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모음(Korean sermons)

영원한 소망, 예수( 롬 8:26-30)

호걸영웅 2023. 12. 18. 08:33

영원한 소망, 예수(  8:26-30)

 

26.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27.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28.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29.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서론)

1. 제가 고등학교 시절에 궁금했던 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인생의 미래를 알 수 있을까 하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종로서적이라는 당신 한국 최대의 서점에 가서 여러 번 이런 저런 책들을 사 읽게 되었습니다. 중국의 학문들 중, 주역이니 음양 오행설 등과 관상학이니 성명학 등등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쉽지 않습니다. 모든 미래를 예측하는 학문에는 모두가 한계가 있고 예외가 있습니다. 장점만 있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단점도 있습니다. 아무리 점쾌가 흉한 것도 길한 것이 숨어있고 아무리 길한 것도 흉한 것이 역시나 숨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얻은 결론은 뭡니까? 확실히 잘 모르겠다입니다.

 

2. 세계와 인류의 미래를 예측하는 학문을 미래학이라고 합니다. 미래학의 특징적 결론은 뭡니까? 부정확하다-입니다. 지난 100년 동안, 미래학자들이 인류와 세계의 미래에 대해 예언한 것들이 있었는데 거의가 다 빗나갔다고 합니다. 그 결과에 영향을 받은 미래학자들이 세계미래학회 (WFS)를 탈퇴하기 시작하여 6만여 명이던 회원이 근래는 절반으로 떨어졌다고 합니다.

성경 안에는 수를 셀 수 없는 예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예언은 단 한가지의 오차도 없이 그대로 실현됐고 또 실현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신실하며 하나님은 살이 계시다 라고 합니다. 고로 인류의 미래는 하나님 말씀 안에 있습니다.

 

또 성경은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변하지 않으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즉 우리의 영원한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변하지 않습니다.

로마서 8:24을 보면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리리요"라고 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참 소망이 아닌 현실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 곧 현실들은 과연 무엇입니 까? 권력이요 돈이요 명예 아름다움 따위입니다. 그런 것들은 참 소망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잠시 있다 사라지는 것들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장차 실존하게 되는 것, 체험하게 될 것 등이 소망입니다. 지금은 손에 잡히지 않는 것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과 믿음 안에서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 참 소망입니다.

우리는 대부분의 오늘 본문인 히브리서를 받아 읽던 교인들처럼 예수님을 실제로 뵌 일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살아 계심을 믿는 믿음 안에서 우리의 영원한 소망이 되십니다. 참 소망이신 주님을 바라보며 마지막 시대를 능히 살아 갈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 합니다. 그러면 왜 예수 안에 참된 소망을 두고 살아가야 할까요? 이런 질문을 마음에 담아두며 오늘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본론)

)왜 예수만 바라봐야 하는가?
히브리서 12:2을 보면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라고 했습니다. 곧 예수 없는 살은 불완전했다는 의미입니다.

이 말씀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이런 예를 생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사람들이 앉아 있는 자세가 매우 다양합니다. 그런데 가운데 가장 나쁜 자세가 앞으로 고개를 숙이고 허리를 구부리 고 앉아 있는 자세 라고 합니다. 이런 자세로 오래 앉아 있으면 척추와 디스크가 혹사를 당해, 긴장성 두통, 어깨근육 통증, 만성피로, 귀울림, 목디스크, 허리디스크, 척추 측만증, 팔어깨 결림, 견비통, 요통 등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그리고 호흡곤란, 식욕부진, 멀미가 일어나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어릴 때 이런 나쁜 자세가 잘 만들어진 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원리를 신앙생활에 대비시켜 보시길 바랍니다.

교회 생활이나 신앙 생활은 처음 시작할 때부터 바르게 해야 합니다. 첫 단추가 잘못되면 다 잘못 어긋나는 것과 같습니다. 출발하는 자세가 중요합니다(이단이나 그릇된 교리들에 빠진 교회들을 멀리해야 합니다).

