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모음(Korean sermons)

상한 갈대도 꺾지 않으시다 (마태복음 12:14~21)

호걸영웅 2023. 8. 17. 09:35

상한 갈대도 꺾지 않으시다 (마태복음 12:14~21)

14.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거늘

15.                  예수께서 아시고 거기를 떠나가시니 많은 사람이 따르는지라 예수께서 그들의 병을 다 고치시고
 

 

  16.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 경고하셨으니
17.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18.보라 내가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 바 내가 사랑하는 자로다 내가 내 을 그에게 줄 터이니 그가 심판을 19.이방에 알게 하리라그는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20.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21.또한 이방들이 그의 이름을 바라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서론)

이 말씀은 예수께서 말씀하신 이사야 423절에 대한 인용 부분입니다.
  이곳은 여호와의 종, 곧 메시야에 대한 예언으로서 메시야의 온유한 성품에 대한 묘사의 일부분입니다. 성경에는 갈대에 관련 된 말씀이 여러번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도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들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더냐?라고 말씀을 하신 바 있습니다.

 

또 구약에는 종종 갈대 같은 애굽을 의지하지 말라고 하는 경고가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에 대한 언급이 또 있습니다.

갈대는 나무에 비하면 매우 약한 존재입니다. 약한 것의 한 상징이기도 합니다. 갈대 같은 애굽이라고 하는 말씀도 약한 애굽을 의지하지 말라고 하는 뜻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 인간들도 약한 갈대라 했습니다. 파스칼라는 철학자는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고도 했습니다. 먼저 인간의 체력이란 맹수들이나 가축들과 비교해도 그리 튼튼하지 못합니다. 철석(쇠나 돌)같은 의지-라는 말도 우리가 종종 쓰지만, 인간의 의지는 약한 편입니다. 이사야 43장에 보면, 땅의 거민 들은 메뚜기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이것도 인간은 약하다는 뜻입니다. 인간은 말 몇 마디에도 쉽게 주눅들고 쉽게 절망합니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다고 하는 말씀도 있습니다. 이것은 인생의 무상함을 우리에게 가르치 는 동시에, 또 연약한 면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갈대는 습기가 많은 곳에 있다 보니 쉽게 병균에 노출되고 쉽게 상처를 받습니다.   좀 강한 바람에도 꺾이기 쉽습니다. 짐승이 한 번 지나가며 스치거나 밟히면 상하기 쉽습니다.

 

인간이 역시 비슷하다는 겁니다. 이 세상에서 수없이 부딪히는 천재와 지변에, 혹은 전쟁과  역경과 기근과 여러 가지 갈등으로 육체는 상하고 심령은 깨어집니다. 누구나 상한 갈대 처럼 됩니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지만 그 속을 알면, 어디나 상처가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온갖 유혹과 시험이 많은 이 세상에서 그 심령이 더럽혀질대로 더럽혔고, 상할 대로 상해서 신음하는 소리, 흐느끼는 울음소리, 비명의 소리가 없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말하자면 다 상한 갈대와 같은 현실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이런 상한 갈대를 돌보아 줄 힘이 별로 없습 니 .  오히려 잔인하게 꺾어 버리고 밟아 버리는 것이 보통 일이 됩니다. 상처난 그릇은 금방 내어버립니다. 병든 짐승은 혼자 죽으라고 그냥 방치하기 일수입니다.

 그래서 생겨난 말이 적자생존이니자연도태약육강식입니다.

 

본론)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는 하나님

그런데 여기 본문 말씀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메시야를 보내신 것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회복시켜 주시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활동하실 당시, 예수께서는 가시는 곳마다 몸에 병든 자, 귀신들린 자들을 고쳐 주시기를 힘쓰셨습니다. 중풍병자를 일으키셨습니다. 소경을 보게 하였습니다. 절름발이를 걷게 만드셨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마음의 상처를 입은 자를 고쳐 주시기 위해서 많은 수고를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도 안식일에도 불구하고 손 마른 자들을 불쌍히 여겨서 고쳐 주셨습니다. 
  우리 예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하셨습니다. 우는 자와 함께 우시며 마음에 슬픔을 당한 이들을 위로하여 주셨습니다. 즉 죄로 상한 인간들을 꺾어 버리지 않으시고, 다시금 회복케 하셔서 구원하시는 일이 우리 예수님의 사명이셨습니다.

