 많이 낳고 살다가 고생하지 않고 제명대로 살다가 죽는 것을 복'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이것도 인간적으로 볼 때, 복은 복입니다. 그러나 반면에 이런 오복도 꼭 복이 아닐 때도 많습니 다. 오래 사는 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고통일 수도 있고 저주일 수도 있습니다. 부하게 사는 것도 어떤 이에게는 그 재물이 화가 될 수도 있습니다. 자녀가 많은 것도 반드시 복일 수는 없습니다. 모두 효자 효녀 일 때나 복이지, 평생 부모 속 썩이는 자식들이 많으면결코 복이라고 하기엔 어렵습니다. 고로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더 근본적이고 불변하는 복을 소망하고 소유해야 합니다.


본론)

)근본적인 복은 무엇입니까?

본분에서 말하고 있는 복은 두 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 하나는 '바라크',  그 다음은 '아쉬레'의 복입니다. '바라크'의 복은 '하나님으로부터 내가 직접 받는 복' '바라크'라고 하고, 그 다음 '내가 받은 복이 차고 넘쳐서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하는 그런 충만한 복을 '아쉬레'라고 합니다.
  우리가 누구인가? 우리는 복을 받은 사람들인데 그 복이 어떤 복인가? 한마디로 '바라크'의 복을 받되, 즉 하나님으로부터 많이 받아서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바라크의 잔이 넘치는 풍성함의  '아쉬레' 복을 받을 사람들입니다.
 

▶시 1편에서 시작되는 '아쉬레'는 구약에서 45번 나타나는데 세 가지 경우에 사용되었습니다.
  ⑴사람들이 번영을 누리거나 자식을 많이 두었을 때 '아쉬레' 하고 축하했습니다(8).
  ⑵하나님을 잘 믿음으로 물질적 축복을 크게 받았을 때, 혹은 하나님 믿는 사람에게 내리는 건강함과 범사가 잘 될 때 '아쉬레' 하고 축하했습니다(31). 그리고 ⑶자식이나 물질의 소유와 관계없이 하나님의 법도 안에서 바르게 살아갈 때, 그럴 떼에도  '아쉬레' 하면서 축하했습니다(6).   가난하게 살아도, 건강을 누리지 못해도, 자식을 두지 못했어도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로 살아가는 것을 볼 때 '아쉬레'의 복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사람이 아무리 오래 살고 부자로 살고 귀하게 살아도 하나님을 모르고 살면 그것은 복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이 말하는 참 복은 '하나님이 범사에 함께 해 주시는 것'을 의미합 니다. 그렇습니다. 형통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이란 말입니다. 39:2절에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라고 했고, ' 또 왕하18:7절에 '여호와께서 저와 함께 하시매 저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 라고 했어요.

  사울을 보십시오, 그는 최고의 권좌인 왕좌에 앉았지만 어느 날 하나님이 그에게서 떠나 버리시니까 그 순간부터 그는 정신병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나중에는 그 마음이 병들고 정신이 병들어 마침내 폐인이 되어 전쟁터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하나님 편에서야 복 받아 형통한다

어떤 사람이 복을 받습니까? 하나님 편에 선 사람이 축복의 길로, 형통의 길로 가는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 1-2절의 말씀을 달리 표현하면,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 편에 선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30:19-20= '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서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며 또 그에게 복종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시니 여호와께서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하리라' 고 하십니다.
  즉 복을 받는 길과 저주의 길이 너희 앞에 있는데 스스로 선택을 잘 하라는 것입니다. 축복은 점쟁이의 간교한 점쾌나 무당의 굿판으로 얻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선택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지금의 나의 복들은 내 조상들이나 내가 스스로 선택한 결과인 경우가 대부분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신 때부터 선택의 자유를 주셨었습니다. 선악과를 먹고 안 먹고도 선택입니다. 동물이나 생물들의 이름을 붙이는 것도 선택이었습니다.   

