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모음(Korean sermons)

피투성이라도 살라 (에스겔 16:6-8)

호걸영웅 2023. 8. 17. 09:37

피투성이라도 살라 (에스겔 16:6-8)

   

6. 내가 네 곁으로 지나갈 때에 네가 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것을 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다시 이르기를 너는 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하고
7. 내가 너를 들의 풀 같이 많게 하였더니 네가 크게 자라고 심히 아름다우며 유방이 뚜렷하고 네 머리털이 자랐으나 네가 여전히 벌거벗은 알몸이더라
8.내가 네 곁으로 지나며 보니 네 때가 사랑을 할 만한 때라 내 옷으로 너를 덮어 벌거벗은 것을 가리고 네게 맹세하고 언약하여 너를 내게 속하게 하였느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서론)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되어 있던 시절,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기가 막히게 비참하게 버려진 한 여자 아기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왕비로 성장한 한 여인의 인생으로 비유하여 에스겔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들판을 지나던 어느 왕이 들에 버려진 피투성이의 여자아기를 주워 살게 만들어 왕후로 만들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 부분이 오늘 본문의 9~14절에 더 부가되어 설명되어 있습니다.

 

9.   내가 로 네 를 씻어 없애고 네게 기름을 바르고
  1. 수 놓은 옷을 입히고 물돼지 가죽신을 신기고 가는 로 두르고 모시로 덧입히고
 

 

 
  1. 패물을 채우고 팔고리를 손목에 끼우고 목걸이를 목에 걸고
  2. 코고리를 코에 달고 귀고리를 귀에 달고 화려한 왕관을 머리에 씌웠나니
  3. 이와 같이 네가 , 은으로 장식하고 가는 와 모시와 수 놓은 것을 입으며 또 고운 밀가루와 과 기름을 먹음으로 극히 곱고 형통하여 왕후의 지위에 올랐느니라
  4. 네 화려함으로 말미암아 네 명성이 이방인 중에 퍼졌음은 내가 네게 입힌 영화로 네 화려함이 온전함이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ㅡ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비극적인 결과가 찾아옵니다. 피투성이로 버려졌던 그 여자 아이가 왕의 왕후가 되자 변심하여, 왕의 기대를 저버리고 주어진 물질과 축복으로 방자한 음부 짓을 했습니다. 어찌 이런 여인을 그냥 둘 수 있느냐는 말씀입니다. 

 

이 비유는 애굽의 포로가 된 이스라엘 백성을 건져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서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번영을 누리게 했더니 그때부터 유다가 멸망하던 그때까지 세계 각국에 우상을 들여와 영적인 간음을 행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남편 되신 하나님이 간음한 이스라엘을 바벨론 포로의 고통을 내리셨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이 비유는 이스라엘의 안타까운 역사를 통틀어 설명할 수 있는 비유일 수 있지만, 또한 우리들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모두 설명하거나 비유할 수 있는 이야기일수도 있습니다. 오늘은 이 비유를 우리의 영적인 측면의 일부일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하며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본론)

) 구원받기 이전의 우리의 비참한 상태( 16:1-6)

모든 사람은 예수 믿기 이전에는 근본이 죄인입니다. 본문은 이 죄인의 비참함을

경악할만한 상황을 통해 그림처럼 보여주고 있습니다. 

 

출신 성분이 별로 좋지 않은 집안에 딸이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아모리 사람이고, 어머 니는 헷 사람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둘 다 우상 숭배자들입니다. 그리고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갓난 딸의 탯줄도 제대로 자르지 않고, 물로 씻지도 않고, 소금도 뿌려 소독도 하지 않고, 강보에 싸지도 않은 채, 들판에 몰래 버리고 떠나가 버리고 말았습 니다. 원치 않는 임신이었거나 부모인 남녀가 미움과 다툼으로 그 분노와 미워함이 아기에게 향하여져서 버림을 받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 누구의 긍휼히 여김도 받지 못하고 버려졌습니다. 이리와 승냥이가 우글거리는 광야의 어느 들판에서 갓난 여자 아기는 피투 성이가 되어 발길질을 하며 울어대고 있었습니다. 그 아기는 짐승 밥이 될 신세요, 햇볕에 타 죽을 신세요, 아니면 한 밤중엔 얼어 죽을 수 밖엔 없는 신세였습니다. 