 

 요한 복음 8장엔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자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 서 사람들을 가르치실 때에, 바리새인들이 간음하다가 붙잡혀온 한 여자를 예수님 앞에 끌고 와서 시험하며 묻습니다. 모세의 법률로 말하면 이런 여자는 돌로 쳐서 죽이라고 하였는데, 선생께서는 무어라고 말씀하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즉시 대답하시지 않으시고 땅에 무슨 글씨를 쓰시면서 저들의 흥분을 가라 앉히십니다. 그러다가 말씀하십니다.   『너희 가운데 누구든지 죄 없는 자가 있거든, 그가 먼저 돌을 들어 저 여자에게 던지라.
 

잠시 후, 성난 군중들과 바리새인들이 슬금 슬금 다 떠나가 버리고 그 여자만 홀로 덩그러 니 서있습니다. 예수께선 너를 정죄(定罪) 하던 사람들이 다 어디로 갔느냐?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리니, 돌아가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하십니다. 상한 갈대도 꺾지 않으셨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고 장사된 지 여러 날 후의 일입니다. 어느 이른 아침, 낙심한 갈릴리 바닷가의 일곱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요한 복음 마지막 부분의 이야기입니다.  그 때에 베드로는 다른 제자들과 같이 밤새도록 고기를 잡으려고 수고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 그날은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를 못했습니다. 그때에 어떤 분이 나타나셔서, 『그물을 오른편으로 던지라』라는 말을 듣습니다. 그래서 오른 편으로 그물을 던지니, 엄청 많은 고기가 잡혀 그물이 찢어질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제서야 물가에 서 계신 분이 예수님이신 것을 제자들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과 베드로는 놀라워 하며 재빨리 언덕으로 왔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예수님이 잡히실 때, 그가 그 저녁에 세 번씩이나 예수를 모른다고 한 것이 기억이 낫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얼굴을 대하니 자연히 부끄러워 너무 미안하고 죄송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책망하시지 않았습니다. 다만 조용히 베드로에게 물으십니 다.  요나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고 물었습니다. 다른 것은 다 부족할지라 도 예수를 사랑하는 마음이 아직도 그 마음에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주님은 베드로가 예수를 사랑하는 것을 확인하셨습니다. 그렇게 세 번 물으시고는『내 양을 먹이라』고 부탁하였습니다. 베드로의 상한 마음을 꺾지 않으시고 회복케 하셔서 귀한 직분을 다시 맡게 하십니다.

 

옛날 사람들은 갈대로 종이를 만들어 글을 쓰거나 갈대로 피리를 만들어 음악을 연주했 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상한 갈대 같은 사람도 무심하게 꺾지 않으시고 다시금 회복시키시고, 결국엔 귀한 진리의 말씀을 기록하게 하시 고 귀한 하늘나라의 노래를 만드셨습니다. 이와 같이, 상한 갈대 같은 베드로를 다시 회복시 키셔서 오순절 하루 아침에만 무려 삼천 명을 불러서 회개시키는 위대한 사도로 만드셨습 니다.


중세시대엔,  죄로 말미암아 상할 대로 상한 어거스틴 같은 방탕한 청년을 불러 회복시키 셔서, 무려 일천년간의 기독교 사상을 지배하는 위대한 신학자를 만드셨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위대한 사역이요 주님의 은혜입니다.

 

그런 일은 지금도 변함이 없으십니다. 빈궁과 실패와 질병과 슬픔과 죄에 상한 인생들을 불러서 죄를 사함 받게 하여 주시고, 하나님 나라의 귀한 일꾼을 삼으시고,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십니다. 오늘 아침 우리가 이 자리에 와서 하나님을 찬송하고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로서 예배하게 되는 것도 오로지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는 주님의 은혜임을 고백해야 합니다.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시는 하나님

그리고 또 이르시기를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신다 했습니다. 적은 불티만 남았으니 연기만 나는 심지입니다. 이런 작은 불꽃 조차도 예수님은 사랑의 숨결을 불어 넣어 다시금 큰 빛을 발할 수 있게 만들어 주십니다.

조금이라도 양심이 남아 있고 믿음이 남아 있다면, 예수님께서는 이 작은 불티를 일으켜서 회개케 하시고 새 사람을 만드십니다.

 

예수님 당시에 여리고에 살던 삭개오가 있었습니다. 그는 세리장(세금 걷는 사람의 우두머리)으로 유명했습니다. 그 때 사람들은 삭개오를 매국노라고 미워했습니다. 세리들은 유대 사람의 돈을 마구 거두어 이방 로마 사람에게 바치고 상당 부분을 자기가 가로 챕니다.   불의와 토색(討索)을 일 삼습니다. 돈만 아는 자요, 권력에 아부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인 삭개오가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고 하는 말을 듣고 그도 역시 거리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는 키는 작고 사람은 많아 예수님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를 보고 싶은 너무 마음이 간절해서 돌감람나무 위로 올라 갔습니다.  삭개오의 마음에 의를 사모하는 작은 불티가 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 꺼져 가는 삭개오의 등불을 다시 돋우어서 큰 들 불처럼 회복시켜 주셔서, 그가 갈취한 세금들을 네 배로 갚아 주고 재산의 절반은 팔아서 가난한 사람을 구제해 주며 온전한 하나님의 아들로서 회개하고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십니다.