 

 ▶미국 남북전쟁이 치열하던 때에 전쟁의 상황이 북군에게 매우 불리하게 전개되고 있었습니다. 참모들이 모여 작전계획을 수립하기 위해 지혜를 짜고 있었습니다. 이때 어떤 참모가 말하기를 '하나 님께서 우리 북군에게 서도록 기도합시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사령관인 링컨이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편에 서도록 기도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서기 위해 회개할 것은 회개하고 각오를 새롭게 하도록 기도합시다.'라고 했습니다. 그 후 전쟁은 링컨이 지휘하는 북군의 승 리로 끝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편에 서면 하나님과 하나가 되기에 하나님께서 지켜주십니다.

 

)의인의 길이 형통으로 가는 길이다.

축복과 형통으로 가는 길은 무엇입니까? (1)   옛말에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두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죄인의 길이요, 하나는 의인의 길입니다. 죄인의 길은 죄인들이 가는 길이요, 의인의 길은 의인들이 가는 길입니다.   친하다고 그 죄인인 친구를 따라 가다가 지옥 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연탄공장에 가면 연탄가루 뒤집어쓰기 마련이며, 밀가루 공장가면 밀가루를 묻혀 오기 마련 입니다. 봉제공장에 가면 실오라기 묻어오기 마련이며, 타작마당가면 티끌을  뒤집어쓰기 마련입니다.  그렇습니다. 악하고 패역한 세대의 세속에 물들지 않기 위해서는 자기를 세상과 세속에서 분리되어, 스스로를 지키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자기를 영적으로 지키는데 실패하면 세속에 물들고 맙니다. 세속에 물들면 신앙생활에 실패합니다. 신앙생활 실패하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없음은 물론 받은 하나님의 축복까지 상실하고 맙니다. 그렇습니다. 축복의 사람, 형통의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금기사항 3가지와 해야할 것 3가지가 있다 했습니다.
 

)형통을 위한 금기사항 3가지

오늘 말씀은 3가지 해선 안될 일들(금기 3가지)에 대해 소중한 지침을 주고 있습니다.

 

   악인의 꾀를 쫓지 말아야 합니다.

여기 '악인'이란 '시끄러운 소리를 낸다' 혹은 '소란을 피운다'라는 뜻에서 온 말로서, 악을 계획하고 문제를 일으키는 자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의인과는 달리 이 세상의 어두움의 일에 민첩하고 행동이 빠르고 간사하며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혼란을 가져오는 일에 익숙한 사람들을 말합니다.
  여기서 악인이란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자'를 의미하기도 하고, 하나님의 율법을 무시하고 하나님에게서 떠난 일반적인 사람 전체를 지칭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성경에는 이러한 악인들에 대해 여러 가지로 표현하는데, 즉 죄인, 오만한 자, 거만한 자, 행악자, 강포한 자, 간사한 자, 살인자,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 불의한 자, 횡포한 자, 모해하는 자, 교만한 자, 게으른 자, 거짓말 하는 자, 대적자 등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철저히 무신론자(無神論者)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없다'(14:1)고 떠들어대기도 합니다. 저들은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지 아니하며, 하나님을 거역하고, 반역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합니다.   그리고 악인은 아주 잔꾀를 잘 부립니다. 에덴동산에서 하와가 왜 유혹을 당하였습니까? 바로 이 들의 잔꾀에 넘어진 것입니다. 그럼 악인의 꾀에 넘어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인정에 끌리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번번이 잘못인줄 알면서도 안다고 하는 이유 때문에(친하 다고) 그만 이래서는 안 되는데, 안 되는데 하면서도 그냥 끌려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또 욕심을 부리지 말아야 합니다. 롯은 삼촌의 은혜도 망각하고, 하나님의 동산처럼 보이는 소돔과 고모라 땅을 그만 택하고 말았는데 그 결과는 참으로 비참했습니다.
 

   죄인의 길에 서지 말아야 합니다.

