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4장 강해(안식일에 병 고치심과 제자의 대가와 처세)
서론)
누가복음 14장에는 다섯 가지 이야기가 나옵니다. 다섯 가지 이야기는 두 장소에서 일어난 사건과 교훈들입니다. 누가복음 14:1-24절은 예수님께서 바리새인 지도자의 집에서 수종병 환자를 치유하신 사건과 거기 있는 바리새인과 율법 학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누가복음 14:25-35절은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의 집을 나와서 길을 가시면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하신 설교입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이었습니다. 그 길에 예수님을 따르는 여제자들을 포함, 많은 제자와 무리가 동행했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가시는 길에 ‘맛을 잃은 소금 비유’를 곁들여 ‘제자가 되는 길’, ‘제자도’에 관해 말씀하셨습니다. 14장의 주요 주제는 역시 안식일 논쟁 부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눅 14장은 총 5단락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1~6;수종병환자의 치유, 2)7~14; 낮은 자리에 앉으라, 3)15~24; 큰 잔치의 비유, 4)25~33;제자가 되는 길 , 5)34,35;맛을 잃은 소금의 비유 등 입니다.
본론)
가)1-24절; 어떤 바리새인 지도자의 집에서 벌어진 이야기입니다.
예수께 친근감을 가진 어떤 바리새인 지도자가 예수님을 자신의 집에 초대했습니다. 바리새인과 예수님은 편하게 만나서 밥을 먹을 사이는 아니었습니다. 언뜻보면, 상당히 불편한 사이인데, 바리새인 지도자가 예수님을 자신의 집에 초대했습니다. 왜 초대했을까요? 누가복음 14:1,2절에 그 이유가 나옵니다.
“1)안식일에 예수께서 한 바리새인 지도자의 집에 떡 잡수시러 들어가시니 그들이 엿보고 있더라 2)주의 앞에 수종병 든 한 사람이 있는지라”고 했죠.
예수님을 초대한 바리새인은 당시 ‘바리새인의 지도자’는, 산헤드린 공회 회원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 자리에 바리새인들과 율법 교사들도 참석한 것으로 보아 바리새인 지도자는 꽤 영향력 있는 사람 같습니다.
그때 수종병(水腫病,- dropsy, edema, 부종/몸의 조직 격벽이나 몸속의 빈 곳(복강)에 림프액·장액(漿液, 혹은 체액) 따위가 괴어 몸이 붓는 병, 복부에 물이 차서 심장, 신장, 간 등을 압박하고 몸이 붓는 병)든 환자가 있었습니다.
‘수종병(dropsy)’은 다른 말로 ‘부종(浮腫, Edema)’이라고도 합니다. 몸 안에 복수가 차면서 몸이 붓고 만성화되면 살이 썩어가는 병인데 그 당시에는 ‘불치병’이었습니다. 수종병(水腫病) 환자는 끝없는 갈증에 시달리는데, 물을 마시면 갈증이 더 심해집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첫 번째 중요한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누가복음 14:3,4a절=
“3)예수께서 율법 교사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물으셨죠.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이 옳으냐? 옳지 않으냐?” 4)그들은 잠잠하였다...”고 합니다.
당연히 율법 교사들과 바리새인은 안식일에 병을 고치면 안 된다고 말해야 합니다. 병 고치는 것도 ‘일’이기 때문에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일을 해선 안 됩니다. 물론, 위급 상황에는 안식일에도 사람을 살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수종병은 위급한 병은 아니라고 보았기 때문이죠. 하지만, 바리새인들과 율법 교사들은 예수님의 질문에 잠잠했습니다. 그들은 혼란스러워졌습니다.
혹자는 안식일에 병 고치는 예수님을 ‘율법 파괴자’로 몰아서 제거할 구실을 만들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 율법 교사들 앞에서 수종병 환자를 고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 율법 교사들에게 두 번째 중요한 질문을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4:5,6절=“5)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가운데서 누가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지면 안식일에라도 당장 끌어내지 않겠느냐?” 6)그들은 이 말씀에 대답할 수 없었다.”했어요. (누가복음 14:5,6)
안식일이라고 우물에 빠진 아들을 건지지 않고 그냥 죽게 내버려둘 부모가 어디 있습니까? 아들이 아니라 소가 우물에 빠져도, 당장 건져내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의 질문에, 왜 바리새인들과 율법 교사들은 침묵했을까요? 그들은 자기들의 무리 중에서 체면이 깍이거나 약점이나 꼬투리를 잡힐까봐 두려워 했습니다. 아마도 당시 율법주의자들도 안식일에 우물에 빠진 사람이나 짐승은 건져 내는 것이 상례였지 않았나 추측이 됩니다.
