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누가복음 17장(우리 가운데 있는 하나님 나라)

호걸영웅 2024. 2. 23. 10:57

누가복음 17(우리 가운데 있는 하나님 나라)

 

서론)

17장은 크게 3단락으로 나눌 수 있겠습니다.

1)1-10: 죄 짓게 하는 일, 2) 11-19: 구원의 의미, 3)20-37: 하나님 나라에 대한 교훈들-입니다.

 

본론)

1)1. 1-10: 죄 짓게 하는 일의 재앙

예수께서는 누군가를 시험에 빠지도록 잘못 인도하는 것은 매우 크고 끔찍한  죄임을 제자 들에게 강조해 교훈하고 계십니다. 대표적 인물들이 율법주의에 빠진 바리새인들과 서기관 들일 수 있습니다.

“걸려 넘어지게 하는 일”(1)은 죄 짓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죄악되고 무지한 세상에서 그런 일이 “생기지 않을 수는”(1) 없습니다. 인간의 죄성 때문입니다. 세상은 서로 죄 짓고 서로 넘어지게 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죄 짓게 하는 일이 용서되는 것은 아닙니다. 전도서에서도 악인의 꼬임에 넘어가지 말라고 수차례 강조하여 교훈하였습니다. 믿는 사람은 늘 깨어 있어서 다른 사람을 죄짓게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이 작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2)는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기 도 하고 아물러 사회적인 약자들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당시에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사람 들은 대부분 당시 사회 기준으로 힘없고 연약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잘못 인도하여 죄를 짓거나 죄에서 머물게 한다면, 그것은 차라리 “큰 연자 맷돌을 매달고 바다에 빠지는 것이 나을 것”(2)이라 했습니다. 참된 하나님의 제자나 지도자는  다른 사람을 죄 짓게 하지 않도록 잘 인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3). 죄 지은 사람을 회개 하게 하고 변화시키려면 먼저 진리를 알고 그 진리로 행하고 항상 힘쓰고, 또 가르치는 영적 인 능력이 있어야만 합니다(4).

그 말씀을 듣고 사도들은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5)라고 청원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6)만 있어도 그리 된다고 답하십니다. 예수님께 대한 바른 믿음이 있다면, 그 믿음이 부족하다고 움츠러 들지 말고 이미 가진 그 작은 믿음이라도 활용하면 된다고 하십니다. 그러면 그 믿음이 힘을 발휘할 것이고, 그 결과 믿음은 더욱 자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또 다른 짧은 비유로써 일 맡은 사람의 태도에 대해 말씀하십니다(7-10). 종이 하루 종일 바깥에서 일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주인에게 밥상을 차려 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집에 돌아와서라도 주인의 식탁을 차리고 다 먹기까지 기다립 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종이 주인에게 잘 했다고 자랑할 수 없습니다. 마땅히 할 일을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으로써 예수님은 당시 종들의 의무에 대해 언급해 주십니다. 종은 아무리 대단한 일을 했다고 해도 하나님 앞에서 자기 공로를 내세울 수는 없었습니다. 제자들이나 청지기들의 자세도 마찬가지여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종과 청지기로써 주인이 주신 권한과 능력과 도구와 시간을 통해 일을 한 것이기에 자랑하거나 교만해질 수 없는 것이죠.  고로 주님의 제자들이나 성도들은 늘 겸손해야만 합니다.

)11-19: 구원의 의미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와 갈릴리의 경계에 있는 마을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11). 사마리아 사람들과 갈릴리 사람들은 서로 좋지 않은 사이였기에 붙어 살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경계 지역에는 사람들이 살지 않았고 그곳에 나병 환자들을 위한 격리 지대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지역을 일부러 피하지 않으셨고, 예수님의 소식 을 들은 나병 환자인 열 사람이 찾아 옵니다(12). 그들은 “멀찍이 멈추어 서서”(13) 예수님께 자신들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청합니다. 예수께서는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14)고 말씀하십니다. 율법( 13-14)에 의하면, 나병 환자가 치유되 면 제사장에게 가서 완치 판정을 받아야만 가족에게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제 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라는 말씀은 나병이 치유 된 여부를 검증을 받으라는 뜻입니다.