한국의 매우 유명한 어느 교회의 목사님 경험담입니다. 이분이 호주에 있는 골프 학교에서 강사로 있는 한국사람을 만난 일이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많은 청소년들이 골프학교를 찾아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철저하게 배우고 따르는 아이들은 실력이 일년만 지나면 몰라보게 달라진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럭저럭 이것도 저것도 아닌 멋대로 하는 아이들은 실력도 늘지 않고 공부도 제대로 못해, 3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입니 다. 신앙생활도 같습니다. 이왕 믿는 예수 철저하게 믿읍시다. 시간을 낭비하지 맙시다. 예수님 바라보고 철저하게 훈련 받고 신앙생활을 시작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도록 하는 철저한 훈련이 매우 중요합니다.

예배도 철저하게 드리고! 기도도 철저하게 하고! 봉사도 철저하게 하는!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그럭저럭, 적당히 되는 대로, 형편대로 한 눈 팔기 바쁘고 들쑥날쑥 교회 가고 금수저 은수저 집 아이라고 오냐 오냐하며 대접이나 받으며 지내는 신앙생활은 그저 그런 보통 교인이나 만들지 제대로 된
일꾼은 못 만듭니다.  

)예수 안에 있으면 종종 자신을 바로 확인하게 됩니다.
고린도후서 13:5에서 바울은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로 했습니다. 그 의미는
자신을 늘 돌아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가는 일은 잘 합니다. 그러나 종종 뒤도 잠깐 잠깐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매주 예배를 드리기 전, 한 주간의 삶을 되돌아봅니다. 내 삶이 하나님 보시기에 반듯했는가? 말씀 거울에 비추어 보아 흐트러지진 않았는가? 성령을 근심케 한 것은 없는가? 그런 스스로의 점검이 항상 필요합니다. 12월을 맞이하면서 그런 11개월 간의 신앙생활을 잠시 잠시 정리해야만 하는 것이죠. (중국의 논어에서는 일일삼성 또는 삼성오신을 말한바도 있습니다. 하물며 성도는 어떨까요?). 고로 그 동안 난 뭘 목표를 두고 달려왔나? 금년에 세운 목표를 어느 만큼 이루고 있는가? 계속 이렇게 살면 되겠는가? 하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내 삶 속에 온갖 묵고 쌓인 먼지들이 자리잡고 있지 않은지? 내가 예수를 곧게 바라보고 살아왔는지아니면 세상 재물과 명예와 욕심에 더 휘둘리며 살지는 않았는지.자신을 점검하며 살아야 합니다.

)예수 안에 소망이 있으면 작은 일에도 충성하게 됩니다.
마태복음 25:21을 보면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라고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한 달란트 비유의 핵심 교훈은
작다고 소홀히 하고 얕잡아 보고 가볍게 여겼던 사람이 받은 벌과 심판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일에는 크고 작은 것이 없습니다.

다윗은 어려서부터 작은 일에 충성된 아이였습니다. 그가 양들을 산언덕이나 들판에서 먹이러 다닐 때, 사자나 곰이 양들을 잡아먹으려고 덤비면 물맷돌로 그 맹수들을 좇아내고 그 맹수들이 물고 있는 양들도 그 입에서 구해내었다고 했습니다. 솔직히 양 한두 마리 때문에 그런 목숨을 거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대개의 목자들은 맹수들의 울부짖음 소리 하나만 으로도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양들을 다 버리고 도망을 치거나 숨어버리고 말터인데 말이죠.

 

내가 가진 것이 작다고 무시하고 빈둥거리는 사람은 큰 것을 줘도 마찬가지로 빈둥거립 니다. 그런 사람에 게 큰 것을 주면 다 까먹고 다 망쳐버리고 맙니다. 예수님을 늘 바라보는 성도는 작은 일에도 충성합니다. 그러나 사람들만 바라보는 성도는 사람이 볼 때만 충성합니다. 예수께 소망을 둔 자는 사람들의 눈과 상관없이 예수를 바라보며 늘 충성하게 됩니다.

)충성하는 자들이 받을 축복은?

작은 일에 충성을 다하며, 그렇게 일하고 섬기는 사람들을 로마서 8:28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주시는 은혜와 축복이 어떤 것인가를 두가지로 설명해 줍니다.

