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

전도서 2장 강해(체험해 본 인생의 허무)

호걸영웅 2023. 1. 28. 05:17

전도서 2장 강해(체험해 본 인생의 허무)

서론)

전도자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며, 인생의 허무함을 노래한 내용이 어제에 이어서 오늘 본문에서도 계속됩니다.

 

본론)

)즐거움과 쾌락이 헛되다(1-11)
 1-11절은 해 아래의 인생이 꿈꾸는 쾌락의 욕망과 성공이 허무임을 역설합니다.
(1) 나는 내 마음에 이르기를 자, 내가 시험삼아 너를 즐겁게 하리니 너는 낙을 누리라 하였으나 보라 이것도 헛되도다-라 했습니다.

전도자가 ‘내 마음에 이르기를’이라고 말하는 것은 충분히 생각하고 또 생각하여 내 마음에 결정을 했고 행했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헛됨 뿐이라고 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다양한 이유로 하나님이 없이 세속적 가치관과 세속적 쾌락에 자신을 방치해 보기도 합니다. 거기에 혹 나만의 얻을 수 있는 삶의 즐거움이 있고, 인생의 낙이 있지 않은가 확인해 보기도 하지만, 그러한 삶은 마치 바닷물을 마시는 것 같아서 삶의 해갈함은 없고, 갈증이 더 커질 뿐입니다.

(2) 내가 웃음에 관하여 말하여 이르기를 그것은 미친 것이라 하였고 희락에 대하여 이르기를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하였노라 =
전도자는 사람이 쾌락을 즐기며 아주 잠시는 박장대소하며 웃을지 몰라도, 그 웃음이 광인(狂人)이 웃는 것과 동일하다고 합니다. 1절이 ‘살아도 사는 게 아니야’라고 한다면, 2절은 ‘웃어도 웃는 게 아니야’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내가 내 마음으로 깊이 생각하기를 내가 어떻게 하여야 내 마음을 지혜로 다스리면서 술로 내 육신을 즐겁게 할까 또 내가 어떻게 하여야 천하의 인생들이 그들의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어떤 것이 선한 일인지를 알아볼 때까지 내 어리석음을 꼭 붙잡아 둘까 하여=
전도자는 지혜를 향하는 삶을 원하면서도, 술로써 육신을 즐겁게 하고, 쾌락을 즐겨보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별 유익이 없었습니다.


(4-8) 나의 사업을 크게 하였노라 내가 나를 위하여 집들을 짓고 포도원을 일구며 여러 동산과 과원을 만들고 그 가운데에 각종 과목을 심었으며 나를 위하여 수목을 기르는 삼림에 물을 주기 위하여 못들을 팠으며 남녀 노비들을 사기도 하였고 나를 위하여 집에서 종들을 낳기도 하였으며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들보다도 내가 소와 양 떼의 소유를 더 많이 가졌으며 은 금과 왕들이 소유한 보배와 여러 지방의 보배를 나를 위하여 쌓고 또 노래하는 남녀들과 인생들이 기뻐하는 처첩들을 많이 두었노라=
이것은 솔로몬 왕의 고백이자 많은 성공한 사람들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능력이 많고,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자 끊임없이 외적인 확대를 시도합 합니다. 그래서 전도자도 사업이나 농사도 크게 확장해 보았고, 많은 하인이나 노예를 거느기도 했고 그들로 자녀를 많이 낳게 하고 또 소와 양 떼를 이전보다 더 많이 목축해 보기 도 하고, 보석과 명품을 숱하게 구입해 써 보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더 쾌락을 즐기기 위해서 처첩들을 많이 두었습니다. 실제로 솔로몬에게는 아내가 700, 첩이 300명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쾌락도 한계가 있고 처첩 간에 혹은 어미가 다른 자녀들 간에 생긴 다툼과 시기, 분란도 끊임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 일들도 매우 피곤한 삶을 살게 하는 요인들이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전도자는 인생을 쾌락과 세속적 가치관으로 대변되는 술과 여자들에 빠져 살아도 보고, 영토와 사업을 확장할 수 있는 데까지 확장해 보았습니다. 전도자는 ‘혹시나’하는 마음으로 살았지만, ‘역시나였다고 했습니다.