나병 환자들은 그 말씀을 듣고 제사장들을 만나러 갑니다. 아직 몸에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 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았기에 믿음으로 제사장들을 찾아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는 동안에 그들의 몸은 모두 온전하게 회복되었습니다 (14). 앞부분에서 예수님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만 있어도 된다고 말씀하셨는데(6) 그 말씀대로 그들의 작은 믿음이 실천을 통해 극적으로 열매를 맺은 것입니다. 그들은 치유를 확인하는 순간, 너무 기뻐서 마구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중 한 사람은 돌아와서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15) 예수님께로 달려왔습니다. 그는 유대인들이 이방인 취급하며 무시했던 앗수르인과의 혼혈인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치유가 일어난 것을 확인하는 순간, 제사 장보다는 그 은혜를 주신 예수님께 먼저 감사를 드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아홉 사람도 그런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겠지만…… 예수님보다는 가족이 더 앞섰을 것입니 다. 예수님은 그 사람을 칭찬해 주시면서 “일어나서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 다”(19)고 말씀하십니다. 진정한 구원은 나병을 치유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예수님 앞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다른 아홉 사람은 어떤지 모르지만 그 사마리아 사람만큼은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온 사람 ’임이 분명했습니다.

)20-37: 하나님 나라에 대해

예수님은 종종 하나님 나라에 대해 가르치셨습니다. 그것이 어떤 바리새파 사람에게 의문을 일으켰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와서 “하나님 나라가 어디로 오느냐”(20)고 여쭙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는 3차원 공간이 아니어서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답하십니다(20).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 말할만한 것도 아닙니다 (21).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는 분이므 로 온 우주가 모두 하나님 나라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가장 내밀한 곳에도 계십니다. “너희 가운데”(21)는 “너희 안에”라고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 존재 안과 밖이 모두 하나님의 다스림 안에 있을 때,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 사실을 알아 인정하고 그분께 맡기고 살아가느냐에 있습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다시 제자들에게 고개를 돌려 마지막 날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인자의 날”(22 )은 다니엘 7 13절에 예언된 마지막 날을 의미합니다. 제자들이 살아 생전에 인자의 날이 오지 않을 것이니 어떤 말에도 속지 말라고 하십니다(22-23). 인자가 오는 것은 “하늘 이 끝에서 번쩍하여 하늘 저 끝까지 비치는 것처럼”(24) 온 우주적인 사건이 될 것이라 하십니다. 하지만 그 일이 있기 이전에 그는 “많은 고난을 겪어야”(25) 한다고 하십니다.

또한 노아 시대에 심판이 갑자기 임했듯 그리고 롯 시대에 소돔에 심판이 임했듯 에수께서(인자가) 재림하는 것도 그렇게 갑작스러운 일이 될 것이라 하십니다(26-29). 그 날이 임할 때면 달리 차근차근 어떤 대책을 세울 겨를이 없을 것이라 하십니다(30-32). 그 날은 같은 자리에 있던 두 사람의 운명이 영원히 갈리는 날이기도 합니다(34-35). 그러니 늘 깨어 있어야 하고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듣고 제자들이 “주님, 어디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겠습니까?(37) 라고 여쭙니다. 그들은 아직도 하나님 나라를 3차원 공간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주검이 있는 곳에는 또한 독수리가 모여들 것이다”(37)라는 속담으로 답하십니다. 어느 한 곳에서 일어날 일이 아니라, 심판 날의 재난과 사람이 있는 곳이면 그 어느 곳에서나 일어날 일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해석하기 좀 어려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고로 매튜 헨리(17세기 영국의 주석가, 신학자, 장로교회 목사) 주석을 통해 잠시 더 연구해 보길 원합니다.

(매튜 헨리 주석; 신약, 누가복음 17, 8항 부분=그래서 그들은 다른 질문을 했다. "주여 어디오니이까? 안전한 곳으로 데려갈 그곳이 어디오니까? 또 남아있는 자들이 멸망해 버릴 곳은 어디오니까?" 그 대답은 암시적인 것으로써 이렇게도 해석할 수 있고 저렇게도 해석할 수 있는 것이었다.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이느니라."