1.
선을 이룹니다.
"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했습니다. 미국 뉴욕에 사는 한국인들의 밀집 거주지역은
퀸즈플러싱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상권이 점점 중국사람들에 의해 점령당하고 있답니다. 중국인들은 500만불짜리 건물이 나왔다고 하면 100명이 5만불씩을 내서, 그것들을 모아 그 빌딩을 사 버린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빌딩을 살려고 집을 팔아버려 집 없어지면, 사람들은 그 새로 산 빌딩 안에서 춥고 불편해도 새우잠을 자며 견딘다고 합니다. 그들은 힘을 합해 건물을 점령하고 상가를 점령해 버린다고 합니다. ? 부자되려는 소망이 그런 힘을 내게 한다는 거예요. 합력하는 것이 무서운 것입니다. 합력하면 큰 일을 해냅니다. 그런데 한국사람들은 그게 잘 안 된다고 합니다. ㅠㅠ. 그러다 보니 하나 둘 그런 곳에서 밀려나고 있다고 해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예수님을 영원한 소망으로 모신 사람들은 예수 안에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혹은 축복)이 되게 해 주십니다. 나쁜 것도 좋게 만들어 주시고 실패도 성공이 되게 해주시고 포기한 것도 새로운 도약의 발판이 되게 해 주십니다.

2.
영광스럽게 하십니다.
30
절을 보면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정하시고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시고 …' 이 네 가지는 하나님의 구원 섭리의 절차이며 과정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그 자녀들이 얼마나 좋고 사랑스러웠으면 미리 구원하기로 정하셨겠습니 까? 그리고 그들을(죄인된 우리를) 부르시고, 죄를 사하사,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셔서, 하나님의 이 땅에서와 하늘나라에서의 영광에 동참케 하여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를 사랑하시고 보호하시는 우리 주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를 떠나 누구를 따라갈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믿고 의지하고 따라 갈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둡고 침울합니다.
과학이 발전하고 의학이 발전하고 문화가 발전해도 사람들은 그만큼 행복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소망을 외치지만 불행한 일들의 소식은 여전히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그러나 세상이 어둡고 캄캄하다 해서 소망이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잠시 구름이 태양을 가리고 있다 해서, 찬란한 태양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비행기가 소낙비 내리는 땅을 박차고 올라 구름을 통과하여 오르면
…… 거기엔 눈 부시게 찬란한 태양이 존재하는 것이죠. 바로 이것이 우리의 소망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결론)

우리의 남은 믿음의 삶이 언제나 변함이 없이 우리를 위해 중보 기도하시고 성령을 보내셔서 도우사 온갖 은혜를 베푸시는 예수님께 있어야 합니다. 세상 일에 실패했다고 금새 좌절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일의 참된 소망이신 예수를 바라보고 살면 승리하게 됩니다.

 

네발로 가는 짐승들은 대개가 땅을 바라보며 살도록 신체구조가 되어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얼마든지 하늘을 바라보며 살 수 있도록 신체 구조가 창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어는 인간을 「안쓰로포스」(
ανθρωπος) 라고 했답니다. 위를 바라보는 존재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인간을 희망적 존재라고도 합니다. 모든 인생들은 내일에 소망을 걸고 영원에 소망을 걸고 하늘에 소망을 걸 가능성과 권리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이미 우리 안엔 천국이 있습니다. 예수 안에서 천국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뭐가 부럽습니까? 왕궁이 부럽습니까? 대통령이 부럽습니까? 오히려 세상엔 지옥간 대통령들이나 왕들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성도된 우리는 예수님께 소망을 걸고 살수 있는 특권을 받았습니다. 이 놀라운 특권에 참으로 기뻐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외양간에 소나 양이 없어도 무화과 나무에 열매가 없어도 예수 안에 있는 저와 여러분에겐 언제나 영원한 소망이 있습니다. 이것을 기뻐하 셔야 합니다. 이것을 늘 기억하셔야 합니다. 이것을 늘 자랑하셔야 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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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익선 목사/ 참조:
박종순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