(11) 그 후에 내가 생각해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
전도자는 그 모든 행동의 결론을 ‘헛되다’와 ‘무익하다’로 표현합니다. 인생에는 ‘헛되 다’라고 표현할 만한 일들 투성이였습니다.

)
지혜자나 우매자나 별 차이가 없다(12-17)
12-17절은 지혜로운 사람이나 우매한 사람이나 크게 다르지 않음을 교훈하며 한숨을 쉽니다. (12) 내가 돌이켜 지혜와 망령됨과 어리석음을 보았나니 왕 뒤에 오는 자는 무슨 일을 행할까 이미 행한 지 오래 전의 일일 뿐이리라=
전도자는 임금의 지위를 이어받아, 선왕이 이미 행했던 일들을 확인해 보았는데, 지혜, 망령됨(미침), 어리석음 등이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 역시 동일한 실수나 허탄함을 반복할 뿐이라 했습니다.


또한 전도자는 빛이 어둠보다 낫듯이, 슬기로움이 어리석음보다 나음을 알고 있고, 슬기로운 사람은 제 앞을 보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어둠 속에서 헤맨다는 것도 이미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혜 있는 사람이 겪지 않는 일을 어리석은 사람만 겪는다든지, 어리석 은 사람이 겪지 않는 일을 지혜로운 사람만이 겪는 일도 없이, 인생에서 겪어야 할 것은 함께 겪는다고 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이나 미련한 사람이나 모두 태어나서 성장하는 것과 몸에 병이 드는 것과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은 동일하고, 뿐만 아니라 인생의 초반에는 지혜롭게 보이는 사람이 앞서서 가는 것처럼 보이고, 어리석게 보이는 사람이 뒤서서 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인생 후반 에는 누가 앞서게 될런지는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겸손해야 합니다.

우리가 더욱 겸허해야 하는 것은 ‘죽음 앞에서’입니다.
(15-16) 내가 내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우매자가 당한 것을 나도 당하리니 내게 지혜가 있었 다 한들 내게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하였도다. 이에 내가 내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이것도 헛되 도다 하였도다 지혜자도 우매자와 함께 영원하도록 기억함을 얻지 못하나니 후일에는 모두 다 잊어버린 지 오랠 것임이라 오호라 지혜자의 죽음이 우매자의 죽음과 일반이로다-라고 했죠.

전도자는 스스로에게 자문자답하기를 ‘어리석은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이 나에게도 똑같이 일어나는데 내가 무엇이 더 지혜롭다고 하겠는가? 이것 또한 헛되구나’라고 합니다.
우리는 죽음 앞에서 비로소 삶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
수고의 헛됨에 대하여(18-26)
18-26절은 사람의 수고가 헛됨에 대해서 증거합니다.
(18-21) 내가 해 아래에서 내가 한 모든 수고를 미워하였노니 이는 내 뒤를 이을 이에게 남겨 주게 됨이라 그 사람이 지혜자일지, 우매자일지야 누가 알랴마는 내가 해 아래에서 내 지혜를 다하여 수고한 모든 결과를 그가 다 관리하리니 이것도 헛되도다 이러므로 내가 해 아래에서 한 모든 수고에 대하여 내가 내 마음에 실망하였도다 어떤 사람은 그 지혜와 지식과 재주를 다하여 수고하였어도 그가 얻은 것을 수고하지 아니한 자에게 그의 몫으로 넘겨주리니 이것도 헛된 것이며 큰 악이로다=
전도자는 자신이 수고하고 애쓴 것을 누가 물려받을지 모른다고 합니다. 상속자가 지혜로운 자일 수도 있고, 어리석은 자일 수도 있는데, 누가 물려받느냐에 따라서 물려주는 사람의 수고 와 애씀이 빛나기도 하고, 안개처럼 사라지기도 합니다.

