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민수기 25장 강해(바알브올과 관련한 이스라엘과 심판)

호걸영웅 2023. 12. 18. 08:38

민수기 25장 강해(바알브올과 관련한 이스라엘과 심판)

 

서론)

25장은 요단강을 건너기 직전, 여리고 맞은 편에 있던 싯딤(아카시아 나무가 많은?) 골짜기에 머물러 있던 상황에서 일어난 우상을 믿는 모압의 여인들과 동침하였거나 또 함께 우상 제사에 연관된 이스라엘의 일부 백성들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과 그 결과, 그리고 비느하스의 결단적이고 의로운 행동 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본론)

)바알브올과 접한 이스라엘

(1) 이스라엘이 싯딤 광야에 있었습니다. 싯딤은 (33:49) 요단 강 동쪽 11Km 지점으로, 이스라엘이 가나안 정복을 위한 요단 강을 건너기 바로 전에 있었던 지역으로, (2:1) 여호수아가 2명의 정탐꾼을 여리고로 보낸 곳이기도 합니다. 그 싯딤에 있을 때,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했고", (3)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게 가담" 했다 합니다.

바알브올 (Baal of Peor, 베일 오브 피오르)= 브올의 바알 즉 브올산과 관련된 바알신 (가나안의 우상)입니다. 성적으로 문란했던 모압 여인들의 유혹에 넘어간 이스라엘 남자들 은 더 나아가 모압 여인들이 행하는 바알 우상 숭배에 참여했고, 이에 하나님은 진노하십 니다. 그들은 십계명의 제일 첫 번째인 (20:3)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는 계명을 어긴 결과가 됩니다.

(3)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게 가담한지라"에서 영어성경을 보면 "가담한지라"= "Yoked themselves to".  즉 멍에를 함께 지다-라는 표현입니다.

이스라엘과 시므리가 이방인의 행위에 가담한 것은 그들과 멍에를 함께 진 것입니다. 같은 표현이 고린도후서 6:14에도 나옵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라고 했습니다.

전도를 위해 우리는 믿지 않는 이들과 세상에서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의가 불법과 같이할 수 없듯, 빛에게 어둠이 사귐의 대상이 아니듯 우리에게 세상은 사귐의 대상은 결코 아닙니다. 오늘날 성적 문란 뿐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추구하는 것들, 즉 돈, 명예, 직장이나 학교에서 성취, 안정된 삶, 외모, 건강, 그리고 자녀의 "세상적" 성공들이 다 우상이 될 수 있음을 주의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면 다른 필요를 다 채워 주신다고 하셨는데, 우리가 그 필요를 위하여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나중 구한다면 우선 순위가 바뀐 죄악이라고 인정할 수 밖엔 없습니다.

하나님의 진노하심의 수위는 그분의 심판에서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4) 수령들을 잡아 태양을 향하여 여호와 앞에 목매어 달라

음행하고 우상에 절한 리더들을 잡아 죽이는 것뿐 아니라, 대낮에 목매어 달므로 백성들이 보고 심히 두려워하게 하셨습니다.

또 염병으로 치심으로써 염병으로 24,000명이 죽었습니다. 24,000명이라는 숫자는? 참고로 (14:49) 고라의 반역으로 14,700명이 죽은 것과 비교하여 10,000명 가까이 많은 것을 볼때, 하나님의 매우 큰 진노를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무시무시한 상황에 시므리가 이야기에 등장합니다.

(6) 회중이 울며 슬퍼하고 있는데, 한 남자가 미디안 여자를 데리고 당당하게 진영으로 들어옵니다. 그 남자는 (14) 이스라엘 12지파 중에 하나인 시므온 지파의 지도자인 시므리입니다. 음행과 우상 숭배로 하나님의 진노 하시고 백성 사이에 염병이 돌고 있는 상황에서, 시므리는 이스라엘 진영에서 미디안 여인과 연애를 합니다. 그는 이스라엘 한 지파의 지도자로 백성의 지도자 계급입니다. 하나님의 목전에서, 그것도 백성이 보고 있는데, 지도자가 하나님을 완전히 무시하는 행동을 하였습니다. 시므리의 이런 대담 무식?한 행동은 마치 하나님이 없다고 세상에 떠들고 다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비느하스의 질투

이 상상할 수 없는 장면을 보고, (8) 제사장 비느하스가 그들을 따라가 창으로 찔러 두 사람을 잔인하게 한자리에서 죽입니다. 그로 염병이 그치고 하나님께서 노여움을 푸시는데, 그 이유를 (11) 비느하스가 내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he was as zealous for my honor) 제사장 비느하스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질투했다고 하십니다.