죄인이란 하나님께 반역한 자요, 불법한 자요, 과녁을 맞추지 못하는 자를 의미하는 사람들로 '방향과 목적이 없이 사는 사람, 행동과 생각으로 나쁜 짓을 하는 사람,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을 말합니다.
  헬라(그리스) 사람들은 교만을 가장 큰 죄라고 했습니다. 불교에서는 탐욕을 가장 큰 죄라고 했고, 유교에서는 불효를 가장 큰 죄라고 했습니다. 지금 세상은 살인을 가장 큰 죄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 하나님과 그 말씀을 믿지 않는 것을 가장 큰 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고로 롬14: 23=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 고 했습니다.   참 생명과 구원과 죄사함 받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말아야 합니다.

 '오만한 자' '업신여기다'는 뜻에서 온 것으로서 계속적으로, 습관적으로 말씀을 이탈하므로 하나님 을 무시하는 자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오만한 자는 하나님을 향하여 악한 말로 조롱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는 강퍅한 자를 말합니다. 진리와 양심과 도덕을 다 포기하고 자기를 세우려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경고에도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 않는 자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단호히 '아니다'라고 강하게 부정하고 거절하고 멀리하는 태도입니다.

 

)형통을 위해 해야 할 일

반면, 이제 축복의 길, 형통의 길로 가기 위해 적극적으로 해야 할 것 3가지가 있습니다.(2)
  ⑴하나님의 말씀 듣고 배우기를 즐거워하는 사람이 되야 합니다. 여기서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 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 읽기를, 듣기를, 실천하기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자요, 늘 하루 종일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말씀을 기뻐하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또 여기 '율법을 즐거워한다'는 말은 '율법을 좋아한다, 관심을 갖는다, 소원한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율법이 좋아지 고 관심거리가 되고 율법을 지키는 일을 그의 소원으로 삼는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은 복 있는 사람에게는 삶의 희열이 되고 기쁨의 원천이 됩니다. 고로 112:1절에 '그의 계명을 크게 즐거 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했습니다.

  ⑵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면 복을 받습니다.
  29:9절에 '그런즉 너희는 이 언약의 말씀을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의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리라' 또한 수1:7-8절에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고 했어요.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십시오!
  ㈀여기서 '묵상'은 말 그대로 깊이 생각하는 것을 말합니다. 어떤 이는 묵상을 소가 되새김질을 하는 것에 비교하기도 했습니다. 소는 거친 짚과 풀을 먹습니다. 그러나 1차는 대강 먹고 2차는 되새김질을 통하여 거친 짚과 풀을 고운 가루와 같이 만들어 소화를 합니다. 그렇습니다. 묵상을 통하여 내 영혼의 양식으로 소화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런 말씀은 무엇을 뜻하는지? 말씀과 내 모습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 또 어떻게 배우 말씀을 실천할것인지...등을 깊이 반성하거나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론)

결론은 상반된 두 종류 사람이 비교되면서 1편 말씀이 종료가 됩니다.   먼저 형통한 사람은 '시냇가에 심긴 나무 같은 사람'이 됩니다.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가뭄이 올지라도 두려워(마르지) 아니하며 그 잎이 늘 청청하며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고 했어요. 그리고 하나님께서 옳다고 인정해 주심을 받는다고 했습니다(6). 참 감사하고 좋습니다.
 

반면 악인은? (4-5) 1)바람에 나는 겨와 같습니다(4) 겨는 그 안에 생명이 없습니다. 뿌리도 내릴 수가 없고 열매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바람과 함께 이리 저리 날아다니고 결국 불에 태워지거나 썩어 없질 뿐입니다. 2)심판을 견디지 못합니다(5).   여기 '심판'은 마지막 때에 있을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한 지옥불에 던져질 것을 의미합니다.  3)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합니다(5).  여기 '회중'의 의미는 하늘나라의 의로운 백성들을 가리킵니다. 즉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이제 과연 어느 길로 가셔야 되겠습니까? 의인의 길과 형통의 길입니까? 악인의길과 심판의 길입니까? 선택하십시오.

 

                                                  110122 안익선 목사 / 참조: 송수천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