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

창세기 17장 강해(언약의 표징과 할례)

호걸영웅 2024. 10. 20. 01:48

창세기 17장 강해(언약의 표징과 할례)

서론)

지난 주에 우리가 공부한 창세기 16장과 오늘 본문인 17장 사이에는 13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의 간격, 차이가 있음을 인지하고 오늘 말씀을 나눠야 합니다. 13년의 세월은 많은 것들을 변하게 했는데,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외적인 변화는 아브라함이 이제 곧 100세를 눈앞에 두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더 이상 아이를 갖기에는 더욱 불가능한 나이가 되었음을 나타내 줍니다.


또한 아브라함이 당시 86세 때, 여종 하갈을 통해 얻은 이스마엘이, 우리로 따지면, 어느덧 중학교에 입학할 정도의 청소년으로 성장 한 사실입니다. 어딘가 자신들의 모습을 닮은 이스마엘이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부부는 행복해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삶의 모든 부분이 13년 전에 비해 안정되었고, 복의 근원이란 별명답게 아브라함이 하는 일들은. 순조롭게 잘 진행되어 가는 듯 보였습니다.

반면에, 내적인 변화 역시 분명히 있었을 것인데.. 왜냐면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13년이라는 시간은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은 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우선 13년간 공식적으로 하나님과의 교제가 특별히 언급된바 없고, 과거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약속해 주신 언약의 말씀이 과연 잘 진행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과 불안이 문득문득 그를 감쌌을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친히 하늘의 별을 보여주시며 ‘너의 자손이 저 별처럼 많아질 것이다’라는 말씀은, 어떻게 보면 조금은 의아하게 받아드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이제 그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아무 의심 없이 믿음으로 받아드렸던 자신의 옛모습은 어디론가 희미해져 버리고, 이제는 현실에 마음을 쏟아가며 무뎌지는 신앙적 타성에 젖을 수도 있는 때였습니다.


본론)

)13년만에 나타나신 전능하신 하나님(1~2)

그러던 아브라함에게 어느 날 문득, 그것도 13년 만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모습을 보여주시며 던지신 첫 말씀이 바로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였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13년 만에 아브라함 앞에 나타나셔서 말씀을 건네시는데, 왜 하필 하나님을 나타내는 수많은 표현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당신의 전능성을 강조 하셨는지에 대해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크게 둘로 생각해 볼 수 있는데, 1)하나는 지난 13년간 아브라함이 가지고 있었던 하나님에 대한 기억들 중에, 특별히 하나님의 전능성에 대한 기억과 믿음이 점점 더 사라져 가고 있었다는 것을 반증해 주고 있다 볼 수 있고, 2)더불어 앞으로 하나님께서 전개해 나가실 계획 가운데 이 부분을 재정립하지 않으면 안 되는 분명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다음과 같은 요구를 하십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하셨는데.

여기에서 ‘행하여’로 사용된 ‘히트할레크’라는 단어는 ‘걷다’의 의미가 있는 ‘할라크’의 재귀형으로 ‘자기 스스로 걷는 것’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또한 ‘완전하다’는 의미의 ‘타밈’은 레위기 22 17절에서 25절까지의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제물에 관해 말씀하실 때, 흠이 없는 제물을 표현하시면서 사용된 단어로서, 새로운 시조라고 할 수 있는 노아에 대해 그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 6:9)라고 묘사를 하는데도 동일하게 사용된 단어라고 합니다.

 

고로 여기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흠이 없이 너 스스로 걸으라’고 하시는 것이니, 그것은 바로 ‘레파네이’, 나의 얼굴을 향하여, 즉 하나님을 향해서 걸으라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 앞에서 걸으라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매일마다 수 없이 많은 선택을 하며 삽니다. 선택을 다른 말로 하면 길을 정하여 걸어가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의 길을 걸을 것인가? 아니면 세상의 길을 걸을 것인가? 하나님의 말씀의 길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사람의 말을 따를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브라함 앞에 13년 만에 나타나신 하나님께서 던지신 메시지이자 그분의 뜻입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께서는 이어지는 2절 이하의 본문을 통해, 아브라함과 몸소 언약을 세우시고 아브라함이 여러 민족의 조상이 될 것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또한 그 언약은 일시적인 것이 아닌 영원히 대대로 이어지는 언약임을 말씀해 주시면서 가나안 땅의 영원한 소유까지도 인정을 해 주셨습니다. 심지어는,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아내인 사래를 사라로 이름까지 바꾸어 주시면서 독려를 하시고 결국에는 언약을 잘 지켜 나갈 것을, 즉 자손 대대로 지켜 나갈 것을 명하셨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하나님의 본 계획을 표명하시면서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는 것을 예고해 주십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자신의 지내 온 13년간의 신앙생활이 어떠했는지를 단적으로 들어내 주는 말과 행동을 합니다. (본문 17-18절 참조)

)보다 구체적인 언약을 행하신 하나님(3~22)

3절부터 보면, 아브람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하고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아뢰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합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아브라함은 얼굴을 땅에 대었지만 ‘나이 100살 된 남자와 90세 된 여자가 어떻게 아이를 낳겠느냐’고 혼잣말을 하며 허탈하게 웃었습니다. 그러면서 현재의 아들인 이스마엘이나 복을 달라고 하나님께 간청을 드립니다. 그러자 본문 19절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단호히 아브라함의 생각이 틀렸음을 밝혀주시고 당신의 계획을 드러내 주셨습니다. 19절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웃음)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고 하십니다.
드디어 놀라운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가 수면위에 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그 계보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거쳐 수많은 구약의 언약의 백성들을 통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그 계보는 지금도 살아 숨 쉬며 지금 이 시간에도 전 세계를 누비며 생명을 살리는 일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사람의 생각과 하나님의 계획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아브람은 믿음이 없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누구보다도 믿음이 있었던 사람입니다. 창세기 1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12:1)는 명령을 하시자 그는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갔다( 12:4) 라고 할 만큼 바로 순종하는, 믿음의 조상이 될 만한 자격을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피조물인 인간이 어찌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계획을 다 알 수 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과거에 내가 하나님의 뜻을 잘 알아들었건 잘못 알아들었건 상관없이, 주께서 지금 현재형으로 하신 말씀에 현재형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할례에 대한 명령을 받아 실천하게 됩니다.

 

)할례에 대한 언약과 징표(23~27)

그런 의미에서 아브라함은 그의 삶의 통해 실수는 분명히 있었지만 믿음의 조상이 될 충분한 자격이 있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23절의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그에게 하실 말씀을 다 하시고 하늘에 올라가시자, 아브라함은 바로 그날에 하나님의 명령을 준행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명령은 할례에 대한 명령이었습니다.

아브람의 이름이 아브라함으로 바뀌면서 즉각 할례를 받은 나이는 그의 나이 99세였습니다.

이스마엘은 13세에 할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집안의 모든 남자들이 종이건 노예건 다 할례에 순종하게 되었습니다.


결론)

오늘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1)첫 번째는 하나님께서 13년 만에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하신 말씀인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는 지금 시대를 사는 성도들인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하는 말씀입니다.

 

2)두 번째는 아무리 영성이 좋은 분들이라도 하나님의 뜻을 다 알 수 없음을 인정해야만 합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 현재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결국 아브라함은 13년을 하나님의 뜻을 잘못 알고 부족한 믿음으로 살아온 결과가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그 충격 역시 적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바로 그날부터,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그 자신과 온 가족과 종과 노예들조차에게도 할례를 다 행하였습니다. 결국 온전한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전적인 순종에서 옵니다.

100224 안익선 목사/ 참조: 김영준 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