 

이 모습은 하나님 앞에서 죄인들의 영적인 상태를 정확히 표현한 것입니다. 조금도 과장한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의 일반적이고 자연적인 상태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버려져서 더는 도울 자도 없고, 소망과 능력도 없는 상태입니다. 그냥 두면 영원히 지옥불에 던져질 수 밖엔 없는 신세입니다. 이것이 구원받기 이전의 죄인 된 우리 모두의 비참한 모습이었습니다.

   

) 하나님이 은혜로 다가오심( 16:8-13)

1. 하나님이 피투성이게 베푸신 은혜는 C”로 시작하는 다섯 가지 동사로 표현됩니다.

첫째, 하나님이 먼저 이 아기에게 다가오셨습니다(Came). 본문 6절 전반입니다. “내가 네 곁으로 지나갈 때에 네가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것을 보고” = 하나님이 아기에게 먼저 다가오신 것입니다( 15:16, 요일 4:19).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먼저 찾은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 영혼에 찾아오셔서 비참함과 곤비함을 알게 하셨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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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하나님은 이 아기에게 살라고 명령하셨습니다(Commanded). 본문 6절 후반=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 다시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 하고”= 하나님의 본심, 그 사람은 분명하고 확실하셨습니다. “살아라! 제발 죽지말고 살지어다!

그런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지면서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던 피투성이 아기는 살게 되었습니다. 이 아기가 살아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이것은 먼저 다가오신 하나님의 의도요, 사랑이요, 명령이었습니다.

   

셋째, 하나님이 이 아기를 씻기셨습니다(Cleansed). 본문 9= “내가 물로 너를 씻겨서 네 피를 없이 하며 네게 기름을 바르고”라 했습니다. 맑은 물로 씻어서 깨끗하게 하고

기름을 발라 건강한 피부를 되살려 주었습니다. 이는 성령의 도우심과 보호를 의미합니다.

넷째, 이 아기가 아름답게 성장하자 왕후로 삼아 옷을 입혀줍니다(Clothed). 

본문 10~13= “수놓은 옷을 입히고 물돼지 가죽신을 신기고 가는 베로 띄우고 모시로 덧입히고 패물을 채우고 팔고리를 손목에 끼우고 사슬을 목에 드리우고 코고리를 코에 달고 귀고리를 귀에 달고 화려한 왕관을 머리에 씌웠나니 이와 같이 네가 금, 은으로 장식하고 가는 베와 모시와 수놓은 것을 입으며, 또 고운 밀가루와 꿀과 기름을 먹으므로 극히 곱고 형통하여 왕후의 지위에 나아갔느니라”고 하십니다.  왕이신 하나님이 버려진 아기를 그처럼 잘 길러서 옷 입히고 잘 성장시켜 왕후로 삼으신 것입니다. 이는 죄의 옷을 벗기고 의와 영광의 옷을 입혀 의인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보다 어떻게 더 사랑을 주고 높여줄 수 있겠습니까?

 

다섯째, 하나님은 이 아기와 언약을 맺으셨습니다(Covenanted). 본문 8= “네게 맹세하고 언약하여 너로 내게 속하게 하였었느니라”하십니다.  내 손에서 누구도 빼앗아 갈 자가 없으며 나의 호적에서 지울 사람도 없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하나님이 목숨 걸고 맹세하고 언약으로 확정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들에 버려진 피투성이 같았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찾아오셔서 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행동적으로나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도록 해 주셨습니다.

 

고로 로마서 5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너무나도 놀랍습니다. 너무나도 고맙습니다. 우리에겐 사랑받을만한 조건이 별로 없었습니다. 신분이 빈천합니다. 내세울 것이 없었습니다. 과거에 지은 죄가 너무나 컸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해 주셨습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이 사랑을 우리가 받았습니다.

   

)배역(背逆)한 이스라엘

그런데 그런 극진한 사랑을 받은 왕의 사랑을 배신하고 왕후는 간음을 했습니다.

1. 외인과 간음하는 방자한 음부가 되었습니다.

에스겔 16 15절입니다. “그러나 네가 네 화려함을 믿고 네 명성을 인하여 행음하되 무릇 지나가는 자면 더불어 음란을 많이 행하므로 네 몸이 그들의 것이 되도다”라고 했습니다.  화려한 옷을 입고서 길거리에서 만난 외부인과 행음을 했습니다.  30절에는 방자한 음부의 행위라고 했고, 32절에는 지아비 대신에 간음하는 아내라 했습니다. 이 여자는 남편이 살림하라고 벌어다 준 돈을 가지고 외간 남자에게 주어 가면서까지 행음을 즐겼습니다. 이 여자는 동정 받을 가치가 없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의 우상 숭배가 얼마나 극심했는지에 대한 표현이었습니다.