 

특히 물려주는 사람이 지혜와 지식과 재능을 다해서 수고하였지만, 그것을 아무런 수고를 하지 않는 사람에게 물려주어야 하는 것이 삶의 미스테리요 헛됨이다 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다윗은 소위 ‘흙수저’에서 시작해서 이스 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반면에 그의 아들 솔로몬(전도자)은 소위 엄친아 중에 엄친아(금수 저?)였습니다. 아버지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살며, 정직하게 산 것을 아들에게 물려 주지 않았다면, 솔로몬은 강대한 왕으로서의 솔로몬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내가 애를 쓴 것을 전혀 애를 쓰지 않는 사람에게 물려줄 수도 있는 것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자연법칙이기도 하고 헛된 일 같기도 했습니다.

(22-23) 사람이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수고와 마음에 애쓰는 것이 무슨 소득이 있으랴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 뿐이라 그의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사람이 낮에도 수고하고, 밤에도 쉬지 못하고 수고해야 하는 것이 헛됨(한숨)이라고 합니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고대사회에서 밤은 조명이 불량하여 모든 과업을 내려놓는 시간입니다. 육체노동자가 밤이 되면 육체의 노동은 내려놓았지만, 마음의 노동, 정신의 노동은 여전히 내려놓지 못함을 안타까워합니다.
예수님께서 마르다와 마리아 집을 방문했을 때,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치에서 말씀을 듣고, 마르다는 부엌에서 일을 했습니다. 마르다는 마리아가 도와주지 않음에 짜증이 나서, 예수님께 마리아를 자신이 있는 데로 보내어서 자신을 도와주게 명령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그 때, 마르 다의 상태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마르다 의 문제는 마리아가 도와주지 않음이나 자신의 일이 많음이 아니라 ‘마음의 분주함이었습니 다. 우리를 힘들게 하고, 넘어뜨리는 것은 해야 할 일의 과다(過多)가 아니라, 쉬지 못하는 마 음의 상태입니다. 인간은 생각보다 감정을 잘 통제하는 능력이 있다고 합니다. 당신의 감정을 잘 다스려 모든 일에 절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제 오늘 본문은 24~26절에서 결론을 내립니다.
(24-26)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것보다 그의 마음을 더 기쁘게 하는 것은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로다! , 먹고 즐기는 일을 누가 나보다 더 해 보았으랴 하나님은 그가 기뻐하시는 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시나 죄인에게는 노고 를 주시고 그가 모아 쌓게 하사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에게 그가 주게 하시지만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

사람에게 먹고 마시는 것, 자신이 수고한 것에 대해 보람을 느끼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베푸 시는 은혜라 했습니다. 그리고 수고한 것의 결과를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사람에게 주신다고 하 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기뻐하지 않고, 또 하나님의 기쁨이 되지 않고서 하는 수고는 다 헛됨이 됩니다. 사람이 아무리 자신의 일을 계획할지라도 그것의 성패와 그 일의 결과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결론)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을 힘입지 않고, 자기를 힘입으려고 하는 사람에게 남겨지는 것은 헛됨 밖에 없음을 전도자는 아주 강조하여 말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상반부인 1-11절에서 전도자는 ‘나는 내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시험삼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내가 나를 위하여’ 등, ‘나’를 반복해서 말하며 자기를 힘입어서 자기만의 생각으로 무엇을 해 보려고 열심히 발버둥을 쳐 보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바람을 잡는 것과 같고, 무익한 것들이었다고 했습니다. 우린 죽음 앞에서, 연로함이나 질병 앞에서 무능력해집니다.

내가 벌인 일들이 수포로 돌아가거나 예상치 못한 불행의 씨앗이 되는 경우도 많이 당하게 됩니다. 그럴 때 마다 느끼는 허무와 좌절은 우리의 삶이 헛되다는 허무주의에 빠지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것, 하나님이 원하시는, 하나님이 가리키시는 길을 따라 살면 거기엔 참된 만족이 있고 감사가 있고 보람됨이 있습니다.

122222 안익선 목사/ 참조: 정한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