한번은 예수께서 변화산이라 불리우는 산에서 기도하고 내려오실 때에, 간질병 앓는 아들을 데리고 온 어떤 아버지가 예수님께 부탁한 내용의 기록이 있습니다. 그는 제 아들이 중병을 앓아서 당신의 제자들에게 이 애를 고쳐 달라고 했더니 고치지 못했습니다. 혹 당신께서 무엇을 하실 수 있으면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라고 했습니다.
  예수님 앞에 나와서, , 당신께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으면…” 이라고 말했습니다.  

 

반신반의하는 그런 연약한 믿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셨나요? 그 말씀을 듣자마자 금방 하시는 말씀이,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하는 것이 없느니라고 하십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주여 내가 믿나이다. 내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옵소서 라며 믿음의 심지를 돋우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와 같은 일을 하시기 위해서 이 땅 오셨습니다. 여러분, 의심하던 도마의 이야기를 모두 잘 아시지요? 열 한 제자만 있을 때에 주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그 후에 도마가 외출했다가 돌아왔더니……열 제자가 이구동성으로 우리가 부활하신 예수를 보았노라라고 흥분해 외쳐댔습니다. 그러나 이 도마는  나는 못 믿겠어! 나는 친히 내 눈으로 보고 내 손으로 만져보고 그래야 믿지, 난 못 믿어라며 의심했습니다. 꺼져가는 심지 같은 믿음입니다. 이런 믿음을 주님께서 어떻게 했습니까? 다시 도마가 있을 때에 또 나타나셨습니다. 그러고는 말씀하시기를 도마야,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를 만져보고 내 손에 있는 못 자국을 만져보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음 있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 니다. 도마가 친히 예수를 만져본 후에 엎드려서 하는 말이, 나의 주님이시여! 나의 하나님 이로소이다.라며 감동함을 받습니다.


  예수께선 의심하는 믿음, 연기 나는 심지 같은 그런 믿음도 다시 돋우셔서 튼튼한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해 주십니다. 도마는 그 후, 머나먼 동방의 인도까지 가서 복음을 전파하여, 오늘날 도마의 선교로「성 토마스 교회」라고 하는 큰 교회를 인도 동남부에 있는 항구도시 첸나이에 세워지게 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작은 믿음도 멸시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나는 도무지 믿음이 너무 작아, 나는 의심도 많아, 난 실패작인가? 라며 낙심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그저 주님께 가까이 오십시오. 기도에 힘쓰세요. 하나님 말씀을 조금만이라도 더 들으세요. 조금만이라도 그리하도록 더 힘쓰세요. 조금만이라도 더 모이길 힘쓰세요. 그러면 주님 예수께서 작은 믿음, 의심 있는 믿음의 그 불 심지를 돋우셔 서, 점점 큰 불길을 만드시고, 마지막에는 다른 사람에게까지 빛을 미칠 수 있는 큰 믿음의 등대의 불로 삼으실 것입니다.


결론)

 미국의 유명한 여류 소설가 S. 펄벅 여사가 한국에 대한 소설을 쓰셨어요. 

펄벅 여사는「더 리빙 리드(The Living read), 살아 있는 갈대」에서 한국 민족을 매우 상한 갈대로 보았습니다. 일제 침략부터, 6.25 사변으로, 거듭되는 혁명가 거듭되는 정치적 혼란으로, 경제파탄으로 상한 갈대입니다. 그 상처는 너무 깊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낙심하고, 어떤 이는 절망하고, 자살합니다. 범죄는 더욱 더 증가해 갑니다. 그러나 오직 예수님은 우리 민족을 다시 살려 내셨습니다. 세계 경제 12위권, 세계 군사 강국 10위권 안에 들어 가게 하셨습니다. 세계적 선교국가가 되게 하셨습니다. 할렐루야! 미국 대륙도 세계 최대 강국이 되게 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치료받아야 할 상처가 있습니까? 해결 못할 의심이 있습니까? 삶에 무언가 설명 못할 불안이 있습니까? 어떤 문제가 있습니까? 어떤 죄와 허물이 있습니까? 어떤 수고와 번민이 있습니까? 예수 앞에 다 나오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세요! 예수의 십자가를 붙드세 요. 그러면 구원하실 예수께서 친히 그 피 묻은 손길을 기꺼이 여러분에게 내어 미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080123 안익선 목사/ 참조: 한경직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