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서신

요한일서 1장 강해(실제로 뵙고 체험으로 겪은 구주 예수)

호걸영웅 2023. 8. 17. 10:01

요한일서 1장 강해(실제로 뵙고 체험으로 겪은 구주 예수)

 

찬송가 488/489

서론)

특정한 교회나 인물을 대상으로 쓰여진 바울의 서신과 다르게 요한일서는 편지를 받아볼 대상을 다수의 일반 사람으로 하여 일반서신 혹은 공동서신으로 부릅니다. 요한의 활동 주 근거지는 소아시아였으며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를 평생 모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편지에서 강조점은 예수는 태초부터 계셨던 아들 하나님이시오 성육신하심이 분명한 구세주이심을 강조합니다. 이는 영지주의에 대한 강력한 견제의 의도를 가진 편지였습니다.

예수의 제자 중 요한은 가장 장수했고 순교하지 않은 사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서론)

)듣고, 보고, 만진 바 된 성육신하신 예수 (1-2)
1
=(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은 창조주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사도 요한의 이러한 설명은 요한복음에서도 언급한바 있는 설명입니다. 요한복음 1 1절을 보면,
(
요한복음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고 합니다.

요한복음에서 뿐만 아니라 동일하게 요한이 기록한 요한계시록에서도 예수님을 말씀으로 표현하는 장면은 또 나타납니다. 요한계시록 19 13=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고 했어요.

이와 같이 사도 요한은 “말씀”이라는 표현으로 예수님을 설명함으로 신구약에 걸쳐 계시된 하나님 말씀의 완성이 예수님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오늘 본문 1절은 예수님을 “생명의 말씀”으로 표현함으로써, 말씀의 완성이신 예수님께서 가지고 계신 충만한 생명력을 설명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말씀의 본체이시며, 생명의 근원이심으로 죄와 사망의 자리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 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완성이자,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님을 사도 요한은 듣고, 보고 만졌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는 실제로 무려 3년간을 요한을 비롯한 예수님의 제자들이 직접 동고동락하고 동식동침하여 경험한 바를 기록한 것입니다.

 

이렇게 기록된 예수님의 실재하심과 실존하심은 예수님의 가르침이 여전히 분명하고 생생하며 살아있고 유효하다는 것을 보여줌과 동시에, 육체로 오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존재와 신분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요한 사도 활동 당시인 1세기 중반에는 사람들 중 일부가 성육신하시어, 십자가 위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해 그 진실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육체로 직접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라 영(혹은 유령,혼령)의 형태로 우리에게 나타나신 것이라 주장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러한 주장의 사람들은 예수님은 하늘에만 계셔야 하는 거룩한 분이시지 실제로 이 땅에 타락하고 죄 많은 땅에 육체로 오신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예수님께서 실제로 역사하신 방법과는 다른 거짓 교사들의 망상이었습니다.

실제로 이 땅에 예수께서 오지 않으셨으면 실제로 죽을 수도 실제로 우리 대신 피 흘리는 일도 거짓이요 헛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2
) 이 생명(영생의 생명, 비오스가 아닌 조애)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

요한은 실제로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예수님을 보고 만진 사도요, 성령의 감동으로 더욱 깊은 사귐을 가진 분이었습니다.


2
절 하반절= 우리(사도들과 제자들)가 증거하는 예수님께서 아버지 즉 성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태초를 넘어 그 이전, 영원 전부터 성부 하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고로 미가서 5:2 이하는 장차 오실 그리스도는 그 근본 신분이 태초에 상고부터 계셨던 분이니라. 라고 했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 안에 그 영원한 지혜와 생명이 충만하게 담겨져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 창조와 우주에 충만한 지혜와 생명의 능력이 우리의 모든 시간, 모든 공간 속에서 함께 하기에, 우리는 세상의 대수롭지 않은 고통스러운 일들에 실족당하지 않는 것이며, 보다 담대하게 세상을 향해 그리스도를 증거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회복되는 기쁨 (3-4)

(3
)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이와 같이 우리는 말씀의 능력으로 예수님을 경험한 사람들로서, 우리의 모든 삶의 방식을 통해 예수님을 증거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 이유는 그 증거의 삶 안에서 ‘예수님과 우리’ 또 ‘형제 자매’간의 사귐도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보통 성경을 많이 알아야 증인을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증인된 삶에 대한 오해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지극히 일반적인 상식과 짧은 말씀, 한 조각이라도, 그 말씀을 생명과 같이 여기고, 이를 자신의 모든 삶에 적용하려고, 애쓰며 살아간다면, 머리로만, 입술로만 하나님에 대해 말하는 어떠한 성경학자보다도 훨씬 더 뛰어난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4
)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께서는 처음 인간과의 교제를 위해 에덴동산을 만드셨지만 아담 부부의 죄로 인하여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과의 인간과의 교제 역시 대부분 단절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안에서 얻은 새로운 생명력을 통해, 인간은 다시 하나님과의 화평, 그리고 온 만물과의 화평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사귐이나 화평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이며, 인간을 통하여 종국에 완성하실 하나님 나라의 모습입니다. 그러한 점에서 4절에서 말하고 있는 '우리의 기쁨'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신자들이 하나님과 또 만물과 화목하게 됨으로 찾아오는 근원적이며, 온전하고 감당키 어려운 기쁨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빛이 되신 예수 (5-7)