(1) 멸망당하도록 정해진 악한 자들이 있는 곳은 어디나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이는 마치 송장이 있는 곳에는 새들이 그 냄새를 맡고 몰려와서 그것을 먹이로 삼는 것과 같다. 유대인들이 그들 자신이 죽어서 썩은 송장이 되어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하여 가증스럽고 하나님의 의에 대하여 밉살스럽게 되어, 이러한 불()신앙의 세대가 있는 곳에는 어디나 하나님의 심판이 밀어닥치기를 마치 독수리들이 먹이를 찾아 모여듬 같이 할 것이다. "네 손이 네 모든 원수를 발견함이여"( 21:8). "별 사이에 깃들일지라도 내가 거기서 너를 끌어내리리라"( :4). 로마 군대들은 유대인들이 숨어 있는 곳과 요새를 뒤지며 사냥하여 그 재난을 피할 자가 하나도 없을 것이다.

(2) 반면 보존되기로 정해진 신앙인들은 그리스도의 즐거움 속에서 행복을 누리게 된다. 유대인들의 교회의 해산이 도처에서 일어났던 것처럼 그리스도 교회가 도처에 설립될 것이다. 그리스도가 계신 곳에는 믿는 자들이 몰려들어 그를 만나게 되리니 독수리들이 먹이를 둘러싸고 모여듬같이 모여들터인데 그 먹이가 있는 방향을 보여 주는 것도 아니지 만 새로운 본능적인 성질에 따라서 모여든다. 그렇게 되면 그리스도는 그의 복음, 그의 조례, 그의 교회에 계시게 된다. 왜냐하면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고 하였기 때문이며, 저쪽에서는 저쪽대로 주님께로 모여들 것이다. 메시야의 나라는 유대인 교회에 있어서의 예루살렘 곧 모든 유대인들이 모여든 곳과 같은 어떠한 곳이든지 교회가 있고 복음이 전해지며 성례가 집행되고 경건한 신자들이 모이는 곳이면 그곳에 그리스도가 계시고, 그를 믿음으로 그와 함께 즐길 수 있다. 어느 곳에서나 그리스 도께서 당신의 이름을 등기하는 곳, 곧 당신의 있을 곳으로 인정하는 곳이면, 당신을 믿는 자들을 만나 주시고 복 빌어 주신다( 4:21 ; 딤전 2:8). 훌륭한 해석자들의 대부분은 영광의 나라에서 성도의 무리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만날 것을 알고 있다. "시체(주님의)가 어디 있으리라는 것을 묻지 말아라. 그리고 그들이 (믿는 자들) 어떻게 그것을 찾을 수 있느냐고 묻지 말라. 그들은 확실한 방향에 있을 것이며, 그들의 삶이 그리스도께 달려 있고 주님은 소생시키시는 주권자이시며, 믿는 자들의 중심이 되시고, 또 믿는 자들은 다 그(주님)에게로 모일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결론)

1. 교회의 지도자들이 이단으로 빠지는 일은 일반 성도들이 그리 되는 일과는 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지도자 한 사람이 잘 못하면 수 명에서 수십만, 아니 수억 명도 잘못된 길로 갈 수도 있습니다(히틀러, 무솔리니, 천황, 모택동, 김일성, 문선명, 박태선 장로, 몰몬교 교주 조셉 스미스등등). 고로 참된 지도자는 하나님의 바른 진리에 굳게 서서 사랑과 은혜로 사람들의 무리를 인도하여야 합니다.

2. 또한 우리는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끝 날이 될수록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고 불만과 불평이 앞선 세상이 되어 갑니다.

3. 인자의 날은 심판의 날입니다. 심판의 날은 갑자기 오며, 죄가 만연한 세상에 옵니다. 그리고 어디든, 누구에게나 옵니다. 문제는 언제 어디서인가 아니고, 언제 어디든 상관없이 내가 그 심판을 맞을 준비가 잘 되었느냐? 입니다.  

 

   021324 안익선 목사 / 매튜 헨리 & Godma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