나)7~14; 낮은 자리에 앉으라시는 교훈
7.청함을 받은 사람들이 높은 자리 택함을 보시고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8.네가 누구에게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에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보다 더 높은 사람이 청함을 받은 경우에 9.너와 그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이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라 하리니 그 때에 네가 부끄러워 끝자리로 가게 되리라 10.청함을 받았을 때에 차라리 가서 끝자리에 앉으라 그러면 너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벗이여 올라 앉으라 하리니 그 때에야 함께 앉은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이 있으리라 |
11.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
12.또 자기를 청한 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점심이나 저녁이나 베풀거든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청하지 말라 두렵건대 그 사람들이 너를 도로 청하여 네게 갚음이 될까 하노라
13.잔치를 베풀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청하라
14.그리하면 그들이 갚을 것이 없으므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라 하시더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결혼식에 초대받을 때, 높은 자리(윗자리)에 앉지 말고 맨 끝자리에 앉으라고 하십니다. 결혼식에 초대받은 사람 중에 나보다 더 높은 사람이 오면 내가 차지한 자리는 그 사람의 몫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얼마나 번거롭고 어색하겠습니까?
그런 창피당하지 말고, 아예 처음부터 맨 끝자리에 앉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너를 초청한 사람이 와서 너에게 윗자리(높은 자리)에 올라앉으라고 할 수 있다 -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그는 모든 사람 앞에서 인정을 받고 영광도 받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결론적으로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면 낮아질 것이요, 자기를 낮추면 높아질 것이다!”라고 하십니다.겸손은 존귀의 앞잡이입니다.
예수님은 높고 아름다운 자리에서 낮고 천한 자리를 선택하셨습니다. 천국의 주인이 연약하고 부족한 인간과 종이 되셨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오른 편에 앉으시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빌립보서 2:6-11절 새번역은=“6)그는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으나,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7)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 그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8)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9)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지극히 높이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에게 주셨습니다. 10)그리하여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 있는 모든 것들이 예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고, 11)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고백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다) 15~24; 큰 혼인 잔치의 비유
여기서 큰 혼인 잔치는 예수님의 복음 말씀의 잔치, 구원의 잔치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온갖 이유와 변명을 들이대며 그런 잔치에 참예하지 않습니다. 그럼 구원받지 못하는 일이 누구의 책임입니까? 거절한 자들의 책임입니다. 결국 심판을 자초하게 된 것입니다.
라) 25~33; 제자가 되는 길
25.수많은 무리가 함께 갈새 예수께서 돌이키사 이르시되 |
26.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덜 사랑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27.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자기 유익을 포기하고서라도)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28.너희 중의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계산하지 아니하겠느냐 29.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30. 이르되 이 사람이 공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고 하십니다. |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하고 영광을 얻으려면 고난도 함께 해야 함을 말씀해 주십니다. 그런 각오나 예상도 없이 이익이나 영광만을 바라본다면 어리석기 한이 없는 바보같은 짓이 된다는 의미의 말씀입니다.
5)34,35; 맛을 잃은 소금의 비유
14자의 마지막 부분은 ‘맛 잃은 소금의 비유’입니다. 물론 소금이 맛을 잃는 경우는 천재지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어려운 경우일 것입니다. 그래서 만일…에 라고 하신 것입니다.
34.소금이 좋은 것이나 소금도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35.땅에도, 거름에도 쓸 데 없어 내버리느니라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시니라-고 하십니다.
소금은 짜야 소금답고 제자는 지혜롭고 대가를 기꺼이 치루려는 각오와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소금이 녹아 맛을 내듯, 나 자신을 희생시켜 세상에 빛을 내고 맛을 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믿음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참된 제자의 믿음과 모습입니다.
결론)
바리새인과 예수님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지켜보고(엿보고), 꼬투리를 잡아서 곤경에 빠뜨리려고 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겉은 깨끗했지만 속은 더러웠습니다. 바리새인은 하나님만 섬기고, 사회적 약자를 돌보지 않았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높은 자리를 좋아했습니다. 그들은 자기 자랑, 자기만족, 교만과 아집에 사로잡혀 살았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사람을 사랑의 눈으로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 법을 어기다는 오해를 받았지만 드렴없이 곤경에 빠진 사람을 도왔습니다. 예수님은 겉과 속이 다른 바리새인들과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만 행하지 않고, 사람의 마음도 헤아렸습니다. 바리새인과 예수님의 차이는 균형입니다. 예수님은 신앙(하나님 사랑)과 생활(이웃 사랑)에 균형을 이루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를 닮아야 되겠습니까?
010223 안익선 목사 / 참조: walking with the bi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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