(5
)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죄와 악)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5
절에서 사도 요한은 예수님으로부터 직접들은 가르침에 대해 설명하는데, 그것은 하나님은 빛이시다는 선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빛은 하나님의 초월적인 속성을 강조하는 단어로써, 하나님의 거룩하신 ‘위엄’과 ‘영광’, 의로우심 등을 나타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전서 6 16절에서 하나님께서 사람이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신다고 설명하는데, 이는 성경이 하나님의 초월적인 거룩성을 의미합니다. 고로 죄인된 인간의 추악함이 본질상 빛 되신 하나님과 교제라는 것이 불가능하였으나, 예수님의 거룩하신 피가 우리를  깨끗하게 해주심으로 인하여, 감히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자리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6-7
)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예수님의 보혈로 인하여 이제 빛 되신 하나님과 사귐을 가지게 된 사람들은 빛 되신 하나님과 함께 하기에 당연하게도 어둠과 거짓이 사라지게 된다는 의미의 설명입니다.
하나님께서 계신 곳에는 모든 것이 거룩함으로 충만하게 되며, 또 모든 불의가 견디지 못하고 사라지게 됩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공의이신 하나님을 떠나면 부정하게 되고 거짓을 일삼게 됩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지 않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어두움 안에 행하는 사람이요, 또 자신의 모든 것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도 않습니다. 고로 아들 하나님과의 사귐이 우리를 온전히 거룩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죄의 자백과 회개의 필요성 (8-10)

(8
)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빛 되신 예수께서 우리의 어둠을 드러나게 하셨다면, 우리가 이를 해결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하여 회개하는 것 밖에는 없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본성상 자신의 죄를 정직하게 직면하고, 이를 위해 진정으로 회개하는 것에 익숙한 존재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용서의 크기가 크고, 놀랍다 하여, 회개가 쉽고, 회개의 일이 언제나 열려있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회개하게 되는 것은 특별한 사건이자 은혜의 결과인데, 그것은 회개를 함에 있어 걸림돌이 예수님께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 모두는 참된 회개를 본능적으로 피하려고 하는 자기 변론적 악한 습성을 가지고 있기에,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진정한 회개는 생각처럼 그렇게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9-10)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그 크신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긍휼히 여김을 받고, 죄를 깨닫고, 죄를 회개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에 있어서 빛 되신 예수님을 내 죄를 대속하신 아들 하나님으로 영접하고 인정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참고:3:20, 볼찌어다 내가 문 밖에서 두드리노니.)

 

또 우리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예수님을 믿고 의지함으로써, 말씀의 정의와 공의가 빛과 같이 나의 삶을 비추고 이끌게 되어, 우리는 죽지 않고 반드시 살 영생의 복을 누리게 됩니다.

 

죄악이 만연한 이 세상에서 그 절망적 환경이나 나 자신의 부족한 믿음의 상황에서 우리를 살릴 유일한 빛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이를 깊이 인정함으로써, 우리가 공의의 빛 되신 예수님 앞에서 우리의 죄를 진실하게 자백하면, 신실하고 의로우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불의를 깨끗하게 하시는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하지만 이러한 은혜와 기회의 말씀이 선언된 상황 속에서도 우리 자신의 어둠을 끝까지 보려하지 않고, 자신은 죄가 없다고 스스로를 변명하며 자신은 항상 의롭다고 속이는 사람들이 있다면…… 안타깝게도 그런 사람들에게는 희망과 사죄 받음이 없습니다. 영적 성장이나 거룩한 삶은 상실되고 맙니다. 죄의 자백이 없이 거룩함의 회복이나 유지는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인정하며 살아야 합니다.


결론)

오늘도 참 빛 되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내 삶의 어두운 부분들을, 주님 앞에서 단호하고 용감히 회개 자백하고 토해냄으로써, 미쁘시고 의로우신 주님으로부터, 우리들의 죄를 깨끗하게, 그리고 늘 해결 받는 모두가 되시기를 주 예수의 능하신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071823 안익선 목사/ 참조:유영진 님

 

마치는 찬송 :4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