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

창세기 제18장 강해 (아브라함을 방문하신 하나님)

호걸영웅 2024. 10. 20. 01:49

창세기 제18장 강해 (아브라함을 방문하신 하나님)

 

 서론)

 본 장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1-19절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찾아오심과 크게 접대한 아브라함. 2)20-33절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에 대한 언급 하심과 중보한 아브라함의 이야기입니다.

 

본론)

) 아브라함을 찾아오신 하나님을 크게 접대한 아브라함(1-19)

1: 여호와께서 마므레 상수리 수풀 근처에서 아브라함에게서 나타나시니라. 오정 즈음에 그가 장막문에 앉았다가=

  아브라함이 장막을 친 곳은 아모리 사람 ‘마므레’라는 사람이 소유한 상수리 숲 근처라 했습니다(베들레헴에서 35키로 남부인 헤브론 인근으로 봄). 이곳은 아브라함이 조카 롯과 작별한 후 줄곧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 후사와 기업에 관한 언약을 받은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오정 즈음에 아브라함을 찾아오셨습니다. 이때는 점심 식사 때나 혹은 식사 후 휴식을 취할 때요, 뜨거운 햇볕을 피해 장막문 앞에 더위를 식히는 것이 관례인 때입니다.

 

2: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섰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문에서 달려 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세 사람 가운데 한 분은 하나님이시며 나머지 둘은 천사로 보아야 합니다.(19:1, 13:2)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으로 현현하시는 이유는 인간 편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당시 더위에 지친 나그네를 영접하는 것은 근동지방에서는 일상적인 생활 풍습이기도 했습니다. 영적으로 깨어있는 아브라함은 나타나신 3분의 사람이 일반적 나그네가 아니라 하나님과 천사의 방문으로 직감하게 됩니다.

 

3: 가로되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컨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옵시고=

  아브라함은 손님에게 “주(아도나이:אדני)”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아들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엎드렸을 것이라고 보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주님과 천사들에게 그냥 가지 마시고 유숙하기를 간청하였습니다.

 

4,5: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서 쉬소서. 내가 떡을 조금 가져 오리니 당신들의 마음을 쾌활케 하신 후에 지나가소서. 당신들이 종에게 오셨음이니이다. 그들이 가로되 네 말대로 그리하라.=

  나그네를 대접하는 방법 중 발을 씻도록 물을 가져다 주는 것은 당시의 정중한 예법입니다. 당시 중근동에서는 대개 샌들을 착용하였기에 발이 모래나 흙먼지로 가장 먼저 더러워지게 됩니다. 그래서 집 주인이 제일 먼저 손님에게 발 씻을 물을 제공하는 것이 관례입니다 (19 :2; 7:44). ‘쉬소서(솨안:שׁען)’라는 말은 ‘기대다, 팔에 의지한다’는 뜻이며 기대어 비스듬히 눕는 것은 팔레스틴 사람들의 일반적 식사 관습입니다. 따라서 단순히 쉬라는 의미만 아니라 식사를 즐기며 휴식을 취하라는 뜻을 포함합니다. ‘쾌활케’라는 말은 원기를 회복하시라는 뜻입니다.

 

6-8: 아브라함이 급히 장막에 들어가 사라에게 이르러 이르되 속히 고운 가루 세 스아를 가져다가 반죽하여 떡을 만들라 하고, 아브라함이 또 짐승 떼에 달려가서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취하여 하인에게 주니 그가 급히 요리한지라. 아브라함이 뻐터와 우유와 하인이 요리한 송아지를 가져다가 그들의 앞에 진설하고 나무 아래 모셔 서매 그들이 먹으니라.=

 

아브라함이 나그네를 접대한 내용입니다. ‘스아(세아:סאה)’는 곡물의 양을 측정하는 단위로 한 스아는 7.33(4)니까, 무려 약11( 22리터)가량 되는 푸짐한 분량입니다. ‘모셔 서매’= 나그네에게 식사를 준비한 아브라함이 곁에서 시중들기 위해 대기하였 습니다. 하나님과 두 천사는 기꺼이 식사를 하십니다.

 

9: 그들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대답하되 장막에 있나이다.

  10: 그가 가라사대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정녕 내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문에서 들었더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아들 즉 이삭을 낳을 시기에 다시 돌아오실 것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이는 반드시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의 반복입니다.

 

11,12: 아브라함과 사라가 나이 많아 늙었고 사라의 경수는 끊어졌는지라,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어찌 낙이 있으리요.=

 여기서 사라가 더 이상 아이를 가질 수 없을 정도로 노쇠했음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이는 사라에게 아이가 생길 것이라는 주님의 언약에 회의를 갖게 하는 가장 주요한 요인입니다.  그래서 사라는 웃었습니다.

 

13: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사라나 인간의 편에서는 아들을 낳지 못하는 것이 매우 당연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자연의 섭리와 질서도 능히 변화시키는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 우주만물과 우리를 창조하셨고 다스리시기 때문입니다.