   

2. 예루살렘은 사마리아나 소돔보다 그 죄가 더 컸습니다.

사마리아의 우상 숭배가 심했다 해도, 또 소돔의 죄가 극악했다 해도, 예루살렘의 죄보다 훨씬 덜했다는 것입니다.  우상 숭배를 하더라도 자기 동네에 있는 우상을 섬기는 정도가 아니라 우상을 수입해 들이기까지 했습니다. 애굽 우상, 앗수르 우상, 바벨론 우상까지 수입해서 세계 각국 우상을 섬기며 즐거워했습니다.

   

3. 블레셋이 흉볼 정도의 반역이었습니다.

이렇게 되자 멸망의 대상이었던 블레셋조차 흉을 봅니다. 에스겔 16 27= 

“너를 미워하는 블레셋 여자 곧 네 더러운 행실을 부끄러워하는 자에게 너를 붙여 임의로 하게 하였거늘” 블레셋이 말하기를 우리도 다곤 신을 섬기는 우상 숭배 국가이지만, 예 루살렘은 더욱 심하다고 흉을 볼 정도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배역하면 이처럼 세상에 온갖 손가락질을 받습니다.

   

4. 결국 징벌을(국문,鞠問)을 당하게 되었어요.

왕이신 하나님이 아내로 삼은 왕후가 방자한 음부가 되었습니다. 이런 여인을 어느 남편이 그냥 내버려 두겠습니까? 에스겔 16 38절입니다. “내가 또 간음하고 사람의 피를 흘리는 여인을 국문함 같이 너를 국문하여 진노의 피와 투기의 피를 네게 돌리고”라 했습니다. 국문이란 말은 중죄인을 잡아다가 가두고 피투성이가 되고 뼈가 으스러지도록 고문하며 심문하는 것을 말합니다. 반드시 자백하도록 고문을 당하게 하는 것입니다.

   

5. 그 원인은 신앙의 배역 때문이라 했습니다.

은혜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바벨론의 포로 됨의 고난이 찾아온 이유는 신앙의 배역 때문이라 했어요. 하나님이 그들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를 망각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어린 피투성이 같은 그들을 왕후처럼 만들어 주신 은혜를 다 잊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감사도 없고, 발전도 없습니다. 

 에스겔 16 22= “네 어렸을 때에 벌거벗어 알몸이었으며 피투성이가 되어서 발짓하던 것을 기억지 아니하고 네가 모든 가증한 일과 음란을 행하였느니라”라고 선언하였습니다. 은혜는 물에 새기고, 원수는 돌에 새긴다는 말처럼 은혜를 물에 새겨 다 떠내려 보냈습니다. 에스겔 16 43= “네가 어렸을 때를 기억지 아니하고 이 모든 일로 나를 격노케 하였은즉”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는 이스라엘을 징계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을 다시 회복시키려 하십니다. 에스겔 16 60-63절에 보면 이스라엘을 다시 회복시키시는 은혜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너의 어렸을 때에 너와 세운 언약을 기억하고 너와 영원한 언약(eternal covenant)을 세우리라”했어요. 회복을 위한 징계였습니다.

 

 결론)

여러분이여!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 하신 그 영원한 언약은 곧 대속의 은혜입니다. 성자 예수님이 우리 대신 피를 흘려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시고 누구든지 예수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게 하시고 하나님 자녀와 백성을 삼아 주시는 은혜입 니다.

 

이 은혜는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이방인에게도 모두 동일하다 하셨습니다. 이는 행위로 말미암지 않습니다. 우리의 착한 행실과 무관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과 스스로 맺으신 언약입니다. 

 

고로 그리스도의 피는 영원한 언약의 피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택한 백성이 방자한 음부와 같은 짓을 했을지라도 징계는 할지 언정, 영원히 버리지 않으시는 은혜와 용서를 베푸셨 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하나님을 배신하고 하나님을 떠나버린 우리조차 하나님은 용서하고 구원하시고 사랑해 주셨습니다.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어디 있을까요? 이보다 더 큰 은혜가 어디에 더 있을까요? 여러분, 이제 다시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시길 바랍니다. 그 은혜에 응답하시고 그 은혜를 감사하고 감격하실 수 있길 바랍니다.

 

우리는 방황하기 보다는……그 은혜를 갚고자 밤낮으로 감사하며 헌신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를 다시금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 서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에 응답하십시다. 다시금 하나님의 사랑의 품으로 돌아오며 첫사랑을 회복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071723 안익선 목사 / 참조:열방지킴이 님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