여기서 시므리의 행동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가증했는지와 그것과 비교하여 비느하스의 행동이 하나님의 심정을 시원케 하였는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시므리는 바알브올에 가담하고 이방인과 멍에를 함께 진 결과 자신이 창에 찔려 죽는 처참한 최후 뿐 아니라, 잘못된 행동을 한 지도력의 결과로서 시므온 지파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고로 첫 번 인구 조사에서 시므온 지파는 59,300명이었는데, 다음 2차 인구 조사에서는 22,200명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시므온 지파의 인구가 거의 1/3로 줄어 버렸던 것입니 다. 시므리는 미색에 이끌리어 바알브올에 가담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한편, 11절에서, 하나님께서 질투하신다는 표현은, 십계명의 첫째와 두 번째, 다른 신과 우상에 대한 경고 바로 후, ( 20: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 까닭이라" 했습니다.

NIV Study 성경의 해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하시기에 그 백성도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기를 원하셨는데, 우상을 섬긴다는 것은 마치 배우자가 다른 사람과 바람을 피우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습니다.

(11) '질투'라는 단어가 3번 쓰였는데 영어 성경에는 'zealous' 'zeal' 두 단어가 쓰이고 있습니다. 'Zeal' 영어의 같은 단어가 쓰인 구절이 생각나는데, 유대 종교 지도자들 때문에 타락한 성전을 청소하시는 예수님을 보며, ( 2:17)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했습니다. 여기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 '사모하는 열심' 'Zeal'로 쓰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원수를 사랑해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적 죄는 분별하고 증오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성품과 동시에 죄를 미워하시는 거룩과 공의의 성품을 이해하며, 우리를 유혹하는 성적 문란이나 우상숭배에 단호히 "No" 해야 하겠습니다.

비느하스에게는 하나님을 사모하는 열심, 질투가 있었고 그 질투에 즉 하나님을 사랑하는 열심으로 시므리를 죽이고, 축복을 받고,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은 목숨을 구했습니다. 하나님은, (11) 내 질투심으로 그들을 소멸하지 않게 하였도다 하시며, 비느하스의 행동이 이스라엘 백성의 목숨을 구했다 하셨고, (13)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제사장 직분의 언약으 로 축복하십니다.

(12) 내 평화의 언약 (my covenant of peace with him) 비느하스와 함께하신다고 하셨는데, 참고로, 비느하스에게 하신 이 언약은 구약의 노아와의 언약 (9:8-17), 아브라함 2 (15:9-21, 17), 시내산 언약 (19-24), 다윗과의 언약,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한 새 언약 (31:31-34)과 함께 구약의 주요 언약 중의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고 합니다.

(17, 18) 성적 문란과 바알을 섬기게 이스라엘을 유혹한 미디안을 하나님께서 전쟁을 통해 심판하신다 하시며 오늘 본문을 맺고 있습니다.

결론)

모압의 바알브올과 사귀었거나 용납한 이스라엘 배성들과 시므리는 비참한 심판을 받고야 맙니다. 세상을 쫓아 살며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그들은 자기들뿐 아니라 자기 지파의 친족들까지 심판을 받는 참으로 심각하고 비참한 결과를 불러왔습니다.

반면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질투심으로 그들을 심판함으로써 놀라운 축복받았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 자신들뿐 아니라, 우리 가정과 사회를 위한 저와 여러분의 선택은 무엇이어야 할까요?

 

112323 안익선 목사/참조: Good4Joy.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