 

14: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나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 신 것이라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라가 아들을 낳을 때에 반드시 또 방문하시겠다 고 하십니다.

 

15: 사라가 두려워서 승인치 아니하여 가로되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 가라사대 아니라 네가 웃었으니라.=  사라는 자신에 관한 대화를 몰래 엿듣던 중 자신의 속마음을 하나님께 서 알고 계심을 깨닫고 두려워 거짓말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네가 웃었 으니라.’고 단언하십니다. 사라는 침묵할 수밖에 없습니다.

 

16: 그 사람들이 거기서 일어나서 소돔으로 향하고 아브라함은 그들을 전송하러 함께 나가니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 아들을 주신다는 언약의 확증을 심으시고 이제 소돔을 심판하기 위하여 북쪽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두 천사를 배웅하기 위하여 일정한 거리까지 따라 갔습니다.

 

17: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18,19: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로 인하여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그로 하여금 번성하게 하는 이유는 천하 만민으로 하여금 복을 받게 하기 위함임을 가르쳐 주십니다. 또한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여호와 한 분만을 올바로 섬기며,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올바른 삶, 즉 여호와의 도를 지켜서 의와 공의를 행하게 하려고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을 언급하시다(20~ 33 )

20: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중하니

 = 이는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이 극도에 다달았음을 의미합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범죄 도시의 대표적 유형입니다( 11:8). 영어로 “소도마이트(Sodomite)"가 ‘남색자(게이, 동성연애자)란 의미를 갖습니다.

 

21: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하노라.=  하나님께서 보시고자 하는 것은 소돔과 고모라에 죄악이 가득 차 죄악이 절정에 달했는지의 재점검하려는 의도가 있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악행이 절정에 이르기까지 심판을 미루시는 이유는, 그 심판이 너무나 극심하고 무섭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최후의 순간까지도 죄인이 회개를 기다리시며 하나님의 오래 참으시는 은혜와 자비하심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22,23: 그 사람들이 거기서 떠나 소돔으로 향하여 가고 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 그대로 섰더니, 가까이 나아가 가로되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려나이까?=

  먼저 떠난 사람들은 두 천사입니다. 아브라함은 여전히 여호와 앞에 계속 머물러 혹시 소돔과 고모라에 있을지 모르는 의인을 언급하여 하나님의 ‘자비를 간구하게  됩니다.

 

24,25: 그 성중에 의인 오십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그 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치 아니 하시리이까?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불가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균등히 하심도 불가 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공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

  악인에게 형벌을, 의인에게 구원과 상을 베푸시는 것을 ‘공의’의 성취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의인 오십 명’을 언급한 것은 단지 그 오십 의인만이 구원을 받게 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모든 주민들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는 마음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의 분노하신 마음을 누그러뜨리려는 의도가 있었습니다.

 

26: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만일 소돔 성중에서 의인 오십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경을 용서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간구하는 내용의 요점을 정확히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의인 오십을 찾게 되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경을 용서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하심입니다.

 

27: 아브라함이 말씀하여 가로되 티끌과 같은 나라도 감히 주께 고하나이다.=

아브라함은 자신을 가리켜 ‘티끌’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는 아브라함이 자신의 존재 가치를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겸손하게 표현한 부분입니다.

 

28-32: 오십 의인 중에 오인이 부족할 것이면 그 오인 부족함을 인하여 온 성을 멸하시리 이까? 가라사대 내가 거기서 사십 오 인을 찾으면 멸하지 아니하리라~’……. 아브라함이 또 가로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말씀하리이다. 거기서 십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가라사대 내가 십 인을 친하여도 멸하지 아니하리라.=

아브라함은 처음에는 의인 50인에서 45인으로, 40인으로, 30인으로, 20인으로 하감시키며, 마지막에는 10인만이 있더라도 구원해 주실 것인지를 질문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아브라함의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잘 알기에 의인 10인을 위해서도 소돔 과 고모라를 멸망시키지 않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기준인 지혜나 도덕에 의해 흥망성쇠를 결정하지 않으시고 하나님 께서 인정하실만한 의인, 곧 성도들에 의해 그 지역사회의 심판을 결정하시는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을 당한 것은 그들의 죄악 때문이긴 하지만, 더 결정적인 것은 그곳에 하나님께서 인정하실 만한  의인 10명 조차 없었기 때문입니다.

 

33: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즉시 가시니 아브라함도 자기 곳으로 돌아갔더라. =  하나님께서는 의인 열명조차 없다면, 결국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로 작정하시고, 마침내 아브라함과의 대화는 끝나게 됩니다. 그리고 작별의 순간이 오게 되었습니다.

 

결론)

본장 전반부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드러나시고, 후반부는 공의로우시나 자비를 베푸시길 즐겨하시고 오래 인내하시는 하나님이 발견됩니다. 그리고 성도의 본분이 무엇인지 아브라함의 중보가 나옵니다. 우리의 중보가 왜 중요한지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왜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삶을 살아야 하는지 잘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101024 안익선 목사 / 참조: chukang